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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9. 2017

6. 비밀


  “엄마, 이 옷은 어디에서 났어?”

  “응~ 엄마가 만들었지. 어디 한 번 입어 볼래?”

  어깨부터 연결된 소매끝 부분은 꽃 잎 두 장을 포개어 놓은 것처럼 약간은 봉긋한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허리선부터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의 길이는 점점 폭이 넓어지면서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게 되면 넓은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퍼지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다리를 길게 뻗어도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을 그런 모양의 원피스였다. 반소매로 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 안에다 블라우스를 받쳐 입게 되면 이런 날씨에 입기에도 문제가 없어 보였고 엄마는 어느새 이 옷을 만들었던 것인지 마치 열 손가락 전부가 제 각자 바늘 한 개씩 들고 바느질을 했었다고 해도 밤을 꼬박 새웠어야 만들어낼 옷이었다. 

  엄마는 하얀색 타이즈위에 원피스를 입혀 주신다. 거울이라고는 얼굴만 간신히 보이는 크기로 그것마저도 내 손이 닿지 않던 수돗가 담벼락에 걸려 있던 것이 전부였으므로 나는 내 전신의 모습이 궁금해서 안방 윗목에 있는 텔레비전의 미닫이식의 양쪽 문을 끝까지 열어 놓고 꺼진 화면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상체를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가며 등 쪽을 보고 몸에 딱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내가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님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하고 돌아본다. 처음자리로 되돌아왔을 때 약간의 현기증으로 중심을 잃고 손바닥을 방바닥에 짚었다. 

  내일 모레 10월 19일면 내 생일이다. 올해는 생일이 일요일이어서 늦잠을 자도 되고 온 종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아도 된다는 생각에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하루하루가 지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인데 마침 오늘은 또 일전에 미리부터 선생님이 아주 특별한 수업을 하실 거라고 말씀을 하셨던 날이라 이 원피스는 생일보다는 오늘 입는 것이 딱 들어맞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어디 야외에 라도 나가는 것인가 하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한테 입은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에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책가방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덕구는 마치 잘 다녀오라는 것처럼 캉캉 짖으며 꼬리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덕구의 꼬리는 언제나 바쁜 엄마의 손과도 같다. 

  동쪽에서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신작로 가에 나 있는 풀잎들이 영롱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구슬처럼 매달린 이슬방울이 제 몸으로 햇볕을 통과시키면서 만들어낸 장관이었다. 나는 새 옷을 입은 들 뜬 기분 탓인지 평소에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마치 처음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 광경은 약간은 찌푸린 눈으로 보아야 몇 배는 더 멋지고 훌륭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일부러 얼굴을 오만상으로 찌푸려가면서 가늘게 실눈을 뜨고 들판의 멀리까지 바라보았다.

  두 칸짜리 분교는 세 계단을 올라서야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무로 된 바닥은 조용하고 사뿐사뿐 걷고 싶었던 내 마음과는 달리 한 발 한발을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셔 이미 교실에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리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뽐내며 자랑하고 싶었던 속마음과는 다르게 왠지 평소와 다른 차림과 조심스러운 이런 분위기가 어색했기 때문에 친구들의 시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1학년 우리 선생님의 이름은 장판쇠다. 이름이 정말로 웃기고도 특이하신 분이다. 그리고 그 외모 또한 정말로 대단하신 분이다. 만일에 선생님께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독심술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벌써 몇 번이라도 혼이 났을 정도로 선생님의 얼굴과 외모를 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선생님이 정말로 재미있는 얼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두꺼비와도 같이 두꺼운 입술과 툭 튀어나온 커다란 눈동자에 까만 얼굴, 그리고 왜 그렇게 머리숱은 없는 것인지 그나마도 벗겨진 이마를 제대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몇 가닥 남아 있지 않는 머리카락은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선생님이 입을 꾹 다물고만 있어도 다른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키는 아버지보다도 쑥 커 보였지만 정말로 임신한 아주머니처럼 볼록한 배는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 구멍이 감당하기에 벅차 보일 정도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몸에서 튀어 나오지 않은 부분은 단 한 군데 밖에는 없는 것 같이 보였다. 그건 바로 두툼한 손등의 손가락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그곳은 마치 아기의 통통한 손처럼 보조개 같은 구멍이 쏙쏙 나 있었기 때문에 하얀 백묵을 손에 쥐고 초록색으로 된 칠판에 글씨를 또각또각 써 내려 가는 손이 참말로 귀엽고 앙증맞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 모습이 정말 귀엽다는 생각에 멍하니 딴 생각으로 구두 굽 소리와도 같은 백묵이 칠판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살짝 졸기도 하고 모든 것이 멈춰 있어서 사진처럼 보이던 놀이터의 미끄럼틀과 시소를 바라보기도 했었다. 

  칠판의 삼분의 일 정도를 차지 할 정도로 커다란 글자가 박혀 있다. “시.” 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선생님은 교실보다 약간 10센티미터 정도의 턱이 있는 높이에 올라서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자, 가을이 왔어요. 가을이 어떤 계절인지 말해 볼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나는 선생님의 외모와는 지나치게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온유하고 교양 있는 말투 탓에 항상 텔레비전에 나오는 코미디언들이 보여주는 콩트와도 같다는 생각에 웃음을 터트릴 뻔한 적이 많았다. 그야말로 선생님의 목소리는 반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 선생님을 그 끔찍한 외모 때문에 싫어했다고 한다면 맹세코 벼락을 맞았을 거다. 나는 선생님의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오리려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와 아버지가 뒷집 영길네 아저씨에게 항상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에 외모가 못생겼거나 보통사람들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사람들은 정말로 친절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듣는 선생님의 부드러운 말소리는 선생님에게로 더 빠져들게 만들었고 배불뚝이 아저씨 같은 선생님이었지만 나는 나의 첫 선생님, 장판쇠 선생님을 무척 좋아한 것은 사실이었다. 

  저 뒤쪽의 생쥐 같은 재문이가 한 마디 한다. 

  “가을은 먹을 게 많아요. 알밤도 따고 감도 익고 또 타작도 해야 되니까........”

  나는 속으로 우리 반에서 가장 개구쟁이라고 여겨왔던 그 녀석이 제법 제대로 알고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고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리던 중 봉수가 눈에 들어온다. 봉수는 거의 항상 창가 쪽에 앉아 있는데 얇은 유리창으로 통과하는 가을 볕 탓인지 유난히도 얼굴에 빛이 나는 것 같다. ‘저 녀석은 얼굴에 분칠이라고 한 것인가.’하고 생각한다. 

  “가을은 모든 자연이 성장 보다는 이제 성숙을 하는 시기에 가까워요. 어려운 말로 ”천고마비(天高馬肥) 의 계절“이라고도 합니다. 혹시 이 말을 들어 본 친구들이 있나요?”

  우리들 중에는 아무도 아는 체를 하거나 선생님께 무슨 뜻인지 먼저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평소와는 다른 수업 내용으로 진행되는 시간에 나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이 조금은 얼떨떨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듯 굳은 표정으로 눈만 깜박거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풀이를 하면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지내기 좋은 계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나는 왜 갑자기 저런 어려운 말로 우리들의 정신을 마비시켜 버리는 것인지 선생님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칠판에 써진 저 ‘시’라는 글자가 딱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답답함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인지 모두들 선생님의 두툼한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바로 이 수업이 일전에 선생님이 말했던 그 특별한 수업이라는 것인지 조금 속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시’라고 쓴 이유도 바로 이 가을인 계절과도 상관이 있어요. 가을은 또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하거든요. 책을 읽기에 그만한 좋은 날씨가 없다는 뜻입니다. 산에는 단풍이 들고 들에는 먹을 것들이 풍성하게 익어가는 이런 풍족하고 여유 있는 계절에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고 다른 때보다 훨씬 감성적으로 풍부한 상태가 되어서 요즘에 책을 읽으면 몇 배의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 될 거에요. 자, 오늘은 공책과 연필만 책상위에 올려놓고 바른생활은 책상 속에 넣어 두도록 하세요. 그리고 선생님이 칠판에 쓰는 것을 공책에 그대로 옮겨 쓰는 겁니다.”

  선생님은 하얀색 백묵을 그 커다란 손으로 감싸고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칠판에 글자를 써 내려 가셨다.  

  제목 : 가을햇살은

  가을햇살은 

  이른 새벽 

  풀잎 끝 이슬을 

  옥구슬로 만든다. 

  가을햇살은

  한 낮에 

  국화꽃에 앉아서 

  향기가 된다.

  가을햇살은 

  해질 무렵

  서쪽 산에 앉아서

  등불이 된다.

  이제 가을 햇살은

  밤이 되면

  우리 엄마 맘속에 앉아서

  포근한 이불이 된다. 

  나는 공책에 평소보다 또박또박 선생님이 칠판에 써 놓은 글자를 따라 써 내려갔다. ‘우리 엄마 맘속에 앉아서 포근한 이불이 된다.’ 마지막 부분을 적어 내려갈 때는 마음속에 나도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선생님은 우리들 모두에게 선생님이 먼저 한 구절 읽으면 그 다음을 똑같이 따라 읽게 하고 또 한 구절 읽으면 또 따라 읽도록 하면서 아주 낮고도 고요한 음성으로 교실 안을 채워내고 계셨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오른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이 말했던 성숙이라는 것은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벅차오르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의 누구하나 떠드는 사람 없이 아홉 명의 모두는 선생님의 입술과 칠판을 번갈아보면서 그 분위기에 빠져드는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생쥐 녀석 재문이 일당 중 한 녀석인 정현이 그 정적을 깨고 말았다.

