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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가정-아들셋]
제14편. 학부모 상담

'7 + 8 = ( )'

by 김현이

"엄마!,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얼마든지!!"

"아니, 있잖아.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닌데도 그 친구를 위해서 내가 했다고 선생님한테 말하는 것은 정직한 거야 아니면 거짓말 하는 거야?"


이번엔 질문이 좀 어렵다. 음.. 정우가 원하는 대답을 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내가 질문을 시작한다.


"정우야~!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아니~~, 그냥 나는 엄마가 항상 거짓말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하니까 만일에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내가 했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 아닐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음.. 그러면 정우야 그럴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정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내가 했다고 말하는 게 좋지~~!"

"음.. 정우야~! 거짓말 중에는 꼭 나쁜 거짓말만 있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 너의 말대로 네가 하지도 않을 일을 네가 했다고 말할 수도 있어.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그 때 네 기분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야.

너는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당연히 좋지!!"

"왜?"

"친구를 위하는 일이니까."


나는 이 순간 말문이 막힌다. 오늘은 정우가 내게 조금은 대답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질문을 했다. 학교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분명하게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대화가 오고 간 후 며칠 뒤에 정우의 2학년 새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가졌다. 1학년 때와 달리 아주 젊은 남자 선생님이 정우네 반 선생님으로 배정되어서 정우보다 오히려 엄마인 내가 더 안심이 된다. 처음 가정통신문에서는 학부모 상담 시간은 약 20분 정도로 배정이 되어 있었는데 어찌 내 아이에 관계된 대화를 하면서 어떻게 20분으로 끝낼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학교 측의 형식적인 일 처리에 아이들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 게 아닌지 불만을 갖고 있었다. 물론 아이들에 비해 선생님은 단 한 명 뿐이니까 선생님 입장에서는 20분이라 해도 충분히 부담이 될 만한 시간일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는 되지만 나는 두 시간도 부족하다고 여길 정도로 정우에 대해 엄마가 알고 있는 모든것을 말해 주고 선생님을 통해 내가 모르는 정우의 다른 면들을 알아서 돌아갔으면 하는 욕심(?)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정우네 선생님께서는 작년 선생님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정우로 알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선생님이 보는 정우와 엄마인 내가 보는 정우가 더 가깝게 일치하다는 생각에서 인지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한층 더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초등학교 교육은 2학년 때까지는 정규 시험평가를 치르지 않는 것으로 예전과는 교육 방침이 많이 변했다. 그런데 선생님 입장에서는 내가 맡은 아이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 인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의무에서 불시에 국어와 수학 시험을 보았다고 하셨다. 정우의 시험 결과지를 내밀며 하시는 첫 마디가 나를 다소 당황스럽게 했다.


"어머니, 정우는 흑과 백이 분명합니다. 국어 수학 모두 주관식과 객관식 문제로 섞여 있는데 객관식 문제만 풀었습니다. 심지어 연필로 밑줄 한번 긋지 않고 처음 부터 끝까지 눈으로만 푼 것 같아요. 물론 객관식은 국어 수학 모두 맞았어요. 그런데 주관식 문제는 한 문제도 풀지 않았습니다. "


'무슨 뜻일까? '


"다른 친구들은 연필로 낙서도 하고 문제를 풀려고 그랬던 건지 비록 정답은 맞추지 못했더라고 약간 고민한 흔적이 보였는데 정우 시험지만큼은 오로지 정답만 표기되어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시험이 있은 뒤 며칠간을 더 정우를 눈여겨 보았다고 하셨다. '눈으로만 글씨를 읽고 정답을 표시하고 풀었던 문제는 모두 맞혔다. 하지만 주관식 문제는 손도 대지 않았다. 이 아이가 어떤 논리적인 사고 방식이 부족한 아이일까? ' 그러다 오늘 수업 중에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항상 수업중에 아이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수준에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내고는 하는데 그 문제를 정우가 풀었다는 것이었다. '아~! 이 아이가 결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가 아니구나.!' 그동안의 고민이 해결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우가 자기반 아이가 되었고 정우 같은 아이를 만났다는 것에 많은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아이의 이런 학습적인면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었다. 정우는 아직 또래 아이들에게 형성되어 있지 않은 성숙한 배려심이 있다고 하셨다. '흠.. 그래요 선생님. 어쩌면 제 아이를 이렇게도 그 몇 주만에 잘 파악하셨나요. 집안의 첫째 아이라서 의무적으로 갖는 배려심이 아니라 우리 정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그런 마음을 타고 난 아이에요.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도 그랬었고 동생들이 태어나지 않았던 때도 그런 아이라는 걸 엄마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느라 선생님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가시며, 걱정인 것은 정우가 제 욕심을 지금 보다 더 많이 차렸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한 가지 부탁을 하신다. 자기 반 아이들 중에 한 두명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로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물론 평소에도 모두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그 말을 들을리가 없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그 아이 이름까지 언급하시면서 정우에게 그 아이도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 아이도 똑 같은 반 친구이니 친하게 지내라고 이야기를 해 주라는 거였다. 상담을 마치고 오는 내내 내 속에서 나온 이 아이를 내가 잘 못 키우게 될까봐 아이의 잠재력을 깨워주지 못하는 엄마가 될 까봐서 마음이 혼란스럽다.


