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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Apr 12. 2021

Homemade

55 days

2020년 3월 1주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시작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제 아무리 비현실적이더라도 그 일이 내 현실이 되지 않는 한 그 규모와 깊이는 가늠할 수 없다.

한국에서 마스크 품절 사태가 일어나고, 약국이 북새통을 이루며,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그런 내용들.

와 닿지 않았다.

바다 건너 대륙 건너 사는 내겐 가족과 내 사이에 놓인 거리만큼이나 가족들에게 부딪힌 현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 화면으로 그 소식을 조각조각 확인하고 짧은 고민 끝에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한국 진짜 그래?”

“말도 아니야. 거긴 어때? 괜찮아?”

“여긴, 뭐. 평소랑 다를 건 없어.”

“그래도 이럴 때 차라리 너 나가 있어서 다행이다.”

오 분여 간의 짧은 통화가 종료되면 걱정은 한결 옅어졌다.

전화하길 잘했다. 뉴스로만 접하느니 차라리 전화를 해서 직접 목소리를 듣는 게 걱정을 누그러트리는 특효약이다.

손가락으로 뉴스 화면을 밀어내고 넷플릭스 화면을 켰다.

주말 자정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 대신 새로 시작한 시즌의 마지막을 향해 가열차게 달려가는 모습이 조금은 한심하기도 했다.


2020년 3월 2주

다음 날, 단과대 건물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다.

몇몇 친구들은 학식 쟁반을 내려놓고 먹었고, 나를 비롯한 다른 몇몇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냈다.

그 날 난 샌드위치를 만들어 온 걸로 기억한다.

복숭아 잼을 한 면에 바르고, 다른 면은 햄과 치즈를 얹었다.

“요새 중국 쪽 상황이 안 좋대. 바이러스가 돈다는데.”

“여긴 멀어서 괜찮아. 그리고 바이러스는 매년 도는 거잖아. 심한 독감 정도겠지.”

“거리까지 봉쇄했다는데?”

“여기까진 안 와. 손이나 잘 씻어.”

“넌 얼굴이나 잘 씻어라.”

손이나 잘 씻으라는 친구가 얼굴이나 잘 씻으라는 친구에게 다 먹은 과자 껍데기를 던진다.

다들 웃었다.

다만, 나랑 중국인 친구만 서로를 향해 어깨를 으쓱 이긴 했다.

심한 독감정도라기에는, 좀.

조금은 불편한 마음과 애써 가볍게 넘기려는 안일함에 속이 부대꼈다.

식사 후에는 햇빛이 좋아 수업 시간 전까지 밖에 있기로 했다.

한 명이 누군가의 다리를 베고 눕자 다들 다리 한 짝씩을 포섭해 머리맡을 기울였다.

학교가 언덕 배기진 곳에 위치한 덕분에 올라오기는 고역이어도 이렇게 잔디밭에 누우면 하늘이 정말 가깝다.

듣던 대로 유럽은 하늘이 정말 예쁘구나, 시야에 건물이 안 보여서 그런가, 생각을 하면 노곤해지고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해가 발갛게 익어서 눈을 감아도 눈앞이 뜨끈하다.

이 날은 아침에 핸드폰 알람을 끈 것부터 밤에 이불을 덮을 때까지 작은 장면들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생각하건대, 이 날이 봄학기의 마지막 등교날이라서 그럴 것이다.


2020년 3월 3주

불과 2주 전에 있었던 스페인은 국경을 걸어잠갔다.

옆 나라 프랑스도 질세라 국가 봉쇄에 들어갔다.

마트 진열대가 비어갔다.

친구들과의 단체 메시지방에는 내가 있는 지역의 현상황을 전하는 보도뉴스와 화장지와 관련된 밈이 오갔다.

이 와중에 친구 중 한 명이 드디어 미친 사람들이 나오고 있어, 라는 사족을 달고 짤막한 영상을 보내왔다.

아저씨 두 명이 지붕 슬레이트를 밟고 담배를 피우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린 이제 바깥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길거리에 보이는 사람도, 차도 시간이 갈수록 줄었다.

하우스메이트들과 저녁에 모여 카드게임을 했다.

옆방 네덜란드에서 온 하우스메이트는 다음 주에 귀국할 비행기 표를 끊었다고 했다.

“여기도 봉쇄하기 전에 나가야겠어.”

다음 날 점심에 이탈리아 하우스메이트들이 피자를 만들어 같이 나눠 먹었다.