  “선생님, 그런데요 어떻게 가을 햇살이 저렇게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가 있어요? 구슬이 되고 향기가 되고 이불까지 되고........ 잘 이해가 안돼요.“

  선생님은 아직 우리들이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시에는 은유법과 의인법처럼 어려운 형식들이 많이 있다고 하셨고 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며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을 잘 이해하면 되는 거라고 간단히 대답해 주시면서 또 다시 특별한 숙제를 내 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그 숙제가 나를 웃음거리로 빠뜨리게 하는 장본인이 될 줄도 모르면서 내내 진지한 고민 속에 빠져 지냈다. 어떤 종류의 시라도 상관이 없으니 집에 돌아가면 시를 꼭 한 편씩 공책에 써 오라는 것이 선생님의 그 특별한 수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숙제였던 것이다.

  나, 이수인! 책이라면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는 남다른 자부심이 있던 조금은 엉뚱하기는 했지만 다부진 구석이 있는 씩씩한 아이인 것은 틀림없었다. 내게는 믿고 의지할 작은 오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랑채 오빠들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바닥이 조금은 기울어진 듯 전체적으로 뒤틀린 모양으로 완벽한 사각형을 이루지는 않았다. 흙으로 발라져 있던 것으로 울퉁불퉁한 모양이 군데군데 누런색 장판을 뚫고 나오려는 뾰족한 부분들이 발바닥을 자극했다. 동산 쪽으로는 격자무늬로 된 반투명한 유리 창문이 나 있었고 그 바로 아래에는 철재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상이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낡아 보이는 것으로 녹이 슨 곳은 조금씩 종이 쭈그린 모양처럼 휘어 있었고 그 위 2칸짜리의 책꽂이에는 큰 오빠 이름이 써진 책들이 빼곡하게 키를 맞추고 나란히 꽂혀 있었다. 

  방문 오른쪽으로는 옻칠이 벗겨진 나무로 만든 책상이 있었는데 부처님 다리를 하고 앉으면 두 다리가 알맞게 쏙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여유 있는 공간과 무릎 바로 옆으로는 가락지 모양으로 된 고리가 손잡이처럼 붙어 있는 세 칸의 서랍장이 있었다. 그 책상 바로 옆으로는 네 칸으로 된 내 키만 한 책꽂이가 서 있었는데 큰 오빠의 것처럼 질서 있게 정돈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세로로 꽂힌 책 위의 남은 공간에는 두께가 제 각자인 다양한 책들이 가로로 얹혀 있었고 책은 겉표지가 다 해질 정도로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헌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어나서 맨 위에 꽂혀 있는 책부터 훑어보았다. 그 칸에는 주로 얇고 가벼워 보이는 책들로 제목이 보이게 있거나 반대로 책의 장수만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꽂혀 있는 등 뒤죽박죽 꽉 차찬 모양이었다. 두 번째 칸으로 내려와 손가락으로 책을 한 권씩 짚어가면서 시가 써져 있을 만한 책을 찾던 중 특이하게도 내 엄지손가락만한 자물쇠가 달린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열쇠는 내 작은 손가락 끝에 걸려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자물쇠가 달린 책은 난생 처음 보았으므로 어떤 망설임도 없이 책을 빼냈다. 

  내 공책의 절반을 접은 크기의 그 책은 신기하게도 제목이 쓰여 있지 않았다. 자물쇠를 당겼다. 열리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물쇠는 반드시 자기에 맞는 열쇠가 있는 법이므로 어딘가에 꼭 열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점점 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그 자물쇠를 열어 봐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첫 번째 서랍을 열었다. 볼펜, 연필, 칼, 자, 지우개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뒤엉켜있다. 나는 최대한 가늘고 딱딱한 모양의 것이 있나 바닥까지 뒤진다. 아! 클립조각. 내 눈에 반짝이는 클립이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게 보인다. 나는 클립을 길게 펴고 열쇠구멍에 넣고 돌려본다. 맞을 리가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돌려 본다. 툭! 이게 웬일인가. 자물쇠가 열린 것이다. 내 몸은 갑자기 마치 부엌에서 생선조림을 몰래 훔쳐 먹다 들킨 도둑고양이가 된 것처럼 심장은 콩닥콩닥 두근거리고 손은 심하게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다. 자물쇠를 빼내고 두꺼운 표지를 열었다. 

  아~! 이건 작은 오빠의 일기장이다. 싸인 펜으로 두껍께 “나의 비밀”이라고 써진 큰 글씨 밑에 작은 글씨로 <일기장>이라고 쓰여 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한숨을 내 쉬고 책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내가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고 하더라도 오빠의 일기장까지 훔쳐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지난 여름밤 함께 밤하늘의 별을 헤면서 작은 오빠와 내가 나이를 뛰어넘는 영혼의 친구가 되면서 나누었던 의미심장한 대화들과 다짐들을 완전히 어기게 것이 되는 것이며 또한 일기장을 읽어 본다는 것은 작은 오빠를 배신하는 행위보다도 몇 배는 더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 속 중간에서 뭔가가 그 모서리를 비집고 나와 있는 게 보인다. ‘이게 뭐지?’ 나는 다시 그 책과 같은 일기장을 들고 삐죽 나온 쪽을 열어 보았다. 이건 사진인데? 어디에서 오린 것 같은 이 사진은 분명히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다. 가운데 가르마를 반듯하게 타서 목 뒤에 단정하게 한 묶음으로 묶은 이 낯선 여자는 짙은 눈썹 아래 검은색 눈동자가 크고 쌍꺼풀이 없는 큰 눈에 입이 약간 튀어나온 듯 했지만 봉곳한 콧날에 갸름한 턱 선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계속 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빠져 들게 만드는 예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질감에 나는 사진의 뒷면을 돌려 보았다. 거기엔 작은 오빠의 글씨체로 써진 것이 확실한 글씨로 충격적이고도 강렬하고도 분명한 글귀가 써져 있었다. 

  ‘오! 제인 에어! 나 이수영은 로체스터보다도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합니다.’ 라고.......

  나는 ‘이게 무슨 말이야.’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 장난도 아니고 제인 에어라는 여자를 작은 오빠가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한데 왜 이런 사진을 일기장 깊숙이 숨겨 놓아야 하는 건지 지난 여름날 내가 토끼장에서 시간을 다 보내다 시피 할 때 방에 틀어박혀서 제인 에어라는 여자를 생각하느라 그렇게 꼼짝을 안 했던 것인지 작은 오빠는 정말로 내가 의심했던 것처럼 정신이 반쯤 나간 것인지 하는 별의별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시를 찾으러 오빠들 방에 들어갔다가 모든 걸 포기하고는 그냥 작은 오빠 책상에 항상 놓여 있었던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써진 작은 액자를 들고 방을 나와 버렸다.  

  10월의 정점에 뜬 해는 일 년 중의 어떤 날의 해보다 가장 하늘 높이 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해를 뛰어 넘은 것 같은 구름들도 저 하늘의 붙박이가 된 듯 거의 움직임이 없어 보였다. 여름철의 구름처럼 변덕을 부리지도 않았고 마치 팔짱을 끼고 땅 위의 모든 자연을 부드럽게 바라보는 여유 있는 강봉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아버지 주먹만 하던 토끼도 이제는 부엌의 분홍색 바가지 만하게 둥그렇고 통통하게 커져 있었으며 덕구는 여전히 나의 최고의 벗으로서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와의 재회로 다시 왕래를 시작하셨으나 친할아버지도 건강이 많이 약해진 상태로 계셔서 경치 좋은 요양 병원에서 살고 계신다고 했다. 아버지의 배다른 여동생은 할아버지의 친 딸이었지만 이미 시집을 가서 살고 있었던 게 오래라 선뜻 병 수발을 들 만한 형편은 아니라고 했다. 엄마는 친할아버지를 모시기에는 우리 집은 많이 좁고 또 많이 낡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찾아뵙는 것이 남은 효도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는지 아니면 친할아버지 당신 자체가 완강히 거부한 것인지는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뒤로 아버지는 일요일이 되면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가 계시는 요양 병원에 다녀오신다면서 반나절 이상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았다. 나는 특별히 그 곳에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도 그렇다고 아버지 자체도 나를 그 곳에 데리고 가시려는 생각도 하시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친할아버지의 존재를 모르던 그 시간들과 별다른 변화가 없는 비슷한 일상들이 지속되었으며 오히려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 준 덕구가 더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고 집안에서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해 주는 존재라고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토요일은 수업을 두 시간만 하면 끝이 났다. 오늘은 특별한 숙제 검사가 있는 날이라서 그런지 평소에 숙제 따위에 관심도 없던 생쥐 녀석 재문이도 어쩐 일인지 제 자리에 앉아서 공책을 계속 들었다 놓았다하기를 반복 하고 있다. ‘뭔가를 써 오긴 했나 보군.’ 속으로 생각하고 가만히 내 공책에 써온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읽어본다. 

  제목 : 지란지교를 꿈꾸며

  지은이 :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

.

.

.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나는 어제 오후에 작은 오빠의 일기장에서 본 사진속의 충격적인 글  귀를 본 후의 혼란 속에서 이 시를 공책에 옮겨 적느라 한 시간을 꼬박 넘게 엎드려서 글씨를 썼다. 그마저도 반 밖에는 쓰지 못했고 그나마도 베껴 쓰는 데 정신이 팔려 이 시에는 어떤 감흥이나 마음이 동하여 지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내가 이 시를 선택하게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어렵고 너무 긴 시라고 생각했다. 시는 짧고 빨리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셨고 우리는 각자의 공책을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자, 이번 시간에는 어제에 이어서 각자 여러분이 준비해온 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갖도록 할 거에요. 먼저 용기 있게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 볼 친구 있나요?”

  사실 나는 어제 선생님이 숙제를 내 주실 때 만해도 단연 내가 가장 처음으로 시를 낭송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저렇게 읽기도 어려운 저 긴 시를 친구들 앞에 서서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 순간 뒤 자리에서 누군가 손을 든 모양이었다. 

