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포르투갈 16 다시 카르카벨로스 해변으로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해변이다. 우린 오늘 더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다. 어제는 해변에 12시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한 시간 더 일찍 출발해 해변에서 보낼 마지막 시간을 더 벌기로. 정말로 작정했다. 포르투갈에서 보낼 마지막 여름의 날이니까.
엄마랑 언니는 심지어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공항으로 가야 했다. 나 또한 내일 모레면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여정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촉박한 일정이야말로 마지막 해변 여행을 해 떨어질 때까지 바다에서 즐기겠다는 다짐에 불을 붙여주었다. 우린 지난 몇 차례의 바닷가 여행을 통해서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조금 더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방수 코팅된 마트 가방에 물품을 하나씩 담아 택시에 올라탔다. 보따리까지 싸들고 해변으로 향하니 여름을 즐기는 프로페셔널 한탕주의자의 진면모가 한껏 드러났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려면 기본 14시간 비행에 몇 주의 일정을 다 조정해 놔야하고 돈 천은 우습게 깨진다. 그러니 아쉬움을 남기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고 말해도 무방한 것이다.
보부상처럼 도착한 해변은 어제보다 더 일찍 왔는데도 마냥 한산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월요일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날씨가 다시 더워지니까 바캉스로 놀러 온 이웃 나라나 타지역 사람들이 다시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인게 이틀 전에 해무가 잔뜩 낀 이 곳은 27도에 불과했는데 오늘은 34도의 쨍한 날씨였다. 우린 곧바로 썬베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오늘은 오래 머무를 걸 각오하고 나왔으니 이왕이면 썬베드까지 빌려 자리를 냉큼 차지해버리면 좋을 것 같았다. 이미 자리가 많이 나가 몇 자리 안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 운 좋게도 우린 가장 앞 줄의 자리를 빌릴 수 있었다. 일단 들고온 짐을 의자와 테이블에 두서 없이 정리해두고선 썬크림을 열심히 짜 발랐다. 해변에 와서 걱정할 건 피부 벗겨지는 일 말고는 없으니 이거 하나만은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어지는 며칠이 곤혹이다.
안개를 걷어낸 카르카벨로스는 내가 알던 얼굴을 다시 보여주었다. 반짝임이 넘실대는 바닷가와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사장. 다만 해변가를 세차게 적시고 빠져나가는 바닷물만이 여전히 차갑고 짙은 푸른빛이다. 가족 단위로 온 피서객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재잘대거나 소란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파도가 밀려드는 소리가 워낙 커서 그 소리마저 파도가 철썩이는 순간만큼은 데시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패드민턴을 치는 아빠와 어린 소년, 조개를 주우러 다니는 여자 아이, 책을 얼굴에 덮고 몸을 태우는 부부, 샌드위치를 만드는 엄마, 그 옆에서 재촉하며 기다리는 아이들, 서로 물에 빠트릴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젊은 친구들. 모두 다른 배경에서, 다른 이유로 해변에 모인 사람들이지만 파도가 치는 지금만큼은 모두가 여름의 한 페이지를 완성할 완벽한 피사체가 되어 주었다.
점심은 간단하게 먹었다. 빠에야와 칵테일 한 잔. 모래사장에 줄지어 있는 레스토랑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갔다. 우린 빠에야를 시키고 한참을 기다렸다. 과연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지 않는 자는 유럽에서 살아남기 힘들구나, 새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고작 한 접시인데도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싶다가도 주방을 바쁘게 오가는 단 한명의 조리사와 카운터와 테이블 사이사이를 잽싸게 가로지르는 서빙 직원을 보면 이만한 속도도 굉장히 빠른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기도 한다. 빠에야는 맛있었다. 배가 고파선지, 우리가 가리는 거 없이 아무거나 다 잘먹어선지는 모른다. 엄마는 이번 여행을 계획했을 때 스페인을 살짝 욕심내기도 했다. 고작 리스본 외곽 해변가 레스토랑의 야매 빠에야 한 접시였다지만 딱 그 정도 스케일이야말로 조막만하게 남은 일말의 아쉬움을 닦아내기에 제격이었다. 정통 빠에야와는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원래 삐딱선을 타는게 엄마와 내 취향이니 그보다 완벽한 스페니시 음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해풍으로 빠에야가 더 짭짤하게 느껴졌다면 기분 탓이려나.
