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보면 내 성향은 제 몸을 한시라도 편하게 두지 못하는 기질을 타고난 사람같다. 시력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면서도 유난히 내 눈에는 창틀의 먼지, 방바닥 구석에 구부정한 아이들의 얇고 짧은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항상 그 존재를 과시하는 것 처럼 보여서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 없기 때문이다. 마치 항상 꽉꽉 채워지는 쓰레기봉투 속에서 제 자리를 선점하려는 듯 내 눈에 띄려고 기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토요일! 나는 1년을 가야 한번을 꺼내 입지 않았던 목 늘어난 반팔 티와 늘어진 발목때문에 우리 아이들 신발속에서 끊임없이 벗겨지고 올려신기를 반복했었던 양말들, 좁아터진 옷장안에서 최대한 몸을 차곡차곡 포개어 최소한의 공간속에서 웅크려 눈치만 보던 먼지 묻은 담뇨들, 나머지 정리를 마치기까지 토요일 오전 반나절을 꼬박 바쳐야 만 했다. 이렇게 정리되어 있는 공간-비록 나 혼자만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을 보면서 일하는데 집중하면서 써버린 에너지로 인한 약간의 허기와 현기증에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 참 좋다. 오래 묵은 듯 한 희미한 곰팡이 냄새와도 같은 먼지 냄새, 남들이 내 자신의 별다른 취향 쯤으로 간주해도 좋을 집안 정리 동안의 이런 먼지 냄새가 내 후각을 자극하는 순간 다시 이 일의 과정을 빨리 끝내고자 하는 열정에 기름을 붙는 역할을 해 주는 이런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엄마! 이거는 왜 버리는 거야?"
"응, 선우야! 이제 낡아서 별로 쓸모가 없어서 버릴려고."
"아~! 이제는 늙어서 버릴려는 거구나!"
오래된 사물에 '늙는다'는 표현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영혼이 참 순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선우는 형과 동생 사이에서 어떻게 보면 가운데에서 샌드위치되어 위로도 아래로도 자유롭지 못하고 소위 막내쪽 보다는 둘째의 입장을 고스란히 느끼며 사는 아이다. 단우가 태어나기 전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막내로 지내오다가 어른들에게 막내라는 우월한 자리를 하루아침에 내 주었으니 그 박탈감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고 또한 집안의 장남 격인 형에게 항상 쓰다 만 물건, 헌 것들 만을 물려 받아서 입고 써 왔던 아이인지라 '늙었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지만 세 아이를 둔 엄마로서 딱 잘라서 동의하지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선우만큼은 앞으로도 더 각별한 관심으로 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우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선우도 같이 병설유치원으로 전원을 하게 되었다. 전혀 아이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았었고 사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을 학교에서의 생활들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큰 아이, 둘째를 한데 모아 두어야 내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순전히 내 입장만을 고려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방학-, 병설유치원은 방학 중 돌봄과정이 없었던 학교였으므로 겨울 방학 두 달동안을 내가 사무실에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의 시간을 소비해줘야 했었다. 그나마 내 직장의 여건이 좋은편에 속하므로 가능했던 일이었다지만 그 시간 동안 선우는 형의 움짐임에서는 벗어 날 수 있었더라도 더 크고 버거운 엄마의 생활 패턴에 적응하기 위해어렵고 지루한 시간들을 보냈으리라 짐작한다.
그렇게 긴 겨울을 지나고 일곱 살의 봄- 3월 입학기를 맞았다. 선우는 예정대로 다시 병설유치원의 맏형이 되었고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형이 다니는 학교를 내년에 입학하게 될 것이다. 선우는 한 번씩 사람을 빤히 바라볼 때가 있다. 엄마는 정신없이 자잘못을 따져 열을 올리며 정신없이 떠들어 대고 있으면 선우는 마치 귀의 볼륨을 완전히 닫은 사람처럼, 마치 '엄마의 목소리가 전혀 들지 않아요.'하며 침묵으로 일관하며 눈으로만 의사표현을 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더 열이 받다가도 그냥 스스로 말하기를 멈춰 버린다. 그 순간 아이가 머릿속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는가를 알아 낼 수가 없다. 마냥 고요하고 미동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호수같은 여유가 마치 일요일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잠을 자던 자전거를 깨우려는 것인지 보조바퀴 달린 네발 자전거 폐달을 힘차게 내 밟는다. 그 뒤를 동생 단우는 뚱뚱한 기둥 뒤로 잠깐씩 몸을 감추기도 하지만 다시 금방 나타나서 마치 아기의 눈에만 보이기라도 하듯 선우가 밟고 지나간 바퀴자국을 기가 막힌 모양으로 따른다.
