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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Oct 06. 2023

그 해 여름, 포르투갈 17 아데우스, 리스본

그 해 여름, 포르투갈 17 아데우스, 리스본


엄마, 언니는 아침 8시 비행기였다. 적어도 3시간 전에는 공항으로 출발한다는 일념하에 우린 다 같이 새벽 4시쯤 기상했다. 전날 해변을 다녀와서 피로에 절은 몸은 새벽이 되니 귀신같이 일어나야 함을 직감했다. 졸리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신력으로 일어날 만큼의 체력은 남아 있었나보다. 전날 이미 짐을 깔끔하게 다 정리하고 세안 도구와 기내에 들고 갈 간단한 물건만 가방에 챙기면 됐어서 빠르게 씻고 준비를 마쳤다. 너무 이른 시각에 일어나니 배고픔이나 허기를 느끼지도 않았다. 5시 30분에 미리 우버를 예약했는데 우린 이미 준비를 다 마쳐서 미리 나가있기로 했다. 어차피 우버 기사도 도착 예정 시각보다 일찍 나와있을 것처럼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캐리어를 들고 나선형 계단을 내려갔다. 캐리어는 올라올 때보다 확실히 무거워진 건지, 새벽이라 힘이 없어서 그런건지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바깥은 아직 깜깜했다. 어스름하게 내려앉은 어둠이 이른 아침보다는 밤에 접어드는 늦은 저녁의 모습 같기도 했다. 엄마는 대문 앞에서 다시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언니가 동행자로 있으니까 걱정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늘 시내로 나갈 때마다 꺾었던 골목에서 엄마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서 인사를 했고, 언니는 그런 거 없이 쿨하게 퇴장했다. 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꾸물꾸물 드러누웠다. 피로감에 기진맥진한 건 여전했지만 왠지 모르게 잠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완연한 아침이 찾아올 쯤에야 뒤늦게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늦은 오전이었다. 개운하게 일어났다기보다는 참을 수 없는 허기로 눈을 떴다. 집안이 고요했다. 이제 거의 4주 가까이 이 집에 있는동안 이렇게까지 아침이 조용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봐야 할 정도였다. 잠깐동안은 엄마와 언니가 궁금해 하기도 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이제 이들은 환승지 뮌헨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뮌헨에서 3시간을 기다렸다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 나중에 연락할 수도 있으니 뮌헨에 잘 도착했냐고 카톡을 남겨 놓았다. 뒤늦게 기승을 부리는 늦여름 더위로 난 자는 내내 뒤척거렸다. 얇은 이불을 쳐내고 일어나 생수를 들이켰다. 평소와는 다르게 언니가 방에서 유튜브를 듣는 소리, 엄마가 거실을 쏘다니며 이것저것 정리하는 소리가 안 들리니 이상했다. 적막을 깨고 내가 물 마시는 소리만 온 집 안에 선명하게 울렸다. 이틀 뒤면 나도 캐리어 짊어지고 비행기를 타야할 판인데 지난 2주 동안 어디든 같이 가고, 한 몸처럼 뭉쳐 다니다가 갑자기 홀로 덩그러니 남겨지니 희한하게 외롭다는 감정이 슬며시 밀려들었다. 음, 됐고, 아침은 뭘 먹지.


내 비행편도 마찬가지로 이튿날 이른 아침이어서 실질적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이틀 밖에 되지 않았다. 난 멀리 놀러가거나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가까운 동네에서 카페를 가거나 기념품 살 거리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래야 조금 더 편안하게 여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나 여행의 말미에 이르면 아직 여행의 끝에 선 것도 아닌데 괜히 부산해지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는 했다. 시간이 남아있는데도 여유가 없었다. 이미 확인한 내용인데도 괜히 불안감이 일면 다시 항공사 메일을 읽어 봐야 되고, 짐을 슬슬 챙겨야 되니까 물건을 함부로 꺼내거나 헤집는 걸 자제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이제 막 시작했을 때의 기대감과 설렘과는 상반 되는 일련의 감정을 맛보게 된다. 정리를 시작하며 점점 비워져 가는 화장대나 옷장보다는 캐리어 안에 더 많이 개어 놓은 옷을 보면서 어딘지 모를 허전함과 아쉬움 같은 것들 말이다.

