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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9. 2017

3. 아! 강봉수


  우리 마을을 동남쪽에서부터 시작하여 북서쪽으로 빠져나가는 조용하고 고요하던 시냇물이 장마 후 거친 숨소리를 내며 급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듯 세차게 몰아치며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동네 시작점에는 사람들이 공용으로 쓰던 빨래터가 있는데 나는 엄마를 따라가서 양말조각에 하얀 비누칠을 하고 조물조물 거품을 내며 흘러가는 물에 흔들어 헹구면 뽀얀 비누 때가 물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겨울날 더운물로 목욕을 막 마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처럼 정말로 기분이 상쾌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보고 이제 다 컸다면서 칭찬을 해 주시기도 했다. 넓적하고 평평한 돌들이 돌다리처럼 놓여 있던 자리에 빨래를 빨러 나온 언니들과 아주머니들은 가장 윗물이 흐르는 깊은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을 매우 흐뭇하게 여기곤 했었다. 엄마가 새 비누를 갖고 오던 날은 양말에 비누칠하기가 참 어려웠다. 손에 넘치는 크기의 비누는 또 왜 그렇게 미끌미끌했던지 몇 번이고 바닥으로 떨어뜨려서 언제나 새 비누에는 작은 모래알 들이 박혀 있었다. 나는 절반쯤 닳은 비누를 가장 좋아했다. 내 손에 쏙 들어와 아무리 미끄러워도 놓치지 않고 비누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작아진 비누 조각들을 그물망 같은데 한데 모아서 꾹꾹 눌러 마치 새 비누처럼 큼지막한 비누를 만들어 내곤 했다. 엄마는 거의 항상 망에 든 비누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빨래는 우선 물을 흠뻑 적셔 놓고 한 곳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그리고 다 빨린 빨래는 가져온 대야에 꽈배기 모양으로 차곡차곡 싸여 갔다. 

  그리고 냇가에서 하는 손빨래의 최고의 백미는 단연 방망이로 후려치기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손만 대면 단 번에 뚝딱, 그것의 최고로 쓸 만한 물건들을 잘 도 만들어 내셨다. 빨래방망이도 아버지가 깎은 것은 무겁지도 않고 한손에 쏙 들어와서 잘 미끄러져 나가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방망이의 제 기능인 빨래를 때리는 고른 면이 부드럽고 평평하게 되어 있어서 옷에 구멍이 나거나 솔기가 터지게 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네에서 함께 빨래를 하던 사람들은 아버지가 깎은 방망이를 꼭 한 번씩은 써보고 싶어 했고 그게 닳는 물건도 아니고 또 엄마의 인정이란 항상 우리가 조금 기다린대도 그걸 써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한테 기꺼이 양보하는 넉넉함이 있었기 때문에 거의 반 이상은 우리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가져 온 방망이를 대신으로 썼던 기억이 많았었다. 

  그리고 빨래터에서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과 소문들을 들을 수가 있었고 굳이 누구도 그것이 사실인지 단순히 바람 같은 허풍인지에는 구별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아주머니들에게는 그동안 쌓였던 화와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풀어 내버릴 수 있었던 일종의 놀이터, 해소의 공간과도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쁜 감정들은 빨래의 때가 씻겨가듯 떠내려가는 물에 띄어 버렸던 것이었다.