  “그래? 선생님은 재문이가 국어보다는 셈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에 대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기대가 되는 걸? 어디 한번 일어나서 낭송해 볼래?” 

  재문이가 앉은 의자를 뒤로 빼면서 일어나 공책을 드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재문이는 목청을 가다듬던 아저씨들 흉내를 내며 억지로 헛기침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쳇! 얼마나 거창한 시를 써 왔기에 저렇게 폼을 잡는 거람.’  

  제목 : 오빠 생각

  지은이 : ....  

  지은이는 누군지 몰랐던 것인지 머뭇거렸지만 그냥 넘어가도 좋다는 선생님의 끄덕임의 표시에 다시 용기를 내고 제법 점잖은 목소리로 낭송을 시작했다. 

뜸뿍뜸뿍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나는 재문이가 제목을 읽자마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오빠생각. 이건 슬픈 동요인데. 동요에서 음을 빼고 가사만을 읽으면 한 편의 놀라운 동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재문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작은 오빠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나는 재문이가 선생님께 그렇게 많은 칭찬을 받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문득 항상 나와 내 친구들 고무줄놀이 훼방을 놓고 아이스깨끼하고 여자애들 놀리기만을 좋아했던 까불이 개구쟁이 생쥐 녀석 재문이도 어쩌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슬픈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낭송은 했지만 한 연만을 겨우 읽었으면서도 그마저도 한 글자 한 글자 깍두기를 써는 모양의 발음으로 낭송을 해 버려서 잘난 척을 하려고 했었던 어제의 내 마음과는 달리 나는 완전히 비웃음거리가 된 기분까지 들었다. 한 마디로 선생님의 가을날의 특별한 수업은 내게 최악의 수업이 되어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망쳐 놓았던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전부 다 작은 오빠의 제인 에어라는 여자를 향한 마음에서 오는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머릿속에는 이제 어떻게 해서든 제인 에어의 실체를 꼭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토요일 수업은 일찍 끝이 났다. 생쥐 녀석 재문이 일당은 아니나 다를까 신발을 들고 서 있는 내게 아는 체를 하면서 ‘오늘은 왜 공주님처럼 입고 오지 않았냐.’하고 놀림거리로 만들었다. 그 말에는 한 마디로 대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뒤를 따르던 정현이가 한 다는 말이 그 날의 모든 상황을 완전히 뒤 엎어 놓았다. 

  “야! 이수인! 너희 엄마 고아원 출신이라며? 너 왜 그리고 그동안 거짓말 했냐! 친할아버지가 없다며? 그런데 거의 일요일마다 너의 아버지가 친할아버지 만나러 어디 요양원인가 병원인가 그런 델 다닌다고 하더라. 이미 동네에 소문 다 났어! 참. 잘 됐네. 저기 강봉수도 아버지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으니까 둘이 같이 어울려 놀면 되겠다.”

  끓어오르는 화는 이미 폭발 직전의 활화산처럼 몸속의 온 내장을 뒤틀어 놓았고 들고 있던 신발과 가방은 내가 주먹을 세게 쥐어버린 탓에 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일의 순서라고 할 것도 없이 나는 다짜고짜 정현이의 정수리에 난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쥐고 마구마구 흔들었다.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새끼 영양 한 마리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고 사정없이 고개를 흔들었던 것처럼 나는 이제 아예 나머지 한 손마저 정현이의 뒤통수를 갈기며 교실 입구 계단에서 있는 힘껏 밀어서 바닥으로 까지 내동댕이쳤다. 바닥으로 나자빠진 정현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보는 가 싶더니 두 다리는 멀쩡했던지 벌떡 일어나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생각도 없이 당장 저 녀석을 어떻게 해서든 쥐어 패주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고 벗은 발로 정현이 뒤를 따라서 달렸다. 나보다 키도 작고 통통했던  정현이는 달리기가 느렸고 금방 내 손안에 등짝의 옷을 잡히고야 말았다. 

  다시 한 번 있는 힘을 다해 밀어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쳤고 이제 아예 그 녀석의 배 위에 올라난 나는 얼굴이며 팔이며 가슴이며 가릴 것도 없이 주먹질을 했다. 그 와중에 마냥 맞고만 있을 정현이도 아니었기에 나도 머리카락을 잡히고 옷이 잡아당겨지는 바람에 목이 쓸린 듯 따가움도 느꼈다. 드디어 녀석의 코에서 피가 나온다. 됐다. 이제 이 싸움의 승자는 내가 되었고 녀석은 코피로 싸움의 승복을 자연스럽게 인정한 듯 풀이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학교의 소사 아저씨는 우리 둘을 선생님 앞으로 데리고 갔고 정현이와 나는 책상 몇 개를 사이에 두고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기점으로 딱 삼각형이 그려질 만한 위치에 서서는 자초지종을 물으셨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현이도 자기의 비겁한 행동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우리 엄마와 아버지를 모욕했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을까. 선생님은 정 그렇다면 친구끼리의 폭력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서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직접 서로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셨다. 정현이는 먼저 ‘미안해’ 했지만 그건 누가 들어도 건성에서 나온 사과였다. 선생님은 사과라는 것은 진정한 마음을 갖고 진지한 행동으로써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시면서 다시 처음부터 하라고 하셨다. 그러자 정현이는 의자에서 몸을 빼고 내 앞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어렵게 걸어오더니 손을 내밀면서 자기가 정말로 잘못했다고 미안하다며 앞으로는 절대로 너를 놀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정현이의 사과도 받아 주지 않았으며 끝까지 나도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그대로 정현이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선생님은 그런 내게 남아서 반성문을 쓰라고 하셨다. 

  토요일, 이미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이 시간, 내 옷은 흙과 먼지로 얼룩져 있고 흰 양말의 발바닥은 덕구의 발바닥처럼 발가락 모양 그대로 완전히 검게 더렵혀져 있었다. 손과 팔의 한두 군데씩 손톱에 긁힌 자국에는 그 모양대로 붉은 색 줄이 그어져 있었다. 옷에 쓸린 목은 살갗이 벗겨진 것인지 고개를 돌릴 때마다 쓰렸다. 아직도 정현이가 엄마와 아버지를 욕되게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반성문을 쓰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이제 고작 여덟 살이다. 학교를 다닌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는 춘선이네 엄마처럼 매일같이 집에서 집안 살림에만 신경을 쓰면서 사는 그런 분도 아니시다. 우리 집 들일이 없는 날엔 거의 언제나 잎담배를 따라 가거나 철마다 따라오는 품앗이 일을 해서 품삯을 버는 일을 하셔야 했다. 그래서 나는 춘선이처럼 유치원의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아이다.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한글을 못 뗐다고 선생님이 춘선이를 딸려 걔네 집에 가도록 해서 춘선이가 나의 나머지 공부를 도와주도록 하게 하는 바람에 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일이 있었고 그 일 이후에는 작은 오빠한테 욕심을 부려 한글을 알려 달라고 거의 한 달을 넘게 매달려 지냈다. 이제는 반의 누구보다도 맞춤법에 자신이 있었지만 한 번 상처 입었던 마음이 완전히 없었던 일처럼 되는 일이란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던 나로서는 교실에 혼자 남아서 반성문을 써야만 집에 갈 수 있다는 선생님의 명령은 또 다른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일이었다. 동네에는 이미 나는 한글도 못 뗀 바보라는 소문이 나 있었고 엄마는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작은 오빠를 더 매달렸는데 그 때 오빠의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자신감을 심어 주었었는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엄마, 사람들 말은 신경도 쓰지 말라니까요. 수인이 쟤 바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저렇게 글도 쉽게 배우고 이해력도 빠른 많은 애가 어떻게 바보가 된 단가요? 그러니까 엄마도 동네 아줌마들 말 듣지도 말고 아무 걱정도 마세요. 두고 보세요. 수인이 한 달 안에 반에서 꼭 일등할거니까.”

  내 편을 그렇게 들어주는 작은 오빠가 눈물이 날 만큼 정말로 고마웠다. 나는 오빠의 말처럼 여름방학을 마치던 시험에서 정말로 일등을 했고 “1등”이라고 금박으로 글자가 새겨진 상장을 타다가 엄마 앞에 전리품처럼 갖다 바쳤기 때문이었다. 엄마 당신도 당당하게 그 사실이 온 동네 알려지길 바라셨을 테지만 우리 식구들 누구도 제 입으로 소문을 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나는 바보가 아님을 단 몇 달 만에 명백히 증명해 내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후로 선생님께서도 내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무안한 믿음을 보여 주셨고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두 번 다시 받아쓰기 빵점이라고 무시당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선생님이 내어 주신 하얀 백지를 구멍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을까. 나는 결심이라도 한 듯 연필을 손에 쥐고 ‘반성문’이라고 꾹꾹 눌러 썼다. 

  ‘선생님. 친구를 때려서 코피가 터지게 한 것은 제 주먹이 잘못한 것입니다. 저는 엄마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데도 꾹 참고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더 불효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마음에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엄마 아버지를 흉보는 사람이라면 오늘처럼 똑같이 그렇게 아니 쌍코피라도 터트려 줄 겁니다. 제 주먹이 잘못한 것이므로 이 반성문으로도 선생님께서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차라리 손바닥을 열대라도 맞겠습니다. 더 이상은 반성할 것이 없으니 쓰지 않겠습니다.                                       이 수 인 올림.’

 라고 쓴 종이를 선생님 책상위에다 올려놓고 교실 밖을 나왔다. 운동장으로 쏟아지는 가을볕을 쐬자 쌓여 있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 온 듯 현기증이 났다. 나는 신발을 마저 신고 시멘트로 된 계단 두 번째 칸에 앉았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상태였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작정 일어나서 어디라고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걷는 걸음마다 마치 땅이 발목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잘 걸어지지가 않았다. 

