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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9. 2017

2. 장마

  하늘이 그렇게 울어대는 건 처음 보았다. 마치 밤새도록 수도꼭지라도 틀어 놓은 것처럼 쉴 틈 없이 물줄기가 쏟아지고 그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집 함석지붕은 밤새도록 회초리를 맞았고 아파서 내는 소리인지 휘이잉 하고 음산한 신음소리까지 내면서 그 울음을 처마 아래로 흘려버리는 통에 하늘에 난 구멍과 맞먹는 크기의 구멍이 마당에도 뚫릴 지경이었다. 그 푸름을 과시하며 이제 막 애기티를 벗고 있던 논의 모들이 잘 배겨낼 수 있을지 엄마의 걱정에 방구들도 꺼질 것 만 같았다.

  나는 잠이 들다 깨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지 문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를 소리를 듣고서야 이불에 누워 있던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비가 그친 듯 지붕도 그제야 겨우 새벽잠이 든 듯 조용했다. 나는 한지로 붙여진 나무틀로 된 문을 살짝 밀고 내 무릎까지 오는 문턱에 턱을 올려놓고는 집 밖을 내다보았다. 

  와!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동네 사람들이 전부다 우리 집 앞 냇가 앞에 나온 것 같다. 집 앞을 지나는 큰 냇물이 길 높이와 나란한 방천의 끝까지 목이 차서 또 다른 황토 길을 내 버린 것이다. 황토색 물은 길 가장자리를 삼킬 듯 뱀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입속으로 무슨 말을 계속 하기 라도 하는 것처럼 부스스한 얼굴로 걱정이라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우리 집 식구들처럼 모두들 밤잠을 설쳤으리라 짐작했다. 

  나는 허리까지 덮여 있던 이불을 걷어 대충 포개 놓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여름철인데도 제법 한기가 있어서 맨살이 다 드러난 종아리에 닭살이 돋는다. 덕구도 밤새 잠을 설친 모양이다. 나를 보고도 큰 눈만 껌벅거릴 뿐 제 집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한 마디씩 하고 있다. 

  “아이고, 어쩐대요.”

  “비가 이렇게 한 번에 많이 올 줄 알았는가.”

  “논 밭두렁 다 떨어졌겠네.”

  “물이 차서 건너 가 볼 수도 없고. 아이고 답답하네.”

  “이 동네 60년을 넘게 살았어도 저렇게 물 불어난 거는 처음 본 다 안 해요. 이게 무슨 물난리래요.”  

  어른들은 이렇게 초조한데 작은 오빠 친구들은 물이 방천이 넘지 못하고 꽉 채우기만 한 것을 아쉬운 듯이 히죽히죽 웃어가며 물 구경을 하고 있다. 

  “방천 넘었으면 동네 잠겼겠지? 그럼 여기 길도 싹 청소 되고 좋았을 텐데.......”

  "아깝네! 앉아서 바다구경 할 수 있었는데......."

  차마 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지들끼리민 웃음을 참으며 어깨를 툭툭 친다. 어른들은 초조한데 오빠들은 이 광경이 즐거운 모양이다. 물 구경! 나도 사실은 태어나서 이제껏 집 앞의 시냇물이 이렇게까지 많이 불어난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애영이네 엄마 두 걸음 뒤에 서 있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무언인가를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두 손을 모은 채 조바심을 내는 모습이었고 마을을 끼고 돌아 나가는 방천 아래쪽에 사는 봉수네 엄마가 봇짐하나를 아기 끌어안은 듯 하고 아버지를 뒤에 바짝 붙어서 걸어오고 계신다. 아버지는 사내애를 업고 있는데 좁은 사이 길을 따라서 아슬아슬하게 걷는 모습이 불안하게 보인다.

 ‘아! 강봉수! 아버지가 봉수를 등에 업고 신작로가로 오고 계시지 않은가.’

  그때 마을 가장 큰 어르신인 호박 할아버지가 어느새 내 등 뒤에 서서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게 들린다. 

