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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바라 Dec 12. 2020

<해리봉의 영혼탈출> #13. ♬노는게 제일 좋아 ♬

#13. ♬ 뽀롱뽀롱 뽀로로 노는게 제일 좋아 ♬



   작년에 태리랑 영혼이 바뀌었을 때만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서늘하다. 눈을 살짝 떴을 때 느껴지는 그 축축함... 도대체 기저귀를 어떻게 차고 다녔는지 과거의 나, 칭찬해. 지금 아래쪽이 너무 답답하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있는 이것. 이게 뭐지? 으아, 침이 엄청 묻어있는 레고 조각이다. 으아 더러워!! 그런데 갑자기 내 엉덩이가 들썩 들썩 움직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 익숙한 음악.


“야~~ 뽀로로다!! 노는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개구쟁이 뽀로로~ 눈 덮인 숲 속 마을에 꼬마 펭귄 나가신다~ 언제나 즐거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뽀로로를 불러봐요 뽀롱뽀롱 뽀롱뽀롱 뽀롱 뽀롱 뽀롱뽀롱 뽀로로~”


   갑자기 내 어깨도 들썩인다. 뽀롱 뽀롱 뽀로로의 노래가 마법의 노래였나. 엉덩이를 좌우로 어깨는 위 아래로, 내 몸이 막 웨이브를 탄다. 아이들이 뽀로로 노래를 들으면 좋아하는게 당연한 거였구나. 리듬에 기묘한 힘이 느껴진다. 안 움직일 수가 없다. 신기하네. 자매품으로는 핑크퐁의 ‘상어 가족’이 있다.


“아기 상어 뚜루루 뚜루 귀여운 뚜루루 뚜루 바닷 속 뚜루루 뚜루 아기 상어! 엄마상어 뚜루루 뚜루 어여쁜 뚜루루 뚜루 바닷 속 뚜루루 뚜루 엄마 상어! 아빠 상어 뚜루루 뚜루~”


   이 노래를 들어도 엉덩이가 둠칫 둠칫 움직인다. 아기들이 뽀로로 노래와 상어가족 노래를 들으면 갑자기 춤을 추는 이유가 있었구나. 우리 민족 유전자의 어딘가에 ‘흥’ 유전자가 새겨진 게 아닐까? 엉덩이를 흔들고 어깨를 들썩 들썩 흥에 겨워 흔들고 있었는데 엄마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왔다.


“어머 우리 태리봉 넘 귀여워~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아웅 뽀뽀~~” 하면서 내 볼에 입술을 부비댄다. 엄마가 왜 이렇게 나를 귀여워 하는거지? 나에게는 다 커서 징그럽다며 뽀뽀도 안 해주면서.


   뭔가, 동생이라는 존재는 오묘하다. 나와 다른 인간이면서 아빠 엄마의 사랑을 반씩 나누어야 하는 내 경쟁자. 게다가 내가 3시간 동안 만들어놓은 레고도 망가뜨리고 재미있게 읽던 책도 입으로 가져가서 침을 묻혀 놓거나 찢어버리는 우리 집의 파괴왕. 내가 화를 내도 자기 잘못도 모른 채 헤벌쭉 웃어버리는 한 살짜리 무책임한 인간! 오죽하면 <심술쟁이 내 동생 싸게 팔아요> 제목의 동화책이 다 있을까. 당근 마켓에 동생을 당장이라도 올리고 싶지만 엄마한테 혼날까봐 참는다. 팔리지도 않겠지만. 그런데 하필이면 동생과 몸이 바뀔 게 뭐람.


   저기, 거실에 내 원래의 몸, 해리는 쇼파 위에서 뒹굴 뒹굴 하고 있다. 발 크기는 270mm로 거의 아빠의 발 크기랑 비슷하고, 손은 엄마 손 크기랑 비슷하다. 손발이 엄청 크면서 작년 겨울, 아니 올해 1월에 산 겨울 옷이 안 맞는다. 그렇게 몸은 무럭 무럭 자랐는데 저 안에는 지금 돌쟁이 봉태리 영혼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저렇게 쇼파 위에서 아기처럼 뒹굴 뒹굴 하고 있지. 아, 발가락을 먹으려고 하네. 태리야!!! 제발!!! 내 발 꼬랑내 장난 아니란 말이야!! 그만!!!


“해리야~ 너 얼른 위두랑 온라인 수업 해야지. 왜 그렇게 쇼파에서 뒹굴거리고 있니? 니가 한 살짜리 아가야?”


   엄마는 진짜 촉이 좋다. 저 안에 돌쟁이 한 살 짜리 아가가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봉해리는 지금 몸은 열 두 살이지만, 영혼은 한 살 짜리 베이비다, 베이비. 할 수 없이 내가 참견 해야겠다.


“엄마, 지난 번에 엄마랑 나랑 영혼이 바뀐 것처럼 태리랑 나랑 각시탈 때문에 영혼이 바뀐 거거든? 지금 내가 태리고, 해리가 태리라구” 라고 얘기 했는데,

“응응~~ 아앙~ 에에엥 빠빠, 각까가 여로여로로 마마마 이구이구 맘마마 뽀뽀 뿌아 뿌아 라구”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 태리는 지금 말을 제대로 못하는 돌쟁이 아가구나. 답답해. 엄마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겠는데, 내 입에서는 제대로 된 말이 안 나온다.


   자꾸 이런저런 옹알이를 하니까, 침이 질질 새어나온다.

“어머, 태리야 너 배고프니?”


