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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9. 2017

9. 결국 아홉 살


  나는 일부러 자전거의 폐달을 힘차게 돌렸다. 뒷바퀴가 휘이 휘이 바람소리를 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돌아가는 것을 계속 지켜본다. 손을 놓고 있다가 바퀴의 휠이 보일 정도로 속도가 줄어들면 나는 다시 폐달을 잡고 있는 힘껏 돌렸다. 그러면 또 다시 바퀴는 더 요란한 바람소리를 내면서 공중에서 헛돌기만 했다. 휠 사이에 손을 넣어보고 싶은 잔인한 충동을 느끼면서도 다시 폐달을 잡고 있는 손을 힘껏 돌린다. 나는 커다란 안장이 달린 자전거를 갖고 놀기를 즐겼다. 그런 나를 보고서 작은 오빠는 내 키가 지금보다 10센티미터 더 크게 되면 꼭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미 휴지 조각처럼 쭈그러져 버린 자전거를 어떻게 다시 고쳐서 탈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거나 손으로 입 언저리를 만져가면서 모두 한 장소를 응시하고 있었다.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는 들렸지만 그 말이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단지 엄마가 작은 오빠를 품에 안고 하늘을 보았다가 엄마의 양 다리 사이에 누워 있는 작은 오빠를 어쩌지도 못하고 살살 만져 보았다하기를 반복하면서 목 놓아 울고 있는 모습만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아버지도 엄마 옆에서 알아보지 못할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곧 하얀색 병원차가 도착했다. 흰 옷을 입을 사람들이 사다리 모양으로 된 평평한 천위에 작은 오빠를 조심스럽게 옮겼다. 나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찢어져 버린 바지 사이로 보이던 흰 살과 검붉은 피가 한 데 뒤엉켜 있던 작은 오빠의 다리를. 병원차가 쏘는 빨간 불빛 탓인지 그 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병원차는 듣기 싫은 싸이렌 소리를 내면서 점점 작아졌고 거기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거의다가 흩어져 버렸다. 작은 오빠가 타고 있던 자전거는 앞바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조금 멀찌감치 풀 섶에 책 한권이 떨어져 있었다. 두꺼운 표지가 다소곳하게 펼쳐진 채로 반으로 정확하게 열려 있던 책은  마치 속살을 드러낸 것처럼 검은 글씨가 박힌 책장을 한 장씩 한 장씩 스치는 바람에 넘기고 있었다. 그건 마치 찢어진 바지 사이로 보이던 작은 오빠의 다리처럼 애처롭기까지 했다. 

  나는 그 책을 집어 들고 엄마가 작은 오빠를 품에 안고 있던 것처럼 품속에 안았다. 불과 잠깐 사이 동안에 그곳엔 정적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집에 가 있자고 했다. 애영이네 엄마다. 나는 귀머거리, 벙어리라도 된 아이처럼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아니 그냥 몸이 움직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수인아, 여기 있지 말고 아줌마 집에라도 가 있자. 응? 병원 갔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서 있자. 너까지 쓰러지면 어떡하니 엄마 아버지도 없고.”

  그랬다. 작은 오빠는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책을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만 자전거를 타다가 급하게 돌아가는 다리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만 다리 난간에 부딪쳐 아래로 떨어졌던 것이었다. 겨울이 다 끝나가면서 길이 얼어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2월의 끝은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 주기를 주저하며 갖은 성질을 부리면서 누구하나 걸려들기라도 하면 넘어뜨릴 작정으로 도로에 살얼음을 깔아 놓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행이짓거리는 나의 인상을 바꿔 놓지 못하고 언제나처럼 저주의 장소로써 마치 봉수와의 아지트라고 여기며 들락거렸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다시 악마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나는 병원차가 사라진 곳을 말없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 어느 새 봉수가 와 있었는지 그렇게 서 있던 나를 얼마나 지켜보았던 것인지 봉수가 내 손을 잡아 주었을 때는 내 손 만큼이나 봉수의 손가락도 차갑게 얼어 있었다. 

  “수인아. 어머니가 집으로 널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나는 고개를 돌리고 봉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미 서쪽 산은 2월의 해를 몽땅 삼켜버렸고 꼬리만이 남아있던 햇빛이 아련하게 봉수의 얼굴에 번져 있었다. 

  “봉수야, 작은 오빠가 피를 많이 흘렸어. 어떡하면 좋니......” 

  그 날 저녁 나는 봉수네 엄마를 사이에 두고 봉수가 먹고 자는 방에서 밤을 보냈다. 무슨 소식이라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끝내 그대로 날이 밝았다. 나는 아침상을 내오는 봉수 엄마를 보고 그냥 ‘고맙습니다.’하고 짧은 인사를 남기며 그 집을 나왔다. 곧장 이장 아저씨네 집으로 달려갔다. 나는 대문을 밀고 들어가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 우리 아버지한테 전화 왔었어요?”