정말 맛있어서 숟가락까지 들고 플레이트 구석까지 긁어먹었다.

그중 한 명의 아빠는 외과의사였다.

“우리 아빠가 무조건 청결 유지하고 집 안에만 있으라고 했어.”

네덜란드 하우스메이트가 방을 빼는 날, 우린 다 같이 짐을 쌌다.

옷더미를 담을 캐리어가 없어 이불보와 테이프를 엮어 나름 그럴듯한 대형 에코백을 만들어줬다.

엘리베이터에서 작별 인사를 하며 서로의 건강을 기원했다.

시간이 흐르긴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지못해 한 칸씩 움직였다.

사망자수와 확진자 수 마련된 병상수와 치료일 수 락다운에 접어든 날짜 대통령 담화 시각과 채널 몇 번

둥둥 떠다니는 0부터 9 사이의 숫자가 일구는 무한의 조합들 중 내게 의미 있고 확신을 주는 것은 어느 하나 보이지 않았다.


2020년 3월 4주

하루 일과는 간단명료했다.

일어나면 씻는다. 머리를 고무줄로 묶고 가스레인지 불을 켜 요깃거리를 만든다.

완성된 요리를 그릇째 옮겨 책상 위에 얹고, 아이패드로 넷플릭스를 켜 정주행하고 있던 킹덤 새 시즌을 마저 달린다.

역병에 걸린 자들로부터 도망치는 병사를 보며 입을 벌린 채 밥숟가락을 넣어 놓고만 있는다.

결국 물려버려 전염되는 과정에서 몸을 이리저리로 비트는 병사의 괴이한 움직임을 보며 숟가락을 빼내 음식을 마저 씹는다.

좀 짠데, 역시 간장 조절에 실패했다 싶다.

다 먹은 그릇은 식기세척기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 설거지를 한다.

방에 돌아오면 10시.

잠들기까지 열두 시간이 남았다.


2020년 4월 1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빙글빙글, 어지럽기만 하다.

나는 지구본 어느 쪽에 붙어있기는 할 텐데 그마저도 매일 밤 헐거워져 두 발을 동동 띄운 채로 부유한다.

네 면과 네 모서리 안의 20 제곱미터만큼 작아진 세상이 너무도 볼품없다.

하루 확진자와 총 확진자.

가장 명확하게 선이 그어진 그 분류법에 이젠 익숙해졌다.

어쩌면 내가 걸렸는데 증상이 없어졌는지도 모르지.

보험으로 어떻게 되겠지, 아니 어차피 여기선 걸려도 자가치료잖아, 그럼 무슨 소용이야.

생각이 꼬리를 물면 얼른 인터넷 창에 코로나 증상을 검색했다.

후각과 미각 정상 설사 없음 고열 없음

한 칸씩 체크를 해내려가면 한 겹씩 안도감이 쌓인다.

그러다 한 번이라도 머리가 띵하게 울리게 되면 적립해놓은 그 안정감은 삽시간에 증발해버린다.

더 이상은 이런 생활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밤 열 시에 침대에 모로 누워 화면 스크롤을 이리저리로 올리고 내린다.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탭만 다섯 개를 띄워놨다.

하루만,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 무슨 수가 나오겠지.

핸드폰 화면만이 방 안을 밝힌다.

한 손에 꼭 쥐고 바로 누우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의 빛도 수그러든다.

모든 빛이 빠져나간 이 곳은 너무도 어둡다.

눈을 감아도, 떠도 깜깜하다.


2020년 4월 2주

“한국에 갈래.”

어느 대낮에 찾아온 찰나의 깨달음은 여태까지 쌓아놓은 생각의 스위치를 누르는 마지막 기폭제였다.

그렇게 몇 날 며칠 헤매기만 했던 고민의 끝은 23C 통로 측 좌석에 귀착했다.

스키폴 공항에서 8시간의 경유가 있었다.

아이패드를 꺼내 넷플릭스 아이콘을 클릭했다.

Homemade,

코로나가 스며든 바뀌어버린 일상을 기록한 단편집이었다.

검은 화면으로 넘어가고 1화가 시작된다.

On March 17th, 2020, lockdown started in France for a duration of 55 days.

텅 빈 공항의 빨간 가죽 의자에 모로 돌려 앉아 그 기록물을 들여다보았다.

55일의 기록물의 모서리에 서있는 내가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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