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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투스 Feb 03. 2016

사주팔자가 궁금하다면.

한번 더,한번 더

학창 시절, 앞날을 점칠 수 있다는 것 만큼 매력적인 일이 어디 있을까 싶어 산에 들어가 오행이란 걸 배웠다

세상 모든 것이 목, 화, 토, 금, 수안에 정리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소한 일인가?

내가 이해 못하는 일은 없었고 다 일어날  만하니까 일어난 것이었다.

만세력 안에 접혀 들어온 것 같은 세상을 조롱하며 어리석게도 예단과 체념, 순종과 비겁을 먼저 배웠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 - 내 마음에서 당신 마음까지의 거리던가?

아주 옛날, 그 마음은 인간의 신체 밖으로 나와 있어서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지.

오해는 사라졌지만 믿음도 없었다. 그러자 신은 그 마음을 신체 안 가장 은밀한 곳으로 숨긴다.

오해를 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는 없었기 때문일 거다.

마음은 그렇게 내 안의 어딘가에 짱 박혀 있다.


명료하기만 하던 인간의 삶이 그 순간부터 번거로워졌다.

아는 게 아는 게 아니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배워본 적 없던 모략과 배신이 난무했고 적응 못하는 무리들은 그 <바닥>에서 철저히 유린당한다.


그러자 정리가 시작됐다.

철학이 이렇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과학은 거기에 근거를 갖다 부친다.

인문학은 본성을 캐기 위해 광부처럼 파 들어갔고

심리학은 별빛에 반짝이는 변화에 몸부림쳐야 했다

더러운 땅을 보느니 고고히 하늘만  쳐다보던 사람들이 천기를 알게 되고

그 땅을 버리지 못한 자들은 지지를 깨달아 후세에 알린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불확실>이었다. 

불확실이 증명하는 건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는 거였다.

확실한 게 있었다면 이미 세상은 조용해졌겠지.


그 소란은 내 청춘을 너무나 괴롭혔다.

믿음이 다른 무언가에 의해 의심되어지고

그 의심은 점점 습관이 되어갔다


철학을 공부하던 학창 시절,

명망 있는 교수분께서 산란한 청춘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 어느 것도 그 무엇이다"


단언컨대 내 일생을 통틀어 가장 감격스런 위로였다.

우리가 이토록 병나발을 불어가며 절망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허무가 아니라

무엇인지 모른다는 불확실 때문인데

그 막막함을 깔끔하게 싸구려 취급해주시는 배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상에는, 살기 위해 반복해야 하는 걸리적거림이 너무 많았다

자야 했고, 입을 벌려 먹어야 했고, 무엇보다 이동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차라리 지겨움이었다

살기 위해 살아야 하는 이런 반복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었던 불확실.


결국 하늘과 공기와 바람과 땅만 있다는 산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천간을 만나고 지지를 만났다

사주를 세우는 법과 팔자를 푸는 방법을 배웠다


이제 모든 건 내 손가락 안의 운지에서 벌어지는 필연일 뿐이다.

<밀운불우>

먹구름은 가득한데 정작 비는 오지 않았던 청춘에  

불확실을 쓸어내 가는 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까지 삼 년 걸린다)


세상을 만세력 안에 욱여넣을 수는 있었지만

마음은 그 안에 담을 수가 없었다

신이 짱박아 버린 그 마음은

천간으로도 지지로도 무엇으로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환장하던 20대 종말에 우연히 꺼내 든 스피노자.

아인슈타인이었던가?

신을 믿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스피노자의 신이면 믿는다"라고 답변한 인간이.

운명론으로 희석되기도 하지만 그의 핵심은 어쩌면 <의지> 일 것이다

인간의 의지에는 신의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고 한마디로 정리해버린 종결자.


우리에게 신성이 없다면
어떻게 본 적도 없는 신을 느낄 수 있을까?


역사상 가장 한가한 소리였던 '내일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말.

이게 얼마나 불경스러운 말인지 깨닫기에는 내 청춘이 너무 짧았다.

종말이 신의 의지라면, 사과나무를 심는 건 인간의 의지일 테니.


신이 인간의 어딘가에 숨겨놓은 마음.

그 마음을 인간이 다시 드러낼 수 있다면 그건 <의지> 일 것이다.


해가 바뀌면, 궁금할 만도 하다 - 신년운세.

성공의 팔 할은 운이 차지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운빨로만 성공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성격은 맞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알지 못한다


과거는 맞출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운명보다 의지다.


종말은 맞출 것이다

그러나 부활은 우리 몫이다.  


인성이 깨지도록 실패만 거듭하는 인생.

그만큼 말아먹었으면

이젠 다소곳이 눈도 깔만 한데  

한번 더 소매 걷어붙이고 맞짱을 준비한다.

이 징그러운 운명에,

이 징그러운 세상에.


Once more time into the fray
Live and Die on this day
한번 더 싸움 속으로
오늘을 살고 또 죽을 것이다 -The Gray 중에서.



         

           마음을 읽지 못하는 건 제가 배움이 짧은 탓이기에 공부가 깊으신 다른 분들께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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