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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titudo Jul 18. 2021

코시국에베트남에 산다는 것

호치민일상


저녁 6시.

아파트 복도 밖에선 전동 드릴 같은 소리가 나고, 현관문틈 사이로 어릴 적 동네에서 쫓아다니던 소독차 냄새가 스며들어 온다. 앞 블록에 F0 확진자가 나오고서 아파트 전체 방역 소독이 진행되었다.


코로나 청정지역이던 베트남이 언제 이렇게 됐을까? 코로나로 지금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요즘 나의 일상이 흡사 재난영화와 유사하여 기록을 남겨본다. 나중에 상황이 좋아져, 그래 저땐 저랬지 하며 지금의 일상이 얼른 추억이 되길 희망한다.


한때는 이런 코시국에 베트남에 있는 게 감사하던 시절도 있었다. 확진자 수가 한 자리 수임에도 모두 마스크를 꼬박꼬박 쓰고 다녔다. 해외여행은 못 해도 다낭, 붕따우 등에서 수영, 등산을 하며 국내 여행을 즐길 수 있었고 코로나 전만큼은 아니어도 레스토랑, 바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못 본 지 1년이 넘어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베트남에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특정 종교로 인해 코로나가 마구잡이로 확산된 것처럼, 평온하던 베트남도 종교 활동으로 인해 지역 감염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하루에 2천 여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여 호치민에서는 식료품이나 약품을 살 때를 제외하면 외출 금지, 특별한 이유 없이 외출하다 발각될 경우 벌금을 내야 한다.


락다운 초반에는 오히려  상황을 즐겼다. 오토바이를 타고 길에 나가면 , 오토바이 수가 현저히 줄어 막힘 없이 달릴  있고 공기도 훨씬 좋아져 항상 하늘이 맑다. 이래서 영화에서 악당들이 자꾸 지구의 인구수를 줄이려고 음모를 꾸미는구나, 처음으로 악당의 입장에 공감할  있었다.


식당,  가게,  등이  문을 닫다 보니   지출도 눈에 띄게 줄었다.    모아서 다시 주식에 투자해야지 하며 신이 났다. 꿈에 그리던 재택근무도 하게 되고, 평소 다니던 크로스핏을  가다 보니 근육이 빠져 오히려 사람들이  빠져 보인다고 한다. 밖에 나갈 일이 없어 화장도   하고 마스크도   쓰니 피부도 좋아졌다.


며칠  아파트  블록에 있던 한국인 남자분이 F0 의심자로 확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가 키트로 검사했을  양성이 나왔고, PCR 검사는 전이지만 코로나 증상을 가지고 계셨다. 하루에 2 여명씩 확진자 수가 발생하는데도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근처 한국 사람이 코로나 양성일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갑자기 겁이 났다.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베트남   코로나 확진되어 병원에서 치료받다 사망할 경우 가족/지인 등에 연락 없이 24시간 안에 시체를 화장한다고 한다. 다른 아파트에서 거주하던 한국인이 병원에서 코로나 치료를 받던  사망하여 시체가 화장되었다는 소식이 교민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해외생활  일어날  있는 제일 무서운 일이 아닐까? 타지에서 병에 걸려 죽고,  가족/친구들이 알지도 못한 사이에  몸이 사라져 버린다니.


분명  혼자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타지에서 고생하며 일하던 사람들이 아닐 거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얼마나 속이 쓰릴까. 얼굴,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의 소식에 감정 이입이 되어  눈물을 삼킨다.


호치민은 아직도 음식 사재기가 한창이다. 식당 음식 배달이 안 된지는 꽤 되었고, 한 때는 마트도 문을 닫고 배달로만 식자재 주문이 가능하다는 루머도 돌았다. 시간을 잘 맞춰가지 않는 이상 마트에 가려면 번호표를 뽑고 줄을 선 후 들어갈 수가 있다. 웬만하면 근거 없는 루머를 믿지 않는 나도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음식을 돈이 있어도 제때 못 먹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냉장고 꽉꽉 음식을 채워두었다.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 차있어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수시로 카톡 단톡방 및 슈퍼마켓 어플을 체크하며 더 살 게 없나 확인한다. 덕분에 단톡방에서 음식 및 식자재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소위 대박이 나 매일 오전 주문이 마감된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거주민들 단톡방이 있어 중고품을 사고팔기도 하고 필요한 소식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 아파트에서 확진 의심자가 나온 이후로 더욱 효율적인 정보교류를 위해 실제 거주민들 대상으로 새로운 단톡방을 만들었다. 단톡방에 입장  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 블록과 호수를 밝혀야 하며, 밝히지 않을  방에서 강퇴된다.


단톡방 내에서 한인회 회장님께 코로나 확진된 교민들의 정보를 요구하기도 하고, 봉쇄된 블록에 있는 주민들에게 직접 요리를  손편지와 함께 음식을 전달한 마음 착한 사람들도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서서 단톡방을 새로 만들고,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든 시기에 자기 것만 챙겨도 불안할 텐데 마음 씀씀이가 대단하다고 느낀다. 공권력에 대한 분노, 이웃 나눔, 음식 사재기  모두 모양새는 다르지만 현재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행동이 아닐까 생각했다.


백신 신청을 하긴 했지만 백신을 맞게 돼도 문제다. 간호사 실수로 같은 백신을 30분 안에 두 번 맞았다는 사람에 대한 기사를 읽으니 과연 베트남에서 백신을 맞는 게 옳은 선택일까 의구심이 든다. 백신이 부족해 외국 및 베트남에 있는 외국 회사들에게 백신을 기부받고 있는 베트남에서 한국처럼 어떤 백신을 맞게 될지 알려주는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사실 외국인이라 백신 접종 가장 후순위로 밀리겠지만, 미리 이런저런 걱정을 해본다.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예민하고 날카로워지기 쉽고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진다. 이런 나의 두려움이 안 좋은 쪽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어제부터 아침 명상과 밀려있던 감사 일기 작성을 시작했다. 당장은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내 심신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가족, 친구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유지하자.



Photo by Toomas Tart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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