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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9. 2017

7. 이별


  "얘들아! 자 모여 보세요. 선생님 쳐다봐야지"

  선생님은 왼쪽 눈을 찡긋 감고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은빛 색깔이 도는 카메라의 작은 버튼을 누르셨다. ‘찰칵’ 소리와 함께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자! 한 번 더‘를 말씀 하셨고 모두는 사진 속에 찍힐 각자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최대한 귀엽고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예쁘게 나오고 싶은 욕심으로 손바닥을 컵 모양으로 하고 두 뺨을 흘리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감쌌다. 얼굴이 눌리지 않도록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있느라 숨을 한참이나 참고 있어야 했다. 이렇게 기념 촬영을 끝으로 가을 소풍날의 하루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지난 일요일, 나의 여덟 번째 생일날에는 나의 예상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나는 단 하루 사이에 봉수와 단짝이 되어 있었고 술 빵을 먹으러 왔던 우리 반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봉수의 등장을 보고 매우 놀란 듯 한 모습들이었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전날 행이짓거리 다리 아래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비밀 이야기들은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춘선이와의 우정을 뛰어넘을 만큼 친밀하고도 진지한 공통점으로 엮여 있었기 때문에 이제 봉수의 눈빛만 보아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 둘은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춘선이한테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우정이란 반드시 긴 시간을 함께 보내야 만이 꼭 진실함을 쌓는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봉수와 있었던 일들을 나와 단짝이던 춘선이 에게도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책 한 권을 생일 선물이라고 포장도 없이 들고 온 정현이가 봉수 다음으로 가장 놀라운 손님이었다. 반성문에 쓴 대로 물론 녀석의 잘못이 없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정현이의 코를 보자 괜시리 미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 뜻 정현이를 집 안으로 들였고 엄마가 부채 모양으로 잘라 놓으신 술 빵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골라 정현이에게 주었다. 

  “그냥 오지 왜 공책은 들고 왔어.”

  하고 미안한 생각을 말해 놓고 나는 거기에 무엇을 쓸 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곧 친구들한테 내 토끼장을 구경시켜 주고 우리 모두는 곧 집 앞의 냇가로 나갔다. 

  엄마는 나를 수영이 오빠를 낳고 몇 년이나 지난 뒤에서나 낳으셨다. 작은 오빠와 큰 오빠는 두 살 차이밖에는 나지 않아서 그 둘은 항상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을 종종 보아 왔고 가끔 그 모습이 우습기도 부럽게도 느껴졌던 날들이 많았다. 나는 작은 오빠와는 여섯 살 차이가 났다. 엄마와 아버지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는 스무 살 시절에 아이를 단 한명도 낳지 않고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여자로서 불행한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 사실은 아들 하나를 더 얻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서 나를 낳으셨다고 했다. 동네의 산파 할머니가 나를 받으시면서 ‘공주님이야’하는 이 한 마디에 한참이나 서운한 생각이 들어 ‘앵앵’울고 있던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었다고 했다. 그 때 아버지는 멀리 다른 지방으로 돈을 벌려 다니셨을 때라 내가 막 태어났을 때는 곁에 있지 못하셨고 며칠 뒤 집에 와서 내가 아들이 아닌 딸이어서 서운하냐는 엄마의 말에, 

 ‘우리 집은 딸이 있어야 짝이 맞지. 당신한테도 딸은 꼭 있어야 해. 사실 나는 아들보다 더 좋은걸.’ 

  하셨다고 했다. 그 말에 엄마는 당신 고집대로 아이를 낳았던 미안한 마음이 완전히 없어지셨고 내가 태어난 이후부터 아버지의 일거리가 많아지고 집안의 형편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고 했으니 나는 우리 집안의 복덩이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가족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자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를 막내로 둔 엄마의 말이 사실인지는 다 믿을 수 없었지만 나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엄마 젖을 빨면서 잠이 들었다고 했다. 거짓말이라고 말하면 엄마는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하루 종일 엄마 품에서 떨어져 지내게 했던 나를, 당시 뒷집 영길네 할머니께서 낮 동안 나를 잠깐 씩 봐 주셨다고 하셨으므로, 저녁 무렵 엄마를 향해 아장아장 걸어와 품에 안기면서 혀 짧은 말로 ‘엄마 쮸쮸‘하고 젖무덤에 동그라미보다 더 동그란 얼굴부터 파묻고는 어린 냥을 하는 모습에 온 종일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때문에 그런 나를 차마 떼놓지 못하셨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말은 나의 의심을 없애주었고 정말로 나란 아이는 다섯 살이 되도록 젖을 먹고 자란 아이라고 믿게 만들어 버렸다. 한편 그 믿음이 굳어지게 되면서 제 새끼들을 장에다 뺏기고도 한참이나 퉁퉁 불은 젖을 매달고 다녔던 덕구가 문득 너무나 불쌍했고 그 후부터 덕구를 볼 때마다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 컸었는지 모른다. 

