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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운 Jul 02. 2024

비밀의 화원

20대의 엄마는 자신과 동갑인 가수 이상은을 동경했다. 당시 이상은이 무슨 노래를 냈고 얼마나 많은 광고를 찍었으며 어떠한 글을 썼는지는 엄마의 덕질 앨범을 보면 알 수 있다. 몇 개 없는 싸인펜으로 열심히 앨범을 꾸몄을 스무 살의 엄마를 떠올려본다. 짧은 코에 작은 입술. 앳된 얼굴로 담다디를 따라 불렀으려나. 내가 모 아이돌을 좋아했던 것처럼 엄마도 온종일 그녀의 노래를 듣고 무대를 돌려봤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귀엽다.


엄마의 덕질 스토리가 궁금하다. 많고 많은 가수 중에 어쩌다 이상은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물론 여러 번 돌려본 이상은의 <언젠가는> 무대를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당시에 내가 태어났더라면 나 또한 그녀를 좋아했을 거다. 어쩌면 엄마보다 더 열광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들려주듯 노래하는 그녀만의 창법이 좋았고, 대중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가치관이 비슷하거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연예인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 닮고 싶은 구석이 있는 사람을 좋아해야 마음이 오래 이어진다. 사랑보다는 동경에 가까운 것 같다. 엄마와 나는 비슷한 구석이 정말 많다. 만약 연예인을 덕질하는 마음까지 닮았다면, 엄마는 이상은을 보며 무엇을 꿈꾸었을까. 어떤 삶을 살아내고 싶었을까. 이상하게도 엄마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앨범을 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나는 타인의 슬픔을 잘 보는 사람일까 아니면 타인을 슬프게 만드는 사람일까. 굳이 앨범을 꺼내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립게 만든 건 아닐까. 그렇다면 엄마를 슬프게 만든 건 나일까. 엄마는 꿈이 뭐였어? 그녀가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묻는다. 이건 내가 삶을 살아가고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마인드맵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 이기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저 누군가의 얼굴에 있는 슬픔을 한 겹 벗겨내고 싶다. 언젠가 슬픔이 나인지, 내가 슬픔인지 모르게 될 날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요즘엔 엄마보다 내가 이상은에 더 빠져 있다. 이상은 노래 중 언젠가는, 비밀의 화원, 둥글게를 제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비밀의 화원을 자주 듣는다. 여름 장마철에 잘 어울리는 노래다. 이 노래는 우울증을 겪던 후배를 응원하려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가사가 진국이다.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랄랄랄랄랄


한때 엄마의 우상이었던 이상은은 나의 작은 화원이 되었다. 요즘 우울할 때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 받고 있다. 마치 비가 억세게 쏟아지는 날, 엄마와 그녀가 내게 초록 우산을 건네주는 느낌이다.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한 걸음 내딛는다. 이상은의 노래가 내게 위로가 되었듯이, 스무 살의 엄마도 그녀로부터 위로와 응원을 받았으리라 예상해 본다. 엄마의 차고 넘치는 사랑이 메마르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참고로 엄마는 여전히 배우들을 덕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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