"선우야, 동생이랑도 같이 놀아줘!"
이럴때는 가깝지 않은 엄마의 말소리도 금방 알아차리고 단우에게 애지중지 하던 자기 손바닥만한 크기의 변신자동차를 기꺼이 양보하면서 아기를 기다리게 하거나 동생보다 앞서거나 하는 일도 없이 단우의 걸음으로 균형을 유지해 가며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흥을 돋워 동생의 기분을 맞춰준다.
"파이널 러블리티 터닝메카드~~~!!!"
마트에서 잠깐 아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잃어버렸다고 하기 보다는 형과 잘 놀고 있으라고 말한 사이 순수한 마음만큼 집중력이 강한 아이들이라서 한 곳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지 않는, 오로지 본인만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들어가버리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잡다한 생각으로 주의가 산만해지 어른들 시야에 쉽게 보이지 않게 될 때가 한 번씩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그 몇 분동안의 아이의 부재는 모든 부모의 마음을 놀래키기는 충분하다. 지나치게 빨란 립스틱을 바르고 입술 주변의 흉터 탓인지 약간은 삐뚤어진 입 모양 때문에 더 퉁명스러워 보이는 고객센터 이 여직원은 분명히 미혼이거나 기혼자였더라도 자식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럼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아이를 찾는 방송을 해 달라고 호소하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지나치게 느린 행동과 들릴 듯 말 듯한 웅얼거리는 말투로 내 이야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보이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특징이 뭔가요?"
몇 초동안 말문이 막혀버린 나는 두꺼운 아이라인으로 장식된 여직원 눈을 바라본다.
"아.... 네. 청록색 야구잠바, 회색 바지... 그리고 키는 1미터 10센티미터 정도의 남자 애입니다."
10여 분 후 쯤 까만 정장으로 보이는 유니폼을 입고 한 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무전기를 손에 쥔 보안요원 쯤으로 보이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선우가 다가온다. 허리를 90도 가까이 수그리며 온 몸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선 아이를 바통터치 받고 나는 다시 아이 손을 잡은 채로 그 고객센터 여 직원 앞으로 다가가 이야기 한다. '우리 아이 특징이요? 이 마트안에 있는 모든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돋보일만큼 잘 생긴 얼굴을 갖고 있어요. 말 그대로 "넘사벽" 입니다. ' 양 옆에 큰 아이와 막내를 푹신한 의자에 앉혀 놓고 나서 선우와 키를 맞춰 무릅을 꿇은 채로 옷 매무새를 고쳐주면서 고객센터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잠시 동안 상상해 본다.
간혹 다중의 사람들 사이에는 책과 워크맨 등으로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며 밖의 상황은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만의 고집스러운 독특함을 노골적으로는 아닐지라도 가벼운 비난을 쉽게 하고 오히려 그 비난을 비판하기 보다는 함께 동참하기를 원하는 군중 심리를 갖고 살아간다. 선우는 아주 가끔씩 그런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지닌 사람들이 할 법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어린 아이라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만 나머지 두 형제들과는 조금 도드라진 행동으로 한 번씩 나를 놀래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이런 성향은 부모와의 친밀감, 특히 엄마와의 둘만의 특별한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삐쳐있는 아이에게 강한 말로 따져 묻는게 아니라 조용히 다가가 엄마는 너를 가장 사랑하고 있으며 항상 선우의 편이라는 것을 마치 아이와 둘만 알고 있는 비밀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귓속말을 해 보는 것이다. 아이의 인격 형성에 가장 큰 역할과 책임을 갖고 있는 엄마로서 의무감이 아닌 진정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이 가능한 일이며 나는 선우를 전형적인 가운데 아이 컴플렉스를 가진 아이로 키우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가운데라서 다른 아이보다 더 양보하고 배려심이 많아 심성이 넉넉한 착한 아이로 키워낼 것이다. 내 사랑과 관심으로 그렇게 선우를 키워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