  재문이와 정현이 녀석들은 물고기를 잡겠다며 어디에서 주워 온 것인지 모를 낡은 플라스틱 병에 반 쯤 물을 담아 작은 돌덩이들을 떠들러 가면서 물고기를 쫒았다. 춘선이와 나는 얇고 평평한 돌멩이들을 주워 모아 엄마 아빠 놀이를 했고 그 날 우리들은 그 냇가에서 나름대로 진지한 놀이에 빠져 있느라 반나절을 고스란히 바쳤다. 사실 우리들은 이렇게 꼭 내 생일이 아니었다고 해도 쉬는 날이 되면 누구하나 약속을 했던 것도 아니었으면서도 이렇듯 자연스럽게 냇가에 모여서 일요일을 꼬박 도둑맞기 일쑤였다. 춘선이는 아빠하고 나는 엄마하고 부드러운 돌도 빻아 밥도 짓고 찰흙도 파서 접시도 만들고 거기에 송편 떡도 빚어 담았다. 춘선이는 아마도 열손가락이 전부다 엄지손가락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솜씨가 없었다. 어쩌면 발로 주물러도 그보다는 잘 만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도무지 반달의 모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흙덩어리에 불과했는데도 우리는 그게 송편이라면서 냠냠냠 먹는 시늉까지 하면서 참 즐겁게도 놀았다.

  그랬다. 이 냇가, 이 냇물은 봄에는 두렁에 난 쑥을 뜯어다 엄마 저녁 밥상 쑥국 끓이라고 잘라다 주게 하고 여름에는 팬티만 입고 멱 감아도 그냥 시원하게 눈 감아 주었으며 가을에는 손에 잘 안 잡히는 물잠자리 몰려들게 해서 손에 잡힌 잠자리 날개 잘라 동네 암탉들 살찌워 주고 겨울이 되면 두꺼운 얼음 깔아주어 평평한 미끄럼틀이 되어 주기고 했다. 특히 겨울에는 각자의 포대 자루에 볏단을 넣어 푹신한 썰매를 만들어서 한 번씩 끌어주고 밀어주며 동네의 온 길을 눈썰매장으로 맨들맨들하게 다져 빙판으로 만들어 놓으면서 어른들 꾸지람도 전혀 무섭게 여기지 않던 내 동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줄 곧 그렇게 계절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한살 한살을 완성해 갔던 것이었다. 지금이 우리들의 가장 순수한 시절이고 결코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며 이제 두 번 다시는 맛 볼 수 없다는 것을 각각의 계절들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있던 우리들에게는 그날의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소풍 가방에 엄마가 넣어 준 삶은 계란을 덕구에게 나누어 줄 생각으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덕구는 이제 내 모습을 직접 보지 않고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나임을,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는 것임을 아는 듯 했다. 집 근처에 다다를수록 꼬리만 흔드는 것도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지는 덕구의 모습이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내는 ‘끙’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을에는 담배 집 아저씨네 일이 더 바빠진다. 잎담배를 잘 말려야 상품으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잘 말린 것을 한 장 한 장 개는 작업이 중요했으며 또한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엄마는 오늘도 잎담배를 개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가방을 마루에 내려놓고 비닐봉지에 담긴 삶은 계란을 꺼냈다. 계란이 식으면서 땀을 흘린 모양처럼 봉지 속은 축축하게 젖어 있고 계란도 중간 중간 껍질이 깨져 움푹 움푹 파여 있었다. 나는 정성스럽게 계란 껍데기를 까서 탱글탱글한 흰자를 반으로 가른다. 그러자 그 속에 마치 삶은 밤처럼 노란 노른자가 동그랗게 감춰져 있었다. 마치 노른자는 보물이고 그것을 흰자위가 아무도 모르도록 잘 감춰 놓았던 것을 내가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사료 그릇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처음부터 나의 행동을 재촉 한 번 없이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던 덕구는 선뜻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덕구야, 얼른 먹어. 배 고팠지? 하고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아주 조심스럽게 흰자부터 깨문다. 나는 나머지 한 개의 계란을 덕구에게 해 준 것처럼 조심스럽게 까내고 덕구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다 식은 찐 계란을 먹는다. 음식이 꼭 뜨거워야 다 그 맛이 더 좋아지는 건 아닌가 보다.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이렇게 덕구와 다정하게 나누어 먹는 기쁨에 더 좋은 맛이 느껴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오빠가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돌아왔다. 마치 무슨 일이 있는 사람처럼 내게 아는 체도 없이 그냥 제 방 사랑채로 들어가 버리고 꼼짝을 안 한다. 그동안 그렇게도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을 걱정시키더니 급기야는 무슨 사고라도 저지르고야 말았구나 생각했다. 엄마마저도 저녁밥도 안 먹고 어디를 좀 다녀오겠다고 하시며 밥상만 내어 주고는 집을 나가셨고 얼마 안 있어 작은 오빠 친구인 영철이 오빠네 엄마가 우리 집으로 와서 엄마와 함께 부엌에서 대화를 나누시고 계셨다. 두 분의 표정으로 보아 무엇인가 대단히 심각한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작은 오빠에게 물어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또 하필이면 아버지도 염사장 아저씨와 저녁밥을 드시고 온다고 아침에 말씀하시고 나가셨던 터라 저녁상엔 큰 오빠와 단 둘이 앉아 있었지만 내 나이만큼이나 차이가 났던 큰 오빠는 사실 작은 오빠에게 대하 듯 그렇게 마냥 어린애처럼 굴지 못하는 어떤 벽이 있는 것을 느껴왔었다. 그것은 아마도 큰 오빠가 공부를 잘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나는 큰 오빠의 수준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조금은 어려운 기분이 들었던 것이었다. 나도 소풍 때 남겨왔던 간식을 먹었던 터라 그다지 배가 고팠던 것은 아니었고 설령 배가 고팠다고 하더라도 평소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했던 내 성격으로 보더라도 엄마와 영철이 오빠네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엿 듣지 않고서는 참아낼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꽤 비싸다고 하던데 어떡하죠?”