  아저씨네 가족들은 이제 막 아침밥을 먹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응, 수인이 왔나. 걱정 많지? 안 그래도 내가 지금 막 밥 먹고 너한테로 가려던 참이었다.”

  나는 크게 한번 침을 삼키고 아저씨가 무슨 말이라고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 생각보다 다리를 크게 다친 모양이라 서울 큰 병원으로 옮긴다고 하더라. 다행이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수인이 너 며칠간 영길네 집에서 있어야 할 것 같다.”

  “크게 어떻게 다쳤대요? 서울 큰 병원 어디요?”

  “나도 거기까지는 모르고 우선은 아버지가 그렇다고만 하셨어. 또 연락이 오면 너한테 바로 알려 줄 테니 걱정 말고 있거라. 너 아침도 못 먹었지? 얼른 이리 들어와. 우리도 막 시작했으니까 같이 먹자.” 

  나는 아저씨한테 인사도 없이 그냥 집을 나왔다. 작은 오빠가 당장 어떻게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차오르는 걱정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대로 집으로 갔다. 텅 빈 집안을 다 차지하며 들어앉아 있던 정적을 덕구 혼자만이 캉캉 짖으며 쫒아내고 있었다. 

  토끼장 옆에 작은 오빠가 타던 자전거가 있다. 나는 누가 언제 그것을 가져다 놓았는지는 상관도 없이 자전거 가까이로 가서 쓰러져 있던 자전거 폐달을 잡고 돌려 보았다. 체인이 빠진 자전거는 반원도 돌아가지 못하고 멈춰 버렸다. 아무리 솜씨가 좋은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이 자전거는 절대로 고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밤 영길네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나를 자꾸만 어떻게 군불도 안 땐 방에서 잘 수 있겠느냐고 했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안방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불을 땐지 이 틀이나 지난 방은 얼음장처럼 식어 있었다. 나는 엄마가 하던 대로 부엌으로 나가 솥뚜껑을 열어 보았다. 물이 반쯤 차 있었다. 그리고 부뚜막 맞은편에 있던 나뭇가지를 꺾어 아궁에 속에 넣었다. 손아귀 힘만으로 안 되는 굵은 가지들은 무릎에 대고 구부리면 그래도 잘 부러졌다. 아궁이 입구를 막아 놓고 엄마가 불쏘시개로 쓰는 종이를 길게 쭈그려 한쪽에다 모아 놓고 성냥통을 찾아다가 칙칙 그어댔다. 

  첫 번째 성냥개비가 부러졌다. 두 번째 것도 그냥 부러졌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 보니까 어떻게 하면 성냥개비를 부러뜨리지 않고 불을 켤 수 있을지 조금은 감이 오는 것 같았다. 촤~하는 불꽃 소리와 함께 유황냄새가 코를 자극하면서 드디어 불이 붙었다. 나는 미리 구겨서 모아 놓은 종이 끝에 갖다 댔고 불은 금방내로 커졌다. 나뭇가지 맨 밑에 불이 붙은 종이 쏘시개를 넣고 입김을 불어 넣었다. 연기가 피어올라 눈이 따가웠다. 눈물이 나왔다. 슬픔에서 오는 눈물이 아니라 매운 연기 때문에 나는 눈물이었다. 종이를 몇 장 더 뜯어서 아궁이에 밀어 넣고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을 구경했다. 불똥이 튀는 것으로 보아 이제 불이 꺼질 염려는 없어 보였다. 바로 옆 아궁이에서 끝이 검게 그을린 숯이 묻어 있는 부지깽이를 꺼내 들고 불타오르는 나무 사이의 공간을 벌려 주기위해 여기저기를 쑤셨다. 그러자 불길은 아까보다 점점 세고 화려한 빛을 내며 강하게 타 올랐다. 이제는 연기도 나지 않았다. 