  그 날은 장맛비가 세차게 마을을 할퀴고 지나간 지 딱 일주일이 지난 금요일이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엄마가 차려 놓은 점심을 마루에 앉아서 먹고 나서 마당에 바늘같이 쏟아지는 빛줄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당도 장맛비를 견디기 힘들었던지 두껍게 쌓여 있던 흙들이 많이 씻겨 나가서 듬성듬성하게 마치 바다에 뜬 빙하처럼 회색빛 화강암의 몸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작은 오빠가 한 번씩 내 실수를 두고서 ‘그건 너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야.’라고 했던 말은 저걸 두고서 하는 말일까 짐작했다. 얼마나 커다란 바위가 우리 마당 아래 깔려 있을까. 빨래 줄에 걸려 있는 아버지 작업복 셔츠는 양 팔을 마치 탈춤이라도 추는 사람처럼 위 아래로 흔들었고 큰 오빠의 하얀 교복 셔츠를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 졌다. 곱게 줄이 나 있던 작은 오빠의 교복 바지는 바람결 따라 힘없이 흔들리는 꼴이 꼭 다리병신처럼 보이기도 했고 작은 꽃무늬로 한껏 치장한 엄마의 블라우스, 그리고 가장 끝에 걸린 내 양말 조각까지 그저 바람이 하라는 대로 아무런 저항도 없이 몸을 흔든다. 오늘따라 유난히 긴 꼬리를 달고 온 바람은 넓은 치마폭에다 잠을 싸가지고 와서 내 몸을 가볍게 덮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솔솔 낮잠이 쏟아지는 것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덕구는 제 집에서 나오려고 한다.

  ‘아니야, 그냥 너도 쉬어. 덥잖아.’

  마치 나와의 대화가 가능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말귀를 알아듣고 두 앞발을 포개고는 턱을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밥을 먹어서 그런지 눈이 살며시 감기는 가 싶더니 마치 나는 아주 훌륭하고 멋진 계획이라고 생각난 듯이 눈이 번쩍 뜨인다. 아~! 멱 감으러 가면 되겠다. 춘선이한테 가 볼까. 아니다. 가 볼 것도 없이 동네 조무래기들은 지금 거기서 반은 벗은 몸으로 멱을 감고 있을 것이리라.

  집 앞을 나와 동남쪽으로 이어진 냇가와 나란한 길을 따라서 약 5분 정도 걸어가면 빨래터가 있는 자리 바로 윗물이 동네 꼬마들이 멱을 감기는 곳이었다. 그 곳은 내 허리춤까지 물이 차는 깊이로 양쪽 옆으로 버드나무가 길게 목을 늘어뜨리고 있어서 항상 그늘이 져 있었으므로 우리들이 멱을 감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멀리서 보아도 머리가 까맣게 물에 젖은 몇 몇 애들이 벌써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 와서 보니 춘선이는 아직 없다. 동네에서 가장 개구쟁이로 소문난 재문이 일당들과 한 살 어린 애영이 친구들 몇 명이 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선뜻 들어갈 용기가 안 났다. 머뭇머뭇 거리다가 장마에 쓸려간 냇가의 물밑이 너무나 투명하고 맑아서 아이들을 피해서 낮은 데로 가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바닥까지 훤히 보여서 그게 몇 마리인지 조차도 셀 수 있을 정도로 정말 깨끗한 물이었다. 1년을 지나봐야 냇물이 이렇게 물이끼 하나 없이 깨끗한 날은 장마가 지나간 뒤 겨우 일주일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고 날짜가 넘어갈수록 나뭇잎도 가라앉고 물풀도 살아나서 또 내년이나 되어야 이런 물을 구경할 수 있겠구나 싶자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을 나설 때 그 차림 그대로 물로 들어갔다. 무릎까지는 괜찮다가 허리춤까지 물이 차오르자 등줄기에 한기가 올라오고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바닥까지 드러나 보이는 깨끗한 물인지라 물속에서 굴절된 모양의 내 다리가 이상하게 보인다. 마치 빨랫줄에 걸려 있던 작은 오빠의 바지 자락같이 힘없이 흔들거린다. 물결 따라 물속으로 빠지는 빛줄기마저도 휘어진다. 나는 분명히 두 다리를 곧게 편 채로 힘을 주며 서 있는데도 굽은 내 다리 모양이 신기하여 그렇게 한참동안 서서 물 속에 빠진 내 다리 구경을 한다. 

