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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9. 2017

5. 오고 가는 손님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 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 있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엄마는 마당 한쪽 그늘이 진 곳에 푸른색 나일론 포장을 넓게 펴 놓고 모퉁이에 앉아 콩을 까고 있다. 나는 엄마의 그 모습이 참 마음에 든다. 덕구는 엄마가 모아놓은 콩 껍질 더미를 킁킁 거리면서 냄새를 맡는가 싶다가 다시 엄마를 향해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유난히 더운 여름을 보낸 탓인지 조금은 살이 빠진 듯 보이기도 했다. 뒷다리 뼈가 낙타처럼 등가죽 위로 살짝 삐쳐 나온 것이 그렇다. 나는 엄마가 까고 있는 저 콩을 넣고 한 밥을 참 좋아했다. 아이라면 대부분 콩밥을 싫어해서 밥 속에 든 콩알을 골라내느라 밥상 앞에서 야단을 맞았지만 나는 엄마가 지금 까는 저 붉은 빛의 호랑이 무늬의 점박이 콩으로 밥을 짓는 날에는 항상 밥 반 콩 반이라고 할 만큼 콩을 듬뿍 담아 주실 만큼 콩밥을 참 좋아했다. 

  엄마는 저렇게 가만히 앉아서 손만 놀리는 일을 하실 때는 항상 노래를 흥얼거리셨다. 특히 이미자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그래서 나는 아이임에도 어른들이나 좋아할 법한 노래들을 귀 동냥으로 제법 많이 알고 있기도 했었다. 엄마는 이미자를 특히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섬 마을 선생님>도 그렇고 <동백아가씨>도 그랬지만 특히 이 노래, <아씨>를 가장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거의 항상 그렇게 슬픈 생각이 들게 하는 노래를 읊조리던 엄마의 모습을 보는 어떤 날에는 정말로 슬픈 얼굴의 엄마가 가여워 보일 때도 있었다. 엄마는 나처럼 엄마가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엄마가 없는 게 아니라 너무나 어렸을 적에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지금의 나처럼 ‘엄마’라고 부를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의 노랫소리는 항상 슬프게 들렸고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닦는 것은 이마에 난 땀을 닦는 것이라던 엄마의 말은 사실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미리 닦아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동네에 초상이 났다. 여름 내 거동을 못하시던 호박 할아버지가 올 가을 추수도 구경하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신 거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 할아버지를 두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먹고 입을 걱정 없이 90수를 넘게 누리고 건강하게 죽은 것은 가장 큰 복이라고 말했지만 어떻게 죽음을 두고서 복을 받은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호박 할아버지는 무척 키가 컸다. 항상 명주실로 수놓인 미색 계열의 한복을 입고 있었으며 은색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훤칠한 키를 더욱 더 돋보이게 하는 장식쯤으로 보일정도로 아주 훌륭한 외모를 갖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걸음걸이는 매우 어눌했다. 오른 손에는 허리까지 오는 나무로 깍은 지팡이를 짚고 계셨는데 내가 단 1분 만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도 할아버지가 걸으면 10분도 넘게 걸릴 것처럼 아주 느릿느릿하게 걸으셨다. 그리고 나머지 한 쪽 어깨에는 칡덩굴로 짠 손잡이 달린 작은 광주리를 둘러매고 계셨는데 그 안엔 거의 언제나 호박 한 두 개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아들이나 손주의 이름을 따서 부른 대신에 그냥 호박 할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이다. 호박 할아버지는 아버지한테 논을 빌려주신 대신 쌀을 받아 왔는데 이번 가을엔 그 집 큰 아저씨 - 사실 그 집 큰 아저씨도 내 눈에는 할아버지처럼 보였지만 - 께 드려야 하겠구나 생각했다.  