  ‘모내기 한 달 만에 이런 물난리가 나면 새끼 모가 벌써 목까지 물이 찼을 낀데 그러면 올 농사는 망치는 기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 구경을 하고 있던 나는 호박할아버지 혼잣말을 듣고 이런 수위로 계속 물이 마을 밖까지 흘러나가면 아무리 시내가 넓어지는 행이짓거리 다리도 물에 차올라 넘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 아래쪽 낮은 평지에 있는 우리 아버지가 심은 논 두 마지기도 잠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올해 우리 집도 농사를 망치는 것이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자 왜 밤사이 엄마가 그렇게 방구들 가라앉을 무거운 한숨으로 걱정을 하셨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어쩌지....... 

  물 떠내려가는 서쪽을 바라보고 서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한 곳으로 몰려든다. 웅성 웅성대는 소리가 나는 쪽을 보자 어느새 봉수 엄마가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있었고 봉수를 업은 아버지는 이미 집 안마당까지 가 계셨다. 봉수네 집을 우리 집 뜨락에 서서 바라보면 중간 중간 함석 조각으로 기운 초가지붕만이 도드라져 보일 뿐이었다. 그만큼 우리 집은 시내가 돌아가는 안쪽으로 나지막하게 있는 동산 중간에 터를 올리고 있는 집이라 아무리 큰 홍수가 나도 물 흘러가는 방향이 90도 변하는 반대편에 있어서 그 회전력으로 물이 방천을 벗어나도 어차피 우리 집에서 멀어지는 다른 쪽으로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동산에서 산사태만 나지 않는다면 무척 안전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난 항상 집 마루에 올라서서 담벼락 너머로 우리 동네의 절반인 서쪽의 풍경이 훤히 보이는 곳에 우리 집이 있다는 것을 매우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해질 녘 서쪽 앞산을 넘어가는 해가 그려낸 노을은 얼마나 장관이었는지 30분을 넋을 놓고 바라보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극장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만일에 서쪽 하늘을 커다란 사각형으로 자른다면 저보다 훌륭한 장면은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봉수네 집은 길보다 한참이나 움푹 꺼진 곳에 길가에 서서 보더라도 내 키가 그 집 지붕 높이와 같아져서 그 초가지붕 꼭대기가 다 보일 정도의 낮은 곳에 웅크리고 들어앉아 있던 것이었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지붕으로 비가 새어 들었고 더 심했던 것은 가뜩이나 낮은 자리 좋아하는 물이 봉수에 안마당까지 욕심을 냈고 결국엔 새벽녘에는 방안으로 물이 차올랐다는 것이다. 

  엄마는 큰 방 윗목에 덜덜 떨고 있는 봉수엄마의 손목을 잡고 아랫목으로 오라고 한다. 다리가 네가 달린 둥근 쟁반 같은 양은 밥상에다 애 호박 듬성듬성 썰어서 끓인 성급한 된장찌개와 성큼 성큼 썰어 담은 김치를 내어 아침상을 들여온다. 

  ‘세상에 엄마는 그 와중에 언제 또 계란까지 부치셨을까.’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라 아들 학교도 쉬니까. 또 수인이 아버지도 한 달에 두 번 쉬는 일요일이 바로 오늘이니까 한 술 뜨고 어디 한번 같이 가 봐요. 밤새 얼마나 걱정 했어요 그래. 걱정 말고 얼른 밥부터 먹어요."

  “고마워요 수인이 엄마! 나도 한 번 살아보겠다고 여기에 와서 이제 겨우 자리 잡는 가 했는데 홍수가 나는 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요.”

  봉수 엄마는 오른팔 소매 깃으로 눈물을 훔쳐낸다. 

  “걱정 마세요. 동네 사람들이 다들 좋은 분들이니까 내 집일처럼 다 같이 도와주실 거예요. 걱정 말고 얼른 밥부터 드세요. 봉수야 얼른 너도 이리 와라.”

  강봉수! 아버지 등에 업혀 우리 집 안방까지 들어온 강봉수! 조금 되바라진 소리라고 아버지가 들으면 나를 혼냈을 테지만 정말 어른 말대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강봉수가 우리 집, 그것도 내가 먹고 자고 하는 안방에 들어와서는 늘 서쪽하늘 구경하던 자리에 떡 버티고 앉아서 있는 모양이라니. 봉수는 제 엄마가 손을 잡아끌어도 꿈쩍도 안하고 윗목의 고구마 자루처럼 있기만 했다. 