저녁 밥상에서 정우가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엄마?"

"응~ 정우야! 말해봐!"

"엄마는 덧셈 뺄셈 잘 할 수 있어?"

"글쎄, 정우가 엄마보다 더 잘 할 것 같은데..?"

"그러면 큰 수가 어려워 작은 수가 어려워?"

"당연히 큰 수가 어렵겠지.."

" 나는 큰 수가 더 쉬운데.. '150 + 200' 보다 '7+8'이 더 어렵잖아~~!"

"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 엄마는 백억 더하고 천 억 이런거 어려워?"


사실 정우 말대로 꼬리를 달고 나타나는 숫자들이 더 복잡하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심지어 수학 II 를 배웠을 때도 억단위의 계산은 해 본 기억이 없다.


"에이~ 정우야! 사실 억까지는 수학시간에 나오지도 않아" 하고 웃어버리자,

"그렇지, 억, 천은 돈 셀 때 나오잖아. 막 집사고 차사고 할때.

수업 시간엔 안 나올거야.."



정우의 대답에 잠깐 웃음이 나온다.


"그럼 정우야 7+8이 뭐야?"


정우는 간단히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에 말이 길어진다. 그러면서,


"우선은 7과 8에서 먼저 10을 만들어야 돼. 그렇게 하려면 5를 빼야 되지? 음.. 7에서 2와 8에서 3이 남잖아 그러면 10에다 5를 더해서 15가 돼!"


나는 갑자기 이런식의 연산을 하는 정우를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우의 이런 연산법이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터득한 것인지 정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로서 선뜻 판단이 서질 않아서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난 번 정우가 친구대신 잘못을 자기가 뒤집어 쓰는 일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던 것을 선생님과의 상담중에 혹시 아이가 집에 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혹시 선생님과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인지 그래서 아이는 정확한 판단을 구하고자 내게 질문한 것이 아닌지 하는 내 말에 선생님의 대답- '아니에요 어머님, 만일에 그랬대도 저는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을 겁니다.'- 이 이번에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정우야? '77 +88'은 뭘까?"


아이는 아까와 같은 식으로 100을 먼저 만들고 나머지를 더하는 방식으로 정확하게 정답을 말한다. '그래, 여기까지는 쉬울 수도 있다. 그러면..'


"와~! 잘하는데? 그럼 정우야 "777+888'은 정답이 뭘까?"


이번엔 아예 밥 숟가락을 내려놓고 더 집중하는 듯 하더니 곧 정확한 정답을 말한다.


"천, 육백 육십 오"


아니 연필 한자루 없이 몇 초만에 정답을 맞추는 정우가 놀라웠다.


"와~! 우리 정우 수학 천재다! 진짜 잘하네~~!! 이제 우리 얼른 밥먹자."


거기에서 한 자리수를 더해서 질문을 했더라도 나는 정우가 정답을 풀어 냈을 거란 걸 알고 있다.