  정치 아저씨네 집 앞을 지나치는 파란색 용달차가 짐칸에 꽃상여를 싣고 마을을 들어온다. 나무로 된 각이 딱 맞는 격자위에 산성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단청 무늬가 있는 네 개의 면이 각각 아래에서 그 중심을 잡아주고 그 위로 얇은 색종이들이 화려한 꽃과 그림으로 장식 되어 다양한 고리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여는 트럭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 때문에 조금은 어색하게 보였고 나는 동산 위에서 한참동안 땅으로 내려지는 꽃상여를 구경하고 있었다. 

  추분이 지났다고는 했으나 아직도 한 낮에는 여름 볕이 장열하게 불타고 있었다. 그럼에도 집 안과 근처의 곳곳에는 불 켜져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백열등이 만국기 모양으로 줄지어져 걸려 있었으며 길 가 한 쪽 구석에는 삼발이에 올라앉은 덩치 큰 무쇠 솥이 햇볕과 장작불에서 위 아래로 온종일 찜질을 하고 있다. 집안의 모든 방, 부엌, 마당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로 뒤섞여 분주했고 그들 틈 속에 지푸라기 색깔의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두 명씩 끼어 있었으므로 그 집이 초상집임을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초상집의 온갖 일들을 도와주느라 대부분 다 그곳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지만 사실 동네의 꼬마들이 보태는 분주함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잔치 집은 아니지만 전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온 동네에 퍼져 나갔고 어떻게든 사람들은 초상집에 모여 들었고 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 눈에는 웃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으므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어른들이 말했던 것처럼 꼭 그렇게 슬픈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기도 했다. 단, 한 사람의 죽음이 모두의 일상을 정지 상태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대단한 사건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동시에 멈추고 그 집일을 도와주느라 정작 자신들 일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장사는 2박 3일에 걸쳐 지내는 게 보통인가 했다. 호박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지 사흘째 되던 날 이른 아침부터 제법 젊은 사람 축에 속하는 아저씨들은 행이짓거리 다리 밑에 매달려 있는 상여 나무를 걷어 와서는 짚으로 꼰 새끼줄로 묶은 넓은 사다리 모양으로 바꿔 놓았다. 그 위를 호박 할아버지 꽃상여가 올라 타 있었다. 이제 동네 사람들에게 남은 일은 길목 중간 중간에서 지나는 꽃상여를 말없이 슬픈 눈으로 지켜봐 주는 일이었다.