탄수화물을 충전하니 다시 놀 힘이 생겼다. 이번에는 파도타기였다. 해안가의 파도가 여간 거센 게 아니었다. 파도 타기라는 이름보다는 파도로 온몸 두들겨 맞기가 더 적합한 표현일 정도라고 생각한다. 높다란 파도가 올라왔을 때 제 시간안에 깊숙하게 들어가거나 멀찍이 떨어져 나와있지 않는다면 제대로 맞았을 때 일 이미터는 몸이 둥둥 들려 이동하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파도에 몸을 맡겨 떠밀려가는 사람들은 좋아 죽으려고 한다. 파도 굴에 말려서 데굴거리며 모래사장까지 밀려나가면 그만큼 짜릿한 라이드도 없다. 좋은 차 탐낼 필요 없다, 대서양 파도면 제로백 0.5초 컷이다.
파도를 타다가 기운이 빠지면 다시 잎새 뜨기 자세로 바다 위를 불가사리처럼 돌아다니러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어디까지 깊이 들어갈 지는 개인 역량과 재량에 따르는 영역인데 나는 아무리 수영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곳의 억센 파도를 뚫고 다시 지면으로 돌아오는데는 시간이 좀 걸리므로 몸을 사리는 성향이었다. 도전적인 성향을 가진 몇몇 피서객들은 거의 작고 새카만 점이 될 때까지 깊은 바다로 나가는데 멀리서 보다보면 수영을 하는 사람인지 떠내려가는 사람인지 잘 구분이 안 가기 시작한다. 어떤 때 보면 진짜 저 사람이 수영을 하나, 조난 신호를 보내는 건가 헷갈리기도 하는데 모두가 유난스러울 것 없다는 듯 평화롭게 해수욕을 즐기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한국 해수욕장과 유럽 휴양지의 해수욕장이 다르다고 느낀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튜브가 안 보인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자유방임적인 분위기다. 우리 나라의 해변은 대부분 피서객의 안전을 위해서 가드 라인을 설치하고 라이프가드가 시간대 별로 면밀하게 살펴보는 반면, 이 곳의 해변은 관광객이나 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주요 해변이어도 사람들 다수가 각자도생 방식의 해수욕을 즐기는 것 같다. 어쩌면 조금의 위험이나 날 것의 자연에 날 노출시켜도 나쁠 건 없겠다는 생각과 그래도 인간은 무지가 본성이거늘 사람들 손에 너무 큰 자유를 맡긴 거 아닌가, 하는 어쩔 수 없는 안전지상주의자의 생각이 서로 애매하게 걸쳐졌다. 정답보다는 선호도나 지향 가치에 따라 갈라질 주제였다. 개인주의적 선택을 존중할지, 집단주의적 책임을 중요시할지 말이다. 결론은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난 오늘 신명나게 한 마리의 물개가 되어 놀겠다는 것만이 확고한 다짐으로 굳어 졌다.
행복은 이 곳에 있었구나, 카르카벨로스 해변에. 분명 물은 여전히 차갑고 몇 시간째 계속되는 물놀이로 몸은 소금기와 피로에 절여져 있는데 계속 바다를 유영하며 떠다녀도 질리지가 않았다. 내 몸 안에는 정말로 숨겨진 수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손가락이 팅팅 불어서 쭈글쭈글 해질 때까지 아득바득 거센 파도를 온 몸으로 맞고 바닷물을 가르며 헤엄칠 필요가 없지 않느냔 말이다. 어디서 지령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미친듯이 바다를 헤집고 다녔다. 8월의 마지막 주, 리스본의 마지막 해변, 여름의 끝자락. 이 모든 요소가 결합해 내 안의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 때마다 어디선가 눈 뒤집혀질 힘이 솟아나 버리는 것이다. 이제 썬베드로 가야지 싶다가도 파도가 한 차례 더 휩쓸면 다시 몸을 내던졌다. 그럼 몸이 둥실 떠오르고 날 더 깊은 바다로 끌어 간다. 내가 떠나기 싫은만큼 바다도 날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쌤쌤이다. 덕분에 향후 몇 년치 수영까지 몰아서 땡겨 썼다. 기진맥진하고 노곤한 건 두 말하면 잔소리고, 바다를 빠져 나왔을 때는 마치 방방 한 시간을 타고 땅을 디뎠을 때 지면이 출렁거리는 느낌이 오는 것만큼 이질적인 감각까지 느꼈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수영을 즐겼기에 여름을 드디어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5시가 넘어서 바다를 빠져 나왔다. 온 몸이 뻐근했다. 파도 마사지는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자연산근육 이완제였다. 더 놀고 싶었지만 햇볕에 몸을 말릴 시간이었다. 이미 손가락 끝은 퉁퉁 불은지 오래고, 물 속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기니 종래에는 이빨이 딱딱 부딪히며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장 8시간에 달하는 열정적인 물놀이였다. 엄마는 썬베드에 누워 우리보고 징하다고 했다. 오늘같은 여름 날은 몇날 며칠을 반복해도 도무지 질릴 것 같지가 않았다. 