  이윽고 나는 준비가 다 된 사람처럼 입 안 가득 큰 들숨을 머금고 물속으로 몸을 반쯤 담갔다가 뺀다. 순식간의 일이다. 정말 시원하다. 물속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뜨면 정말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작은 모래알들이 전부 다 저마다의 다른 색의 빛을 내는 보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 주먹 쥐고 물 밖에서 확인해 보면 그건 이제 누가 봐도 모래 알갱이일 뿐이다. 나는 몇 번을 그렇게 속아도 눈에 들어오는 반짝이는 모래알들이 하도 예뻐서 물속에서 눈 감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항상 멱을 감은 날 밤에는 잠이 들 때 눈에 오는 통증 때문에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물 밖에서 바닥을 보더라도 바닥은 훤하다. 장마에 쓸려 내려온 것들인지 제법 넓적하고 큼지막한 옹기의 깨진 조각들까지 눈에 들어온다. 깨진 항아리 조각들이 내 눈에 들어 온 그 순간을 기점으로 앞으로 나에게 생기게 될 상당한 사건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동무들이 발이 베일까봐 누구 한 사람 신경 쓰지 않는 그 옹기 조각들을 한 개씩 한 개씩 차례차례 물 밖으로 옮겨 놓기 시작했다. 수면을 기점으로 그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과 물살의 흐름에 따라 옹기도 함께 물 밖으로 나가기를 저항하는 것 같은 야릇한 느낌을 감지하면서 몇 번을 그렇게 물속과 물 밖을 넘나들며 깨진 조각들을 옮겨 날랐다. 다른 아이들은 아마도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마치 하나의 놀이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인지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 제 각자 놀이에 정신이 없었다. 

  반 쯤 깨진 항아리! 마치 낚시꾼이 월척이라도 잡은 것처럼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큰 항아리 쪽으로 걸어갔고 마침내 그것을 내 손아귀에 집어넣고서 막 물 밖으로 끄집어 낼 참이었다. 다 됐다는 생각까지 들자 여태까지 살면서 몇 번 느껴보지 못한 묘한 성취감마저 생긴다. 그런데 항아리 안쪽 벽면을 타고 등에 푸른색 두 줄이 난 몸집이 길고 뚱뚱한 거머리 한 마리가가 내 왼쪽 손가락을 타고 기어 올라올 기세로 머리끝을 쭉 늘이고 좌우로 냄새를 맡고 있는 게 아니던가! 그 순간 나는 ‘악!’ 하고 비명을 내지르고 쥐었던 항아리를 던져 버렸다. 하지만 상당히 무게가 나가던 그 원인 제공자는 내 근처를 멀리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내 발 밑으로 떨어지는데 물속에 반 쯤 잠겨 있던 내 왼쪽 손목을 스쳐놓고서 아주 낮은 속도로 나를 비웃으면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몸을 똑바로 세운다. 반사적으로 물속에서 팔을 꺼내자 벗겨진 상처에는 하얀 살갗이 붕 떠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이빨처럼 흰 살점이 보이고 붉은 입술보다도 몇 배는 더 선명한 붉은 피가 고이다가 이내 수면으로 뚝 떨어진다. 이제 이빨 같은 살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는 펌프질 되면서 솟구치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눈썹 사이로 누군지 하얀 천으로 내 다친 팔목을 감고 있는 게 보인다. 놀란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아! 강봉수. 봉수가 제 윗도리 아랫단을 찢어서 내 팔목의 상처를 감싸주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떨어졌다. 피도 떨어지고 내 심장도 떨어져 버린 것 같다. 

  “야! 피!”

  “괜찮아. 이렇게 꾹 누르고 있어.”

  태어나서 봉수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다. 벙어리는 아니었는지 말소리에도 촉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안다. 참 부드럽다. 

  “너 굉장히 피를 많이 흘렸어.”

  나는 그제 서야 고개를 돌리고 팔꿈치를 타고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멍하니 바라본다. 떨어지는 핏물은 제 각자 하나 하나의 낙하산이 되어서 물에 닿자마자 낙하산을 펴고 그때부터는 속도를 늦춰 아주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 옷을 찢어서 내 팔목에다 둥둥 감고 있는 봉수의 손이 오늘 따라 더 하얗게 보인다.

  “야! 니 손에 피 묻었어........”

  “너, 지금 돌았구나, 네 걱정이나 하고 있어.”

  나는 매듭을 묶고 있는 봉수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자세히 바라보며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잠자코 서 있다. 봉수가 다치지 않은 내 남은 팔을 끌어 주어서 나는 제법 빠른 속도로 물속을 걸을 수 있었다. 