  “그러게요. 어떻게 하다가 아이들이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뭐 영철이 말로는 수영이가 먼저 돌멩이를 그 쪽으로 몰아가서 그만 그렇게 된 거라고는 하는데 그야 뭐 애들이 같이 놀다가 그런 것이니 수영이 혼자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작은 오빠 혼자 책임이라고? 뭔가 대단한 사고를 치긴 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그 비싼 자동차 유리를 박살내 놨으니 반씩 나눠서 물어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지요.”

  어쩐지 엄마의 말을 대답 수준에서 끝이 나고 대화는 주도적으로 영철이 오빠네 엄마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의원 자동차를 그렇게 해 놨으니 애들 학교에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 사람이고. 만일에 애들이 일부러 그랬다고 그런 식으로 학교에 말하면 정학이라도 받을까봐 걱정이네요.”

  정학? 정학은 또 뭐지? 엄마는 더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그 아주머니와의 대화를 이어 나가셨고 중간 중간 고개도 끄덕이며 동의의 표시를 하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엿 들은 대화를 근거로 판단을 해보자면 작은 오빠가 영철이 오빠와 같이 멀리 돌 던지기 시합을 하면서 그게 잘못하여 정치 아저씨네 자동차 앞 유리에 떨어져 그만 박살이 났고 안 그래도 인정머리 없기로 소문이 나 있는 아저씨가 일부러 오빠가 차 유리를 깨 놓았다고 학교에 통보라도 한다 치면 오빠들은 그 잘못의 대가로 정학이라는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 전에 미리 아저씨한테 사과를 하면서 돈으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대화를 나누는 게 분명해 보였다. 

  엄마는 이불을 펴 주시곤 나에게 얼른 자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많이 늦으셨다. 엄마는 아버지가 오시는 지 보신다면서 따라 나오지 말고 얼른 자라고 재차 당부하면서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사랑채로 가시는 것 같은 발소리를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작은 오빠가 꼭 회초리를 맞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이내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고 집에 돌아오셨다. 술을 드신 것인지 내 이마를 쓰다듬는 손이 뜨겁고 코에서 나오는 숨에서 비릿한 냄새를 맡았다. 나는 그냥 눈을 계속 감고 있으면서 자는 척을 했다. 그러다 정말로 잠이 들어 버렸는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동쪽하늘에 높이 솟아 있었다. 아버지도 광산에 나가신 뒤였고 엄마는 내 얼굴을 닦아 주시려고 더운 물로 수건을 적셔서 방으로 들어오셨다.

  “엄마, 작은 오빠 학교에 갔어?”

  “응, 벌써 갔지.”

  “나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돼?”

  “우리 수인이 뭐가 궁금한데? 말해 봐 어서.”

  나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엄마에게 이어 말했다.

  “엄마, 그런데 나 어제 영철이 오빠네 아주머니랑 엄마랑 얘기하는  거들었어. 작은 오빠가 정치 아저씨네 자동차 유리 일부러 깨뜨린 거야?” 

  “아니야, 원래 사내 녀석들은 여자들보다 얌전하지 못해서 그렇게 한 번씩 생각하지 못했던 일도 저지를 때가 있는 거야. 그리고 작은 오빠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친구들끼리 놀다가 그런 거고.”

  “음....... 그런데 엄마. 정학이 뭐야?”

  엄마는 정학이라는 말을 듣자 선 뜻 대답하기를 멈춘 듯 하다 곧 작은 오빠는 실수로 그랬던 것이라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정학은 학생이 잘못했을 때 학교에서 주는 큰 벌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폭발했던 것인지 봉수가 자기는 사생아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고 그마저도 엄마는 다 알고 있을 것 같단 생각에 아예 다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나 더 궁금한 게 또 있는데........”

  “우리 수인이 얼굴 닦고 밥 먹고 얼른 학교 가야하는데 이러다 늦겠는 걸?” 하셨지만 곧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 줄 수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셨다.

  “엄마, 사생아는 뭐야?”

  “뭐라고? 사생아?”

  “응, 봉수가 자기는 사생아라고 했거든. 그런데 그 뜻을 잘 몰라서 뭐라고 대답을 못해줬어.”

  엄마는 아주 잠깐 생각에 잠기는가 싶다가 곧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씀하셨다.

  “너 그 얘기 다른 친구 누구한테 말 했니?”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엄마는 마치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사생아가 어떤 뜻인지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 뜻을 알고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교실 문 밖에서 낮은 창문을 통해 봉수가 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교실에 들어갈 자신이 없다. 문 밖에서 서 있는 나를 먼저 발견하고는 봉수가 손을 가볍게 들어주며 인사를 했다. 나는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더 밝게 웃는 표정을 보여주려고 억지로 크게 입을 벌리고 웃은 탓이었는지 입가에 경련이 나는 것만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봉수는 내게 우리 둘만의 아지트에 놀러가자고 했지만 나는 급한 일이 있다면서 그 제안을 거절하고 집으로 곧장 와 버렸다. 우리 둘만의 아지트란 바로 그 내가 그렇게도 저주했던 행이짓거리의 다리 아래였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생긴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으로 인해 내가 그렇게도 피하고만 싶던 장소가 이제는 나를 이끄는 곳으로 변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고 어느새 단짝 친구가 되어 버린 봉수가 이제는 정말로 내 운명에 커다란 의미가 되어서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수록 나도 내 고민들을 가장 먼저 봉수에게 털어 놓고 싶다는 욕구를 자주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젯밤의 작은 오빠의 이야기를 그 아지트에서 다 털어 놓고 상의를 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생각에 그냥 다음으로 미루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오늘은 엄마가 집에 계시는 날이라 집 생각이 더 간절했다. 

