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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투스 Feb 01. 2016

 미쉘 박 스틸은 누구인가?

한국 여자의 힘으로 미국을 바꾼다

2016년 1월 <이 여자가 사는 법> 금요일 코너에 신년 첫 손님으로 방문해준 미쉘 박 스틸 (Michellle

Park  Steel, 한국명 : 박 소영) 위원.  

오렌지 카운티 수퍼바이저라고 소개하면 그게 뭐하는 자리인지 잘 모른다

미국 오렌지 카운티의 34개 시 시장을 관리하는 자리라고 하면 어떤 위치인지 조금 감이 온다

임명직이 아니라 치열한 투표를 통해 선출된 위치라 더 의미가 깊다. 이 여자의 역량을 입증한 셈이니까.

출처 : Google image

미국 관례상 변호사인 남편 (션 스틸)의 성을 따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중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이주해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대학 1학년 때 LA로 이민을

온다. 그래서 3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궁금해서 물었다


 : 어린 나이에 3개 국가를 전전(?)하며 교육을 받는다는 게 혹시나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지는 않던가요?

미쉘 :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선거를 하면서 영어가 세 번째 언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놀래요. 어쩜 단점일 수 있는 경험이 오히려 나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더군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고단한 자영업을 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장녀인 미쉘은 학교가 끝나면

여느 이민 2세들이 그러듯이 어머니의 비즈니스를 돕곤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단란하면 되는 일상에 운명처럼 변화가 찾아온다

4.29 폭동. 1992년에 발생한 흑인 폭동은 한인사회가 돌아보기 불편할 정도로 상처가 큰 사건이다.

출처 : Google image

삶의 터전은 방화로 불탔고, 보상 대책은 남 얘기 같았던, 무엇보다 억울한 건 폭동이 일어난 본질은 사라지고

한인과 흑인의 갈등처럼 왜곡되는 언론의 보도였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잡은 우리는 재산을 방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탐욕스러운 이미지로 굴절되고 있었다.

출처 : Google image

바로 그 순간부터, 한인사회는 바뀌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면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리라는 발상은 너무나

순진한 착각이었고 우리를 지켜줄 무언가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정치력이었다.

미쉘 박 스틸도 그 변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왜곡된 보도에 분노하며 주변의 정치인들

에게 한인사회의 입장을 전달하면 그 다음날, 미디어에 출연한 그들이 자신의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해야겠다, 정치"


소방국 커미셔너(관리,감독 총 책임자 위치)를 시작으로  LA 공항 커미셔너, World Trade 커미셔너 자리를 

거쳐 캘리포니아 주의 조세를 관리하는 자리인 조세 형평국 커미셔너를 역임한다.

그리고 2014년 오렌지 카운티 수퍼바이저로 당선된다.  


LA 폭동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한인사회는 가장 취약한 부분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지난

20년간 정치력 신장을 다각도로 도모한다. 그동안 많은 정치인들이 배출됐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이른다. 그런데 미쉘 박 스틸은 두 가지가 그들과 좀 다르다.


하나는,

자신의 후임이 한국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비서관이었던 사람도

지금은 한 시의 부시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신의 영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진을 위해 배려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배경이 되어준 한인사회에 감사를 잊지 않고 바쁜 공무에도 다양한 한인사회 행사에 함께 한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일까 싶겠지만 한인 선거 당선자가 한인사회와 너무 각별한 관계를 노출

하는 건 다른 커뮤니티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그들도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당선되고 나서 얼굴색이 달라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해는 하는데 솔직히 다음에는 국물도 없다)

만약 그 이상의 자리를 욕심낸다면 오히려 주류사회와 더 긴밀하게 교류해야 하는데 한인사회의 요구에

응하다 보면 그만한 스케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데도 이 여자는 그걸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도 미쉘과 약간의 안면이라도 있는 사람들 중 (극히 일부라고 믿고 싶다) 더러는 그녀에게 무례하거나

무리한 부탁을 할 때가 있다. 공항에 억류된 사람을 풀어 달라는 식의 그녀의 자리와는 상관도 없는 .

그런데 자신이 조금만 움직이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돌린다.


"한인사회로부터 너무 많은걸 받았습니다. 
 저로 인해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그게 저의 보람이기도 합니다"


누구라도 역량 있는 한인 후배가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하기를 바란다는 그녀.

그러면서 정치에 관심 있는 2세들에게 단호한 당부를 잊지 않는다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살다가 갑자기 한인이라는 이유로 난데없이 나타나 한인사회의 도움을 요청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도움을 원한다면 이전부터 한인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봉사를 하거나 활동을

 하고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기회가 된다면 연방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미쉘 박 스틸.

너무나 우리 편인 그녀가 걱정돼서 결국 인터뷰 마무리에 한마디 했다.

"우리도 이제는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한국사람 투표 안 해요. 다 검증해요

 위원님께 한국사람이라는 배경이 힘이 되고 싶지, 부담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뒤돌아보지 말고 가세요, 끝까지 가세요. 그게 우리를 위하는 길입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그녀의 핸드폰이 바쁘다. 뭐 부탁하는 전화나 아니었으면---

출처 : Google image
출처 : Goog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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