  불 앞에 앉아 있는데도 등허리가 계속 서늘했다. 이렇게 나는 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이렇게 있었던 것이었다. 아궁이 앞에 앉아 있자니 등은 계속 시려왔지만 반대로 얼굴은 마치 계속 입김을 불어넣는 풍선처럼 팽팽하게 늘어나서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굴이 늘어지고 불꽃을 바라보는 시야가 흐려지면서 꽁꽁 묶여 있던 긴장감도 풀리는 것 같았다. 결국 그러고 나서야 배가 고픈 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찬장 문을 열고 설탕 봉지를 꺼냈다. 가마솥 뚜껑을 열어 국그릇에 물을 반쯤 떠서 설탕을 부었다. 미적지근해진 물속에서 햐얀 설탕이 눈 녹듯 녹아 버렸다. 한 모금 마셔 보았다. 단 맛이 덜한 것 같아 설탕을 조금 더 붓고 처음처럼 잘 녹지 않고 바닥에 투명하게 깔린 설탕덩어리를 녹이기 위해 숟가락으로 휘 저었다. 나는 설탕물을 덕구 밥그릇에 쏟아 주고 부엌으로 들어와서 내가 먹을 설탕물을 탔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가서 이불이 깔린 아랫목에 손을 넣어 보았다. 여전히 냉골이었다. 다시 아궁이에 나뭇가지들을 집어넣고 불길이 더 활활 타오르게 했다. 솥 안에서 수증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행주로 솥뚜껑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반쯤 밀어 놓은 뒤 함박에 물을 떠다가 솥에 부었다. 그러자 뽀얀 수증기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부엌 안을 온통 뿌옇게 흐려 놓았다. 안개 속에 갇혀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2,3초간을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아궁이에다 나뭇가지를 쑤셔 넣었다. 얼마나 그렇게 아궁이에 대고 불을 질러 댔는지도 모르는 사이 불 앞에 앉은 내 몸이 녹아내리는 줄도 모른 채 그저 그렇게 시간만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마치 내 자신이 엄마로 변신한 것처럼 엄마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 이 불 밑에 손을 넣어 보았다. 구들이 난 길 사이로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나는 또 다시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에다 나뭇가지를 집어넣었다. 그것은 이제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는 놀이와도 같이 계속 반복될 것처럼 보였다. 나무가 타면서 내는 소리도 이제는 아련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속삭임으로 들렸다.

  이불을 깔고 누워 있었지만 작은 오빠와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올 봄 입학하게 될 고등학교 기숙사에 이미 들어가 있던 큰 오빠 생각에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무엇보다 불처럼 뜨거워진 방바닥 때문에 계속 몸을 바꿔 눕느라 온 방 구석구석을 굴러다녔고 한 여름에나 흘릴 법한 땀을 쏟은 것처럼 등허리가 다 젖은 채로 희미한 백촉다마의 불빛만을 응시하며 누워 있었다. 이따금씩 천정을 뛰어다니는 생쥐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고 있었다.

  아침은 느리게 왔다.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쉽게 오지 않는 다고 말했던 작은 오빠의 말이 떠오르자 나는 얼른 이장 아저씨네 집을 찾아가서 밤새 또 다른 연락이 있었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더 간절해졌다. 설탕물 말고는 어제 하루를 꼬박 굶은 배가 누워 있는 등에 맞닿아 텅빈 바가지같이 아래로 푹 꺼져 있었다. 어제는 온 종일 굶었어도 배가 고픈 줄 몰랐는데 지금은 뱃속에서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내장이 뒤집히는 역겨움이 느껴졌다. 나는 고구마 자루에서 내 팔뚝만한 고구마를 꺼내다 수돗가로 나갔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미 깨어 있던 덕구가 나를 아는 체 하느라 바빴다. 수돗물에 고구마 흙을 씻어내고 부엌으로 갔다. 고구마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식칼을 꺼내 정확하게 네 등분으로 나누었다. 토끼들은 생고구마를 아주 잘 먹었지만 덕구는 냄새만 맡아보더니 모르는 체 했다. 그래서 덕구한테는 사료를 한 바가지 떠다가 밥그릇에 부어 주었다. 

  온 몸에 한기를 느낀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불속에 배를 깔고 누웠다. 생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텁텁한 달콤한 맛이 내 입안을 청소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있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덕구가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캉캉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어 보았다. 마당에 봉수가 와 있었다.

  “수인아, 어머니가 너 데리고 오라고 하셔.”

  나는 이른 아침 추위를 마다않고 어머니의 심부름을 나온 봉수가 정말로 고마웠지만 조금 있다가 이장 아저씨네 집에 가봐야 했었기 때문에 고맙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봉수는 어머니께서 나를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내가 방문을 열고 나 올 때까지 문 밖에 그렇게 서 있었다. 나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고집이 세다고 말했지만 봉수도 나만큼은 고집이 센 아이라고 생각했다. 

  “나, 좀 있다 이장 아저씨네 가 봐야 돼. 그리고 바로 너희 집으로 갈게. 정말이야.”

  이렇게 말하는 데도 봉수는 부동이다. 이번엔 그냥 내가 잠바를 걸쳐 입고 나와서 신발을 신었다. 

  “못 믿겠으면 지금 나랑 같이 이장 아저씨네로 가면 되잖아.”

  봉수는 정말로 내가 못 미더웠는지 이장 아저씨네 집 앞까지 따라왔다. 걷는 내내 우리는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 저 왔어요. 이수인.”

  “안 그래도 너한테 지금 가보려던 참이었는데 쪼그만 한 것이 부지런도 하구나. 오늘 아버지가 서울 서 내려오신다니까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꼭 오신다고 했으니까.”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서는 내게 아침을 먹고 가라고 했지만 나는 대문 밖에서 누구보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봉수한테로 빨리 가서 이 소식을 알려 주고 싶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봉수야! 아버지가 오늘 서울에서 오신대. 전화를 하셨대 그렇게.”

