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underestimate me!'를 증명할 수 있을까?
올해 나이 74세.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었던 레이건보다 더 연로한 할아버지.
그 연배면 좋은 게 좋다고 할 만한데 이 할아버지는 아직도 호불호가 여전하고 수시로 핏대를 올린다.
오랜 지인들은 그가 언제나 한결같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성질 더럽다고.
안경 너머 짐작이 가는 깐깐한 눈빛 - 그러나 그의 분노에는 늘 이유가 있다며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힐러리 대세론을 뒤흔드는 꼰대(?).
시장과 상원의원을 다수 지낸 관록의 정치인이라지만 힐러리와 비교하면 돈도 조직도 보잘 것 없는,
그저 성질만 살아있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인데다 어감도 불편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데 왜 미국은, 특히나 젊은이들은 이 노인네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작은 체육관에서 몇천 명 수준이던 유세가 이제는 아레나를 빌려도 비좁을 정도다.
"Feel the Bern!"
기성 정치인들이 기껏 동네 스타 정도로 여겼던 인물에게 수만 명이 운집해 버니, 버니를 외친다.
이 함성은 뭘 의미하는 걸까?
미국 최초의 부부 대통령,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가시권 안에 두고 있던 힐러리 클린턴이 요즘 들어 부쩍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 정직성.
내일 당장이라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할머니가 될 만큼 쌓아온 경험, 막강한 자본력과 조직.
그 눈부신 힐러리에게 마치 순결을 강요하듯 면전에 대고 정직에 대한 질문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버니 샌더스가 없었더라도 이런 무례한 질문이 반복될 수 있었을까?
상원의원에 오기까지 수많은 선거 중에 단 한 번도 네거티브 전략은 생각도 안 했다는 케케묵은 고지식.
산전수전 다 겪은 힐러리도 만나본 적 없는 상대일 것이다. 그리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왜 세상이 저 할아버지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려 드는지.
어쩜 수치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 왕관을 안 썼다고 이제는 평민과 비교당한다는 게.
찬연했을 젊은 시절, 각자의 길을 걸었던 두 사람.
그리고 다시 대척점에서 만난다.
고귀한 힐러리가 뭘 잘못한 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처럼 해왔던 거고 이제 약발이 받지 않을 뿐이다.
기밀문서를 담은 이메일 따위로 그러는 것도 아니다. 버니 샌더스도 이제 그 말은 그만하자고 했다
TV 토론에서 힐러리는 함박웃음으로 화답했지만 사람들은 상대방의 약점을 덮고 가자는 할아버지가
신선했을 것이다. 고맙다고 웃을 일이 아니었다.
미국을 실패하게 만드는 원인이 정말 Hustling에 있다면
이 할아버지를 통해 아직 실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은걸까?
<Occupy Wall Street>을 외쳤지만 성장동력을 잃고 결국 주저앉았던 미국의 젊은이들은
이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미래를 꿈꾸는 행진을 하고 싶은 건 아닐까?
부정과 사기, 비겁과 술수에 지친 미국은 도서관에나 박혀있던 정직과 선명을 다시 펼치고 있다.
2월 1일, 여기서 이기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아이오와주의 경선을 시작으로 미국은 대선시즌이 시작된다
어쩜 버니 샌더스는 여기까지 일지 모른다. 그를 따르던 청춘들은 낙담하고 아쉬워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 할아버지는 과소평가받지 않을 만큼 충분한 역할을 했다.
한 번도 직각으로 응시하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 그것을 보게 해 준 거울일 테니까.
가난한 이유와
반복되는 고통과
정치와 사회와 세상을
그리고 내 결심을 다시 들여다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