  저녁상이 나가고 수채 구멍에 구정물을 내다 버리는 엄마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평소 얼굴만 알고 있던 할머니가 마치 어떤 부탁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사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수호 엄마. 그러지 말고 내 말대로 해. 내가 값은 두 배로 쳐 줄게. 내가 오죽하면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사정을 하겠어. 늙은 개가 약에 쓰면 좋다고 하니까 나도 자식새끼 살려보려고 안 해볼 거 다 해봤는데 어쩌면 이게 마지막인가 싶기도 하고. 나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눈물만 나와. 동네에서 수호네 개하고 지현이네 개가 그래도 집 밥 잘 먹으면서 사람 손 크게 안타고 컸잖아. 내가 내일 다시 올 테니까 사람하나 살리는 셈 치고 내 말 좀 들어줘.”

  하루가 멀다 하고 평소에 우리 집에 출입도 없던 사람들이 엄마를 붙들고 이야기를 한다. 어제는 작은 오빠가 사고를 쳐서 돈을 물어줘야 한다며 사실은 잘못은 작은 오빠가 다 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한 짓이니 같이 나눠서 물어줘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 같다고 하시며 마치 엄마를 대단히 배려라도 하는 것 같은 못마땅한 아줌마의 일방적인 대화이고 오늘은 우리 덕구를 자기가 사 가겠다고 그것도 데려가서 잘 키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자기 아들 약에다 쓰려고 한다면서 그것도 돈도 두 배로 쳐 준다고 듣기 싫을 말만 골라 해 가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 할머니는 엄마를 찾아와서 사정을 했다. 광산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가 평소와 다름없이 작은 오빠를 대하시는 것으로 보아 엄마는 아직 아버지한테 말씀을 안 하신 모양이었다. 안 된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작은 오빠의 잘못으로 우리 덕구가 팔려가게 놔 둘 수는 없다. 나는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엄마는 평소대로 나를 깨우러 들어오셨고 아예 물수건과 아침상을 한꺼번에 들고 계셨다. 밤사이 운 탓에 눈이 부어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엄마 얼굴이 오늘 따라 유난히 동그랗다고 생각했다.

  “엄마, 오늘 담배 밭에 가?”

  “응, 가을이라서 일거리가 많아. 오늘은 좀 빨리 가봐야 하는데 우리 수인이 혼자 밥 먹고 학교에 갈 수 있지?”

  나는 그냥 말없이 두 눈을 비비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집을 나가셨다. 이제 집안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나와 덕구, 그리고 언제나 우리 둘의 행동을 제 집 안에서 소리 없이 지켜만 보던 말없는 관찰자들, 토끼만이 있을 뿐이다. 오늘 밤이 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나는 엄마가 내 준 밥도 먹지 않고 윗목의 책가방을 메고 방문을 나왔다. 마루에 앉으니 덕구는 나를 아는 체 하느라 바쁘고 나는 애써 그런 덕구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얼마동안 지나갔을까. 나는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일어나서 덕구한테로 다가가 앉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고무 같은 까만 코를 살짝 스쳤다. 눈물처럼 콧물이 맺힌 듯 축축했다. 덕구의 사료 그릇이 비어 있다. 나는 토끼장 옆에 있는 사료 포대에 담겨있던 바가지의 절반 쯤 담아다 그릇에 부어 주었다. 덕구는 나의 마음을 마치 알기라도 하 듯 사료를 먹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나를 향한 좋아하는 마음의 표시를 어떻게 해서든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만 보일 뿐이다. 나는 가방에 달린 주머니에서 내 주먹만 한 눈깔사탕을 꺼냈다. 손에 잡히는 돌멩이를 하나 들어 굵은 모래알처럼 잘게 부셔서 사료 위에다 양념처럼 뿌려 주었다. 그제야 덕구는 사탕 알갱이만 기다란 혀로 골라 먹는다. 자꾸만 입맛을 다시고 제 코와 입 언저리를 핥아 먹는 것이 꼭 어디를 가려고 단장하는 엄마 같다. 나는 결심이라도 한 듯 두 주먹을 세게 쥐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덕구의 목에 묶인 허리띠 같은 목줄을 풀었다. 덕구는 내가 하는 행동에는 언제나 착한 아이같이 말을 잘 들었다. 지금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가볍게 꼬리만 흔들고 있을 뿐이다.  

  목줄을 풀자 덕구의 목에 그 모양대로 동그랗게 털이 눌려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손으로 작은 오빠가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것처럼 눌린 털을 잘 펴 주었다. 

  “덕구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야 돼. 오늘 밤이 되면 엄마가 너를 이상한 할머니한테 돈을 두 배로 받고 팔지도 몰라. 작은 오빠가 사고를 쳐서 조금 큰돈이 필요한데 아직 아버지한테는 이야기 안했어. 회초리를 안 맞았거든. 그런데 있지. 너 지금 팔려 가면 나 영영 못 본다.”