  봉수는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웃지는 않았다. 봉수네 엄마는 계란프라이까지 해서 아침상을 차려 오셨다. 정말로 배가 고팠으므로 나는 눈치도 없이 밥 한 톨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집에 돌아온 나는 방바닥이 식어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어제처럼 성냥개비를 부러뜨리지도 따가운 연기를 피우지도 않았다. 하루사이에 불 때는 솜씨가 는 것 같았다. 나는 봉수와 같이 나란히 앉아서 불꽃이 나뭇가지를 금세 삼켜버리면서 토해내 버린 불길로 어두운 아궁이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엄마가 없는 집에는 정말로 할 일이 많았다. 어떻게 이 많은 집안 일 들을 해 가면서 남의 집 품까지 팔고 사셨는지 새삼 엄마의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고 못하는 게 없는 마법사라고 생각했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나는 온 종일 조바심이 나서 얼마나 여기저기를 쏘다녔던지 내 신발에는 질척질척하게 녹고 있던 온 동네의 흙이 다 발라져 있었다. 집 마당에 들어서는 아버지의 그늘진 얼굴에서 지난 이틀 밤 동안의 일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들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었고 나는 마루에 앉아 있다가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서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아버지는 나를 불끈 안아 올려 얼굴을 맞대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 주셨지만 수염이 자라나 있던 아버지의 턱을 보고 세수는커녕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아버지의 모습에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되었다.

  “아버지, 작은 오빠는? 엄마는? 작은 오빠는 어쩌고?”

  “수인아, 작은 오빠가 다리를 많이 다쳤다.” 

고 외마디를 하신 후 짧지만 굵은 한 숨을 내 쉬셨다. 

  “어떻게? 어떻게 많이 다쳤어? 응? 빨리 얘기해 봐.”

  아버지는 생각에 잠기는가 싶다가 곧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서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작은 오빠 한 쪽 다리를 잘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정말로 다시 건강해 질 수 있는 건지를........” 

  아버지의 말속에는 차마 말 할 수 없었던 것을 마침내 고백이라도 하고 만 사람처럼 정말로 그 것이 사실로 되어 버릴 것 같은 두려운 심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숨소리와 표정과 몸짓에서 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날이 밝자마자 볼 일이 있다면서 나가셨고 점심때가 한참 지나서야 들어오셨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가방에 몇 가지 물건을 챙기는 것만 보았을 뿐 내가 지금 어디로 가야만 하는 상황인지를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멀리 동네를 벗어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어른들한테 말하는 것처럼 모든 상황을 자세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기를 바랐지만 작은 오빠가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하게 될 동안 아주 잠깐 난생 처음 보는 이 낯선 집에서 보름 동안을 지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고 나는 그것이 어쩌면 다가올 불행의 암시라도 되는 것처럼 몸은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고 아버지의 말에 대답을 하는 내내 마치 울먹이고 있는 아이처럼 똑바로 말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그 낯선 곳에 나를 남겨두고 길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모습을 감추는 순간 내 마음속에는 쾅하고 커다란 철문이 내려앉은 것 같았고 그 순간 그 장소는 마치 밀폐된 공간이라도 된 것처럼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내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구경을 하고 있던 엄마의 나이 정도로 보이는 깡마른 아줌마가 아버지의 이복동생, 바로 말해 나의 이복 고모라고 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은 얼굴, 지난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유독 혼자서만 울고 있던 바로 그 여자였다. 

  “얘, 너 이름이 뭐라고 했니?”

  “이 수 인 이요.”

  라고 사나운 선생님처럼 쏘아붙이는 고모의 팔짱 언저리를 바라보면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문 양쪽으로 쭉 이어진 담벼락은 내 키를 몇 배나 훌쩍 넘어버릴 정도로 높았고 빗장이 촘촘하게 세워진 쇠로 된 문은 아버지가 돌아서던 모퉁이에 서 있던 전봇대처럼 키가 큰 등 아래에서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계단이 보였다. 그 것이 몇 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대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커다랗게 네모진 창문으로 미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집 건물 앞까지 다다랐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이상한 무늬로 장식되어 있던 커다란 철문이었다. 손잡이로 보이는 쇠막대기를 잡아당기고 고모는 나를 집 안으로 들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 여자아이의 동생들로 보이는 남자 아이 둘은 나를 마치 처음 본 신기한 동물이라도 만난 것 같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 아이는 내게 있던 관심이 이제 다 풀렸다는 듯이 손에 들고 있던 봉제 인형의 머리를 계속 빗겨주고 있었고 남자 아이 둘은 이불을 씌어 놓은 것과도 비슷한 의자에 앉아서 갖고 있던 장난감을 이제 서로 바꿔서 놀자면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할머니, 얘 며칠간 할머니 방에서 재워요!”