  ‘숨이라도 쉬고 있는 건가 저 놈.’

  봉수는 얼굴이 하얗다. 반바지를 입고 지나가는 걸 보면 다리는 얼굴보다 더 하얗다. 머리카락은 또 왜 저렇게 노란빛이 도는 건지 어느 때 보면 꼭 미국 놈 같다. 봉수는 서울에서 왔다. 1년 전 딱 이맘때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래서 전에 득종이 오빠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신집으로 모시던 그 초가지붕 집을 청소하고 그 집에서 살아온 지 거의 딱 1년째가 되었다. 봉수는 나와 학교에도 같이 다닌다. 어차피 학교래 봤자 동네 시작하는 귀퉁이에 있는 한반짜리 분교가 전부이기는 한데 어쨌든 우리는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같은 반 친구다. 봉수는 아버지가 없다. 이 사 올 때부터 엄마랑 단 둘이서만 들어왔으니까 나는 그냥 짐작으로 아버지가 없는 아이라고 결론지어 버렸다. 

  봉수는 친구가 없다. 언제나 혼자다. 교실에서도 의자에 껌이라도 붙은 것인 냥 항상 한번을 일어나지 않는다.

 ' 저놈은 오줌도 안 마려운가 봐'

  친구들끼리 뺑 둘러앉아 춘선이가 삶아온 고구마를 까먹고 있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이 물고기 잡으러 가자고 하면 그제 서야 못이기는 척 하면서 가장 맨 뒷줄에 서서 따라온다. 사실 이것은 거짓말은 아니지만 봉수는 우리들 보다 한두 살 많이 먹은 오빠마냥 키가 크다. 친구들이 빈 콜라병에 물고기 잡는다고 첨벙첨벙 빠져 놀아도 멀찌감치 뒤에 서서 팔짱만 끼고 정승처럼 서서는 먼 산만 쳐다 볼 뿐이다. 

  그렇게 냇가에서 바라보는 봉수의 얼굴은 더 하얗다. 나와 춘선이의  얼굴이 볕에 익어 벌겋게 부어올라도 봉수 얼굴만큼은 언제나 하얗다. 

 '무슨 머슴아 놈 얼굴이 저리도 뽀얗더냐. 밀가루 반죽보다 더 한다.'

 우리는 놀리 듯 낄낄거리며 웃지만 사실은 지나치게 새하얀 봉수의 얼굴에서는 어떤 빛이 나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눈을 땅으로 하고 있어서 낯빛만큼은 어두워 보인다. 나는 봉수가 웃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선생님이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를 해 줘도 웃는 법이 없다. 선생님도 그런 봉수를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봉수가 아마도 웃으면 죽어버리고 마는 희귀병을 타고 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봉수네가 이사를 오고 1년 가까이를 분교 운동장만한 논바닥을 사이에 두고 이웃지간으로 지내왔는데 봉수는 나와 동기임에도 여태껏 단 한 번도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그 아이는 말수가 없는 어딘가 아파보이는 듯 창백한 모습으로 항상 조용한 아이였었다. 한 번씩 내가 내 새끼 손톱만한 돌멩이를 일부러 던지면서 말을 걸어볼라 치면 그런 날이 있은 뒤 한 일주일동안 우리 집 앞을 지나지 않고 방앗간이 있던 먼 길로 돌아 제 집을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런 봉수를 아버지는 내 친구랍시고 등에 업어주는 호강을 시켜주고 또 엄마는 그런 봉수한테 나도 일주일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계란프라이를 해가지고 아침상에 내 왔던 것이다. 

  “수인아, 건너 방에서 오빠들 아침 먹으라고 해라.”