  나도 엄마 옆에 서서 호박 할아버지 상여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우는 것일까? 내가 잡은 손을 아예 빼고 땀을 닦는 것처럼 계속 양쪽 팔을 번갈아 가면서 올렸다 내렸다 하셨다. 엄마 뿐 만이 아니라 상여를 바라보는 동네의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눈물을 흘렸으리라 생각한다. 그건 호박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애도하는 마음에서 오는 눈물이기도 했겠지만 그 보다는 그네들의 이제까지의 각자의 삶이 마냥 행복하거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을 좌절과 고통의 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던 것에 대한 슬픔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상여의 선두에서 쇠 방울을 흔들며 부르던 어르신의 슬픈 가락의 노랫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해서 더욱 더 많은 눈물을 흘리도록 유도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렇게 슬픈 감정들이 서로의 마음과 마음에 전이되면서 호박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은 복 받은 할아버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을 정도로 슬픈 광경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소리 내어 엉엉 울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이 무척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일어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라서 소리를 내어 운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러니까 그 말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오래 사셨던 호박 할아버지는 이제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손님이 되셨고 이미 또 다른 세상으로는 찾아가는 손님이 되면서 죽음이라는 한 순간의 기점이 갑자기 그 입장을 바꿔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해 가을 우리 집에는 몇 가지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 가족 전체를 두고 보았을 때는 좋은 일임이 분명했으나 순전히 내 입장에서 본다면 좋은 일이 되기도 나쁜 일이 될 수 도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짓던 호박 할아버지네 논이 아버지 명의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봄날 나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마침내 그 논을 아버지 논으로 바꿔 놓았고 논에서 나온 쌀의 일부를 호박 할아버지네로 가져다주지 않아도 되었다. 난생 처음 아버지 이름으로 된 땅이 생겼고 그것은 마치 밥을 먹지 않고 있어도 저절로 배가 부르다는 말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논 바로 아래 붙어 있던 또 다른 호박 할아버지네 논을 빌렸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엄마와 아버지의 일거리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 사실은 결국 엄마가 나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그 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는 한 달에 단 이틀만을 쉴 수 있었던 아버지가 이제는 일요일마다 광산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바뀐 것으로 일요일이 정말로 휴일이 되었다는 것과 그리고 엄마 말로는 아버지가 다친 뒤부터 염사장이 아버지의 월급을 약간 올려 주었기 때문에 전보다 저축을 더 할 수 있다는 일이었다. 나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우리 집이 이제 곧 금방 부자라도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며칠간기분이 들떠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막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이것은 약간의 변화라고하기엔 부족함이 있고 오히려 큰 사건에 가까운 일이라고 설명하는 게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시간은 점점 가을 속 깊숙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고 모든 게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던 날들이었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집 앞에 서 있는 이 낯선 자동차는 분명히 염사장의 차는 아니었다. 그 보다 몸체가 더 크면서 은빛이 도는 자가용이다. 자동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염사장 차와는 다른 차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덕구는 낯선 사람들을 봤을 때나 하는 가벼운 뜀을 뛰면서 몇 번씩 캉캉 짖어 대고 있었고 그런 덕구를 만류라도 하려는 듯 엄마가 대문 쪽에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는 그런 엄마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멀뚱멀뚱한 내 모습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다. 엄마는 손짓으로 어서 오라고 말한다. 차분한 걸음으로 대문 기둥 모퉁이를 돌아서자 낯선 사람들 둘이서 엄마가 내온 것으로 보이는 찻잔을 들고 앉아 있었다. 대충 한번 보았을 뿐인데도 나는 마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며 나이는 대충 어느 정도였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루에 앉아서 엄마가 내준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서 말해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엄마의 눈을 바라보았다. 

  “수인아, 이리 와 봐.”

  가방 끈에 매달린 길이를 조절하는 줄을 각각 한 손에 붙잡고 나는 마치 지뢰라도 밟은 사람처럼 제자리에 굳게 서 있었다. 덕구는 나를 보고 반가워서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면서 내 팔뚝을 핥고 있었는데 평소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줄 생각도 없이 그 축축한 간지러움을 그대로 느끼며 계속 서 있기만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을까. 엄마는 이제 아예 내 손목을 잡아 이끌고 그 낯선 사람들 쪽으로 데려갔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버티면서 몸을 엄마 뒤에 숨었다. 왠지 무섭고 어색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인아, 인사드리렴. 친할아버지시란다.”

  나는 눈을 최대한 커다랗고 동그랗게 뜨고 엄마 얼굴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친할아버지라고? 그러면 저기 마루 깊숙이 앉아 계신 분이 아버지의 아버지라고? 나는 여태까지 8년간을 살아오면서 심지어 말문이 트여서 누군가를 할아버지라고 부른 사람은 오직 동네에서 봤던 진짜 동네 할아버지들 뿐 이였는데 그런데 저기 저 처음 본 사람이 내 친할아버지라고? 

  “얼른, 수인아! 인사드리라니깐.”

  나는 그 순간 내가 단 몇 초만이라도 귀머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하는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으니 그냥 이대로 집 밖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면서 말없는 인사를 했다. 마루 가장 끄트머리에는 그 사람들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과일 바구니와 종합선물세트라고 써진 과자박스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와중에도 과자 상자 틈으로 보이는 초코파이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면서도 절대로 저 과자엔 입도 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네가 수인이구나. 어디 이 할아버지한테로 와 보렴. 똑똑하게 생겼구나. 지 애비 어릴 때를 쏙 닮았네.”