  라고 말을 던져놓고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마치 나에게 꼭 들으라고 하는 것처럼 목소리는 그 안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것 같았다.

  ‘생전 연락도 한 번 없다가 꼭 이렇게 애를 짐짝 맡겨 놓는 것처럼 놓고 가는 경우가 어디 있어. 나 원 참. 옛날에도 그렇게 제 멋대로 이더니 나이가 들어도 변하질 않았어.’

  그리고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집 안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을 기준으로 양쪽 옆에 남자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고 있던 편안해 보이는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가운데로 무릎 정도 높이의 탁자가 있었다. 그리고 커튼이 달린 창가 옆으로는 주말연속극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니스칠이 두껍게 되어 있던 검은 색 피아노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집 안에 있던 물건들은 거의 처음으로 보는 것으로 신기한 것들이 많이 있었으며 그것들은 고급스럽고 비싸 보였기 때문에 나는 걸음을 걷는 것조차 매우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부엌으로 보이는 곳에 아까 고모가 할머니라고 불렀던 그 장본인으로 보이는 키가 작은 할머니가 내게 이리로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는 것이 보였다. 이 집안에서 처음으로 나에게 인사를 해 준 사람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계신 쪽으로 갔고 할머니는 탁자 옆에 있던 의자를 살짝 돌려놓고서 나를 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네 아버지 어릴 때를 쏙 닮았구나. 아주 영리하게 생겼는걸? 그래 저녁은 먹었니?”

  나는 저녁밥을 먹지 못했지만 왠지 먹었다고 대답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얼굴은 코끝에서부터 입가의 양쪽으로 둥그렇게 패어 있던 주름살 탓이었는지 계속 미소를 짓고 계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서 아무도 모르는 이 낯선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다. 

  “이리 오렴.”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부엌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통로처럼 생긴 복도를 지나서 등이 꺼져 있어서인지 좀 더 어둑한 곳으로 몇 발자국 걸어갔고 둥근 손잡이가 달린 네모가 반듯한 문을 열고 주시고는 이제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다는 듯 눈짓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방안은 아까 처음 보았던 곳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단순해 보였다. 마름모 모양의 무늬가 그려진 누런빛의 장판이 깔려 있고 작은 창 아래 두 칸짜리의 작은 서랍 위로 이불이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그리고 작은 오빠의 것과 매우 비슷하게 보이는 나무로 된 앉은뱅이책상 위에는 검은색 가죽으로 표지가 쌓여 있고 금박으로 글자가 선명하게 찍힌 책 몇 권이 꽂혀있었다. 그 옆에는 두건을 둘러쓰고 양 손을 모은 채 기도를 하는 모습의 어여쁜 여자 석고 인형이 서 있었다. 

  “이름이 뭐니? 성은 당연히 이씨가 분명할 테니 이름만 말해 보렴.”

  할머니의 말투에서는 고모의 말과 달리 품위가 있고 점잖으며 기품이 느껴졌다. 

  “수인이요. 이수인.”

  “얼굴만큼 이름도 참 예쁘구나. 그래 위에 오빠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할머니한테도 말해 줄 수 있겠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로 친 할머니한테서만이 느낄 수 있는 자상함과 포근함을 느끼는 것만 같았고 나는 아무런 저항의 감정도 없이 오빠들 이야기와 엄마의 얘기, 그리고 덕구와 토끼의 이야기까지 다 말 해 주었다. 이 집을 들어설 때 처음의 인상과는 달리 할머니와의 만남으로 나는 이 낯선 곳에서 하루하루씩 적응해 가고 있었지만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엄마를 보지 못하였고 작은 오빠에 대한 걱정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서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덕구가 나를 얼마나 반겨줄까. 내 얼굴을 얼마나 핥아주며 좋아할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누워서 잠이 들었다. 내 베개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옷감을 도톰하게 네모로 접어서 그것을 베개로 쓰라고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고 잠들기 전까지 많은 옛날이야기까지 들려 주셨다. 할머니는 언제나 잠들기 전에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석고 인형같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셨다. 어느 날 밤, 잠들지 못하는 나를 두고 할머니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친할아버지가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오셨던 사건과도 맞먹을 만한 대단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친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자 할아버지는 곧 새 엄마를 들이면서 당시 고아원에서 막 나올 나이가 됐던 지금의 할머니를 식모로 아니 아버지의 유모로 들이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래도 정말로 믿고 싶었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정말로 나의 친 할머니처럼 매우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셨기 때문이었다. 

