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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ctus Mar 21. 2020

한시름 놓다

코로나 격리 1일 차

 어제자 오전 11시 50분쯤 상해 푸동 공항에 들어섰다. 자동입국심사대를 신청해놓은지라 평소 같으면 기내용 캐리어 하나 끌고 30분 내로 택시를 탔을 텐데, 바이러스로 인해 강화된 입국 절차를 밟다 보니 4시간 만에 공항을 나서게 되었다. 정확히 15시 46분.


 딱히 뭔가 어려운 건 없고, 기다림이 힘들다. 차라리 줄을 서는 건 줄어드는 속도가 보여서 괜찮은데, 비행기 좌석에서 입국 승인을 기다리는 것과 마지막에 구역별 인원이 충분히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건 “하염없는 기다림”이라 정말 답답하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매 분, 매 초를 재면 나만 피 말리기 때문에 일부러 시계를 보지 않았다. 대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서울시에 OO구가 있듯이, 상해시에도 OO区(취)라는 행정구역 단위가 있다. 공항 밖을 나서기 전, 상해에 입국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2주 간 격리할 장소가 어느 区에 있는지에 따라 분류된다. 그리고 같은 지역으로 가는 사람들끼리 모여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관할 경찰 분들이 도와주시는데, 이해를 잘 못해도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시고 심지어 중국어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다만, 서류 작성 종이가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만 되어 있는 부분은 조금 싫더라.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검사 장소 가기 전에, 자가격리가 아닌 집중 격리 대상자(상해에 자가 격리할 장소가 없는 경우)는 호텔에 내려주었고, 나머지는 검사를 받으러 갔다. 병원이나 보건소를 예상했는데, 3성급 정도 되는 호텔에 내렸다. 1층 로비에서 소독을 하고 검사를 받자마자 한 사람당 하나씩 방 키를 내주었다. 돈은 내지 않았다.


 검사 결과 대기 시간이 길어져 호텔에 격리되는 경우 200위안 정도 자비 부담을 해야 한다고 기사에서 읽었는데, 어쩌면 행정구역별로 상세 운영 방식이 다를 수도 있을 듯하다.

 *3월 초 한 네이버 블로거 님이 올린 글에 따르면, 상해 정부에서 14일 자가격리를 공식적으로 이야기했음에도 푸투어취 정부가 의무적으로 호텔에서 14일 격리하도록 요구했다.


 호텔은 나쁘지 않았으나, 이불도 없고 세면도구도 제공하지 않았다. 비누조차도. 집에서 들고 오지 않았으면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전화로 부족한 것들을 받을 수 있는지 이야기하니, 이 곳은 숙박 장소가 아니라 대기 장소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했다. 단호함보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바람에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같이 격리된 중국인들에게 문의하니 그들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다만, 해당 호텔은 방마다 난방이 되는 에어컨이 있었는데 다른 지역은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 글을 보고 상해에 들어오시는 분이 있다면 작은 담요, 비누 하나는 챙겨 오시기를 추천드린다. 이왕이면 간단한 요기거리도. 저녁은 배달이 안 되고, 대신 빵과 과자, 우유, 그리고 물을 제공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간식거리는 끼니용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힘들었다.


 “따르릉” 오늘 아침 8시 반쯤 호텔방 전화기가 울렸다. 검사 결과 이상이 없으니, 집으로 가기 위해 로비로 내려오라고 했다. 와 어찌나 행복하던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게 이런 건가? 혹시 무증상 바이러스 보균자는 아닐까, 나와 같이 비행기를 탄 누군가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며칠 밤잠을 못 이뤘는데, 이렇게 한 번에 문제가 해결되었다.


 버스 안으로 내리쬐는 상해의 따스한 햇살, 오랜만에 보는 얼러마와 와이 마이 오토바이들, 평범한 일상이었던 상해 곳곳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냥 너무 좋았다. 마침내 버스에서 내렸을 때 집 앞에 서서 나를 알아보시고 인사하는 부동산 관리인 아저씨가 얼마나 반갑던지. 이게 집이구나! My sweet home!


 매일 밤 쿵쾅대며 나를 괴롭히던 심장 소리가 드디어 오늘은 잦아들었다. 그래 봐야 지금은 비자, 상해 복귀라는 한 가지 문제만 해결되었을 뿐이고, 앞으로 나에겐 더 많은 불확실한 것들이 놓일 거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나씩 해결해나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리고 오늘은 꿀잠!




 2020년 3월 20일 자 상하이 입국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1) 공항 진입 승인 대기 (비행기 내 착석)

(2) 50명씩 비행기에서 내림 (뒷좌석, 약 1시간)

(3) 특별 검역 신고서 작성 및 제출

(4) 1차 입국 심사 (얼굴 인식 및 발열 체크)

      - 상하이 행 / 타 도시 행 구분

(5) 2차 입국 심사 (자동입국심사 미운영)

(6) 수화물 픽업

(7) 상세 행선지에 따른 인원 분류

     - 상세 행정구역 단위 (OO区)

(8) 구역별 대기 장소에서 2차 신고서 작성

     - 격리 관련 정보 기입

(9) 구역별 버스 이동

(10) 구역별 검사 장소로 이동 (호텔 로비)

(11) 코로나 검사 후 대기 장소로 이동 (룸 배정)

(12) 결과 수령 후 자택으로 귀가 (버스 이동)

(13) 건물마다 관리인 상주, 3차 신고서 작성

(14) 대문 앞까지 동행, 온라인 주숙 등기 진행


자세한 건 유튜브로 영상을 만들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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