  “이 수 인”

  나는 헛소리를 들었는가 싶어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누가 내 이름을 부를 리가 없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내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 또렷하고 가까운 데서 나는 목소리였다.

  “이수인!”

  교실문 밖 반대편 쪽에서 나온 것인지 거기에는 마치 하얀 백묵과도 같은 봉수가 서 있었다.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나는 대답도 없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하얀 봉수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아까, 내 편을 들어주는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계속 기다렸는데.........”

  지나간 여름 내 팔목에 상처가 났을 때 나를 바보라고 다그쳤던 때와는 달리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춥고 쓸쓸하기까지 보였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봉수도 나를 기다리는 데 온 힘을 다 써버린 듯 양쪽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무슨 말인데? 고맙다고? 내가 네 편을 들어준 것 같아서?”

  나는 다시 화가 불끈 솟는 기분이 들어서 이렇게 거칠게 대답했지만 곧 후회하고 말았다. 봉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목소리를 조용하게 하고 말을 이었다.

  “하고 싶었던 말이 뭔데?”

  봉수가 한 걸음씩 조용하게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혹시 그 시간동안 나와 같이 있어줄 수 있니?” 

  하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냥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말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래 좋아’ 하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봉수가 내게 처음으로 가장 길고 분명한 문장으로 말 했던 것이라 나도 사실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봉수는 자기와 잠깐 어디 좀 가자고 했다. 나는 그 아이의 말대로 조금의 반대의 표시도 없이 순순히 동의했고 봉수는 나보다 한 발짝 앞서서 걸어갔고 나는 바로 뒤에서 그 아이의 발뒤꿈치 약간 삐뚤어지게 닳은 운동화의 뒤축을 바라보면서 따라 걸었다. 아니 가만, 봉수는 점점 내가 그렇게도 저주하는 장소인 행이짓거리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따라가기만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어디 가? 혹시 저기 행이짓거리 가는 거니?”

  “응, 저 다리 밑에 있으면 여름에 얼마나 시원한지 몰라. 햇볕이 들어올 틈이 없거든. 그리고 다리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이 정말로 시원해. 그리고......... 나 혼자 있기 딱 좋은 장소이거든.”

  그렇다. 우리 동네의 꼬마들은 대부분 행이짓거리의 전설과 그 밑에 매달린 상여 나무의 존재를 잘 알고 있어서 아무도 쉽사리 그곳으로 가서 놀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 바보 멍청이는 저기가 어떤 곳인 줄도 모르고 저 곳을 훌륭한 비밀 공간쯤으로 여기고 지내왔다는 거야?‘

  봉수는 마치 나를 자기의 아지트에 초대라도 한 사람처럼 먼저 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길로 나를 안내했다. 오래 살기로 치자면 봉수보다도 몇 년을 우리 동네에서 오래 살았으므로 왠지 이런 상황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크고 튼튼하게 보이는 돌들이 중간 중간 계단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쉽게 내려가기엔 조금은 불편한 길이었다. 먼저 아래로 내려가 있던 봉수는 내 모습이 아슬아슬하게 보였던 것인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나는 봉수의 손을 잡고 바닥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다리 밑은 처음 본다. 물이 흘러가고 있는 옆으로는 가로로 길게 의자모양으로 된 시멘트가 발라져 있었고 나는 봉수가 앉아 있는 바로 옆에 가서 엉거주춤하고 앉았다.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로 상여 나무가 이곳에 걸려 있는지. 고개를 살짝 들고 다리 천정을 바라보았다. 회색빛으로 발린 시멘트는 단단하고 평평한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내 머리 바로 위에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상여 나무가 그야말로 매달려 있던 것이었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 모습이 남겨지지 전에 나는 급하게 고개를 숙이고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봉수는 마치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할 사람처럼 계속 뜸을 들이며 말을 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나도 계속 공포의 다리 아래에서 앉아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 얘기라는 것이 뭔데? 빨리 듣고 싶은데........”

  사실 할 이야기라는 내용의 궁금함도 컸지만 그 만큼 그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컸으므로 나도 모르게 봉수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봉수는 더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먼저 물어봐도 돼?”

  봉수가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본다. 어느 순간 봉수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는 기분이 들자 나는 고개를 땅으로 떨구었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고 봉수를 바라보았다. 봉수는 아직까지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음......... 너 그런데 왜 서울에서 우리 동네로 이사 온 거니?” 

  차마 왜 아버지 없이 엄마하고만 단 둘이서 왔는지는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사생아라고 했어.”

  사생아. 이 낱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 보는 말이다. 하지만 봉수의 말하는 투에서 그 말속에는 분명히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결코 평범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마 봉수에게 사생아라 무슨 뜻이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아니 내 눈을 바라보는 봉수의 눈 속에 맑은 눈물이 차오르고 있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봉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봉수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제법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셨던 모양이었다. 내 짐작대로 봉수의 어머니가 간호대학에 다녔던 때에 인근 미군 기지로 단체 간호 봉사활동을 나갔을 때 그곳에서 군인으로 있던 미국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 뒤에 그 남자는 복무기간이 만료 되어 미국으로 되돌아갔는데 그러고 나서 봉수 어머니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봉수 어머니의 부모님께서는 당장 아이를 지워야 된다고 하셨지만 어머니는 대학교 학업을 다 끝내지도 않고 집을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그 후 산골 깊숙한 곳 고아원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보모로서 지내면서 그 곳에서 원장님의 도움으로 봉수를 낳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봉수는 어머니와 그 고아원에서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함께 살았는데 집을 나갔던 어머니를 찾으려고 그 부모님이 얼마나 노력을 했던지 그 고아원까지 찾아내게 되었는데 봉수의 어머니는 그 뒤로 그 고아원을 나와서는 반년 간을 떠돌이처럼 이곳저곳에서 잠깐 씩 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우리 동네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 들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물방울이 되어 또르르 떨어지는 봉수의 눈물을 옷소매로 닦아주려다가 그만 두고 말았다.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흘러간 것일까.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그 쪽의 다리 밑 깊은 곳까지 햇살이 들어와 있었고 그늘이 진 곳과 빛이 있는 곳은 마치 자로 대고 선을 그은 듯 반듯한 줄이 나 있었다. 그늘에 일렁이는 물결은 우울하게까지 보였으나 반대로 빛을 받고 있는 쪽은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빛나면서 완벽히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똑같이 한 길을 흘러가는 물이라도 순식간에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가 있는 것에 문득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해는 사라지고 두껍고 더럽게 얼룩진 먹구름이 다리 위를 완전히 뒤 덮은 듯 그나마 천정의 틈새로 새어나오던 빛줄기도 끊어져 버렸다. 

  꼬르륵. 누구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인지도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한 사람의 위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계속 꼬르륵 꼬르륵 우리 두 사람의 뱃속에서는 번갈아가면서 소래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웃었다. 봉수가 웃었다. 언제나 차갑고 무표정하게만 있던 봉수가 웃고 있다. 나는 웃는 봉수의 얼굴을 보면서 정말로 잘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점심 못 먹었지?”

  사실 지금 시간쯤이면 점심이 아니고 이른 저녁이라도 먹어야 될 정도로 이미 토요일 오후가 다 저물었던 것이었다. 

  “봉수야!”

  나는 처음으로 봉수의 이름을 다정하고 친근하게 불렀다. 

  “사실은 나도 너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어. 우리 엄마와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야. 사실 아까 낮에 정현이가 우리 부모님 말을 제 멋대로 한 것이 너무나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막된 행동을 했던 거야. 그리고 너를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이제 괜찮아. 나는 사과를 받아 냈고 반성문을 정당하게 쓰고 나왔으니 됐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목의 흉터를 보여주었다. 

  “이 흉터........ 나 그때 너 아니었으면 정말로 피를 많이 흘려서 죽었을지도 모를 거야.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해. 너무 늦게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어서. 나 그런데 이 흉터가 참 마음에 들어. 사실 조금은 부끄럽지만 이 흉터를 보면서 너를 조금, 아주 조금 생각하기도 했었어.”

  나는 태어나서 이런 종류의 감정을 처음 느껴본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고개를 들고 봉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봉수도 나와 같은 쪽의 팔을 걷어 올리더니 내 흉터와 아주 비슷한 모양으로 생긴 흉터 자국을 보여 주었다. 

  “자, 봐! 나도 있어. 내가 어릴 때 다쳤다는데 팔이 커지면서 흉터도 점점 커지는 것 같아.”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봉수의 팔목에 나 있는 흉터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내 손목에 나 있는 번개 모양의 흉터와 아주 모양이 비슷한 흉터 자국이 나 있었던 것이다. 

  “와! 신기하다. 우리 둘이 공통점이 다 있네?”

  나는 엄마 옆에 누워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동안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었고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는 봉수의 생각으로 정작 내가 정현이의 코를 주먹으로 때려서 피가 나게 했다는 사실은 까마득하게 옛날 일인 것처럼 기억 속에서 아늑히 멀어져 버린 듯 했다. 그저 봉수의 목소리와 두 눈 속에 맑게 고여 있는 눈물, 또르르 떨어지던 눈물방울이 계속 눈에 아른거리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던 흉터 자국을 보았을 때와 같이 여전히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두 손으로 내 심장 언저리를 만져 보았다. 무언가 강한 끈이 우리를 서로 꽁꽁 묶어 연결시켜 주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치 성냥개비가 거친 마찰면에 계속 부딪혀야 불을 켤 수 있는 것처럼 봉수와 나도 앞으로 어떻게든 계속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 내일 쟁반에 술 빵 쪄 줄 거지?”

  엄마는 고른 숨으로 대답했다. 주무시고 계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엄마는 내 생일엔 언제나 그 노란 술 빵을 쪄 주셨으니까. 6. 비밀

  “엄마, 이 옷은 어디에서 났어?”