사람은 일을 해야 자아실현을 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산다는데 늘 의문을 남기는 바였지만 오늘로써 확실해졌다. 난 바다 위를 맥없이 떠다니는 미역 줄기 같은 삶의 형태에서 오히려 더 큰 기쁨과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 말이다. 내가 계속해서 생업으로써 직장인 신분을 유지해야 한다면 일 년에 며칠 안되는 나의 감춰 두었던 미역 줄기 자아를 실현할 때를 위해서 일 것이다.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펼치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몸을 말리고 햇볕의 온기를 머금어야 할 때였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며 나른해졌다. 이 상태로 낮잠에 들면 아마 누가 업어가도 모를 꿀 같은 잠이리라. 엄마는 썬베드에 누워 있고, 언니랑 나는 각각 돗자리에 누워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몸을 말렸다. 와중에 다시 몸도 뜨뜻미지근하게 달아올랐겠다, 담금질한 번 더 가야 되는 거 아니냐는 이성이 단 한 톨도 묻어나지 않는 광기 어린 충동에도 시달려야 했다. 노을을 보려면 족히 세 시간 가까이는 더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이제 저녁 6시를 막 넘어선 시각, 우린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리스본 돌아갈까?”
“아-”
“어떻게 더 아쉬울 수가 있어, 오늘 거의 혹한기 캠프처럼 놀았는데.”
“그래도 가기 싫다.”
“가는 건 너지, 대서양이 아니다. 바다는 여기 계속 있을 거니까 네가 잊지 말고 다시 와.”
역시 심금을 울리는 건 매번 엄마가 마지막에 날리는 명언이다. 사실이다. 매번 바쁘게 오가는 건 사람이지, 대서양 바다의 한 켠을 차지하는 카르카벨로스 해변은 늘 이 곳을 지킬 것이다. 다시 카르카벨로스 해변을 찾을 날이 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난 그 때가 정확히 언제가 될 지는 손가락을 짚어 집을 수는 없다. 그동안 몇 천번, 몇 만번의 대서양 파도가 카르카벨로스 해변가를 휩쓸지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다만, 다시 오게 될 날에는 나는 내가 원하는 삶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고 더 건강한 모습으로 카르카벨로스 해변의 태양볕을 맞고, 짙푸른 바다에 뛰어들 수 있길 염원할 뿐이다.
택시를 타고 집 앞 골목에서 내렸다. 우린 옷과 마트 가방에 묻은 모래를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탁탁 털었다. 오늘 저녁을 염두해 예약한 식당이 있긴 했지만 거기까지 걸어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때마침 생각난 곳은 집 앞 레스토랑이었다. 여기 지내는동안 꼭 한 번은 가봐야지 했는데 여태 그 한 번을가질 못했다. 집 앞이라 그런지 계속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는데 오늘이 절호의 기회였다. 이제 막 오픈해서 그런지 식사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린 가운데 테이블을 잡고 스테이크 타르타르, 생선 요리와 쌀이 들어간 브라질리언 메뉴를 시켰다. 역시나 그린 와인도 잊지 않고 한 잔씩 시켰다. 귀국이 얼마 안 남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한 모금, 아니, 한 방울의 그린 와인도 더 없이 소중했다.
오늘은 엄마와 언니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다음 날이면 새벽 같이 집을 나서야 한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가는 것 뿐이지만 벌써부터 세 명이 살던 집에 두 명이 나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허전함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아마 내일 모레면 내가 떠나는 날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현관 신발장 옆 쌓아둔 짐이나 불룩하게 올라온 캐리어를 보니 여행의 끝에 다다랐다는 게 여실히 와닿았다. 왔을 때보다 더 무거워져 돌아가는 캐리어 안에는 포르투 와인, 올리브 오일, 빳빳하게 마른 수영복, 아줄레주 수공예품 같은 것들이 담겨져 있을 터였다. 적어도 포르투갈의 조각과 올해 여름의 일부를 집으로 가져간다는 생각이 드니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차차 진정되었다. 지난 한 달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무를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어 기쁨과 행복에 겨운 나날이었음에 감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