 봉수 얼굴과 봉수네 엄마 얼굴을 번갈아가며 멀뚱히 보던 나를 보고 눈짓으로 더 재촉하신다. 나는 문을 열고 좁다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오빠들 방으로 쓰고 있는 사랑채 쪽으로 가려고 마루로 나왔다. 신을 신으려고 바닥을 내려 봤는데 강봉수 신발이 없다. 항상 제 얼굴만큼이나 하얀 운동화를 뽐내듯 신고 다녔던 터라 나는 봉수의 신발을 안보고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됐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신발도 못 신고서 아버지 등에 업혀 나왔다고 생각하니 아까 방안에서 눈매를 흘겨가며 마음속으로 흠씬 매질을 한 내가 너무했나 싶은 생각에 미안해진다. 

  “큰 오빠, 작은 오빠! 밥 먹어! 엄마가 계란도 부쳤다. 빨리 나와.”

 큰 오빠는 머리를 밤송이처럼 짧게 자른 머리로 나와는 여덟 살 차이가 났으며 중학교 3학년이었다. 항상 읍내 중학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해서 입학금부터 수업료와 육성회비를 여태 단 한 번도 낸 적이 없을 정도로 읍에서는 알아주는 똑똑한 학생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오빠는 큰 오빠와는 조금 많이 다른 느낌이 있었다. 큰 오빠보다 두 살 아래였던 작은 오빠는 항상 내가 무슨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나를 ‘꼬마사건이나 알라’고 꿀밤을 주거나, ‘너처럼 꼬마는 이런 거 아직 몰라도 돼’식으로 면박을 주는 게 일쑤였고 학교 공부가 많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지만 큰 오빠처럼 줄 곧 1등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 번씩 엄마가 식구들 먹을 저녁상을 봐 놓고 동네 입구에 사는 작은 오빠 친구인 미영이 언니네로 항상 돈을 꾸러 다니시곤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말이 없고 항상 공부만 하는 큰 오빠보다는 나를 잘 골려먹기는 해도 나와도 놀아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잘 해 주는 작은 오빠가 사실 더 맘에 들었다. 

  “오빠들~! 늦게 나오면 내가 계란프라이 다 먹는다. 알았지? 

 다시 큰 방으로 들어왔을 때도 여전히 봉수는 고구마 자루 옆에 나갈 때 봤던 모습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아마도 많이 놀랐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저 녀석은 분명히 계란프라이 반찬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특이한 놈이다.

  반나절이 지나면서 물 빠지는 게 눈이 보일 정도로 수위가 푹 꺼져 있었다. 너무 쉽게 끝난 물 구경이 한편으로 아쉽기도 했지만 흙탕물이 빠지면서 맑은 물길을 드러낸 냇가는 금방이라도 몸을 담그고 멱을 감고 싶을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그리고 냇물은 여전히 센 물살로 중간 중간 물보라까지 일으키며 흘러가고 있었지만 탐욕스러운 뱀의 혓바닥 같던 흙탕물이 물가에 났던 풀들, 물이끼까지 싹 핥아서 쓸어간 터라 작은 물풀하나 없이 말 그대로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물길을 뚫어놨던 것이다. 아침나절 논에 다녀온 아버지는 그래도 생각보다 피해는 없다며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셨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두렁에 내 놓은 보에 떨어진 빗물들이 앞장서려고 다투지 않고 서로서로 양보를 잘해줘서 한 줄로 잘 흘러간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아보신다며 봉수네 집에 가 계셨다. 나도 그렇게 반나절 만에 낯빛을 바꿔버릴 수 있는 시내가 마치 변절자라도 되는 듯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리고 봉수네 집 마당에서 들리는 아버지 목소리를 따라 발길을 옮겼다. 진흙으로 뒤엉킨 세간살이를 마당으로 끄집어내고 있었고 엄마는 마당 구석에 있던 수돗가에서 아버지가 끌어내는 것에 묻은 흙들을 씻어내고 계셨다. 

  “수호 아버지, 아무래도 이 집은 고쳐도 못 쓸 것 같죠? 차라리 저 은행나무 기와집을 청소해서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게, 내 생각도 그런데.......”

  “봉수 어머니, 이 집은 저지대에 있고 집도 워낙 옛날에 져 놓은 집이 되놔서 또 언제 물난리를 맞을지 모르니까 저 기와집을 청소해서 쓰는 게 어떨까 하는데 봉수 어머니 생각은 어떠세요?” 

