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1.01.02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작년은 유독 눈이 내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구온난화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대한민국도 열대 기후권에 접어들게 된다, 뉴스에 종종 우려스러운 전문가의 진단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정녕 야자수가 자라고 파인애플과 아보카도 재배농사를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질 무렵 겨울이 가고, 2020년이 찾아왔다.
말해 입 아프다만 현재 진행형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는 기후 변화 판도에 이례적인 변화를 몰고 오기도 했다.
공장 가동이 멈추고, 사람들이 집 밖 외출을 줄이며, 굴뚝 위에 솟아나던 회색 연기가 잦아들고, 길거리에 던져지는 쓰레기가 줄었다.
환경오염 플레이 버튼에 잠시 0.5배속 제동이 걸려버린 것이다.
한창 몇몇 국가들이 문을 걸어 잠그던 무렵에는 다시 생태계 균형을 찾은 세계 곳곳의 모습들이 이목을 끌었다.
다시 깨끗하게 흐르는 강물과 옹기종기 모여든 멸종위기종의 군락지를 보며 역시 자연의 정화능력은 과소평가할 것이 못되는구나, 감탄했다.
여름은 더웠고, 가을은 선선했다.
겨울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눈 소식은 뜸했다.
한번 오갔단다, 해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인다면 그 누구도 목격하지 못하도록 새벽에 잠시 진눈깨비인지 가랑비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작게 흩날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두어 차례 눈이 내렸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거나 누군가 위험에 처하는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전제를 내건다면 사실 참 아름다운 것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다.
특히, 팔랑거리면서 큼지막하게 내리는 눈은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보다도 낭만적인 씬이 연출된다.
스노볼을 마구잡이로 흔든 것처럼 사방으로 향하지만 결국 땅 위에 쌓이고 마는 눈의 결정들을 보고 있으면 참 희한하다.
어떻게 이런 게 지구에 불시착하게 됐을까.
어쩌면 외계인이 보내는 신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괜히 미심쩍어지는 의문을 뒤로한 채 쌓인 길을 따라 걸음 하면 뽀득, 뽀득, 깜찍한 소리는 덤이다.
어렸을 때에 비해 확실히 눈발은 옅어졌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하루 꼬박 내린 폭설로 학교를 못 간 날이 있다.
펄펄 내리는 눈은 엉겨 붙어 떨어져 내리고 녹기도 전에 새로운 층이 얹어져 마치 눈으로 만든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눈발이 쌓여갔다.
검은 비닐봉지를 구해다 엉덩이에 대고 작은 언덕을 미끄러져 내렸다.
분명 앉아서 시작했는데 언덕배기의 끄트머리쯤에는 봉지는 저기 굴러다니고 내 바지만 축축해져 있다.
눈사람 만들기는 흡사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공사현장을 방불케 한다.
먼저 여러 명의 친구들을 포섭한 뒤에 이거 다 만들 때까지 집에 아무도 못 간다, 비장한 다짐을 받아낸 후에야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눈을 굴리는 팀, 눈을 조각하는 팀, 장식하는 팀까지 분업 체계를 다져나간다면 프로젝트의 효율성은 배가 된다.
도중에 눈이 깨지는 불상사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서로 격려를 해나간다면 팀워크를 견고히 다녀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차저차 눈사람이 만들어지면 사진을 찍거나 누군가와 공유할 수조차 없다.
꽁꽁 언 손을 비비며 그저 서너 발치 뒤에 각도를 달리하며 둘러본 후에 제작 참여한 동기들이 흡족한 감상평을 저마다 내놓는 게 마지막 순차다.
눈사람만큼 덧없는 놀이도 없다지만 그 나이 때 행해지는 놀이터 놀이들이야말로 딱 그 순간의 즐거움만을 노리는 쾌락주의적 사고가 팽배해있다고 할 수 있다.
저녁 8시가 되어 해가 저물고 집에 들어갈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손을 탁탁 털고 일어나 내일의 만남을 기약하는 그런 초등학생의 쿨함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모두가 흩어져 홀로 남게 된 눈사람은 그 자리에 곤히 서서 차가운 새벽녘을 맞이하고, 더 단단해지고 매끈한 투명색 얼음이 되어 그다음 날 아침까지 건재하게 서있다.
혹은, 올라가는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바닥을 조금씩 적시며 녹아내리기도 한다.
아무리 단단한 눈사람이어도 햇살을 오래 받게 되면 몸체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눈과 코가 떨어져 나가고 종래에는 두 개의 구가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질 즘에 그 지척에서 아마 창조자들이 새로운 놀이를 개발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한들 눈사람은 아이들에게 한 때의 기쁨을 선사해주었기에 떫은 기억 하나 없이 도로 흙바닥에 스며들 수 있다.
이번 겨울에 내린 눈치고는 꽤 소복이 쌓였다.
희끗희끗해진 도로 위에는 차들이 반 템포 느리게 박자를 밟는다.
주차장을 확장하느라 반토막이 난 놀이터에는 눈이 그대로 덮여있다.
네모난 그 공간을 빼곡히 채운 탓에 에이포 용지가 그 위를 틀에 맞추어 얹어진 것 같다.
여태까지 발자국 하나 나지 않은 놀이터를 지나가다 괜한 마음이 들어 발걸음을 멈췄다.
방향을 틀어 놀이터를 가로질러 길을 내주고 그것도 모자라 이리저리 꼬리 물어 발자국을 내고 나서야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