  “야! 네가 무슨 청소업자라도 되니? 다른 아이들은 아예 관심도 없는 일을 혼자서 무슨 유리 조각을 치우겠다고........”

  “아이들 발이 베일까봐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다. 

  “가자. 어차피 숨길 수 없는 일이야.”

  “어디를?”

  “너 네 집으로 가자고, 아니면 우리 집으로 가든지........” 

  봉수도 말끝을 흐린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 집에 가 보았자 덕구 혼자서 덩그러니 집을 보고 있을 것이고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심심해서 멱을 감으러 나온 게 아니던가. 그리고 엄마는 품삯 일을 하러 담배 집 아저씨네 잎담배를 따러 가셨고 아버지는 광산에서 저물어져야 오실 수 있다. 그리고 아직 두 오빠는 학교에서 오려면 멀었을 시간이었다. 

  봉수는 우리 집 앞에 서서 머뭇거린다. 

  “야! 빨리 들어가서 어머니 불러봐.”

  우리 집인데도 쭈뼛쭈뼛 하고 있고 나를 알아 본 덕구만이 앞  발을 장난치듯 들어다 놨다 하면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 

  “집에 아무도 없어.”

  “바보! 빨리 말했어야지!”

  봉수가 감아준 헝겊 위로 붉은 피가 얼룩져 있다. 피는 멈출 줄 모르는가 보다. 

  “이 바보야! 너 계속 피 흘리면 죽을 수도 있어.”

  이번에는 아예 내 손목을 낚아채듯이 하며 달린다. 

  은행나무집, 아니 이제는 봉수네 집 앞이다. 우리 집같이 대문이 안 달린 문이다. 막 부엌 쪽에서 우리 엄마 허리둘레쯤으로 보이는 소쿠리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있던 봉수 엄마가 금방 우리를 알아보신다. 

  “너희들 둘이 어쩐 일로 함께 들어오니?”

  “어머니! 수인이가 좀 다쳤어요. 어머니께서 한 번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봉수 얼굴을 바라본다. 마치 선생님께 이야기 하듯이 존댓말을 하는 봉수가 이제는 정말로 나보다도 한두 살 위쯤으로 오빠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니? 수인이 다친 거야? 어서 이리 들어와라. 여기 앉아 봐.”

  봉수 엄마는 나를 끌고 가서 마루에 걸쳐 앉혀 놓고는 금방 방으로 들어가서 보건소에서 보았던 빨간색 십자가가 붙어 있는 하얀색 플라스틱으로 된 박스를 내오신다. 구급함이다.

  몸 전체가 쇠로된 가위로 봉수가 감아준 천을 잘라낸다. 한 번의 가위질을 했을 뿐인데 매듭이 툭하고 잘려 나간다. 붉은 피로 물든 봉수 옷의 천조각을 걷어 내자 베인 맨살이 드러난다. 피가 멈춘 듯 보이다 곧 패인 상처 안으로 피가 차오른다. 나는 눈을 꾹 감는다. 오른쪽 눈만을 살짝 뜬 채로 상처 난 곳을 다시 본다. 

  “아이고 참. 큰일 날 뻔 했구나. 그래 어쩌다가 그랬니. 이 정도라서 다행이야. 병원에는 안 가 봐도 되겠어.”

  “멱 감다가.......”

  “쳇!”

  봉수가 마루 맨 위쪽 끄트머리에 앉아서 문 없는 대문 쪽을 바라보며 두 다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한 말이다.

  “어머니. 쟤 바보예요.”

  봉수 엄마는 봉수 쪽을 보며 살짝 눈을 흘기는가 싶더니 다친 내 손목을 아예 자기 무릎에 올려놓는다. 

  “소독하고 약 바르고 하면 금방 나을 거야. 너무 걱정 안 해도 되겠다.”

  하늘색으로 된 플라스틱 병, [과산화수소]라고 써진 작은 뚜껑을 연다.

  “조금 따갑다.”