  “저야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어디든 괜찮아요. 봉수하고만 같이 지낼 방 한 칸이면 충분해요.”

  “그럼 어차피 지금은 주인도 없는 빈집이니까 쓸 만한 세간살이만 챙겨서 나갑시다. 그게 좋겠고만요.”

  아버지가 말하는 은행나무 기와집 이야기를 듣자마자 갑자기 봉수가 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집은 비록 전에 신집으로 쓰던 집이기는 했지만 늘 이웃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신을 모시던 윗방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다지 무서운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눈이 비정상적으로 커다랗고 툭 튀어나온 마치 사오정 같이 생긴 소와 말들이 벽면에 붉은색과 푸른색 위주로 그려져 있었고 이목구비가 분명한 황금색 부처님이 통통한 두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부처님 앞에는 온 종일 불을 밝혀도 그 모양이 쉽게 변할 것 같지 않은 양초가 촛농이 흘러내리다 굳은 자국을 마치 장식처럼 자랑하 듯이 부처님 앞에 세워져 있었으며 양쪽 옆에는 작은 스텐 그릇이 나란히 줄을 맞춰 놓여 있었는데 그릇 안에는 항상 생쌀이 소복하게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신기한 광경쯤 구경한 것으로 밖에 달리 무섭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었다. 그리고 득종이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예뻐해 주셨던가. 볼 때마다 큼지막한 눈깔사탕을 한 개씩 쥐어 주시며 귀 밑 단발의 내 머리카락을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시던 분이 아니셨던가. 

  그런데 은행나무 기와집은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그런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던 집이었다. 건물 자체로 치자면 지금 우리 집보다도 훨씬 더 튼튼하고 화려한 몸체를 자랑하면서 함석지붕인 우리 집에 비해 몇 배는 값나가는 남색기와를 머리에 얹고 말 그대로 고래 등 같은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쳐도 눈 하나 꿈쩍없이 지날 수 있는 그런 지붕을 가진 집이었다. 또 마당은 어떻던가. 철마다 고소한 알밤과 은행열매로 주전부리 떨어질 걱정 없이 지붕을 덮을 만한 몸집을 자랑하는 과실수들이 있었고 지금이야 관리를 안 해서 잡풀들이 무성하게 마당을 뒤덮고 있었지만 신경만 잘 써 주면 사시사철 옷 갈아입을 어여쁜 정원으로 가꿀 수 있는 우리 집 마당의 다섯 배 정도의 면적으로 널찍한 마당이 있었다. 또 은행나무 바로 아래는 혹독한 가뭄에도 물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우물까지 있던 집이 아니었던가. 어디 그 뿐이던가. 그렇게 널찍한 집안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던 담벼락도 그 비싸다고 소문난 기왓장이 ‘ㅅ’자 모양으로 올려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를 살았더라도 고을 사또의 집쯤으로 여겨도 될 만한 그런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집이 무척 싫었다. 그냥 단순히 싫은 정도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 그런 집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자칫 혼자서 그 집 앞을 지나기라도 한다면 절대로 눈을 그 쪽으로 돌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가. 그런데 그렇게 좋은 집을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주인이 없던 빈 집임에도 동네 사람들 중 누구도 들어가 살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는 이 동네에서 나만큼 오래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가 갈 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 집을 그냥 ‘은행나무집’이라고 불렀다. 그 집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일명 ‘귀신 나오는 집’으로 통했고 실제로도 그 집안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서도 기분 나쁜 집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었다. 정씨 부자 할아버지라고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이름이나 나이는 몰랐지만 내가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그 집과 연관된 전설같은 이야기였다. 