여행의 끝자락에 서 있지만 아직은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그 사이의 붕 떠있는 시간은 평소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비워져 가는 여행지에서의 남은 시간에 조급한 마음이 들어 어디든 나가고 싶은데 사실은 정확히 뭘 해야 될지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흘러가는 일분일초가 아까워 엉덩이만 들썩거리게 된다. 결국에 나는 타미를 불러 오후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천천히 씻고, 옷을 입고 백화점으로 간다.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한껏 서늘한 냉기를 머금고 있어 곧 가을이 오겠다 싶다가도 대낮은 여전히 덥다. 여름이 너무 서운해 말라고 보내는 마지막 작별 인사처럼 느껴진다.

여행이라고 바쁘게 뛰어다니기보다는 내가 대학원 시절 자주 다녔던 곳이나 가고 싶었던 곳을 골라 한 군데씩 짚어 나가며 한 달을 채워 일상 생활의 한 켠처럼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리스본살이였다. 게다가 숙소도 마찬가지로 주거용 빌딩에서 한 달을 내리 지내서 그런지 오며가며 건넜던 길과 꺾어 돌았던 골목이 눈과 발에 익었다. 새삼 정말 멋진 여행을 했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엄마 언니와 앞으로도 몇 십년을 얘기할 추억거리가 생긴 것도, 완전하게 쉼을 위한 휴식을 가진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 거리를 찾아 나선 것까지. 조각이 하나씩 모여 환상적인 그림을 완성시켰다. 이 그림은 후에 보고만 있어도 절로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날에는 백화점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눈 여겨 봐두었던 친구 선물을 샀다. 원래는 생각 안 하고 있던 브랜드였는데 딱 지나치는 김에 어떤 아주머니가 보고 있던 나비 모양 포르토 알레그리 접시를 내 눈길을 끌었다. 다른 곳도 둘러볼까 하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바로 구매했는데 이게 웬 걸, 마지막 제품이었다고 한다. 쇼핑을 마치고선 리스본에서 생활하던 시절 제일 좋아하던 도넛 집에서 레드벨벳 도넛을 사서 반을 쪼개 먹고, 숙소로 돌아와 근처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을 들렸다. 화이트 와인을 시켰는데 운 좋게도 마지막 남은 병이어서 주인 아저씨가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서 잔을 거의 다 채워 주셨다. 거기에 모자라 돌아가는 비행기 귀국 편도 비지니스석을 타야겠다고 마음을 먹어 몇 주 전에 경매로 좌석을 하나 걸어 두었는데 좌석 업그레이드가 되었으니 좋은 여행을 하라는 메일이 항공사로부터 도착했다. 떠날 때가 되니까 뭘 해도 운수대통이다. 이 정도면 진짜 나 그냥 여기 눌러 살아야 되는 거 아닌가? 별 게 다 리스본이 가지 말라고 날 붙잡는 것 같다.

출발하는 날 아침은 금방 찾아왔다. 엄마랑 언니한테 대문 밖에서 조심히 가라고 인사 한 게 말 그대로 엊그제였는데 이제는 내가 타미의 인사를 받고 떠나야 한다. 공항에는 우버를 타고 같이 갔다. 짐을 부치는데 항공사 직원이 탑승하는 곳이 조금 떨어져 있으니 늦지 않게 시간을 잘 확인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더더욱 일찍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바로 탑승구로 들어갔다. 공항에서라도 조금 시간을 보내려고 일부러 더 일찍 일어나서 나왔는데도 여유 부릴 시간 없이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사실 찔끔 정도가 아니었다. 타미와 나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정해진 시간에 미리 예정된 작별을 하는 것 뿐인데도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헤어짐인 것처럼 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탑승구 앞에서 한 명은 들어가고 다른 한 명은 돌아서야 하는 상황이 닥치니까 정신이 패닉 모드로 전환되고 말았던 것 같기도 하다. 질질 짜면서 게이트를 찾아 들어갔다. 어쨌거나 슬픈 건 슬픈거고 가기 싫다고 늑장 부리다가 비행기 놓치면 큰일나니까 정신은 차려야지 싶어서 눈을 부릅 크게 떴다.