  “응~ 엄마가 만들었지. 어디 한 번 입어 볼래?”

  어깨부터 연결된 소매끝 부분은 꽃 잎 두 장을 포개어 놓은 것처럼 약간은 봉긋한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허리선부터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의 길이는 점점 폭이 넓어지면서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게 되면 넓은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퍼지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다리를 길게 뻗어도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을 그런 모양의 원피스였다. 반소매로 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 안에다 블라우스를 받쳐 입게 되면 이런 날씨에 입기에도 문제가 없어 보였고 엄마는 어느새 이 옷을 만들었던 것인지 마치 열 손가락 전부가 제 각자 바늘 한 개씩 들고 바느질을 했었다고 해도 밤을 꼬박 새웠어야 만들어낼 옷이었다. 

  엄마는 하얀색 타이즈위에 원피스를 입혀 주신다. 거울이라고는 얼굴만 간신히 보이는 크기로 그것마저도 내 손이 닿지 않던 수돗가 담벼락에 걸려 있던 것이 전부였으므로 나는 내 전신의 모습이 궁금해서 안방 윗목에 있는 텔레비전의 미닫이식의 양쪽 문을 끝까지 열어 놓고 꺼진 화면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상체를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가며 등 쪽을 보고 몸에 딱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내가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님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하고 돌아본다. 처음자리로 되돌아왔을 때 약간의 현기증으로 중심을 잃고 손바닥을 방바닥에 짚었다. 

  내일 모레 10월 19일면 내 생일이다. 올해는 생일이 일요일이어서 늦잠을 자도 되고 온 종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아도 된다는 생각에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하루하루가 지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인데 마침 오늘은 또 일전에 미리부터 선생님이 아주 특별한 수업을 하실 거라고 말씀을 하셨던 날이라 이 원피스는 생일보다는 오늘 입는 것이 딱 들어맞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어디 야외에 라도 나가는 것인가 하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한테 입은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에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책가방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덕구는 마치 잘 다녀오라는 것처럼 캉캉 짖으며 꼬리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덕구의 꼬리는 언제나 바쁜 엄마의 손과도 같다. 

  동쪽에서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신작로 가에 나 있는 풀잎들이 영롱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구슬처럼 매달린 이슬방울이 제 몸으로 햇볕을 통과시키면서 만들어낸 장관이었다. 나는 새 옷을 입은 들 뜬 기분 탓인지 평소에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마치 처음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 광경은 약간은 찌푸린 눈으로 보아야 몇 배는 더 멋지고 훌륭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일부러 얼굴을 오만상으로 찌푸려가면서 가늘게 실눈을 뜨고 들판의 멀리까지 바라보았다.

  두 칸짜리 분교는 세 계단을 올라서야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무로 된 바닥은 조용하고 사뿐사뿐 걷고 싶었던 내 마음과는 달리 한 발 한발을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셔 이미 교실에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리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뽐내며 자랑하고 싶었던 속마음과는 다르게 왠지 평소와 다른 차림과 조심스러운 이런 분위기가 어색했기 때문에 친구들의 시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1학년 우리 선생님의 이름은 장판쇠다. 이름이 정말로 웃기고도 특이하신 분이다. 그리고 그 외모 또한 정말로 대단하신 분이다. 만일에 선생님께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독심술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벌써 몇 번이라도 혼이 났을 정도로 선생님의 얼굴과 외모를 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선생님이 정말로 재미있는 얼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두꺼비와도 같이 두꺼운 입술과 툭 튀어나온 커다란 눈동자에 까만 얼굴, 그리고 왜 그렇게 머리숱은 없는 것인지 그나마도 벗겨진 이마를 제대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몇 가닥 남아 있지 않는 머리카락은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선생님이 입을 꾹 다물고만 있어도 다른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키는 아버지보다도 쑥 커 보였지만 정말로 임신한 아주머니처럼 볼록한 배는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 구멍이 감당하기에 벅차 보일 정도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몸에서 튀어 나오지 않은 부분은 단 한 군데 밖에는 없는 것 같이 보였다. 그건 바로 두툼한 손등의 손가락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그곳은 마치 아기의 통통한 손처럼 보조개 같은 구멍이 쏙쏙 나 있었기 때문에 하얀 백묵을 손에 쥐고 초록색으로 된 칠판에 글씨를 또각또각 써 내려 가는 손이 참말로 귀엽고 앙증맞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 모습이 정말 귀엽다는 생각에 멍하니 딴 생각으로 구두 굽 소리와도 같은 백묵이 칠판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살짝 졸기도 하고 모든 것이 멈춰 있어서 사진처럼 보이던 놀이터의 미끄럼틀과 시소를 바라보기도 했었다. 

  칠판의 삼분의 일 정도를 차지 할 정도로 커다란 글자가 박혀 있다. “시.” 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선생님은 교실보다 약간 10센티미터 정도의 턱이 있는 높이에 올라서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자, 가을이 왔어요. 가을이 어떤 계절인지 말해 볼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나는 선생님의 외모와는 지나치게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온유하고 교양 있는 말투 탓에 항상 텔레비전에 나오는 코미디언들이 보여주는 콩트와도 같다는 생각에 웃음을 터트릴 뻔한 적이 많았다. 그야말로 선생님의 목소리는 반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 선생님을 그 끔찍한 외모 때문에 싫어했다고 한다면 맹세코 벼락을 맞았을 거다. 나는 선생님의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오리려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와 아버지가 뒷집 영길네 아저씨에게 항상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에 외모가 못생겼거나 보통사람들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사람들은 정말로 친절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듣는 선생님의 부드러운 말소리는 선생님에게로 더 빠져들게 만들었고 배불뚝이 아저씨 같은 선생님이었지만 나는 나의 첫 선생님, 장판쇠 선생님을 무척 좋아한 것은 사실이었다. 

  저 뒤쪽의 생쥐 같은 재문이가 한 마디 한다. 

  “가을은 먹을 게 많아요. 알밤도 따고 감도 익고 또 타작도 해야 되니까........”

  나는 속으로 우리 반에서 가장 개구쟁이라고 여겨왔던 그 녀석이 제법 제대로 알고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고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리던 중 봉수가 눈에 들어온다. 봉수는 거의 항상 창가 쪽에 앉아 있는데 얇은 유리창으로 통과하는 가을 볕 탓인지 유난히도 얼굴에 빛이 나는 것 같다. ‘저 녀석은 얼굴에 분칠이라고 한 것인가.’하고 생각한다. 

  “가을은 모든 자연이 성장 보다는 이제 성숙을 하는 시기에 가까워요. 어려운 말로 ”천고마비(天高馬肥) 의 계절“이라고도 합니다. 혹시 이 말을 들어 본 친구들이 있나요?”

  우리들 중에는 아무도 아는 체를 하거나 선생님께 무슨 뜻인지 먼저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평소와는 다른 수업 내용으로 진행되는 시간에 나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이 조금은 얼떨떨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듯 굳은 표정으로 눈만 깜박거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풀이를 하면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지내기 좋은 계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나는 왜 갑자기 저런 어려운 말로 우리들의 정신을 마비시켜 버리는 것인지 선생님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칠판에 써진 저 ‘시’라는 글자가 딱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답답함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인지 모두들 선생님의 두툼한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바로 이 수업이 일전에 선생님이 말했던 그 특별한 수업이라는 것인지 조금 속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시’라고 쓴 이유도 바로 이 가을인 계절과도 상관이 있어요. 가을은 또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하거든요. 책을 읽기에 그만한 좋은 날씨가 없다는 뜻입니다. 산에는 단풍이 들고 들에는 먹을 것들이 풍성하게 익어가는 이런 풍족하고 여유 있는 계절에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고 다른 때보다 훨씬 감성적으로 풍부한 상태가 되어서 요즘에 책을 읽으면 몇 배의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 될 거에요. 자, 오늘은 공책과 연필만 책상위에 올려놓고 바른생활은 책상 속에 넣어 두도록 하세요. 그리고 선생님이 칠판에 쓰는 것을 공책에 그대로 옮겨 쓰는 겁니다.”

  선생님은 하얀색 백묵을 그 커다란 손으로 감싸고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칠판에 글자를 써 내려 가셨다.  

  제목 : 가을햇살은

  가을햇살은 

  이른 새벽 

  풀잎 끝 이슬을 

  옥구슬로 만든다. 

  가을햇살은

  한 낮에 

  국화꽃에 앉아서 

  향기가 된다.

  가을햇살은 

  해질 무렵

  서쪽 산에 앉아서

  등불이 된다.

  이제 가을 햇살은

  밤이 되면

  우리 엄마 맘속에 앉아서

  포근한 이불이 된다. 

  나는 공책에 평소보다 또박또박 선생님이 칠판에 써 놓은 글자를 따라 써 내려갔다. ‘우리 엄마 맘속에 앉아서 포근한 이불이 된다.’ 마지막 부분을 적어 내려갈 때는 마음속에 나도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선생님은 우리들 모두에게 선생님이 먼저 한 구절 읽으면 그 다음을 똑같이 따라 읽게 하고 또 한 구절 읽으면 또 따라 읽도록 하면서 아주 낮고도 고요한 음성으로 교실 안을 채워내고 계셨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오른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이 말했던 성숙이라는 것은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벅차오르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의 누구하나 떠드는 사람 없이 아홉 명의 모두는 선생님의 입술과 칠판을 번갈아보면서 그 분위기에 빠져드는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생쥐 녀석 재문이 일당 중 한 녀석인 정현이 그 정적을 깨고 말았다.

