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각시탈> #14. ♬ Life goes on ♬
각시탈을 잃어버린 지 일 년이나 지났다. 한 때 고무신과 각시탈을 좋아했던 나는, 요즘 마인크래프트 게임에 푹 빠져있다.
온라인 게임 안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학교는 원격 수업으로 바뀌었다. 줌 수업으로 매일 오전 친구들 얼굴을 보지만 친구들과 예전처럼 장난치거나 떠들 수 없어서 좀 서글프다. 대신 우리끼리 그룹 카톡에서, “야 줌 수업이 다섯 번이면 뭔지 아냐?”
“뭔데 뭔데?”
“바로 오~~~줌!!!” 이러고 논다.
세종시로 전학 가는 재현이의 송별회도 각자 집에서 줌으로 접속해서 온라인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직접 인사를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반대로 줌에만 접속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마음이 덜 아프다.
지금까지 줌이라고는 오줌, 한줌 이런 단어밖에 몰랐는데, 줌이라는 게 이렇게 내 생활 깊숙이 들어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이렇게 노트북으로 집에서 선생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온라인 쌍방향 수업은 오전 9시 40분에 시작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내복 차림으로 컴퓨터 카메라 앞에 모인다. 깔끔한 몇몇 여자 친구들은 옷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묶었다.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엄마 친구 아들은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듣는다고 하던데 얼마나 귀찮을까. 사립 학교에 안 가길 잘했다. 민현이는 늦잠을 자서 눈꼽도 안 떼고 부스스한 머리에 목 늘어난 회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앉았다. 내 모습과 거의 비슷해서 거울을 보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몇 번 그런 적이 있다. 이상하게 학교를 안 간다고 생각하니까 밤에 잠이 안 온다. 우리 엄마는 “아주 방학 맞은 대학생이지, 팔자 좋다 팔자 좋아”라고 잔소리를 쏟아낸다. 밤에 영화 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 한지, 다음날 아침에 눈이 안 떠지는 건... 뭐 이럴 때 자업자득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겠지?
아무튼 온라인 수업을 하면 방구도 마음대로 뀔 수 있어서 좋다. 방구가 폭발하기 직전에 음소거 버튼만 살짝 눌러주면 몰래 살짝 뀔 수 있다. 대신 방구 뀐다고 엉덩이를 들썩이면 안된다. 가만히 앉은 채로 뿡! 방구를 뀌고 나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다행히 새어나온 냄새는 온전히 나만 맡을 수 있다. 온라인 수업이 4D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겨우 온라인 쌍방향 수업을 마치고 나면, 이제부터 내 세상이다. 학교를 안 가서 제일 아쉬운 건 맛있는 급식을 못 먹는다는 점이다. 그것 빼고는 집에서 편한 내복을 입고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물론 이런 생활을 엄마는 못 마땅해 하신다. 그래도 뭐 어떻게 할 건가? 코로나19 시대에 맞춰 초등학생의 삶도 달라지는 거지!
나는 나대로 하루 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 오전에는 온라인 수업을 참여하고 위두랑으로 학교 공부도 빠짐 없이 하고 과제 노트도 충실히 채우고 있다. 내 방에서 내복 차림으로 뒹굴거리면서 책도 읽고 (요즘은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읽고 있다. 일 년에 한번씩은 해외 여행을 갔었는데 올해는 못가서 책으로 대리 여행을 하고 있다. 여름 방학 때 삼촌이 살고 있는 캐나다 토론토에 가려고 했는데 아쉬워구규) 내가 키우는 해초들도 돌보고 비어디드 드래곤 우리 스팟에 게 상추도 간식으로 주고, 그리고 정말 정말 정말 시간이 남으면 그 때 마인크래프트에 접속한다.
마인크래프트는 온라인 게임 중에서도 아주 건전한 게임이다. 마인크래프트 안에서는 건축도 할 수 있고 농사도 지을 수 있고 사냥과 전투도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온라인 채팅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나랑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인 내 단짝 뚜뚜도 마인크래프트에 매일 접속한다. (온라인 줌 수업 때는 친구들과 채팅이 금지다) 나와 비슷한 성향이라서 축구 같은 운동은 별로 안 좋아하고 이렇게 농사 짓는 걸 좋아한다.
마인크래프트에서는 비트와 수박, 호박, 밀, 감자, 사탕수수 등을 심을 수 있다. 네더 사마귀도 키울 수 있는데, 엄마가 사마귀를 키워서 튀겨 먹냐고 물어서 한참 웃었다. 엄마는 참 먹는 걸 좋아한다. 그 다음에 돼지나 소, 라마,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엄마가 또 “라마도 잡아먹으려고 키우는거야??” 라고 물어서 “아니야~~ 라마는 털이 비싸거든. 갑옷이나 무기를 만들 수 있어서, 그래서 라마가 중요해” 라고 대답했다. 전투에는 갑옷과 무기가 중요하다.