엄마는 내가 배고파서 침을 흘리는 줄 알고 서둘러 뻥튀기 과자를 내 입에 물린다.

‘아니, 내가 배가 고픈게 아니라고. 엄마 내가 하는 말 안 들려? 내가 해리고, 지금 해리 몸에 태리가 있다구. 저렇게 쇼파에서 아기처럼 뒹굴 거리는데 엄마는 그걸 몰라보는거야 지금???’

“아앙, 뿌빠아 아앙 밍기 띠이랑 옹나라랑 앙드이아랑 꾸까가각 닝릴릴?”

“아유 우리 태리, 말 잘하네~~ 넘 이쁘다. 뻥튀기 다 먹구 엄마가 치즈 줄까? 띠뜨? 띠뜨? 근데 해리야!!!! 너 지금 쇼파에서 뒹굴거릴 때니? 친구들은 지금 선행 한다고 중학교 수학 문제 푼다는데, 얼른 일어나! 위두랑 숙제라도 해야지”


   아... 또 잔소리다. 왜 엄마는 자꾸 내 친구들이랑 나를 비교하는 거지? 내가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들이긴 하다. 현재나 태용이는 엄청난 모범생이라서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원을 다니고 선행으로 중학생 수학을 푼다는 소문이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친구들이고 나는 나다. 어차피 배울 공부, 미리 배워서 미리 머리 아플 필요는 없지 않나?


   엄마가 잔소리를 하든말든, 내 몸 봉해리는 쇼파 누워서 두 손으로 하나씩 발을 잡고 뒹굴 거리고 있다. 돌쟁이 아가라면 유연성 좋다고 칭찬 받을 일인데 열 두 살짜리 남자 아이가 저러고 있으니 내가 봐도 좀 부담스럽다.


“봉해리!!! 얼른 일어나라고!!” 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는 “미잉잉, 엉짜앙 잉나아앙” 이런 말만 튀어나왔다.


   자꾸 내가 옹알이를 하자 엄마는,


“아구구 우리 태리 아직도 배고파요?” 하면서 공갈젖꼭지를 내 입에 물려 준다.


   이게 뭐야. 고무로 만든 장난감 같은게, 이게 무슨 효과가 있다구. 어? 근데 오물오물 공갈젖꼭지를 빨다보니 슬슬 잠이 온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잠들 때가 아닌데... 나는 원래 잠이 없는 타입인데...왜 내 눈이 자꾸 감기지... 이상하다… 난 4살 때부터 어린이집 다닐 때도 낮잠 시간에 잠을 안자서 원장 선생님과 따로 책 읽었던 그런 나인데. 돌쟁이 일 때도 밤마다 잠을 안 자서 아빠는 아기 띠로 나를 매고 밤새도록 계단을 오르내렸다고 하던데. 이상하다.  


   걷고 있는데 바닥이 올라온다. 이상하다. 아빠가 술에 취하면 비틀 거리던데 이런 기분인가? 머리가 무겁다. 아기들은 머리가 크지... 그래서 그런가 머리가 자꾸 바닥으로 내려가려고 한다. 간신히 머리 무게를 이겼는데 뒤로 넘어지려고 한다. 어엇, 뒤로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생각보다 엉덩이가 안 아프다. 아기들은 기저귀를 차고 있고 엉덩이가 토실 토실해서 그런지 하나도 안 아프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잠이 슬슬 온다. 그런데 내가 방긋 방긋 웃고 있다. 엄마가 내 눈을 보며 빵긋 웃는데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아웅 우리 봉태리, 넘 이쁘다 방긋 방긋 잘 웃고 애교도 많고~ 딸 키우는 재 미가 이런 건가봐~~”


   귀에서 엄마의 말이 점점 멀어진다. 엄마는 이렇게 잘 웃고 애교 부리는 걸 좋아하는 구나... 다시 해리로 돌아가면 이렇게 태리처럼 할 수 있을까? 나도 아가일 때는 잘 웃고 애교도 많이 부렸을텐데... 아닌가? 하긴 내 별명이 ‘아기 CEO’라고 했다. 너무 시크하고 잘 안 웃고 누가 날 보러와도 눈꺼풀을 내리깔고 있어서 누군가가 CEO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한다.


   눈을 아무리 부릅 뜨려고 해도 공갈 젖꼭지의 힘인지 아니면 돌쟁이 아가라서 그런지 눈꺼풀이 슬슬 무거워진다. 

   ‘아, 이렇게 잠 들면 안 되는데... 태리, 아니 해리가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는데.. 잘 감시해야하는데 왜 이렇게 잠이 오지?’


   엄마가 토닥 토닥 등을 두드려주는 소리에 맞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다시 뜨니, 토실토실한 내 손가락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해리의 몸으로 돌아왔구나!


‘아~ 다행이다. 별 일 없었나봐’


   그런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엄마를 보면서 두 손을 주먹 쥔 다음 양 볼 옆에 대고 비비고 있다.


“어머 해리야~ 엄마한테 지금 애교 부리는 거야? 시크한 우리 해리가 애교도 다 부리고~ 넘 귀엽다 고마워 엄마한테 애정표현 해줘서”


   나는 그냥 주먹 쥔 손을 얼굴에 비빈 것 뿐인데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다니, 앞으로 자주 자주 해드려야겠다. 방긋 웃는 게 뭐 어렵다구!


   기저귀 차던 엉덩이가 많이 허전하다. 기저귀가 축축하지만 따뜻한 거였구나. 그런데 각시탈이 어디로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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