  “선생님, 그런데요 어떻게 가을 햇살이 저렇게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가 있어요? 구슬이 되고 향기가 되고 이불까지 되고........ 잘 이해가 안돼요.“

  선생님은 아직 우리들이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시에는 은유법과 의인법처럼 어려운 형식들이 많이 있다고 하셨고 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며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을 잘 이해하면 되는 거라고 간단히 대답해 주시면서 또 다시 특별한 숙제를 내 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그 숙제가 나를 웃음거리로 빠뜨리게 하는 장본인이 될 줄도 모르면서 내내 진지한 고민 속에 빠져 지냈다. 어떤 종류의 시라도 상관이 없으니 집에 돌아가면 시를 꼭 한 편씩 공책에 써 오라는 것이 선생님의 그 특별한 수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숙제였던 것이다.

  나, 이수인! 책이라면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는 남다른 자부심이 있던 조금은 엉뚱하기는 했지만 다부진 구석이 있는 씩씩한 아이인 것은 틀림없었다. 내게는 믿고 의지할 작은 오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랑채 오빠들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바닥이 조금은 기울어진 듯 전체적으로 뒤틀린 모양으로 완벽한 사각형을 이루지는 않았다. 흙으로 발라져 있던 것으로 울퉁불퉁한 모양이 군데군데 누런색 장판을 뚫고 나오려는 뾰족한 부분들이 발바닥을 자극했다. 동산 쪽으로는 격자무늬로 된 반투명한 유리 창문이 나 있었고 그 바로 아래에는 철재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상이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낡아 보이는 것으로 녹이 슨 곳은 조금씩 종이 쭈그린 모양처럼 휘어 있었고 그 위 2칸짜리의 책꽂이에는 큰 오빠 이름이 써진 책들이 빼곡하게 키를 맞추고 나란히 꽂혀 있었다. 

  방문 오른쪽으로는 옻칠이 벗겨진 나무로 만든 책상이 있었는데 부처님 다리를 하고 앉으면 두 다리가 알맞게 쏙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여유 있는 공간과 무릎 바로 옆으로는 가락지 모양으로 된 고리가 손잡이처럼 붙어 있는 세 칸의 서랍장이 있었다. 그 책상 바로 옆으로는 네 칸으로 된 내 키만 한 책꽂이가 서 있었는데 큰 오빠의 것처럼 질서 있게 정돈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세로로 꽂힌 책 위의 남은 공간에는 두께가 제 각자인 다양한 책들이 가로로 얹혀 있었고 책은 겉표지가 다 해질 정도로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헌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어나서 맨 위에 꽂혀 있는 책부터 훑어보았다. 그 칸에는 주로 얇고 가벼워 보이는 책들로 제목이 보이게 있거나 반대로 책의 장수만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꽂혀 있는 등 뒤죽박죽 꽉 차찬 모양이었다. 두 번째 칸으로 내려와 손가락으로 책을 한 권씩 짚어가면서 시가 써져 있을 만한 책을 찾던 중 특이하게도 내 엄지손가락만한 자물쇠가 달린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열쇠는 내 작은 손가락 끝에 걸려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자물쇠가 달린 책은 난생 처음 보았으므로 어떤 망설임도 없이 책을 빼냈다. 

  내 공책의 절반을 접은 크기의 그 책은 신기하게도 제목이 쓰여 있지 않았다. 자물쇠를 당겼다. 열리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물쇠는 반드시 자기에 맞는 열쇠가 있는 법이므로 어딘가에 꼭 열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점점 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그 자물쇠를 열어 봐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첫 번째 서랍을 열었다. 볼펜, 연필, 칼, 자, 지우개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뒤엉켜있다. 나는 최대한 가늘고 딱딱한 모양의 것이 있나 바닥까지 뒤진다. 아! 클립조각. 내 눈에 반짝이는 클립이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게 보인다. 나는 클립을 길게 펴고 열쇠구멍에 넣고 돌려본다. 맞을 리가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돌려 본다. 툭! 이게 웬일인가. 자물쇠가 열린 것이다. 내 몸은 갑자기 마치 부엌에서 생선조림을 몰래 훔쳐 먹다 들킨 도둑고양이가 된 것처럼 심장은 콩닥콩닥 두근거리고 손은 심하게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다. 자물쇠를 빼내고 두꺼운 표지를 열었다. 

  아~! 이건 작은 오빠의 일기장이다. 싸인 펜으로 두껍께 “나의 비밀”이라고 써진 큰 글씨 밑에 작은 글씨로 <일기장>이라고 쓰여 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한숨을 내 쉬고 책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내가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고 하더라도 오빠의 일기장까지 훔쳐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지난 여름밤 함께 밤하늘의 별을 헤면서 작은 오빠와 내가 나이를 뛰어넘는 영혼의 친구가 되면서 나누었던 의미심장한 대화들과 다짐들을 완전히 어기게 것이 되는 것이며 또한 일기장을 읽어 본다는 것은 작은 오빠를 배신하는 행위보다도 몇 배는 더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 속 중간에서 뭔가가 그 모서리를 비집고 나와 있는 게 보인다. ‘이게 뭐지?’ 나는 다시 그 책과 같은 일기장을 들고 삐죽 나온 쪽을 열어 보았다. 이건 사진인데? 어디에서 오린 것 같은 이 사진은 분명히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다. 가운데 가르마를 반듯하게 타서 목 뒤에 단정하게 한 묶음으로 묶은 이 낯선 여자는 짙은 눈썹 아래 검은색 눈동자가 크고 쌍꺼풀이 없는 큰 눈에 입이 약간 튀어나온 듯 했지만 봉곳한 콧날에 갸름한 턱 선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계속 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빠져 들게 만드는 예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질감에 나는 사진의 뒷면을 돌려 보았다. 거기엔 작은 오빠의 글씨체로 써진 것이 확실한 글씨로 충격적이고도 강렬하고도 분명한 글귀가 써져 있었다. 

  ‘오! 제인 에어! 나 이수영은 로체스터보다도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합니다.’ 라고.......

  나는 ‘이게 무슨 말이야.’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 장난도 아니고 제인 에어라는 여자를 작은 오빠가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한데 왜 이런 사진을 일기장 깊숙이 숨겨 놓아야 하는 건지 지난 여름날 내가 토끼장에서 시간을 다 보내다 시피 할 때 방에 틀어박혀서 제인 에어라는 여자를 생각하느라 그렇게 꼼짝을 안 했던 것인지 작은 오빠는 정말로 내가 의심했던 것처럼 정신이 반쯤 나간 것인지 하는 별의별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시를 찾으러 오빠들 방에 들어갔다가 모든 걸 포기하고는 그냥 작은 오빠 책상에 항상 놓여 있었던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써진 작은 액자를 들고 방을 나와 버렸다.  

  10월의 정점에 뜬 해는 일 년 중의 어떤 날의 해보다 가장 하늘 높이 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해를 뛰어 넘은 것 같은 구름들도 저 하늘의 붙박이가 된 듯 거의 움직임이 없어 보였다. 여름철의 구름처럼 변덕을 부리지도 않았고 마치 팔짱을 끼고 땅 위의 모든 자연을 부드럽게 바라보는 여유 있는 강봉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아버지 주먹만 하던 토끼도 이제는 부엌의 분홍색 바가지 만하게 둥그렇고 통통하게 커져 있었으며 덕구는 여전히 나의 최고의 벗으로서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와의 재회로 다시 왕래를 시작하셨으나 친할아버지도 건강이 많이 약해진 상태로 계셔서 경치 좋은 요양 병원에서 살고 계신다고 했다. 아버지의 배다른 여동생은 할아버지의 친 딸이었지만 이미 시집을 가서 살고 있었던 게 오래라 선뜻 병 수발을 들 만한 형편은 아니라고 했다. 엄마는 친할아버지를 모시기에는 우리 집은 많이 좁고 또 많이 낡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찾아뵙는 것이 남은 효도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는지 아니면 친할아버지 당신 자체가 완강히 거부한 것인지는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뒤로 아버지는 일요일이 되면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가 계시는 요양 병원에 다녀오신다면서 반나절 이상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았다. 나는 특별히 그 곳에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도 그렇다고 아버지 자체도 나를 그 곳에 데리고 가시려는 생각도 하시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친할아버지의 존재를 모르던 그 시간들과 별다른 변화가 없는 비슷한 일상들이 지속되었으며 오히려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 준 덕구가 더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고 집안에서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해 주는 존재라고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토요일은 수업을 두 시간만 하면 끝이 났다. 오늘은 특별한 숙제 검사가 있는 날이라서 그런지 평소에 숙제 따위에 관심도 없던 생쥐 녀석 재문이도 어쩐 일인지 제 자리에 앉아서 공책을 계속 들었다 놓았다하기를 반복 하고 있다. ‘뭔가를 써 오긴 했나 보군.’ 속으로 생각하고 가만히 내 공책에 써온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읽어본다. 

  제목 : 지란지교를 꿈꾸며

  지은이 :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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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나는 어제 오후에 작은 오빠의 일기장에서 본 사진속의 충격적인 글  귀를 본 후의 혼란 속에서 이 시를 공책에 옮겨 적느라 한 시간을 꼬박 넘게 엎드려서 글씨를 썼다. 그마저도 반 밖에는 쓰지 못했고 그나마도 베껴 쓰는 데 정신이 팔려 이 시에는 어떤 감흥이나 마음이 동하여 지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내가 이 시를 선택하게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어렵고 너무 긴 시라고 생각했다. 시는 짧고 빨리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셨고 우리는 각자의 공책을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자, 이번 시간에는 어제에 이어서 각자 여러분이 준비해온 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갖도록 할 거에요. 먼저 용기 있게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 볼 친구 있나요?”

  사실 나는 어제 선생님이 숙제를 내 주실 때 만해도 단연 내가 가장 처음으로 시를 낭송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저렇게 읽기도 어려운 저 긴 시를 친구들 앞에 서서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 순간 뒤 자리에서 누군가 손을 든 모양이었다. 