  나는 갑자기 목이 메어와 말을 이어가질 못했다. 덕구는 마치 내 말이 너무 어렵다는 뜻으로 끙끙 작은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고인 눈물이 흘러내리기 전에 닦아 내고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덕구야, 너는 이제 자유야! 그동안 못 만났던 네 새끼들도 찾아가고 그리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리고 혹시 집에 돌아올 거라면 아주 오래 뒤에 이 사건이 끝나고 나서 오래 있다가 와. 너 집에 다시 찾아 올 수 있지?”

  덕구는 목줄을 풀어 놓았는데도 제 집 앞에서 꼼짝도 없이 왜 내가 학교를 가지 않고 자기에게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리둥절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다가는 덕구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이렇게 온 종일 집에서 내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무서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덕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해 버리고 말았다.  

  “야! 빨리 가라고. 너는 이제 늙어서 새끼도 못 낳고 우리 집에서 사료나 먹으면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니까 이제 필요 없어. 그러니까 빨리 나가. 어서 빨리 가라고.......”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려고 덕구에게 등을 돌리고 집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덕구야, 미안해. 나도 이 방법밖에는 생각이 안나. 얼른 도망가. 어서 빨리 우리 집에서 아주 멀리 도망가.......’ 속삭였다.

  아무 생각 없이 몇 분을 걸어갔을까. 덕구는 다행이 나를 따라 오지 않았다. 도저히 이런 기분으로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학교가 보이는 근처에서 친구들이 그네를 타고 시소를 타며 모습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반대편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도 신기하게 나는 동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차마 집으로 다시 가 볼 수는 없었다. 그냥 덕구는 평소대로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네는 텅 비어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이제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간 집들은 그제야 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동산에 오른 나는 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와 있었고 이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해에게 이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물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똑바로 들었지만 해를 볼 수는 없었다. 언제나 정면으로는 바라볼 수 없으면서 저녁때가 되어야 겨우 구름 뒤에 가려진 해의 희미한 모습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무언가 수수께끼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해를 바라보려고 하다가 다시 앞을 보니 일시적으로 눈이 멀기라도 한 듯 온 세상이 그저 하얗게만 보일 뿐이었다. 

  얼마동안을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도무지 이런 우울한 기분에서,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 집이 보이는 쪽으로 가서 보니 아! 덕구가 차고 있던 목줄만이 덩그러니 물 그릇 옆에 남아 있었다. 덕구가 집을 나갔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된 이후 처음으로 혼자서 집을 나갔다. 나는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덕구의 모습을 찾았지만 내 눈엔 그저 멈춰 있는 집들만 보일 뿐 우리 덕구는 이제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았다. 

