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 김병규
재활용 잘하기로 소문난 대한민국.
전 세계 평균 재활용 비율은 10%,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가정에서 배출된 생활 폐기물 가운에 62%가 재활용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재활용'이 잘 되었을까?
재활용은 다 쓴 물건을 다시 사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의 재활용 관련 통계는 쓰레기가 다시 사용되는 것이 아닌 재활용 선별업체로 보내지는 순간 재활용된 것으로 간주한다. 국민들은 열심히 분리배출을 했지만, 이 쓰레기들이 다시 재활용되었는지 소각 혹은 매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니 진정한 의미의 재활용이라고 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과거에는 시대마다 그 시대를 지배한 물질에 따라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렇게 본다면 현시대를 '플라스틱 시대'라고 부르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P10
정말 플라스틱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전 세계 각지에서 플라스틱이 넘쳐나고 있는 요즘. '감각을 디자인하라'의 저자이기도 한 브랜드 및 마케팅 전문가 김병규 교수님은 어느 날 플라스틱 문제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관련 정보를 더 찾아보기도 했지만, 문제 해결 방안보다는 답답함을 느껴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김병규 교수님은 환경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개인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은 브랜드에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나 소비재 기업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R&D, 디자인, 마케팅 능력을 기업 이윤 창출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 해결에 이용할 것을 간구한다.
이 책의 타깃은 기업과 소비자다. 기업에게는 하는 척이 아닌 진정성 있는 환경 문제 인식 및 해결을 위한 노력이 요즘 시대의 최고의 전략임을 알리고,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소비자에게는 환경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려는 기업과 마케팅 차원으로 이를 이용하는 기업을 구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결국 기업에서 환경에 덜 해로운 제품들을 생산, 판매하고 소비자가 이러한 기업들로부터 상품을 구매하면서 전체 사회 구성원이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를 희망하고 있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기업에서 할 수 있는 환경 보호 실천 내용 제시에 앞서 플라스틱의 종류 및 특징, 왜 하필 플라스틱 문제를 선택했는지 근본적인 내용을 함께 다룬다. 어떤 플라스틱이 제일 재활용에 용이한지, 높은 온도와 같은 특정 상황에서 유독 물질을 발생시킬 수 있는 플라스틱 등의 정보가 나와 있다. 소비자들이 이런 정보들을 잘 인지하고 있으면 구매하기 전에 포장재 재질을 살펴보고 재활용이 더 용이한 포장재가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등 지구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ESG 열풍이 일며, 환경을 보호하는 척하는 기업들의 '그린워싱' 행태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린워싱이란 실제로 환경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마치 도움이 되는 것처럼 과장하거나 거짓으로 속이는 마케팅 활동을 말한다.
예시로 코카콜라의 마케팅을 들었다. 전 세계에서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1위 기업이 바로 코카콜라라고 한다. 코카콜라는 환경 보호의 일환으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활용한 콜라병을 만들었는데, 시중 판매용이 아니라 마케팅 용으로 300개만 만들어져서 사실상 환경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한 2030년까지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률을 50%까지 높인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코카콜라에서 자발적으로 정한 수치가 아닌 EU에서 통과시킨 법안 내용이다. 코카콜라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강화된 환경 기준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럼 각 기업은 어떻게 환경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을까? 저자는 아래와 같이 5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1. 상품성: 가장 뛰어난 제품에 재활용 자원을 사용하라 (브랜드: Method, IKEA)
쉽게 말해 품질, 성능, 디자인 및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제품 재활용 자원을 사용하며, 굳이 친환경 제품임을 강조하지 않아도 판매가 잘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2. 수요성: 순환성에는 수요가 필요하다. (브랜드: Freitag, Rothy's)
더 많은 플라스틱 폐기물이 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되어야 플라스틱은 순환성을 가진다. 결국 1번의 상품성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3. 전반성: 모든 제품과 포장재에서 순환성을 추구하라 (브랜드: Green Toys, Girlfriend Collective)
제품에만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기업들이 만들고 판매하는 모든 제품과 포장재 전반에 걸쳐 사용해야 한다.
4. 과정성: 생산 과정과 운영 방식을 개혁하라 (브랜드: Patagonia, Nike)
친환경 포장재에서 더 나아가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탄소를 줄이고, 원자재 낭비 최소화하는 등 생산 과정상의 노력도 필요하다.
5. 자급성: 재활용 자원을 스스로 공급하라 (브랜드: Eileen Fisher, 플리츠 마마)
플라스틱 순환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이 사용한 플라스틱을 직접 수거해서 새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기업의 역할이고, 이제부터 소비자는 하는 척이 아닌 실제로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을 찾아 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기업을 움직이는 것은 규제도 비판도 아닌 소비자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 책 덕분에 플라스틱에 대한 진실, 착한 브랜드들을 알게 되어 뿌듯하지만 고민이 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식자재 구매. 보통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면, 과일이든 채소든 모두 플라스틱에 포장되어 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외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채소나 밀키트를 주문하면 일주일 만에 금세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쌓인다. 밥을 안 먹고 살 수도 없고 시장도 닫은 상황에서 참 고민스러운 부분이고, 각종 식자재 업체들이 이러한 부분들을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루빨리 많은 기업들이 환경 문제 해결에 동참하여 지구에 해를 끼친다는 고민 없이 마음 편히 쇼핑할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