  “그래? 선생님은 재문이가 국어보다는 셈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에 대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기대가 되는 걸? 어디 한번 일어나서 낭송해 볼래?” 

  재문이가 앉은 의자를 뒤로 빼면서 일어나 공책을 드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재문이는 목청을 가다듬던 아저씨들 흉내를 내며 억지로 헛기침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쳇! 얼마나 거창한 시를 써 왔기에 저렇게 폼을 잡는 거람.’  

  제목 : 오빠 생각

  지은이 : ....  

  지은이는 누군지 몰랐던 것인지 머뭇거렸지만 그냥 넘어가도 좋다는 선생님의 끄덕임의 표시에 다시 용기를 내고 제법 점잖은 목소리로 낭송을 시작했다. 

뜸뿍뜸뿍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나는 재문이가 제목을 읽자마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오빠생각. 이건 슬픈 동요인데. 동요에서 음을 빼고 가사만을 읽으면 한 편의 놀라운 동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재문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작은 오빠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나는 재문이가 선생님께 그렇게 많은 칭찬을 받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문득 항상 나와 내 친구들 고무줄놀이 훼방을 놓고 아이스깨끼하고 여자애들 놀리기만을 좋아했던 까불이 개구쟁이 생쥐 녀석 재문이도 어쩌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슬픈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낭송은 했지만 한 연만을 겨우 읽었으면서도 그마저도 한 글자 한 글자 깍두기를 써는 모양의 발음으로 낭송을 해 버려서 잘난 척을 하려고 했었던 어제의 내 마음과는 달리 나는 완전히 비웃음거리가 된 기분까지 들었다. 한 마디로 선생님의 가을날의 특별한 수업은 내게 최악의 수업이 되어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망쳐 놓았던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전부 다 작은 오빠의 제인 에어라는 여자를 향한 마음에서 오는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머릿속에는 이제 어떻게 해서든 제인 에어의 실체를 꼭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토요일 수업은 일찍 끝이 났다. 생쥐 녀석 재문이 일당은 아니나 다를까 신발을 들고 서 있는 내게 아는 체를 하면서 ‘오늘은 왜 공주님처럼 입고 오지 않았냐.’하고 놀림거리로 만들었다. 그 말에는 한 마디로 대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뒤를 따르던 정현이가 한 다는 말이 그 날의 모든 상황을 완전히 뒤 엎어 놓았다. 

  “야! 이수인! 너희 엄마 고아원 출신이라며? 너 왜 그리고 그동안 거짓말 했냐! 친할아버지가 없다며? 그런데 거의 일요일마다 너의 아버지가 친할아버지 만나러 어디 요양원인가 병원인가 그런 델 다닌다고 하더라. 이미 동네에 소문 다 났어! 참. 잘 됐네. 저기 강봉수도 아버지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으니까 둘이 같이 어울려 놀면 되겠다.”

  끓어오르는 화는 이미 폭발 직전의 활화산처럼 몸속의 온 내장을 뒤틀어 놓았고 들고 있던 신발과 가방은 내가 주먹을 세게 쥐어버린 탓에 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일의 순서라고 할 것도 없이 나는 다짜고짜 정현이의 정수리에 난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쥐고 마구마구 흔들었다.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새끼 영양 한 마리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고 사정없이 고개를 흔들었던 것처럼 나는 이제 아예 나머지 한 손마저 정현이의 뒤통수를 갈기며 교실 입구 계단에서 있는 힘껏 밀어서 바닥으로 까지 내동댕이쳤다. 바닥으로 나자빠진 정현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보는 가 싶더니 두 다리는 멀쩡했던지 벌떡 일어나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생각도 없이 당장 저 녀석을 어떻게 해서든 쥐어 패주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고 벗은 발로 정현이 뒤를 따라서 달렸다. 나보다 키도 작고 통통했던  정현이는 달리기가 느렸고 금방 내 손안에 등짝의 옷을 잡히고야 말았다. 

  다시 한 번 있는 힘을 다해 밀어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쳤고 이제 아예 그 녀석의 배 위에 올라난 나는 얼굴이며 팔이며 가슴이며 가릴 것도 없이 주먹질을 했다. 그 와중에 마냥 맞고만 있을 정현이도 아니었기에 나도 머리카락을 잡히고 옷이 잡아당겨지는 바람에 목이 쓸린 듯 따가움도 느꼈다. 드디어 녀석의 코에서 피가 나온다. 됐다. 이제 이 싸움의 승자는 내가 되었고 녀석은 코피로 싸움의 승복을 자연스럽게 인정한 듯 풀이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학교의 소사 아저씨는 우리 둘을 선생님 앞으로 데리고 갔고 정현이와 나는 책상 몇 개를 사이에 두고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기점으로 딱 삼각형이 그려질 만한 위치에 서서는 자초지종을 물으셨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현이도 자기의 비겁한 행동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우리 엄마와 아버지를 모욕했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을까. 선생님은 정 그렇다면 친구끼리의 폭력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서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직접 서로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셨다. 정현이는 먼저 ‘미안해’ 했지만 그건 누가 들어도 건성에서 나온 사과였다. 선생님은 사과라는 것은 진정한 마음을 갖고 진지한 행동으로써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시면서 다시 처음부터 하라고 하셨다. 그러자 정현이는 의자에서 몸을 빼고 내 앞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어렵게 걸어오더니 손을 내밀면서 자기가 정말로 잘못했다고 미안하다며 앞으로는 절대로 너를 놀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정현이의 사과도 받아 주지 않았으며 끝까지 나도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그대로 정현이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선생님은 그런 내게 남아서 반성문을 쓰라고 하셨다. 

  토요일, 이미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이 시간, 내 옷은 흙과 먼지로 얼룩져 있고 흰 양말의 발바닥은 덕구의 발바닥처럼 발가락 모양 그대로 완전히 검게 더렵혀져 있었다. 손과 팔의 한두 군데씩 손톱에 긁힌 자국에는 그 모양대로 붉은 색 줄이 그어져 있었다. 옷에 쓸린 목은 살갗이 벗겨진 것인지 고개를 돌릴 때마다 쓰렸다. 아직도 정현이가 엄마와 아버지를 욕되게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반성문을 쓰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이제 고작 여덟 살이다. 학교를 다닌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는 춘선이네 엄마처럼 매일같이 집에서 집안 살림에만 신경을 쓰면서 사는 그런 분도 아니시다. 우리 집 들일이 없는 날엔 거의 언제나 잎담배를 따라 가거나 철마다 따라오는 품앗이 일을 해서 품삯을 버는 일을 하셔야 했다. 그래서 나는 춘선이처럼 유치원의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아이다.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한글을 못 뗐다고 선생님이 춘선이를 딸려 걔네 집에 가도록 해서 춘선이가 나의 나머지 공부를 도와주도록 하게 하는 바람에 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일이 있었고 그 일 이후에는 작은 오빠한테 욕심을 부려 한글을 알려 달라고 거의 한 달을 넘게 매달려 지냈다. 이제는 반의 누구보다도 맞춤법에 자신이 있었지만 한 번 상처 입었던 마음이 완전히 없었던 일처럼 되는 일이란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던 나로서는 교실에 혼자 남아서 반성문을 써야만 집에 갈 수 있다는 선생님의 명령은 또 다른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일이었다. 동네에는 이미 나는 한글도 못 뗀 바보라는 소문이 나 있었고 엄마는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작은 오빠를 더 매달렸는데 그 때 오빠의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자신감을 심어 주었었는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엄마, 사람들 말은 신경도 쓰지 말라니까요. 수인이 쟤 바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저렇게 글도 쉽게 배우고 이해력도 빠른 많은 애가 어떻게 바보가 된 단가요? 그러니까 엄마도 동네 아줌마들 말 듣지도 말고 아무 걱정도 마세요. 두고 보세요. 수인이 한 달 안에 반에서 꼭 일등할거니까.”

  내 편을 그렇게 들어주는 작은 오빠가 눈물이 날 만큼 정말로 고마웠다. 나는 오빠의 말처럼 여름방학을 마치던 시험에서 정말로 일등을 했고 “1등”이라고 금박으로 글자가 새겨진 상장을 타다가 엄마 앞에 전리품처럼 갖다 바쳤기 때문이었다. 엄마 당신도 당당하게 그 사실이 온 동네 알려지길 바라셨을 테지만 우리 식구들 누구도 제 입으로 소문을 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나는 바보가 아님을 단 몇 달 만에 명백히 증명해 내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후로 선생님께서도 내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무안한 믿음을 보여 주셨고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두 번 다시 받아쓰기 빵점이라고 무시당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선생님이 내어 주신 하얀 백지를 구멍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을까. 나는 결심이라도 한 듯 연필을 손에 쥐고 ‘반성문’이라고 꾹꾹 눌러 썼다. 

  ‘선생님. 친구를 때려서 코피가 터지게 한 것은 제 주먹이 잘못한 것입니다. 저는 엄마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데도 꾹 참고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더 불효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마음에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엄마 아버지를 흉보는 사람이라면 오늘처럼 똑같이 그렇게 아니 쌍코피라도 터트려 줄 겁니다. 제 주먹이 잘못한 것이므로 이 반성문으로도 선생님께서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차라리 손바닥을 열대라도 맞겠습니다. 더 이상은 반성할 것이 없으니 쓰지 않겠습니다.                                       이 수 인 올림.’

 라고 쓴 종이를 선생님 책상위에다 올려놓고 교실 밖을 나왔다. 운동장으로 쏟아지는 가을볕을 쐬자 쌓여 있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 온 듯 현기증이 났다. 나는 신발을 마저 신고 시멘트로 된 계단 두 번째 칸에 앉았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상태였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작정 일어나서 어디라고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걷는 걸음마다 마치 땅이 발목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잘 걸어지지가 않았다. 