  아! 아까 아침에 내가 퍼부었던 저주의 말들이 덕구의 마음을 상하게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제 덕구가 내 마음이 변한 줄 알고서 정말로 집을 떠난 것이다. 이제 덕구를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만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울었다. 얼마간을 계속 울기만 했다. 덕구를 집에서 떠나보내는 것이 덕구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이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원인은 작은 오빠한테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난여름부터 이상한 사건들로 몇 번씩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생각까지 들자 당장이라도 그 열쇠달린 일기장을 다 읽어내 버리고 엄마에게 아니 온 식구들에게 그 비밀을 폭로해서 모든 창피함을 안겨 주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무심하게 쏟아지는 가을볕은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고 이제는 머릿속과 마음속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일어나서 무엇이라도 해야만 기분이 풀릴 것 같았고 동산의 북쪽으로 가파르게 난 대나무 숲 쪽으로 걸어갔다. 키 작은 대나무 잎을 하나 잘라서 숟가락 모양으로 접어서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 한 마리를 그 속에 가두었다. 그리고 땅에 머리카락처럼 길게 나 있는 가느다란 풀잎들을 한데 모아 인형처럼 머리를 땋았다. 가운데 우뚝 선 참나무 중간 나나니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썩은 그 구멍 속에 분명히 벌집이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벌집은 없고 나무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끈끈한 액체가 흘러내리다 말고 굳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구멍 안쪽에 집게가 잘생긴 하늘소 몇 마리와 사슴벌레가 기어 다닌다.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들고 그 중에 가장 검고 윤이 나는 녀석을 땅으로 떨어뜨렸다. 양쪽 집개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잡고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문득 이 벌레들을 모조리 싹 다 잡아다가 정치 아저씨 집 앞에다 다 가져다 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면 곤충을 무서워하게 되므로 이 곤충으로 겁을 줘서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하자고 협박이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지난 밤 잠들지 못하는 엄마를 몰래 따라 나갔었다. 살며시 잠이 드는 줄 알았는데 엄마가 빠져나간 이불에 찬기가 느껴져서 잠이 깨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무로 된 부엌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지만 이미 잠들지 않고 있었던 내게 그 소리는 모든 정적을 깰 정도로 큰 소리로 들렸다. 내가 아장아장 걸음을 떼던 때부터 우리 집 앞문 기둥 옆에는 언제나 누렁이 덕구가 있었다. 멀리 우리 가족들 발소리만 들어도 우리 집 식구들인지 다른 집 사람인지 알아차리고 꼬리를 흔들거나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거나 할 수 있었고 특히 작은 오빠가 덕구의 영특함을 시험하기 위해 친구와 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면 오빠 친구한테 으르렁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오빠 편을 들어주기도 했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가 되면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질 때까지 뛰어와 뒷다리로만 서서는 나를 향해 두 앞발을 벌려 주고는 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나를 지켜주는 아버지의 모습과도 같이 보이기도 했었다. 엄마가 집에 없을 때는 덕구는 나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덕구가 딱 한번 엄마를 속상하게 했던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 일의 모든 내막을 알고 있었으므로 덕구의 잘못은 아니라고 그 때도 덕구의 편을 들어 주기도 했었다. 한참 아래쪽 집에 살고 있던 작은 오빠 친구였던 미영이 언니가 우리 집 앞을 지나면서 이유도 없이 덕구한테 돌을 던지고 있길래 마루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화가 나서 덕구한테 그러지 말라고 대들자 나보다 6살이나 많던 그 언니는 큰 소리로 나를 나무라면서 손가락질을 해대는 것이 아니던가. 개집에서 앉아있던 덕구는 쏜살같이 튀어나와 그 언니의 맨 종아리 살 속에 하얀 이빨을 박고 말았던 것이다. 순식간이라서 나도 말릴 틈이 없었고 설령 그럴만한 상황이 되었더라도 나는 팔짱끼고 모르는 척 했을 것이었다. 덕구는 그 언니 종아리에 선명하게 붉은 이빨자국을 냈고 순식간에 유난히 깊게 박힌 송곳니 자리에서는 금방 두개의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날 밤에 엄마는 장독대에서 한 밥그릇 된장을 퍼 다가 그 언니네 집에 가져다주었고 그날 이후로 그 온순하던 덕구는 성질 사나운 개로 잘못 평이 나서 우리 집 앞을 지나던 꼬마들은 아예 다른 길로 멀리 돌아가거나 나보고 개를 붙들고 있어달란 부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는 동네의 어떤 녀석도 감히 덕구를 괴롭힐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난했던 우리 집에 새끼 많아 낳아줘서 우리 엄마 살림살이 보태주었던 덕구, 다섯 식구가 남긴 잔반만 줘도 내가 마음속으로 셀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꼬리를 흔들며 그릇까지 깨끗하게 핥아주던 우리 덕구를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 당신도 아마 마음이 혼란스러우셨던 것이다. 엄마는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서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를 몰래 따라 나갔지만 그 우는 모습 나에게 들키지 않게 해 드리려고 나무로 된 그 사이에 몸을 감추고 한참을 그렇게 엄마를 바라보고 서서 있었고 달빛은 나무의 틈 사이를 지나쳐 엄마의 등에 하얀 줄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참았다.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우는 걸 들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눈썹 아래 있는 두 개의 우물은 계속 솟아나는 샘물을 더 이상 가둬두지 못하고 미세한 속눈썹의 떨림에도 그 진동을 이겨내지 못했고 양쪽으로 파인 좁은 모서리로 그 짠물을 줄 줄 줄 흘려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논의 보가 무너지듯 한번 넘쳐버린 샘물은 걷잡을 수 없는 물줄기가 되어 점점 빠르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는 입을 쭉 내밀어 짠물을 맛보면서 훌쩍거렸다. 정말로 덕구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고 이 길로 나는 덕구와의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별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이라 내 마음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일까. 나는 어젯밤 아무도 몰래 울었던 엄마의 모습에서 보았고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누구한테 혼이 나지 않더라도 다쳐서 피가 나지 않아도 그렇게 저절로 눈물이 날 수 있는 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나는 강하고 조숙한 아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일전에 엄마에게 그런 말씀을 했다고 하시면서 엄마는 내게 혼자 남아있게 했던 시간들이 많았던 것을 무척이나 미안해 하셨다. 정말로 내가 강한 아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상황에서도 스스로 지나친 감정에 빠져들지 않도록 정말로 덕구한테는 무슨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이 사건은 덕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므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해는 덕구가 다치는 일은 절대로 생기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만 싶었다. 어젯밤 울지 않으려고 얼마나 한참을 저항했는지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듯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 나는 끝내 울고 말았다. 학교에도 집에도 가지 않고 아무도 없는 텅 빈 동네에 홀로 남아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덕구를 떠나보내 놓고 참을 수 없는 이별의 슬픔을 맛보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나는 온 종일 동산에서 내려가지 않고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그래야 덕구 생각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참새들한테 돌을 던지기도, 개미집을 발로 밟아서 부셔 놓고 정신없이 도망가는 개미를 보면서 아주 잠깐 동안은 거기에 정신이 팔려있기도 했다. 도토리를 주워다 한 곳에 모와 놓고 다시 멀리 한 개씩 한 개씩 던져 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도 내 기분은 나아지질 않았다. 어차피 이 시간엔 학교에 가봤자 소용도 없었다. 이미 수업은 다 끝났을 테고 그렇다고 더욱 더 집에는 갈 수 없었다. 나는 가방을 머리에 배고 평평한 바위에 벌러덩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불솜처럼 새하얀 구름들이 한 곳에 몸을 포개고 모여 있다가 흩어져 버렸다가 이번엔 또 다시 아주 두껍게 똘똘 뭉쳐서 오늘따라 유난히도 비겁해 보이는 해를 가려버리기도 했다. 그런 구름이 아주 조금 내 마음에 위로가 되어 주었다. 떡갈나무 잎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아주 강렬했지만 부드럽게 공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똘똘 뭉친 구름이 해를 이겼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가방을 메고 동산에서 내려 왔다. 

  학교는 조용했다. 교실 문도 잠겨 있었다. 선생님도 집에 가신 모양이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그네가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는 하는 것을 보았다. 오늘은 바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그네가 혼자서 그냥 움직일 리가 없었다. 봉수의 존재를 직감했다. 분명히 내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을 알았을 테고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나는 먼저 일어나서 봉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봉수가 도움이 될지도 몰랐으니까. 

