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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는 아파트

Thang Long st│하노이의 옛 이름인 '탕롱'을 기념하며

by 예스혜라

공간은 기억의 그릇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하노이에는 이 말이 참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소가 하나 있다. 바로 첫째 아이를 갖게 된 쭝화(Trung Hoà) 지역 탕롱(Thăng Long)대로에 있는 한 아파트이다. 나는 아직도 이 성스러운(?) 아파트 앞을 지날 때마다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린다. 신혼 때라 행복했던 기억도 많았을 텐데 나의 뇌는 어마무시하게 입덧을 했던 3개월 만을 강렬히 기억하고 있다.



집에서 바라보았던 탕롱대로



첫째를 임신하고 5주 차부터 울렁거리는 느낌으로 잠에서 깨곤 했다. 그 느낌이 너무 싫어서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일부러 더 잤다. 양치를 하다가도 토를 하기 일쑤라 항상 앞니만 대충 닦았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출산 후에 가장하고 싶은 일이 스케일링이었다. 물만 마셔도 게워내서 얼음만 주야장천 입에 물고 있었다. 하루 종일 구토와 두통에 시달리다 보니 나중에는 악몽에 우울감까지 겹쳐 정신력도 바닥을 쳤다. 온종일 거실 소파에 누워 창 밖의 탕롱 사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늘은 또 어찌나 파랬던지. 온 세상이 멀쩡한데 나만 망가져가는 것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던 탕롱대로의 탕롱(Thăng Long)은 예전에 하노이가 불리던 이름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라는 뜻이다. 약 1,000년 전, 베트남 리(Lý) 왕조의 첫 번째 황제였던 리 타이 또(Lý Thái Tổ)가 수도를 지금의 하노이로 옮기면서 이 이름을 붙였다. 탕롱대로는 그 이름을 따서 만든 큰 도로로, 하노이 시내 중심부에서 하동(Hà Đông)과 화락(Hòa Lạc) 등 서쪽 외곽 지역까지 이어진다. 탕롱대로는 2010년, 하노이가 생긴 지 1,000년이 되는 해에 맞춰 만들어졌다. 지금은 하노이에서 가장 긴 도로로,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하거나 외곽 지역으로 이동할 때 이용한다.


리 타이 또(Lý Thái Tổ) / 탕롱(Thăng Long)대로



탕롱대로를 배경 삼았던 나의 입덧은 출산드라라는 별명과 함께 순산으로 끝이 났다.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빠르고 순조롭게 첫아기를 낳았던 것이다. 그 후 둘째까지 순산을 하자 친구들은 내 재능을 썩힐 수 없다며 셋은 낳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너희들이 말하면 농담, 내 남편이 말하면 극대노할 이 말 앞에서 지난날의 입덧지옥이 조용히 떠오른다. 고통 총량의 법칙 모르냐 요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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