  그 집 막내아들은 날 때부터 좀처럼 잘 울지를 않고 아기인데도 마치 열일곱 학생마냥 수적으로 계산이 무척 빨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집 할아버지는 집안에 천재가 태어났다고 하면서 무척 만족스러워 하셨고 스무 살이 되는 해 미국으로 유학까지 보내 줄 계획까지 미리 짜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막내아들이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자 조금씩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는 거였다. 은행나무 집 뒤뜰에는 필요할 때마다 따 먹을 수 있는 채소를 키우는 텃밭이 있었고 그 옆에는 쇠 그물망으로 찬장모양의 집을 지어 각각 닭과 토끼를 키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철망 안에 있던 흰 토끼 한 마리가 목이 완전히 비틀린 채로 이제 막 상추의 연두색 이파리가 땅위로 머리를 내밀 때 쯤 텃밭 한 가운데에 뒷다리를 양쪽으로 뻗고 마치 새총모양처럼 나뒹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집토끼는 대부분 몸 털이 하얀색깔이고 그 눈은 항상 울었던 것처럼 빨간색 이었다. 나는 그래서 토끼는 슬픈 동물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토끼의 사체가 텃밭에서 발견된 날 그 집 할아버지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집을 탈출한 토끼가 면에서 나준 쥐약을 주워 먹고 죽은 것이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고 했었다. 

  그러다가 한 달쯤 뒤에 이제는 상추도 제법 이파리가 많이 자라서 찬밥 된장 싸먹기 딱 좋은 크기가 되었을 무렵, 또 한 마리의 토끼가 이번에는 마치 그 목 언저리를 사나운 족제비한테 물어 뜯겨 죽은 것처럼 피 칠갑을 한 채로 상추밭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정씨 할아버지는 배고픈 족제비가 밤사이 토끼장에서 토끼를 물어가려다 인기척에 그만 죽여만 놓고 달아난 사건으로 결론이 나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일하던 식모가 빨래를 빨다가 그만 막내아들 옷에 묻은 흰 토끼털과 선명하게 얼룩진 검붉은 피 자국을 보고서야 그 토끼를 죽인 범인이 족제비가 아니라 그 집 막내아들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했다. 피 뭍은 옷을 그대로 정씨 할아버지한테 보여드렸고 아들의 하얀 색 셔츠를 확인한 할아버지는 그 뒤부터 식모에게 큰 빚이라도 진 듯 어려운 일은 시키지도 않고 일하는 삯을 두 배까지 쳐 주며 식모의 입단속을 시켰고 식모는 아예 그 집 안주인이나 다름없었다고 하는 소문도 났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많아야 서른 채 가구가 살았던 작은 동네에 누구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았을 정도로 네 집 일이 내 집일이 되던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 해괴망측한 일이 감춰질 리가 없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온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그 날부터 사람들은 정씨 할아버지네 앞마당에 있던 커다란 은행나무와 밤나무를 탓했다고 했다. 본래 옛날 사람들은 집 안에 그렇게 큰 나무를 심으면 나무귀신이 그 집에 해코지를 한다는 미신을 어느 정도 불문율처럼 믿어왔던 상태였다. 그리고 호두나무, 밤나무, 은행나무처럼 열매의 껍질을 까기 어려운 과실수는 특히 집안에서 절대로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속설을 철석같은 믿음으로 여기며 만일 이것을 어기면 어떤 재앙이 꼭 들이 닥칠 것으로 알았고 꼭 집안 마당에 있지 않아도 고목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더라도 함부로 베어 냈다가는 나무 통티가 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누구도 선 뜻 톱질을 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동네 어른들이 하던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으로 나만의 이야기로 조합해서 전설처럼 여기고 믿어왔던 것이라 특히 신빙성이 있는 일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씨 할아버지네 막내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해 우물 위를 가로지르던 가장 튼튼한 은행나무 가지에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는 것은 완전한 사실이었고 그 이듬해 정월 초하루 날 둘째 아들이 화장실에서 농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던 것을 할아버지가 발견했지만 이미 뻣뻣하게 손발이 다 굳어진 상태라서 병원으로 옮겨 볼 이유도 없이 장사를 지내줬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제 남은 식구는 아직 장가를 못 든 큰 아들과 할아버지 내외였는데 그 분들마저 병으로 돌아가시게 되면서 큰 아들 혼자 남게 되었다가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전답과 현금을 술과 도박으로 탕진하여 말년에는 거지처럼 형편없이 살다가 결국엔 마을 입구 내가 그렇게도 저주하는 행이짓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다고 했었다. 그래서 정씨 할아버지 집은 그대로 대가 끊어지고 말았는데 아직도 그 집 마당에는 철마다 은행나무와 밤나무에서 열매가 열리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은 한 낱 미물에 불과한 존재이며 인생이란 무상한 것이라고 쓰여 있던 작은 오빠가 읽던 책 [소나기]에 써 있던 말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 전설이 깊은 은행나무 집에서 봉수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아무리 대나무처럼 싱겁고 허우대만 멀쩡하던 강봉수라도 이 모든 사건을 사실대로 말해줘서 빨리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았다. 온 종일 나를 따라다니던 해도 이미 서쪽 앞산에 반쯤 걸린 채 붉어진 눈매를 내려앉은 구름으로 닦는 눈치였지만 아마 그래도 해는 온종일 우리 머리 꼭대기에 서서 동네 사람들을 날카롭게 바라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버지, 은행나무집 청소를 도와 준거는 집 없는 사람 살 집 구해주신 거니까 좋은 일 한 거지?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오늘 당신이 고생 많이 했어.”