 “아! 깜짝이야. 놀랐잖아. 너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난 거니? 나는 네가 그네를 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에서 온 거야?”

 “그네 타고 있었던 거 맞아. 저기 학교 뒤.”

하고 말하면서 손으로 정치 아저씨네 집 뒷마당 담장을 가리켰다. 사실 나는 그 바로 옆이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는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학교를 그렇게 집처럼 드나들었는데도 거기에는 무궁화 꽃 울타리 말고는 뭐가 있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너 오늘 왜 학교에 안 왔어?”

  나는 갑자기 침울한 얼굴이 되어서 봉수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다 말해 버렸다. 

  “덕구가 정말로 집을 나갔어. 이제 덕구를 영영 못 보게 될 것 같아. 그리고 엄마가 알면........ 내가 덕구 목줄을 풀어준 걸 알면 나는 회초리를 맞을 지도 몰라. 봉수야! 나 무서워 죽겠어.”

  봉수는 생각을 하는 듯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그러고 흉터가 있는 쪽의 팔목을 잡아끌면서 나를 학교 뒤쪽으로 데려갔다. 무궁화꽃나무 와 그 집 담장 사이에는 놀랍도록 잘 깎여진 지우개 모양의 벽돌들이 담장 주위를 따라 고르게 놓여 있었다. 봉수와 나는 벽돌을 밟고 올라섰다. 이제까지 대문사이의 좁은 틈으로만 보였던 집의 내부가 조금 더 멀리까지 보였다. 뒷마당은 우리 집 마당만한 크기였다. 둥글넓적한 돌을 쌓아 놓고 그 사이를 시멘트로 채워서 둥그런 모양의 연단 같은 곳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제 각자 모자 모양의 뚜껑으로 몸을 닫은 채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그 바로 옆으로는 모양이 예쁜 감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 놓인 나무의자에는 처음 보는 할머니가 한 손에 지팡이를 쥔 채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봉수의 얼굴을 보면서 왜 나에게 이 광경을 보여주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물어보려는 순간 봉수가 제 손가락으로 내 입술에 ‘쉿’하는 표시를 해서 나는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할머니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 아마도 정치 아저씨의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오히려 그 주름들이 할머니의 얼굴을 더 부드럽게 꾸며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후에 할머니는 눈을 뜨시고 한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두 손에 의지하며 힘들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허리는 거의 접혀 있다 시피해서 앉아 있는 것에 비해 키가 더 커지지는 않았다. 갑자기 봉수는 목에 힘을 주고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저예요. 잠깐 들어가도 되요?”

  나는 내 귀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까보다 눈을 더 크고 동그랗게 뜨고 봉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고개를 겨우 들고 우리가 있는 쪽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라는 표시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꺼운 안경알 탓인지 할머니의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고 코의 중간에 걸려 있는 안경다리만 마치 얼굴에서 떨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봉수는 다시 내 팔목을 잡고 올라서 있던 돌계단에서 나를 끌어 내렸고 담장의 도로가 나 있는 쪽으로 데려갔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그 집으로 통하는 아주 작은 문이 하나 있었던 것이었다. 나무로 되어 있는 그 문은 우리 둘이 한꺼번에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좁고 그나마도 허리를 굽혀야 지나갈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 완전한 사각형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네 개의 모서리는 이미 낡고 삭아서 손으로 문지르면 금방이라도 재처럼 가루가 될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봉수의 말 때문인지 할머니는 일어서기를 포기하시고 여전히 계속 의자에 앉아 계셨고 우리는 그 옆 장독대가 앉은 연단과 같은 턱에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 오늘은 부탁이 있어요.”

  봉수는 이 말을 시작으로 해서 작은 오빠 사건을 다 말했다. 그리고 정치 아저씨는 할머니의 아들이고 엄마의 말은 세상에서 가장 무섭기도 하지만 어떤 일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놀랍고도 신비한 힘을 발휘하므로 이번 사건도 그 할머니에게 부탁을 한다면 잘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할머니를 찾아갔다고 말했다. 할머니와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냐는 나의 질문에는 지금은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다음에’ 라는 짧은 대답으로 봉수는 또 다른 궁금증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가벼운 어둠이 이불처럼 온 동네를 뒤 덮었다. 봉수와 나는 그때까지 학교의 그네에 앉아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했고 한편으로는 지금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을 나누었다. 

  “수인아, 집에 가 보자. 우리 둘이 마냥 여기에 있다고 해서 일이 해결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밤도 되었고 어른들이 걱정하실 것 같아. 우리 어머니도 그러실 거야. 사실은 낮에 네가 학교에 오지 않아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너 네 집에 갔었거든. 덕구가 없어진 것도 그때 알았어. 나는 네가 풀어준 줄도 모르고 그냥 덕구가 제 발로 목줄이 풀려서 나간 줄 알았거든. 우리 어머니한테는 너희 집에 다녀온다고 해서 특별한 걱정을 안 하실 테지만 문제는 너야. 일단 오늘은 집에 돌아가자.”

  봉수는 정말로 내 친구가 아니라 오빠와 같은 말만 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봉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봉수는 그런 나를 보고 아주 잠깐 시선을 피하는가 싶더니 곧 내 가방에 달린 손잡이를 들어 올려 나를 그네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 그리고 이 말은 나중에 하려고 했는데 지금 말해도 될 것 같아. 음......... 사실 나 아홉 살이야. 처음부터 말하기 부끄러워서 말 못했는데 너는 내 단짝 친구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지? 내가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내가 하도 작고 약해서 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으셨대. 그래서 그냥 그렇게 된 거야. 그러니까 엄연히 따져서는 내가 너보다 한 살이 많은 오빠인거나 같은 거야.”