  그 집에서 지낸 동안 고모부로 보이는 사람과는 걸려 있던 액자 속에서만 보았을 뿐 실제로 마주치지는 못했다. 언제나 회사일로 바쁘다는 이야기만 엿 들었을 뿐 이었으므로 이 집에 사는 아이들조차도 제 아버지를 자주 만나고 살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으로 그 것은 모든 것이 풍족하고 모자랄 것이 없어 보였던 아이들이게 약간의 연민이 들게 하는 사실이었다. 여자아이는 화가 나면 발을 쿵쿵 거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제 인형들을 모두 엉망으로 어질러 놓았고 남자 아이들은 무척 장난이 심했는데 물론 내게도 그렇게 대했지만 나는 별달리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상대라고 여겨지지 않았었기에 그냥 참고 지나칠 수밖에는 없었다.  

  할머니가 온 종일 음식을 하시느라 바빠 보였다. 내가 무슨 날이냐고 묻자 이 집 여자아이의 생일날이라고 했다. 온 종일 집 안에는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고 나는 몇 번씩 침을 삼켰지만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언제나 맛있는 것을 할머니 방에서 먹을 수 있었으므로 오늘도 꼭 그렇게 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신경질적으로 양 미간에 주름살을 만들어가면서 날카롭게 말하는 고모의 눈치를 봐야 했으므로 이 집에서는 정말로 숨소리조차도 크게 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오늘이라도 좀 일찍 들어올 수 없어요? 매일 있는 날도 아니고 일 년에 단 하루뿐인데. 그리고 아이들이 얼마나 아빠를 기다리는데 줄 알아요? 알았어요. 어쨌든 당신도 오늘 만큼은 다른 약속 잡지 말고 일 끝나는 대로 들어와요.”

  이 대화는 고모가 고모부와 나누는 전화통화 내용이었다. 거실에 넓은 상이 펴지고 보기만 해도 침을 참을 수가 없는 음식들이 차려졌다. 그 한 가운데 장식이 화려한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초는 아홉 개가 꽂혔다. 여자애는 나보다 한 살이 많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여자 아이는 양 갈래로 머리를 묶고 봉수가 내게 주었던 종이인형 속 공주님 같은 드레스를 입고서 케이크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자 아이들도 제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옆에 고모가 앉았다. 고모는 웃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잔뜩 화가 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 아빠 언제와? 몇 시에 온대? 오늘 꼭 일찍 들어온다고 했지?” 여자 아이가 고모를 재촉했다.

  촛불만 켜지 않은 채 모든 준비는 다 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부엌 의자에 앉아서 긴장감마저 감도는 집 안을 살피며 더욱 더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할머니, 성냥 가져와요. 그냥 우리끼리 해야 될 것 같아요.”

할머니는 부엌의 수많은 서랍장에서 정확히 한 곳을 열어 성냥갑을 들고 거실로 나가셨고 아홉 개의 초에 일일이 불을 붙이고 계셨다. 그리고 언제나 나는 그 집 식사 시간에 한 상을 앉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오늘도 내 자리는 없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한 칸, 두 칸, 세 칸 세어가면서 천천히 내려가는 사이 집 안에서는 어렴풋하게 생일 축하 노랫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창살로 된 대문 앞에 서서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자동차 불빛을 구경하고 서 있었다. 언제나 밖에서 문을 열어 줘야만 빠져나갈 수 있는 철망에 갇혀 있는 토끼가 되어버린 것 같았고 언제나 마음속에서는 가족들 생각이 떠나지 않았으므로 또 다시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자동차 한 대가 집 앞 근처에 세워졌고 차에서 쏘는 불빛에 길바닥은 금가루라도 뿌려 놓은 듯 윤이 나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이나 지나도 불빛이 꺼지지 않자 나는 창살 틈으로 혹시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온 것인가 하는 마음에 대문 빗장을 살짝 열어 보았다. 불 켜진 차 안에서 운전석에 앉아 있던 여자에게 뽀뽀를 하고 내리는 남자를 보고야 말았다. 자동차는 아버지가 나를 여기다 데려다 놓고 사라졌던 저 골목길 모퉁이를 끝까지 비춰주던 가로등 밑에 서 있었으므로 나는 아주 또렷하게 남자를 알아 볼 수가 있었다. 바로 이 집 주인, 고모의 남편, 고모부였던 것이었다. 한 손에 커다란 곰 인형을 안고 남은 손으로는 낯선 여자에게 뽀뽀의 신호를 보내고 있던 이 남자는 오늘 생일상에 꼭 와 있기를 그렇게도 고대하던 여자 아이의 아버지였던 것이었다. 나는 작은 오빠의 일기장에서 제인 에어의 사진을 보았던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고 본능적으로 계단 뒤 그늘 속으로 몸을 숨겼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몸을 일으키고 가장 낮은 계단에 앉았다. 

  ‘한 집에 살고 있는 가족이 어떻게 저런 빤한 거짓말로 속일 수 있을까.’