아이는 몸과 마음을 항상 움직인다. 어느때는 곁에 두기 성가실 정도로, 정서불안이 의심될 정도로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다시 말해, 어린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를 만나지 못했으므로 자기의 내적 세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정적이어서 어떤 생각을 골몰할 수 있는 아이라고 한대도 부모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다는 것도 안다. 말 그대로 자폐증같은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의 행동발달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알고 '아이는 아이다워야...' 정상이라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끊임없이 '얌전히 있어라, 제발 좀 조용히 해라.' 식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저지르며 살고 있다. 그건 마치 그건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잠을 안 자고 계속 놀고 싶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이불속으로 끌어다 '빨리자! 안 그러면 혼내줄거야!' 의 상황은 감기로 혹은 아이들에게 왔다갔다 하는 갖가지의 질병으로 앓고 있는 아이를 두고 '빨리 나아라! 안 나으면 혼내줄거야!' 라고 억지를 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힘쓰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독서습관을 들이려는 거다. 한번씩 또래 아이들이 영어, 수학 등 다른 사설 학원에 다닌다는 대화를 할 때가 있는데 그들의 말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따라가야 한단 말인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정답이라고 여기며 그것을 추구하고 쫒아가는 생활로 시작해야 한다면 장차 어른이 되어도 절대 나만의 자아를 찾지 못하고 남 뒤꽁무니만 따라가며 평생을 폐배의식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가. 나는 내 아이들에게 적어도 자신만의 주체를 확립할 수 있는 의지를 심어 주고 싶은 것이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엔 독서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 또한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합의가 된 쉽게 깨지지 않는 상식처럼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습관이라는 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단 몸에 들어오게 되면 거기에서 쉽게 도망쳐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아이에게 특별한 힘을 들이지 않는 것에 비해도 비교적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책읽는 습관"을 들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가장 손 쉬운 방법이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아이들이 요동치는 소란속에서도 당당히 책의 등짝을 보여주며 책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 솔직히 말해 볼까. 독서는 수많은 취미 중에서도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거니와 일단 책 속에 들어가면 그 책이 어느 시대의 어디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지 상관없이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그 얇은 지면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통해 그 세계로 언제든지 떠나서 누구든 만날 수도 있는 우주보다 광활할 세계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끔 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독서는 가장 쉬운 취미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취미이기도 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기분전환 삼아 시간죽이기 식으로 책을 가까이 하는 쉬운 취미로 길들여 줄 생각은 별로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 아이들만큼 협조적인 존재도 없으며 그저 관대한 협조를 잘 활용하는 법을 알기만 하면 되어서 책과 관련된 행동에 대한 보상을 후하게 쳐주면 그 습관을 들여주는 것도 그다지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며칠 전 새벽 선잠이 깬 나는 잠들기 전까지 읽다가 머리맡에서 마치 사람처럼 배를 깔고 자던 책을 서둘러 깨워서 한 참을 빠져들고 있었다. 핸드폰 라이트의 미세한 불빛을 이미 동이 튼 것으로 착각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엄마가 일어나 있는 것으로 보아 곧 자기도 깰 시간이라는 것을 짐작한 것인지 분간 할 수 없었지만 정우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나는 정우에게 아직 더 잠을 자도 된다고 말을 하지만 책 읽는 내 모습에 자기전 읽다 만 책의 다음장을 펴 들고 가까이 앉는다. 이것이 전염된 것일까 싶다가 어쩌다 한 번 일테지 생각하며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준다. 이래서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행동할 땐 신중해야 하는가 보다. 여과없이 그대로 따라하기도 하지만 오늘 알려준 것도 내일이면 금새 잊어버릴 수 있는 생각의 패턴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정우의 답장지를 보고 흑과 백이 분명한 아이임을 염려하여 더 유심히 정우를 관찰했던 선생님처럼 무조전 '좋다 나쁘다 식의 흑백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마치 대낮의 정오가 그 화사한 햇빛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정의 짙은 어둠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처럼 어느 한쪽이 존재한다는 것은 반드시 다른 쪽이 있음을 알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정우의 새벽 독서를 기뻐하지도 걱정하지도 않는다. 점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갈 것이 예상되는 정우로서 자기 본연의 세계를 찾게 될 분별력을 가진 힘을 여러차례 보아왔기 때문이다.


비가 온다.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등굣길에서 학교 담벼락을 뒤덮고 있는 개나리꽃이 하루만에 입을 활짝 벌린 것을 보면서 하늘과 대지를 만나게 해주는 존재가 문득 비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대지에서 움틀대는 작은 씨앗처럼 곧 하늘을 향해 그 간극을 좁히며 자라날 것이라는 잠재적인 희망을 암시하는 존재와도 같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아이에게 비와 같은 엄마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지난 밤 사이 참 오랜만에 많은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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