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뱀의 머리

혜이드가 씁니다

by 혜파리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끌리는 것보다 이끄는 것을 좋아한다. 불쑥 나대고 싶은 마음이 들고 나면 어느새 반장, 회장 따위가 되어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했다. 지시를 받는 것보다 지시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꼭 그런 일들만 골라했다. 누군가는 대감집 노비가 되는 것이 낫다 하며 대기업의 사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리가 있다. 큰 조직에 속해 보호를 받는 것이 아무래도 안전하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왜인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용의 꼬리를 체험해 본 적은 있다. 짧은 사무직 생활, 정해진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안온한 삶은 매일 아침 눈을 뜨는데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했다. 아이들을 이끄는 강사, 과외 선생님, 아르바이트생이라고는 나뿐인 시간의 펍, 학원 관리자 등을 거치며 뱀의 몸을 이끄는 뱀의 머리로 살아왔다. 내 일의 방향과 규모는 내가 정한다. 지난 십여 년은 운명론자치곤 꽤 진취적으로 살았다.


하지만 요즘은 좀 피곤한 기분이다. 운명론을 떠들며 모순을 느낀다.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이미 정해진 대로 가고 있는 것이지 않나. 아무튼 삶의 모양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끌려다녀도 되지 않나? 갑자기 모든 것이 아득하게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숨고만 싶다.


안타깝게도 나는 나 자신을 생활에 가만히 안주하게 두지 못했다. 배울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배운 기분이 들어 마지막 회사를 그만뒀다. 현실이, 돈이 발목을 잡았지만 결국 내 인생의 머리로 살고 싶어 고민한 결과였다. 천성이라 어쩔 수 없었다. 다시 길을 잃은 뱀의 머리로 돌아왔다. 지난 십여 년에 비해 체력과 열정이 떨어졌다. 남은 몇 십 년을 머리로 살 수 있을까 의문이다. 신이시여, 운명이여, 아니 아무나 누가 날 좀 어떻게 좀 해줘~


-

주체로 살 것인가 객체로 살 것인가.

이전 12화가면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