  아버지도 나를 속였지만,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말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지만 나는 속은 기분이 들었으므로, 지금 이 경우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모든 사실을 알고 났을 때는 그다지 큰 상처는 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고모부의 행동을 여자 아이가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장시간 집안에서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또 다른 의심을 사게 되는 일로 붉어지게 될까봐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고양이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지만 문 끝에 달린 작은 종이 얄미운 소리를 내고 있었으므로 순간 상 앞에 있던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고야 말았다. 나는 아주 잠깐 뿐이었지만 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이 그렇게 잔인한 행동인지를 알 것만 같았다. 

  고모부가 나에게 눈을 흘기는 것 같은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고모부는 나를 ‘얘’라고 부르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만 알았다. 천천히 등을 돌리고 고모부를 향해 조용하게 인사를 하였고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네가 수인이니? 너도 여기 와서 같이 앉아라.”

  고모가 고모부에게 눈을 흘기는 것을 보고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어른이 하는 말을 끝까지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상 가장자리의 맨 끝 모서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는 몇 살이니?”

  “여덟 살이에요.”

  “그럼 우리 윤아 보다 한 살 아래구나.”

  나는 여자 아이의 신상에 대한 거의 대부분을 내가 그 집에 간 뒤 거의 보름이나 다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참. 너 있지. 내일 너희 아버지가 널 데리러 오신다고 했으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라.”

  어떤 말이든 언제나 나를 쏘아 보면서 말을 하였으므로 고모 눈에는 내가 가시 같은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고모부는 내 앞에 케이크 한 조각을 밀어 주시고는 ‘많이 먹어라’는 형식적인 인사말도 덧 붙였다. 나는 그 케이크를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지만 할머니는 포크를 손에 쥐어 주면서 눈짓으로 먹어도 되다고 하고 말씀하시고 계셨기 때문에 크림이 접시에 전혀 남아 있지 않도록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형, 쟤는 케이크도 처음 먹어보는 가봐. 저게 뭐야! 크림이랑 빵이랑 같이 섞어서 먹어야 맛있는데 그걸 그냥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먹잖아.” 

  하고 말하면서 자기네 남매들끼리 어깨가 들썩거리도록 웃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내 눈엔 금방내로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 감정이란 부끄러움과 창피함이라는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었으며 지금까지의 내 생에 처음 맛보는 수치심과도 같은 상처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콧물이 나는 것을 참는 아이처럼 코를 훌쩍거렸다. 그래도 아버지가 내일 나를 데리러 오신다고 했으니까 이제 오늘 밤만 참으면 될 것이었다.    

  수요일 새벽, 전날 잠들기 전 할머니는 새벽기도를 하시러 성당에 가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나 혼자서만 고요한 새벽잠에 빠져 있던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차가운 물이 내가 누워 있던 다리 사이로 쏟아졌다. 나는 깜짝 놀랐고 여자 아이의 남동생들은 기어이 나를 수렁에 빠트릴만한 일을 저질러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 사건은 마치 오랫동안 계획하고 연습했던 것처럼 아주 정확하고 순식간에 끝나버렸고 나는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몰라 제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분명히 내 바지는 젖어 있었고 내가 누워 있던 자리도 둥그렇게 물 자국이 나 있었으므로 그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히 이불에 오줌을 싼 것이었다. 

  작은 창을 뚫고 미세한 새벽빛이 들어왔다. 새벽기도를 마친 할머니가 들어오시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새벽하늘 작은 별처럼 눈 깜짝할 시간만이 흘러갔을 뿐이었다. 그날 아침 남자 아이들은 고모에게 내가 이불에 오줌을 싸서 할머니가 이불빨래를 하는 것을 보았다고 마치 사실을 본 것처럼 이야기 하였고 나는 하루아침에 오줌도 못 가리는 모자란 여덟 살 아이가 되어 버렸다. 나는 그래도 울지 않았다. 드디어 아버지가 오시기로 한 날이 되었으므로 이제는 그 어떤 수모라도 당해낼 수 있을 것 만 같았고 그 사실보다 아무것도 나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모는 언제나 누구라도 혼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말했는데 나는 그런 고모를 살피느라 눈을 피하는 것이 언제나 가장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내 결점을 찾아내기라도 한 사람처럼 당당히 나를 혼내던 고모의 얼굴이 왠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전 날 밤에 보았던 고모부의 모습 때문이었으리라. 아무리 좋은 집에 살더라도 마음이 편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오두막 우리 집이 그야말로 천국이란 것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하여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이불에 오줌을 싼 것이 아니라고 차마 이야기 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조용히 내 가방을 챙기면서 무릎 앞으로 나를 가까이 앉혔다.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시고는 마치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미소까지 지어 주면서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그리고는 작은 서랍 속에서 아기 모양의 하얀 석고 인형을 손수건에 잘 싸서 말아 가방에 넣어 주셨다. 아기 천사라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도 나처럼 참을성이 참 많은 아이였다고 했다. 옆구리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러 옷이 젖을 정도가 되었어도 할머니가 먼저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알리지도 않고 아프다는 말 한마디를 안했을 정도였다고 했으니까. 그리고는 내게 참을성이 많은 사람은 영리한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오후가 한 참이나 지나서야 아버지는 나를 데리어 오셨다. 불과 보름 사이 아버지의 얼굴은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상해 있었고 대문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온 고모는 끝내 그 말이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했던 것인지 내가 간밤에 이불에 오줌을 쌌다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지만 아버지가 그 말을 믿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그 집에서 지내는 보름 동안 비열하고 잔인하고 결코 내가 바로잡을 수 없는 불공평한 순간들을 많이 경험하면서 그곳에서의 2주일간의 시간은 마치 내가 다섯 살을 한꺼번에 먹은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고 그 시간의 간극이란 너무나도 무섭고 쓸쓸하고 외로운 날들이라서 정말로 견뎌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할머니에게 아버지를 만나지 않겠느냐고 물어 보았지만 ‘이 다음에’라는 막연한 희망만을 안겨주며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고 버스의 창문은 마치 거울처럼 아버지와 나를 그대로 비춰주고 있었다. 앞만 쳐다보고 있던 아버지가 창문에 보였지만 그 모습이 어쩐지 쓸쓸하고 너무나 지쳐 보였기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계속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응?”