  라고 말하면서 이제까지 나를 줄곧 봐 왔었다는 것처럼 말하는 투가 더 맘에 들지 않았다. 같이 따라온 나머지 한 사람은 아버지 또래이거나 아니 그보다 더 젊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았지만 내게는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시 보니 마루 가운데 있는 통나무 기둥에 우산 모양의 지팡이가 기대어 있었고 아버지의 아버지라는 분이 신고 온 것으로 보이는 신발은 거의 흰색에 가까운 보기 드문 구두였다. 구두를 보고 다시 그 분의 옷차림을 보니 다소 빳빳한 질감의 직물로 만든 한복과도 비슷하게 생긴 옷이었는데 전에 호박 할아버지가 항상 입고 있었던 한복과는 조금은 다른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긴소매 옷 아래로 보이는 찻잔을 들고 있는 손은 엄마 손보다도 더 곱고 하얬으며 얼굴에 닿은 빛은 마치 기름칠을 튕기는 물방울처럼 반사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엄마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계속 대화를 이어갔으나 주로 엄마는 듣기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마루에서 일어나 모르는 척 하고 슬쩍 집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엄마는 나를 붙잡지 않았고 가벼운 바람에도 바스락 나뭇잎 소리로 귀를 간지럽히는 떡갈나무 숲으로 올라갔다. 사실 동산은 그 나무의 대다수가 참나무로 장식되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떡갈나무 숲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곳은 내가 변할 수 있는 장소였다. 마음이 복잡해지거나 누구와도 말하기가 싫었던 날에는 동산에 올라서 마을의 북쪽인 대나무 숲을 뺀 전체를 바라보았다. 그 곳은 동네에서 내가 가장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높은 곳이기도 했으며 언제나 모든 상황을 날카롭게 보고 있는 해의 입장을 가장 가까이서 물어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이 복잡한 날이면 어김없이 동산으로 올라갔던 것이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자동차는 여전히 집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검은색에 가까운 둥그런 바위 틈 사이로 이제 막 고개를 쑥 내민 이끼를 뜯어낸다. 개미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내 신발 위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가 다시 제 정신을 차린 듯 바위로 내려가 갈라진 틈 속으로 숨어버린다. 애꿎은 개미 한 마리를 잡아서 멀리 던져본다. 가벼운 개미는 생각처럼 멀리 날지 못하고 내 신발 밑으로 떨어진다. 마치 깃털처럼 사뿐히 내려앉았다. 친할아버지라고? 설날에 동네 친구들이 할아버지한테 세뱃돈을 얼마를 받았다고 자랑할 때 부러운 마음에 나에게는 왜 할아버지가 없는 것인지 조금은 원망 섞인 불만으로 삐쳐있기도 했었기 때문에 정말로 아버지의 말대로 내 친할아버지는 호박 할아버지와 같이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면서 이렇게 8년을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타나서는 내 친할아버지라며 인사를 하라는 엄마도 그렇고 아버지한테도 그렇고 모두에게 속았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게 바라던 친할아버지의 존재가 내 눈 앞에 나타났어도 전혀 기쁘거나 반가운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저렇게 버젓이 운전기사 – 나는 말없는 젊은 남자를 연속극에서 본 것처럼 운전기사라고 짐작했다. - 까지 부리면서 이제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처럼 부잣집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 수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빨리 아버지가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오빠들도 조퇴를 하고라도 와서 저 광경을 나와 함께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엄마는 저 분을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대하고 계셨고 그래서인지 대화를 나누는데 적대하거나 경계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나보다도 어릴 적에 엄마도 아버지도 모두 여의셨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씩 내게 외할머니의 사랑을 못 느끼게 해 준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엄연히 따져 엄마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사실로 엄마가 정말 안됐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나 스스로 기가 죽거나 아쉬운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미 돌아가신 분이 다시 살아 나셔서 내 눈앞에 나타나신 걸까.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가을볕은 변덕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나절엔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알맞게 내리다가 한 낮 동안에는 긴 소매를 못 참고 땀이 날 정도로 뜨겁게 내려오고 그러다 저녁이 되면 달님과의 기 싸움에 눌려 금방이라도 꼬리를 내려버리고 산 뒤로 숨어버린 것처럼 서늘한 기운까지 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매를 둥둥 걷어 올렸다. 그러자 주변보다 유난히 하얀 색깔과 얇은 피부로 쌓인 흉터자국이 보인다. 그건 지난여름 멱을 감다가 항아리 조각에 베인 상처에 난 흉터였다. 번개 모양의 새끼손가락 절반 정도 크기의 흉터는 제법 멋지게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가끔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팔뚝 따위에는 흉터 자국이 훌륭한 장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흉터가 앞으로 일어나게 될 모든 사건을 나와 함께 감당해 낼 것을 약속하는 일종의 서약의 상징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자 무척 애착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은 결국 봉수의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고 나는 몸을 돌려 앉아서 봉수네 집 쪽을 바라보았다.  