  나는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나도 사실은 한 번씩 또래들보다 키도 크고 침착함과 조용함이 있던 봉수가 정말로 우리와 같은 동갑내기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봉수의 또 다른 고백을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고 말았다. 

  영길네 들어가는 집 입구에 서서 우리 집을 살펴보았다. 아버지와 나만 빼고 다른 가족들은 집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엔 또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담벼락에 기대어 조금 기다리려보기로 했다. 사실 아까 낮에는 덕구를 보내 놓고 정말로 숨을 잘 쉴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었다. 봉수를 만나고 온 지금은 아까처럼 그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던 나를 보고 정말로 내가 변덕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더 덕구한테는 미안해졌다.

  조용히 불 켜진 부엌으로 가서 솥 아래 아궁이에 잔 나뭇가지를 넣고 있는 엄마를 본다. 불빛이 번쩍거리면서 엄마의 얼굴을 붉고 노란 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평소보다 더 고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차마 내 입으로 내가 덕구를 풀어 주었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 괜찮아?”

  엄마가 나를 보신다. 그러다 곧 미소를 보여주신다. 나는 엄마의 미소에 온 걱정이 사라진 듯 했지만 곧 처음의 기분으로 되돌아 왔다. 

  “늦었네. 봉수랑 같이 놀았니? 그런데 수인아, 덕구가 집을 나가 버렸어.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다니. 영리한 개니까 집을 찾아 왔으면 좋겠지만........”

  엄마는 말끝을 흐렸다. 

  “엄마, 작은 오빠일은 어떻게 됐어?”

  나는 마치 덕구의 일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인 것처럼 작은 오빠의 일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괜찮아. 아침에 아버지한테 말씀드렸으니까 돈 가지고 오실거야. 아버지가 광산에서 제일 인정받는 사람인데 염사장이 그 정도도 못해 주겠니.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작은 오빠도 학교에서는 바른 학생이니까 별 일 없을 거야. 그나저나 덕구가 걱정이구나. 생전 이런 일 없더니 어떻게 목줄을 풀고 나간거야.”

  나는 그 순간 엄마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모든 잘못을 빌고 용서를 받고 싶었다. 엄마는 아예 처음부터 덕구를 팔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엄마를 오해했던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일을 너무 크게 저질러 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이 사건은 작은 오빠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더 큰 원인 제공자로 그 입장이 뒤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엄마와 아버지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누워 있었다. 

  “당신이 수고했어요. 염사장님이 선뜻 그렇게 해 주신다고 하니 고맙기도 하고요.”

  “무슨 말이야. 오히려 언제나 당신이 고생이 많지. 자식 키우면서 이런 일 저런 일 한 번도 없으면 재미도 없을 거야. 나는 그래도 기 안 죽고 당당한 수영이 녀석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는데 뭘. 저 녀석은 나중에 뭐가 되도 될 녀석이야.”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이제 코 고는 소리보다 정적이 더 큰 소음으로 까지 여기질 정도로 나는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완전히 귀에 익었다. 엄마도 가볍게 숨을 내쉰다. 모두들 잠이 들었다. 나는 또 잠이 들지 못한다. 너무나 힘들고 복잡했던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내가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걸 엄마와 아버지가 알게 되면 이번에야 말로 나는 정말로 무서운 회초리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아! 정말 왜 이렇게 걱정이라는 것은 끝도 없이 생기는 것일까. 정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기차처럼 한 사건이 잘 끝나는가 싶은데 이제는 또 다른 고민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멍! 멍!”

  “너 밤새도록 어디 갔다 왔니? 털에 이게 다 뭐야. 어딜 그렇게 쏘 다녔길래 이런 걸 다 붙여 온 거니. 응?”

  나는 눈이 번쩍 떠졌다. 이것은 분명히 엄마가 덕구를 나무라는 목소리였다. 나는 입고 자던 차림 그대로 나가 벗은 발로 마당까지 내려갔다. 밥그릇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먹고 있던 덕구한테로 달려가서 덕구의 목을 끌어안았다. 

  ‘덕구야,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너를 다시는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정말로 미칠 것 만 같았어. 덕구야, 이제 다시는 아무데도 가지마. 절대로 놔주지 않을 거야.’

  나는 덕구의 목을 끌어안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하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덕구 털을 반 이상 뒤덮고 있던 도둑가시를 어떻게 떼 줘야 할지 걱정하면서 그렇게 덕구가 좋으냐고 털이 무척 더렵혀졌으니 씻겨야겠다고 말씀하셨다.

  덕구는 그렇게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냥 잠시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덕구도 나처럼 내가 그리웠던 것인지 우리 집으로, 대문 옆 제 집으로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사람도 동물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시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쉽게 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봉수에게 한시라도 빨리 말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발을 적시는 아침 이슬도 해의 심술로 금방 사라져 버렸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아무 일도 아닌 것이었다는 듯 나에게 무심했던 해가 어쩌면 비겁해서 숨어버렸던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을 시험해 보려고 모르는 척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사람들이 왜 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여전히 내가 변덕스럽고 마냥 마음이 가벼운 작은 꼬마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침 햇살이 이슬에 젖은 내 신발을 아주 순식간에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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