  아버지 손에 비해 턱없이 작고 하얗기만 한 내 손을 꼭 잡아 주면서 대답하셨다. 

  “작은 오빠는? 괜찮아? 지금 어디에 있어? 집에 가 있어? 설마 다른 큰 일이 생긴 것은 아니지?”

  내 말은 낮고 느리며 조용했다. 나를 부르는 아버지의 음성은 나보다도 낮고 담백하여서 마치 체념이라도 한 사람처럼 보였으므로 내 마음은 더 떨렸다. 

  “수인아, 이제부터 아버지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래도 너무 놀라지는 말고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알았지?”

  나는 큰 움직임으로 명심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오빠 왼쪽 다리가 이제는 움직이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앞으로 오른 쪽 다리만 길어져서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걷거나 평생 목발을 짚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단다. 그렇지만 다른 곳은 아주 괜찮아. 모두들 그렇게 된 것 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나머지 가족들이 작은 오빠의 왼쪽 다리가 되어주어야 돼. 우리 수인이를 가장 좋아하니까 작은 오빠를 잘 위로해 줄 수 있지?”

  아버지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과 똑같지 않은 모습에서 오늘 상실감과 차별이라고 했다. 사실은 그것이 가장 무서운 거라고 했다. 분명히 무섭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아버지. 작은 오빠 많이 울었어? 이제는 자전거도 못타고 달리기도 못 뛰고 축구도 못하고......... 또.........”

  나는 목이 메어와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밤에 타는 버스 안은 정말로 조용했다. 모두들 갓난아기라도 된 것처럼 제 고개를 이기지도 못하면서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버스가 땅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붕 떠서는 정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며 차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에 젖어버린 아스팔트보다도 더 검은 어둠속 한 가운데 작고 야윈 나 혼자만이 눈을 뜨고 있었다. 

  문 앞에 덕구가 미친 듯이 나를 반겨 주었다. 나도 한 걸음에 달려가 덕구의 목을 끌어안았다. 집 안에 불이 켜져 있었으므로 나는 무작정 모든 것이 반가웠던 마음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작은 오빠는 집에 없었다. 병원에서 받아야 할 큰 치료가 몇 가지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동안 나가지 못했던 광산에 다시 나가셔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는 몇 달간 일요일도 없이 일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엄마의 품이었는지 나를 쓰다듬는 엄마의 손길은 더운 목욕물처럼 나를 씻겨주고 있었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엄마의 손길은 지난 시간 동안 나에게 찾아왔던 상처와 아픔들을 치료해 주는 것처럼 편안하게 해 주었고 그래서 인지 기분도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잔인했던 2월도 결국은 달력에서 떨어져 나가 아궁이 불쏘시개가 되어 버렸고 3월에 나는 아홉 살 2학년이 되었다. 사실 이미 두 달 전부터 아홉 살이 되어 있었으면서도 마치 꿈이라도 꾼 사람처럼 정말로 아홉 살로 두 달 씩이나 살았는데도 그것조차 감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작은 오빠는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었지만 학교에 유급신청을 내야만 했고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악몽 같았던 겨울은 그렇게 완전히 우리 곁에서 물러나 버렸다. 이제 봄은 조금씩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미래는 예기치 않은 일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덟 살의 봄보다는 조급한 마음을 먹지 않고 있었다. 정말로 제비들이 처마 밑에 둥지를 트느라 물어다 나르면서 흘려버린 진흙덩어리를 수시로 닦아내야 했고 제비 새끼가 둥지 밖으로 갈긴 똥을 치우는 일도 내 일거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화 가루가 섞인 꽃가루는 동네를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여 놓고야 말았다. 이제 모내기를 해야 할 때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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