  봉수는 왜 서울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시골로 그것도 엄마와 단 둘이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일까. 봉수는 정말로 아버지가 없는 걸까. 이제까지 1년을 넘게 봉수와 같은 반으로 지내면서도 단 한 번도 내가 궁금한 정황들을 물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바른대로 말하자면 단 한 번도 봉수와 둘이서 우리들만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봉수의 엄마도 아버지처럼 아버지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셨을까. 그래서 봉수도 나처럼 어른들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나와 같이 아버지의 존재를 체념한 상태로 살아온 것일까. 아니면 내가 상상한 것처럼 봉수의 아버지는 정말로 돌아가신 분이실까. 한참을 그렇게 나만의 생각에 갇혀 있다가 친할아버지라는 분이 떠나신 줄도 몰랐다. 집 앞에 있던 그 자가용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 길로 당장 동산을 내려가서 엄마에게 정말로 진실을 이야기 하라고 따져 물어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 자리 이대로 앉아서 마치 내가 지금 엄청난 배신감으로 화가 나있다는 것을 표시라고 하는 것처럼 아버지가 오시는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지 쉽게 결정내릴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 머릿속은 아까 보았던 마루 끄트머리에 있는 종합선물세트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궁금함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를 가장 먼저 알아들은 덕구가 꼬리를 정신없이 흔들면서 캉캉 짖는다. 아버지가 오시는 소리다. 아버지는 휘발유 냄새가 섞인 뽀얀 연기와 함께 약간 언덕진 대문 입구를 툴툴툴 특유의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마당까지 들어오셨다. 큰 오빠와 작은 오빠 그리고 나는 이렇게 순서대로 서서 아버지께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를 했다. 이런 풍경은 해가 떨어진 시간이면 거의 항상 똑같이 반복이 되는 일상의 일부였고 그러면 아버지는 당연히 “응~! ”하고 짧게 우리들 인사에 대답을 해 주셨다. 

  아버지는 가장 먼저 오토바이 뒷자리에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밧줄로 돌돌 감겨 있던 도시락 가방을 엄마에게 건네시고 바로 수돗가로 가서 손과 발을 닦으셨다. 그러기 전에는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날씨가 추운 날에는 엄마가 이 시간 때가 되면 양동이에다 더운 물을 가득 담아서 세숫대야로 덮어 놓았었지만 나머지 계절엔 거의 항상 수돗물을 받아서 그대로 세면에 쓰셨다. 나는 항상 안방 윗목의 광주리 안에서 수건 한 장을 들고 나와서 마루 끝에 서서는 아버지가 다 씻기만을 기다렸다. 세숫대야의 물을 수채 구멍으로 쏟아 내버리고 담장 한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으시면 이제 나는 아버지에게 수건만 내어 드리기만 하고 방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목에 수건을 걸친 아버지를 엄마가 부엌으로 끌어 당겼다. 나는 엄마가 아버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지 듣지 않아도 다 듣고 있는 것처럼 알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을까. 아버지는 평소대로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셨고 우리 다섯 식구는 한 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저녁밥을 먹었다. 아무도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이 답답한 분위기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용기를 냈다.

  “아버지! 아버지 나........”

  “응, 뭔지 얘기해 봐라.”