  나는 다시 아까 보다 더 세게 눈을 감는다. 솔잎에 찔리는 듯 따가움에 ‘아!’하는 소리와 함께 감은 눈이 저절로 떠진다. 베인 상처는 안 보이고 부글부글 하얀 거품이 피어난다. 엄마가 아버지 좋아하시는 국수 삶을 때 나는 뽀얀 거품과 꼭 같다. 이것만큼은 봉수의 얼굴보다 하얗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가 만들어 내는 신기한 광경에 꺼지는 거품처럼 아픔은 이내 사라져 버린다.

  이번에는 엄마 새끼손가락만한 크기의 연고를 콩 알 만하게 짜서 상처에 발라주신다. 

  “큰 핏줄이라도 다쳤으면 어쩔 뻔 했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구나!”

  가제 손수건 질감의 하얀 천을 대고 그 위에다 하얀색 반창코를 쭉 찍어서 헝겊 주변에 붙인다. 봉수는 아직도 아까처럼 마루 끝에서 제 발만 동동 구르면서 앉아 있다. 꼭 봉수 다리만 따로 그네를 타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괜찮니? 아프지 않고?”

  “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아줌마.”

  “이제 보니 수인이는 정말 씩씩하구나! 엄마는 어디 가신거니?”

  “네, 잎담배 따러.......”

  봉수 엄마는 살짝 미소 지으시며 내 귀밑머리 단발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렇게 가까이엣 봉수네 엄마를 본 적이 있었던가. 마치 처음 보는 사람 같다. 큰 눈망울에 쌍꺼풀이 진눈, 뽀얀 피부에다 봉곳한 코끝까지 참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엄마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봉수네 엄마도 엄마만큼이나 예쁜 것 같다. 그동안 서울 사람은 다 봉수처럼 하얗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아마도 봉수의 하얀 얼굴은 제 엄마를 닮았는가 싶다. 

  “수인아, 그런데 점심은 먹었니?”

  “네.”

  “아줌마가 막 옥수수 삶아 놨는데 같이 먹자.”

  옥수수! 이건 여름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가 아니었던가. 나는 봉수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 젖어서 집에 가봐야......”

  옥수수라는 단어에 내 반사 신경이 작용하여 입 속에서 침이 분수처럼 솟았고 그 침 때문에 그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바보! 멍청이! 천치!.......’

  나는 내 손으로라도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그러면 있다가 오빠들 오면 같이 먹어라.” 

  하시면서 내 팔뚝만한 옥수수 다섯 자루를 비닐봉지에 담아 주신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 내 얼굴 가까이에 얼굴을 맞대고서 상처가 덧나는지 봐야 한다며 내일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다시 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꼭 한 번 더 미소를 지어 준다.

  나는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고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벗어났다. 내 상처를 정성스럽게 봐 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 먹을 것을 나눠 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이 교차한 것으로 진심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친 데가 조금씩 욱신거리긴 했지만 그 보다 내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더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봉수네 엄마는 곡 보건소에서 본 그 간호사 언니 같았다. 그 옷만 가져다 입고 있었더라면 보건소 간호사보다 몇 배는 더 간호사 언니처럼 보였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강봉수. 그 아이는 왜 갑자기 그 멱 감는 데 나타나서는 아미 내가 다칠 것을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제 옷까지 찢어가면서 내 상처를 감싸 주었고 또 제 엄마한테까지 보여 주며 치료를 받도록 해 준 것이었을까. 그리고 왜 자꾸 나를 바보라고 했던 것일까. 사실은 지가 더 바보라고 항상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왔는데. 그리고 나는 왜 아주머니가 주시는 옥수수를 마음에도 없이 거부했음에도 봉지에 담아 주시는 옥수수를 망설임도 없이 덥석 받아 들고 나왔으며 왜 하필이면 그 순간 침을 삼키는 바람에 말끝까지 흐린 것이 왜 그리도 창피했던지 알 수가 없었다. 

  봉수는 나를 단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는데 왜 나는 그 아이를 계속 곁눈질을 하면서 신경을 쓴 것인지. 오늘 본 봉수의 옆모습은 우리 작은 오빠 보다도 더 잘생겨 보였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문제를 떠안은 사람처럼 머릿속이 정말로 복잡해 졌다. 