마인크래프트 세계에서는 전투가 종종 일어난다. 좀비, 스켈렙톤, 거미, 로한 좀비, 바다 수호자 등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존재하는데 이 중에는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 순한 몬스터들도 많다. 그렇지만 대부분 몬스터들은 사납다. 좀비왕, 해골왕, 거미왕, 로한 좀비왕, 북극곰 왕, 그리고 셜커가 있는데 셜커는 사실 모든 몬스터들의 왕, 보스다. 셜커만 안 만나면 좋겠는데 게임 안에서도 평화는 참 어렵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되면서 우리 초등학교도 전면 원격수업으로 바뀌었다. 그 전에는 일주일에 한 두번, 비록 홀수반 짝수반으로 나뉘긴 했어도 선생님도 만날 수 있고 참 좋았는데 안타깝다.
사실 지난번에 우리 학교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나도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아봤다. 난 열도 없고 기침도 안 나는데, 같은 반에 확진자가 나오면 무조건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보건소와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홀수반이지 짝수반인지, 누가 걸렸는지는 철저히 비밀이다. 엄마에게 연락을 받은 아빠가 급하게 일찍 퇴근해서 근처 선별진료소인 보건소로 같이 갔다.
보건소에 도착하니 ‘접수 역학조사 진료대기실 문진·검체실’ 순서라 고 안내가 되어있다. 안내대로 따라갔는데 노란색 조끼를 입은 사람이 문자를 보여달라고 했다. 안내 문자는 엄마한테 갔는데 엄마가 아빠한테 재전송한 문자를 보여줬더니 이게 진짜 문자 맞냐고 몇 번을 물어본다. 이럴거면 학교나 보건소에서 아빠, 엄마한테 똑같이 문자를 보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꼭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오라는 법은 없지 않나? 우리 엄마는 늘 바쁜데...
똑같은 질문을 다섯 번을 받고서야 비로소 진료 접수를 할 수 있었다. 내 옆에는 고등학생 형들도 보인다. 이 사람들도 확진이면 어떡하지? 최대한 2미터 간격으로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검사를 받았다. 역학조사자 라는 사람이 내 인적사항과 접촉경로를 확인 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얀 보호복을 입고 얼굴에는 안면 보호 투명 마스크를 쓴 사람이 내 입을 크게 벌리고 갈고리 같은 걸로 뭔가를 채취하고, 코에 긴 면봉을 집어넣었다. 콧구멍 안에다가 주사를 맞는 느낌이라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빠가 다행히 비밀로 해주기로 했다.
검사 결과는 8~9시간 후에 나온다고했다. 결과를 기다리면서 만약 확진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봤다. 내가 만난 친구들, 선생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경비원 할아버지 등등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 확진 판정된 친구도 나처럼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줬을까봐 엄청 걱정이 되겠지? 처음엔 좀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왜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콧구멍 안에다가 주사 맞는 아픔을 겪어야해? 그렇지만 확진된 누구인지 모를 같은 반 친구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그 애도 나와 똑같이 억울할 것 같다. 친구도 자기의 잘못으로 걸린 건 아닐테니까.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생기고 확산된 건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니까.
지금 전 인류가 겪고 있는 팬데믹의 상황에서는 누구를 원망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거니까. 힘을 합쳐서 각자의 위생 갑옷을 잘 챙겨 입고 손소독과 거리두기 등의 무기로 잘 싸워서 바이러스 몬스터를 없애는 게 더 중요하니까.
‘띠링~’ 드디어 검사결과 문자가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000 보건소입니다.
귀하께서 실시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검사 장소 : 000 보건소 선별진료소
검사대상 : 봉해리 (09****-3)
검사일시 : 2020.11.28.
검사결과 : 음성
* 개별적으로 14일의 자가격리(해외입국, 집단발생, 확진자 접촉 등) 통보를 받은 경우, 음성판정을 받더라도 자가격리 기간을 유지하셔야 합니다. 감염병 예방관리에 협조하여 주심에 감사드리며, 개인위생 및 건강관리 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000 보건소 코로나19 콜센터 02-2***-**** ”
휴, 다행이다. ‘건강관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뒤에 붙은 눈웃음 이모티콘을 보니까 갈비뼈 아래 쪽이 찌릿해졌다. 서둘러 문자를 우리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엄마는 진료확인서와 코로나 결과 문자를 캡쳐해서 담임 선생님께 보내드렸다. 우리 학교에는 확진자 외 다른 감염자는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 초등학생들이 친구들과 떠들고 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며 방역 수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친구들아, 애썼어. 이따 게임에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