  마음속으로는 낮에 왔던 그 아버지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진짜 친할아버지가 맞느냐고 수도 없이 물어보고 싶어서 입술은 눈을 깜박이듯 셀 수 도 없이 열렸다 닫혔다 했지만 끝내 나는 이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나 저기 저 과자 먹어도 돼?” 

  아버지는 내 귀밑머리 단발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시며 가벼운 한숨으로 말없이 고개만 가볍게 끄덕여 주셨다. 

  나는 잠들기 전까지 시간이 왜 이렇게도 늦게 흘러가는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드디어 아버지와 엄마가 나란히 누웠고 나는 엄마 옆에서 잠 든 척을 하면서 가만히 누워 있느라 온 몸의 피가 멈춘 듯 쥐가 난 것처럼 전신이 다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두 분은 언제나 잠들기 전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셨기 때문에 그 시간에 나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엿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오늘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무슨 말이든 나올 것이 분명했고 이제까지 비밀로 부쳐둔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먼저 아버지를 부르신다. 나는 아버지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나 분명한 낮은 음성으로 들렸기 때문에 깜짝 놀란 생쥐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내 심장 뛰는 소리로 사실은 내가 잠들지 않았고 잠든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게 될까봐,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의 기다림의 순간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조바심에 일부러 잠버릇처럼 엄마의 반대쪽으로 등을 돌리고 돌아누웠다. 아까 보다는 한결 몸 전체가 편안해진 기분이 들었다. 

  “수호 아버지, 그래도 다 지난 일이니까 이제 당신이 먼저 마음을 여세요. 아버님도 많이 연로하셔서 이제 얼마나 오래 사실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뭐라고?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라고? 내가 알기에는 마음을 연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면 아까 그 친할아버지라는 분이 아버지한테 큰 잘못을 하셔서 아버지가 그 분의 존재 자체를 비밀로 부쳐둘 만큼 화가 나셨다는 말인가? 나는 갑자기 감고 있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마터면 깨어있다는 것을 들키는 줄로만 알았다. 

  “당신은 그 때 당했던 수모를 벌써 잊어버린 거야? 그 사람들이 당신한테 얼마나 모질게 굴었는데 어떻게 내가 용서할 수 있겠어.”

  엄마가 아버지의 손을 잡는가 싶다. 그러면서 계속 대화는 이어졌다.

  “수호 아버지, 나는 정말 괜찮았어요. 봐요! 저렇게 우리 큰 아들 수호도 바르고 똑똑하게 잘 자랐고 이제는 우리 땅도 생기고 동네에서 인정받으면서 먹고 살 만큼은 살고 있잖아요. 그리고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엄마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나는 엄마의 울음에 그 순간의 흥분은 사라지고 다시 차분한 기분이 되었다. 

  “당신 유일한 피붙이고 이제 아이들이 알아도 될 만큼 컸잖아요. 낮에 수인이가 놀라는 걸 보고 사실 내 마음도 철렁했어요. 말은 안 해도 아마 궁금해서 잠도 안 올 지경일거에요.”

  뭐라고? 그러면 지금 내가 잠든 척 하는 걸 엄마가 알고 계시는 걸까? 나는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갑자기 부끄러웠다. 

  “당신이 부모도 없는 못 배운 고아라고 만삭으로 배가 불러서 손발이 퉁퉁 부어 있었는데도 모르는 척 했던 사람이야. 나는 아직도 그 추운 날 당신이 대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울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 그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어.”

  “아버님도 많이 변하신 것 같아 보였어요. 전처럼 당당하신 기세도 한 풀 꺾인 것 같고. 아 그리고 새 어머님이 위암으로 위독하다고 하셨어요. 병원에서는 벌써 집으로 모시고 가라고 했다면서 그냥 마음 편하게 해 드리라고 했대요. 그리고 새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한테 꼭 용서를 받고 싶다고........”

  “마음을 그렇게 독하게 쓰니 결국 나쁜 병이 왔나 보구만.”