  “고생은 당신이 많이 했죠. 모처럼 광산 쉬는 날인데 빈 집 치우고 하느라 애썼어요. 그래도 동네 이장님이랑 사람들이 거드니까 쉽게 일이 끝난 것 같네요.”

  천정을 바라보며 누워있던 엄마가 갑자기 몸을 돌려 팔을 괴고 엎드리더니,

  “아니, 근데 수호 아버지! 그렇게 오래 빈집으로 있었는데도 구들이 아주 멀쩡 하더라니까요. 아궁이에 불이 붙자마자 한 오라기 연기도 없이 죄다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잘 지은 집은 맞긴 맞는 것 같았어요. 재채기 한번 안했다니까요. 근데 큰 방에 아직도 정씨 할아버지 내외 영정 사진이 그대로 걸려있다고 애영이네 엄마가 그러는데 아주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이제 봉수엄마는 신집에서 살 때보다 훨씬 더 편하게 잘 살겠죠?”

  “그래야지,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당신은 애도 아니고 무선 탐을 하는가. 어디 오늘 겁먹은 마누라 좀 안아줄까?”

  하면서 아버지 코 옆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있던 엄마를 끌어안는 것 같았다. 엄마는 아빠의 손이 간지러운지 아이처럼 까르르 숨죽여 웃는 소리를 냈고,

  “아이 당신도 참, 수인이 깨면은 어쩌려고요.” 했다. 

  사실 나는 그날 밤에 우리 집 천정에서 쥐들이 그날따라 운동회를 벌인 것인지 왔다갔다는 달음질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서 잠이 쉽게 들지 못했다. 엄마의 미세한 숨소리, 잊혀 질만하면 다시 신경을 건드리는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는 어느 새 한밤중의 내 단잠을 저 멀리 대문 밖으로 쫒아내 버렸고 나는 밤새도록 우물에서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뒤집어 쓴 소복 입은 처녀 귀신이 나오던 전설의 고향 한 장면이 자꾸만 떠올라서 전날 밤 장맛비 탓에 잠이 설쳤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서툰 잠으로 지루한 밤을 보내야만 했다.

   아침에 내다본 시내의 물은 이제 거의 평소의 수준까지 가라 앉아 있었고 동쪽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해를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을 걸었다.

  ‘너는 다 알고 있지? 우리 동네에서 너 만큼 오래 산 것은 없으니까. 우리 동네에서 일어났었던 일들을 전부다 알고 있겠지?’

  마치 비밀이라도 들킨 아이처럼 조각구름 뒤에 아주 잠깐 반쯤 몸을 숨겼다가 이내 곧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는 꼭 이렇게 대답해 주는 것 같았다. 

  ‘수인아! 다 괜찮아!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단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아마도 지난 일은 모두가 용서를 받았을 거란다. 아~! 그리고 이제 장마는 끝났단다. 신나는 여름을 보내렴! 아마도 가을이 될 무렵이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훨씬 많이 달라져 있을 거야. 난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있을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해의 대답이 마치 내가 듣고 싶은 말과 꼭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 입가에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곧 해는 구름 뒤를 완전하고도 멀리 벗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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