여름 휴가의 끝은 시작만큼 달콤하지는 않았다. 귀국 비행편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부다비 경유고 무려 17시간에 육박하는 비행이어서 아부다비에서부터는 비지니스 행으로 티켓 경매를 통해 업그레이드를 시켜 놓았다. 거금을 들여 업그레이드를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비지니스석 편의를 온전히 누릴 수 없었던 건 도중에 열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샴페인과 칵테일을 꼴깍꼴깍 마시고 영화 한 편을 보면서 단잠에 빠지려는 때부터 이상 증상이 찾아 왔다. 몸이 쑤시고 오한이 들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열이 난다는 자각조차 없었던 것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웃긴 일이다. 역시 비행은 피곤한 일이다, 기내는 춥긴 춥네, 하면서 내내 오들오들 떨면서 마지막까지도 내가 실제로 아프다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것이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서야 심각함을 인지했다. 중동 국가를 경유했기 때문에 모든 승객은 체온 검색대를 지나쳐야 했는데 공항 직원이 의아해 하며 다시 열을 재보자고 했다. 난 영문을 모른 채 한 쪽 귀에 체온계를 바짝 들이댔다. 이상하다며 다른 쪽도 재보자고 하신다.


"괜찮으세요...?"


공항 직원이 얼떨떨하게 물으신다. 예, 왜요?


"38.8도가 나왔어요."


그 말을 들으니 모든 통증과 신체적 증상이 퍼즐 조각처럼 맞추어지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내가 찐으로 아픈 거였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 선고를 받듯 체온을 확인하고 나니 불현듯 고통이 배가되었다. 여태까지는 정신력으로 어찌저찌 버틴 듯 싶은데 체온이 39도를 넘나든다고 하니 그제야 온 몸 구석구석이 살려주시오 아우성이었다. 일단 집, 집을 가야한다, 귀소 본능이 샘솟았다.


삼사십분 간격으로 오는 셔틀 버스인데 놓치면 끝장이다 싶어서 해열제가 캐리어에 있는 걸 알면서도 냅다 달려서 버스를 잡았다. 버스 안에서도 내내 정신을 못 차리며 좌석에서 젤리처럼 흐물거렸다. 펄펄 끓는 몸으로 한국 땅을 밟으니 리스본에서의 나날이 전생의 기억처럼 느껴졌다. 간만에 고국 땅을 밟았는데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까지 아플 수가 있는 걸까. 서러움의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또르륵 흘렀다.


일주일을 앓았다. 독감도, 코로나도 아닌 급성 인후염이었다. 아무래도 연일 해변에서 몇 시간을 내리 거친 파도와 싸운 탓이리라 짐작했다. 침대에 누워 와병 생활을 지속하며 그래도 포르투갈살이는 찬란했다, 아련하게 속으로 읊조렸다.

겨우 2년여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도 석사 생활을 했을 때 잠시 머물렀던 21년의 리스본과 23년 맞이한 여름의 리스본은 서로 닮아있으면서도 달랐다. 그러니 아마 나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속한 환경이나 신분부터 내 생각이나 가치관도 조금씩 변했다는 걸 깨달으니 지금 이 순간도 방향을 달리하며 변해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다시 포르투갈을 가게 된다면 아마 올해의 여름이 떠오를 것이다. 해변의 모래사장에 불던 미풍과 서늘한 바닷물의 감촉, 엄마 언니와 던졌던 실없는 농담이나 진솔한 얘기들, 포르투의 에그타르트나 늘 식사와 곁들였던 그린 와인의 쌉싸름한 맛 같은 것들. 난 이제 마음 속 한 켠에 리스본의 푸르름을 간직하고게 됐다.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기에 오래도록 남을 기억이 될 것이고,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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