  아버지는 끝까지 완강하셨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마치 연속극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일들이 정말로 아버지에게도 있었던 것이었을까. 나는 잠이 드는 일은 이미 딴 세상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갈수록 정신이 맑아졌다. 아! 바보!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오줌이 마려울 게 뭐람. 선물세트 속에 들어 있던 짠 과자를 먹은 탓에 잠들기 전 물 한 그릇을 다 마신게 말썽이었다. 금방이라도 오줌이 바지를 뚫고 나올 지경이었으니.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일어나 앉아서 마치 오줌이 마려워서 잠이 깬 아이처럼 제대로 뜨지 않은 눈을 양손으로 비볐다. 

  “엄마! 나 오줌 마려워!”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 마루 끝에 가져다 둔 요강에 앉아서 오줌을 누었다. 쇠로 된 요강 안에서 오줌이 부딪히면서 묘하고도 맑고 경쾌한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소리가 그쳤는데도 일어날 생각도 없이 처마 끝에 걸려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별을 그렇게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바지를 올리면서 엉덩이에 동그랗게 난 요강 자국이 간지러워서 한번 쓱 하고 긁고서는 방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눕자마자 갑자기 잠이 몰려왔다. 아버지와 엄마의 대화는 멈추는가 싶다가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는데 이제 그 말소리는 내 호기심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자장가로 바뀌어 버린 듯 마치 내가 꿈을 꾸는 것인지 정말로 그 대화를 엿 듣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분간할 수는 없었다. 

  친할아버지의 등장으로 크고 작은 일들이 줄을 이어 생기게 되었다. 사실 엄마는 나도 알고 있던 것처럼 너무 어릴 적에 양쪽 부모를 모두 잃었기 때문에 고아원에서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이후에는 고아원에 가장 많은 후원을 해 주셨던 집안의 식모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 집에는 엄마보다 두 살 많던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은 착하게도 엄마를 친 자매처럼 대해 주었다고 했었다. 사실 믿을 수는 없는 이야기였지만 사실은 내 나름대로는 엄마의 시름과 고충을 그렇게 아름답게 받아들이게 되면 내 마음도 조금은 덜 아플 것 같은 생각에 엄마의 말을 다 그대로 믿고 싶었던 것이었다. 엄마가 식모로 살던 주인아저씨는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고 했다. 

  어느 날엔가 집안에 주인아저씨 손님들이 올 거라고 그 집 주인 아주머니와 온 종일 음식도 하고 집안 청소를 했어야 했다고 했다. 그 때 엄마 생각에는 대단한 손님들이 오시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몇 배로 걸레질도 깨끗하게 하고 계절마다 했던 마당 정원의 풀까지 뽑아야 했었다고 했다. 마침 기다리던 손님들이 왔는데 그 분들은 주인아저씨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쉽게 말하면 동료정도로 여겨도 되었을 법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행동이나 말씨에 교양이 높은 사람들로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지금의 아버지의 아버지였고 그 사람은 자주 그 집에 드나들던 사람이었으므로 주인아저씨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도 그때 친할아버지를 따라서 그 집에 함께 오시곤 했는데 두 집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돈지간이 될 것을 약속한 사이였다고 했다. 그 말은 주인집 딸과 아버지는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게 될 사이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집에 자주 드나들던 아버지는 예쁘고 똑똑한 주인집 딸보다 초라하고 연약하게 보이지만 그 행동과 모습에 순진함과 착한 천성이 고스란히 배어났던 엄마에게 점점 마음이 쏠렸던 것이었다. 엄마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임신을 한 채로 그 집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친할아버지께 임신 사실을 알리며 받아 줄 것을 부탁했으나 결국 두 사람 모두는 집 안으로 한 발짝도 들여 놓지 못하고 쫒겨 나고 말았다고 했다. 사실 아버지의 친 엄마는 아버지가 걸음마도 떼지 못했을 때 돌아가셨고 그 후에 친할아버지가 새 엄마를 들였는데 어릴 때부터 그 새 어머니는 어린 아버지에게 차갑고 무섭게 대했으며 사실 자식에 대한 제대로 된 관심을 전혀 쏟아주지 않은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 때 맞춰 들어온 유모한테서 거의 길러지다시피 했는데 엄마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던 아버지가 착하고 다소곳한 당시 엄마의 모습에서 돌아가신 친 엄마의 존재감을 느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쩌면 당연하게도 마음을 빼앗긴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때 아버지는 열아홉, 엄마는 열일곱이었고 그 이듬해 1월의 함박눈이 장맛비처럼 쏟아지던 겨울날 산성의 작은 암자에서 늙은 여승의 도움으로 지금의 나의 큰 오빠, 수호 오빠가 태어났다고 했다. 