  “이 수 인”

  나는 헛소리를 들었는가 싶어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누가 내 이름을 부를 리가 없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내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 또렷하고 가까운 데서 나는 목소리였다.

  “이수인!”

  교실문 밖 반대편 쪽에서 나온 것인지 거기에는 마치 하얀 백묵과도 같은 봉수가 서 있었다.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나는 대답도 없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하얀 봉수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아까, 내 편을 들어주는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계속 기다렸는데.........”

  지나간 여름 내 팔목에 상처가 났을 때 나를 바보라고 다그쳤던 때와는 달리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춥고 쓸쓸하기까지 보였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봉수도 나를 기다리는 데 온 힘을 다 써버린 듯 양쪽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무슨 말인데? 고맙다고? 내가 네 편을 들어준 것 같아서?”

  나는 다시 화가 불끈 솟는 기분이 들어서 이렇게 거칠게 대답했지만 곧 후회하고 말았다. 봉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목소리를 조용하게 하고 말을 이었다.

  “하고 싶었던 말이 뭔데?”

  봉수가 한 걸음씩 조용하게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혹시 그 시간동안 나와 같이 있어줄 수 있니?” 

  하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냥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말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래 좋아’ 하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봉수가 내게 처음으로 가장 길고 분명한 문장으로 말 했던 것이라 나도 사실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봉수는 자기와 잠깐 어디 좀 가자고 했다. 나는 그 아이의 말대로 조금의 반대의 표시도 없이 순순히 동의했고 봉수는 나보다 한 발짝 앞서서 걸어갔고 나는 바로 뒤에서 그 아이의 발뒤꿈치 약간 삐뚤어지게 닳은 운동화의 뒤축을 바라보면서 따라 걸었다. 아니 가만, 봉수는 점점 내가 그렇게도 저주하는 장소인 행이짓거리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따라가기만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어디 가? 혹시 저기 행이짓거리 가는 거니?”

  “응, 저 다리 밑에 있으면 여름에 얼마나 시원한지 몰라. 햇볕이 들어올 틈이 없거든. 그리고 다리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이 정말로 시원해. 그리고......... 나 혼자 있기 딱 좋은 장소이거든.”

  그렇다. 우리 동네의 꼬마들은 대부분 행이짓거리의 전설과 그 밑에 매달린 상여 나무의 존재를 잘 알고 있어서 아무도 쉽사리 그곳으로 가서 놀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 바보 멍청이는 저기가 어떤 곳인 줄도 모르고 저 곳을 훌륭한 비밀 공간쯤으로 여기고 지내왔다는 거야?‘

  봉수는 마치 나를 자기의 아지트에 초대라도 한 사람처럼 먼저 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길로 나를 안내했다. 오래 살기로 치자면 봉수보다도 몇 년을 우리 동네에서 오래 살았으므로 왠지 이런 상황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크고 튼튼하게 보이는 돌들이 중간 중간 계단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쉽게 내려가기엔 조금은 불편한 길이었다. 먼저 아래로 내려가 있던 봉수는 내 모습이 아슬아슬하게 보였던 것인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나는 봉수의 손을 잡고 바닥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다리 밑은 처음 본다. 물이 흘러가고 있는 옆으로는 가로로 길게 의자모양으로 된 시멘트가 발라져 있었고 나는 봉수가 앉아 있는 바로 옆에 가서 엉거주춤하고 앉았다.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로 상여 나무가 이곳에 걸려 있는지. 고개를 살짝 들고 다리 천정을 바라보았다. 회색빛으로 발린 시멘트는 단단하고 평평한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내 머리 바로 위에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상여 나무가 그야말로 매달려 있던 것이었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 모습이 남겨지지 전에 나는 급하게 고개를 숙이고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봉수는 마치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할 사람처럼 계속 뜸을 들이며 말을 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나도 계속 공포의 다리 아래에서 앉아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 얘기라는 것이 뭔데? 빨리 듣고 싶은데........”

  사실 할 이야기라는 내용의 궁금함도 컸지만 그 만큼 그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컸으므로 나도 모르게 봉수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봉수는 더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먼저 물어봐도 돼?”

  봉수가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본다. 어느 순간 봉수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는 기분이 들자 나는 고개를 땅으로 떨구었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고 봉수를 바라보았다. 봉수는 아직까지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음......... 너 그런데 왜 서울에서 우리 동네로 이사 온 거니?” 

  차마 왜 아버지 없이 엄마하고만 단 둘이서 왔는지는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사생아라고 했어.”

  사생아. 이 낱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 보는 말이다. 하지만 봉수의 말하는 투에서 그 말속에는 분명히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결코 평범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마 봉수에게 사생아라 무슨 뜻이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아니 내 눈을 바라보는 봉수의 눈 속에 맑은 눈물이 차오르고 있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봉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봉수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제법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셨던 모양이었다. 내 짐작대로 봉수의 어머니가 간호대학에 다녔던 때에 인근 미군 기지로 단체 간호 봉사활동을 나갔을 때 그곳에서 군인으로 있던 미국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 뒤에 그 남자는 복무기간이 만료 되어 미국으로 되돌아갔는데 그러고 나서 봉수 어머니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봉수 어머니의 부모님께서는 당장 아이를 지워야 된다고 하셨지만 어머니는 대학교 학업을 다 끝내지도 않고 집을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그 후 산골 깊숙한 곳 고아원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보모로서 지내면서 그 곳에서 원장님의 도움으로 봉수를 낳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봉수는 어머니와 그 고아원에서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함께 살았는데 집을 나갔던 어머니를 찾으려고 그 부모님이 얼마나 노력을 했던지 그 고아원까지 찾아내게 되었는데 봉수의 어머니는 그 뒤로 그 고아원을 나와서는 반년 간을 떠돌이처럼 이곳저곳에서 잠깐 씩 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우리 동네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 들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물방울이 되어 또르르 떨어지는 봉수의 눈물을 옷소매로 닦아주려다가 그만 두고 말았다.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흘러간 것일까.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그 쪽의 다리 밑 깊은 곳까지 햇살이 들어와 있었고 그늘이 진 곳과 빛이 있는 곳은 마치 자로 대고 선을 그은 듯 반듯한 줄이 나 있었다. 그늘에 일렁이는 물결은 우울하게까지 보였으나 반대로 빛을 받고 있는 쪽은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빛나면서 완벽히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똑같이 한 길을 흘러가는 물이라도 순식간에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가 있는 것에 문득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해는 사라지고 두껍고 더럽게 얼룩진 먹구름이 다리 위를 완전히 뒤 덮은 듯 그나마 천정의 틈새로 새어나오던 빛줄기도 끊어져 버렸다. 

  꼬르륵. 누구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인지도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한 사람의 위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계속 꼬르륵 꼬르륵 우리 두 사람의 뱃속에서는 번갈아가면서 소래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웃었다. 봉수가 웃었다. 언제나 차갑고 무표정하게만 있던 봉수가 웃고 있다. 나는 웃는 봉수의 얼굴을 보면서 정말로 잘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점심 못 먹었지?”

  사실 지금 시간쯤이면 점심이 아니고 이른 저녁이라도 먹어야 될 정도로 이미 토요일 오후가 다 저물었던 것이었다. 

  “봉수야!”

  나는 처음으로 봉수의 이름을 다정하고 친근하게 불렀다. 

  “사실은 나도 너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어. 우리 엄마와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야. 사실 아까 낮에 정현이가 우리 부모님 말을 제 멋대로 한 것이 너무나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막된 행동을 했던 거야. 그리고 너를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이제 괜찮아. 나는 사과를 받아 냈고 반성문을 정당하게 쓰고 나왔으니 됐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목의 흉터를 보여주었다. 

  “이 흉터........ 나 그때 너 아니었으면 정말로 피를 많이 흘려서 죽었을지도 모를 거야.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해. 너무 늦게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어서. 나 그런데 이 흉터가 참 마음에 들어. 사실 조금은 부끄럽지만 이 흉터를 보면서 너를 조금, 아주 조금 생각하기도 했었어.”

  나는 태어나서 이런 종류의 감정을 처음 느껴본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고개를 들고 봉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봉수도 나와 같은 쪽의 팔을 걷어 올리더니 내 흉터와 아주 비슷한 모양으로 생긴 흉터 자국을 보여 주었다. 

  “자, 봐! 나도 있어. 내가 어릴 때 다쳤다는데 팔이 커지면서 흉터도 점점 커지는 것 같아.”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봉수의 팔목에 나 있는 흉터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내 손목에 나 있는 번개 모양의 흉터와 아주 모양이 비슷한 흉터 자국이 나 있었던 것이다. 

  “와! 신기하다. 우리 둘이 공통점이 다 있네?”

  나는 엄마 옆에 누워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동안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었고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는 봉수의 생각으로 정작 내가 정현이의 코를 주먹으로 때려서 피가 나게 했다는 사실은 까마득하게 옛날 일인 것처럼 기억 속에서 아늑히 멀어져 버린 듯 했다. 그저 봉수의 목소리와 두 눈 속에 맑게 고여 있는 눈물, 또르르 떨어지던 눈물방울이 계속 눈에 아른거리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던 흉터 자국을 보았을 때와 같이 여전히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두 손으로 내 심장 언저리를 만져 보았다. 무언가 강한 끈이 우리를 서로 꽁꽁 묶어 연결시켜 주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치 성냥개비가 거친 마찰면에 계속 부딪혀야 불을 켤 수 있는 것처럼 봉수와 나도 앞으로 어떻게든 계속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 내일 쟁반에 술 빵 쪄 줄 거지?”

  엄마는 고른 숨으로 대답했다. 주무시고 계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엄마는 내 생일엔 언제나 그 노란 술 빵을 쪄 주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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