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지 2년이 넘어간다. 도보로 40분, 버스로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매장이 위치해 있다. 출근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해 느긋하게 유니폼을 입고 시재를 점검한다. 포스기에 들어 있는 지폐를 세면서 오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을지 예상해 본다. 아, 역시 돈을 셀 때는 딴생각을 하면 안 된다. 천원짜리 지폐를 엄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다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시재 점검을 마치고 간편식 및 유제품 소비기한을 확인한다. 냉장 제품은 상온에 있는 제품보다 소비기한이 짧기에 수시로 확인해 줘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 매대를 훑으며 날짜를 확인한다. 냉면은 10월25일, 국물 떡볶이는 9월 10일까지. 놀랍게도 가을까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것들이 폐기되는 날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어느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사물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기는 것 같다. 저놈이 인기가 많고 이놈은 인기가 없구나. 그놈은 구석으로 밀려났구나. 그럴 줄 알았다.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냉장고 사회도 꽤나 치열한 모양이다. 새로 출시된 제품은 초반에 반짝하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매대 아래쪽으로 밀려난다. 간혹 1+1, 500원 할인과 같은 행사로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행사가 끝난 후에는 다시 찬밥 신세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소비기한 당일에 알바생 손에 끌려나온다.
똑같은 제품이 여러 번 폐기되는 걸 보며, 사람이나 음식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하다 못해 생크림빵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니. 그런데 얘 왜 이렇게 나같을까. 나도 얘처럼 소비기한이 끝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이젠 나조차 나의 쓸모를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글의 쓸모를 모르겠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매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할 일을 찾아나선다. 굳이 싶은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손님이 다녀간 테이블을 정리하고, 매장을 쓸고 닦고, 비품을 채우고, 물건을 진열하고, 백룸을 정리하고, 손님을 응대한다. 금세 더워져 이마에 땀이 맺힌다. 조금 전까지 안쓰러워 보였던 생크림빵을 아무렇게나 폐기함에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