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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운 Jun 04. 2024

나는 괜찮지 않았다

정신건강 일대기


기어코 생각이 나를 잡아먹었다

내가 처음 병원을 찾은 이유는 불안과 강박 때문이었다. 호기롭게 퇴사를 한 후 쉬고 있을 때였다. 당시에 나는 너무 행복하고 즐겁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회사에서 들었던 피드백이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다. 나는 사회생활을 못하나, 그래도 친구관계는 좋은데, 그렇다면 나는 사회에 걸맞지 않은 사람인가, 일을 못하나,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생각이 세포분열 하는 것마냥 늘어났다. 거대해진 생각은 내 눈에만 보이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 목에 무언가 걸린 느낌이 들어 하루종일 물을 마셨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게 어려웠다.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울증, 강박장애, 불안장애를 진단 받았다. 그때 든 생각은 딱 한 가지다.


‘내가? 왜?’


동네 정신의학과에서 추천해 준 강박증 전문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은 강박증 관련 인지행동치료(이하 상담)을 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1년 6개월 간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했다. 이렇게 구구절절 병원 일대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강박의 늪

나는 강박증이 행동이 아닌 생각으로 찾아왔다. (어디서 본 글에 의하면 ADHD와 강박증이 연관이 있다고 한다) 네이버 사전에서 강박증 ‘환자들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충동, 장면이 침투적이고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강박 사고를 경험’한다고 정의한다.


나는 끊임없이 원하지 않는 생각이 떠올라 죽을 것만 같았다. 일상생활이 되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생각에 갇혀 있었다.


생각하는 게 뭐 어때서? 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여러분이 가장 싫어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끔찍하고 역한 장면 등등. 그게 24시간 내내 반복 재생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무서운 건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눈을 감고 있는다고 해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수차례의 상담 끝에 강박증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조금은 유연하게 증상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잔가지를 치고 나니 현실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나의 불안과 우울의 가장 큰 원인은 과잉사고였다. 생각에 힘을 실어주지 말고 흘려보내라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는 되는데 실행이 되지 않았다. 내 생각은 365일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편의점 냉장고 같았다. 웅웅 소리를 내면서 내 머리를 뿌옇게 만들어놓곤 했으니까.




나는 ADHD인 것 같다고 말했고,
선생님은 강박증 증상이라고 했다.


2023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당시 나의 주된 강박사고는 ‘내가 성인 ADHD일까’였다. 이미 상담이 일 년 넘게 이어졌기 때문에 상담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상태였다. 그녀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것도 선생님이 한 말이긴 하다)


나는 ADHD인 것 같다고 말했고, 선생님은 그냥 강박증 증상이라고 했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간 게 무려 3개월이 넘는다. 선생님은 내게 다그치듯 물었다.


‘이번엔 또 ADHD예요?’

‘증상인 걸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럼 모든 정신병자들이 ADHD예요?’


이런 말을 듣고도 나는 그냥 웃었다. 선생님을 불편하게 하는 게 싫었다. 상담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십만원을 길바닥에 버렸다는 느낌이 들어 서글퍼졌다. 그럼에도 그만둬야 된다는 내면의 신호로 무시했다. 회피가 가장 간단하고 달콤한 방법이었으니.


그러나 ‘정신병자’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내담자에게 쓸 수 있는 단어인가 싶었지만, 선생님도 사람이기에 말실수를 했겠거니 생각하며 넘겼다. 그런데 왜 내가 돈 주고 상담을 받는데 이런 기분에 휩싸여야 될까. 더이상 상담을 할 수 없겠구나. 의구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더 다니다가 상담을 그만두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때 나는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18개월의 시간을 부정 당한 것 같아 우울했다.내가 감정적인 탓에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상담 다닌 걸 후회하는 건 아니다. 그때의 내가 잘 견뎠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 오히려 기특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단지 상담 선생님과 내가 잘 맞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각자에게 잘 맞는 상담사가 존재한다는 거다! 그러니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그만두고, 자신에게 잘 맞는 상담사를 찾길 바란다. 물론 그 과정이 힘들다는 걸 안다. 나 또한 병원을 알아보는 일이 번거로워 같은 곳에서 1년 6개월을 넘게 상담 받았기 때문에 이해한다.


상담사와 내담자의 합이 중요하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 또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나 너 사랑하냐

정신건강 일대기는 여기까지다. 나는 상담하는 동안에도 아프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유난히 밝고 긍정적이고 웃긴 사람이었고, 우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너는 착하고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야.’ ‘너는 우리집의 분위기메이커야.’ 어쩌면 나는 밝고 착한 사람이어야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갇혀 지낸 걸 수도 있다.


나와 내가 되고 싶은 나에게는 큰 간극이 있었다. 근 2년동안 간극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ADHD일 것 같다는 자가진단을 내렸을 때, 어느 정도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노력해도 메꿀 수 없었던 구멍에 ADHD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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