  엄마는 이 모든 사실을 당신의 무릎 앞에 우리 삼남매를 나란히 앉혀 두고 너무도 쉽게 마치 대단한 일이 아닌 듯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해주었다. 지금 큰 오빠는 열여섯 살이다. 그러면 아버지 인생의 절반을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끊은 채로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오빠들과 나는 이제까지 엄마와 아버지는 피붙이가 우리 셋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고아와도 같은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우리에게 전에 없던 친척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어떤 기쁨과 반가움보다는 인생 최고의 혼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친할아버지가 다녀가신 뒤로 한 달 뒤 쯤 아버지의 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고 우리 가족은 모두 각자가 갖고 있던 가장 검은색에 가까운 색깔의 옷을 골라 입고 난생 처음으로 친척들을 만나러 갔다. 장례식장이라고 되어 있는 곳은 병원과도 비슷하게 생긴 곳이었으나 그곳의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남자들은 검정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여자들은 검정색으로 된 한복과도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호박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전을 부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가마솥에 장작을 넣던 아저씨도 없었고 동네의 꼬마들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서 먹을 것을 얻어먹는 그런 모습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곳엔 오로지 피곤하고 지루한 표정의 사람들과 엄숙한 분위기만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걱정했던 것처럼 다시 엄마가 꽃상여를 보고 울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새 어머니는 장식이 화려한 꽃상여 대신에 부드러운 질감의 천으로 감싸인 필통 모양의 관속에 들어 계신 듯 보였고 밋밋한 모양의 커다란 검정색 자가용에 실리고 있었다. 단 한 사람 그 새어머니의 딸로 보이는 젊은 여자만 하얀 손수건을 손에 쥔 채 눈물을 닦고 있었지만 거기의 누구도 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검정색 자가용을 뒤따르는 버스에 올라타서 그렇게 30여 분간을 이동했고 가는 동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눈을 감고 있어서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호박 할아버지가 타고 가는 꽃상여를 보면서 함께 울었었다. 그런데 친할아버지의 부인인 어쩌면 내게도 친할머니 정도는 되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전혀 슬프지 않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꼭 피를 나눈 사이여야만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은 성숙의 계절인걸까? 상실의 계절인걸까? 여름 내내 토끼장에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개복숭아나무도 다가올 겨울을 버텨낼 수분을 비축해 두기 위해 하루하루 열매와 이파리들을 말려가고 있었고 동산의 떡갈나무들은 가벼운 바람에도 이제야 겨우 다 익은 도토리들을 제 몸에서 미련 없이 우수수 털어내 버렸다. 앞산의 나뭇잎들도 점점 가벼운 색깔로 바뀌어 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봄에 심었던 우리 집 논의 벼들이 황금색 누런빛을 자랑하며 무거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나를 대하셨지만 나는 전처럼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치 내가 모르는 어떤 또 다른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닌지 살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큰 오빠는 고등학교 입시 준비로 늦게 까지 불을 켜 놓고 공부하는 날들이 늘어갔으며 작은 오빠도 내가 처음 보는 책들로 혼자만의 책장을 채워 나가고 있었다. 엄마는 잎담배를 따라가는 날 보다 집에 있는 날들이 더 많았지만 그런 날에도 항상 손에서 일거리를 놓지 않고 계셨다. 오직 변함이 없는 것은 덕구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덕구도 겨울 준비를 위한 털갈이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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