  나는 비 맞은 덕구가 제 몸의 물 털어내 듯 고개를 비정상적으로 심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아저씨의 아는 체로 여태 한 걸음도 걷지 않고 정승처럼 그 집 앞에 나 있는 신작로에 멍하니 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봉수네 집을 보았다. 이파리가 연녹색을 한 반달모양의 은행잎과 아기 주먹만 한 밤송이가 대롱대롱 달린 밤나무가 전에는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나무처럼 여겨졌다. 언제나 귀신의 모양을 하고서 그 앞을 지나던 나를 잡아먹을 듯 엄한 기세로 겁을 주던 덩치 큰 나무들이 이제는 봉수와 봉수네 엄마를 지켜주는 수호신쯤으로 보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집 앞에 다다르자 덕구는 내 발자국 소리만 들었을 법한데도 제 집밖으로 나와서 목줄이 당겨질 때가지 길 밖으로 나와서는 가벼운 목소리로 강아지처럼 캉캉 짖고 있었다. 내 모습이 나타나자 이번에는 아예 내 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꼬리가 부러질 것처럼 흔들면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다친 상처의 아픔에서 오는 눈물이기 보다는 오히려 이런 내 마음과 어리광을 받아 줄 엄마는 돈 때문에 지금 남의 집 잎담배를 따고 계시고 집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한없이 서럽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내 눈동자가 눈물 속에 파 묻혀 있는 것을 본 덕구는 그 긴 혀로 내 얼굴을 핥는다. 팔목에서 피가 떨어지던 것처럼 눈물방울이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봉수가 제 옷으로 내 상처를 감아 준 것처럼 덕구는 이제 내 눈물을 핥는다. 이제 나는 아예 덕구의 목을 끌어안고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내 버린다.  

  ‘아! 옥수수!’

  봉수네 엄마가 쥐어 주신 봉지를 열어 보자 알이 탱글탱글하게 영근 옥수수 속살이 보인다. 나는 한 개를 꺼내 내 옆구리에 끼우고 나머지는 다시 묶어서 부엌 부뚜막에다 올려놓고 덕구 앞으로 나왔다. 여전히 덕구는 나를 향해서 꼬리를 흔들고 혀를 길게 늘인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옥수수 반을 잘라 사료 몇 알이 굴러다니는 그릇에 놓아준다. 나는 여전히 덕구 앞에 서서 옥수수 한 알을 따 입속에 넣는다. 삶을 때 소금 설탕을 넣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옥수수이던가. 덕구는 그 반쪽짜리 옥수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이빨로 물어다 놓았다하기를 하는 가 싶다가 다시 앞발로 뼈다귀처럼 붙들어 보다가 옥수수를 보고 한 번 멍멍하고 짖으며 신경질을 부려보았다가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다. 옥수수 앞에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덕구를 보니 웃음이 난다. 

  “바보! 우리 덕구는 바보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옥수수를 다시 집어 들어서 엄마가 내게 해 주시는 것처럼 똑같이 한 알 한 알 먹기 좋게 따서는 손바닥위에 올려놓는다. 덕구는 기다란 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옥수수를 제 입속으로 가져가서는 씹지도 않고 삼켜버린다.

  이제 앞으로 일주일 만 있으면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나는 아까 봉수가 그랬던 것처럼 마루 끄트머리에 엉덩이만 살짝 걸쳐 앉아서 다리를 동동 구르며 해를 쳐다본다. 이미 해는 서쪽 앞산 가까이 가지 가 있다. 지금 쯤 봉수도 자기 네 마루에 앉아서 내가 보고 있는 저 해를 보고 있을까. 이제껏 놀림꺼리로만 여기던 봉수의 이상한 행동들과 지나치게 하얗고 깨끗한 그 아이의 외모는 마치 무엇인가 대단한 비밀을 간직한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갑자기 봉수의 모든 면들이 궁금해지고 한편으로는 신비로운 아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해를 반쯤 먹은 구름이 앞산 중턱에 제 몸보다 몇 배는 큰 그림자를 그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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