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음방학 08 8월12일-8월13일
8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방학을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8월 중순이다. 덮어두고 놀다가 개학일자가 다가왔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 나니 아직 방학이 더 남았는데도 위기의식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미리 대학교 친구들과 날짜를 잡아두고 에어비엔비를 예약해 둔 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짐을 풀세라 다시 챙겨서 다른 곳으로 놀러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원래는 같이 워터파크를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얘기가 오가던 중 사정이 생겨 대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서울 도심 에어비엔비에서 1박을 하고 놀기로 했다. 서울 도심지에서 함께 보내는 1박 2일이라니, 오히려 좋다. 대학교 친구들과는 오래간만에 즐기는 여행이다. 다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5명이서 한꺼번에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도 않고, 그러면서 숙박을 하는 건 더 까다로운 일이라서 이렇게 날짜를 맞추어 얼굴 보는 건 자주 오지 않는 기회다. 에어비엔비는 북촌 근처로 잡았다. 한여름 땡볕에 경복궁을 가거나 북촌 골목을 돌아다닐 건 아니지만 근처 먹을거리나 볼거리가 풍성하게 있으니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나와서 즐겨도 되는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5명이 널찍하게 놀 공간으로도 좋아 보였다. 에어비엔비를 예약하고 더 생각해야 할 게 있나, 없어 보였다. 그래서 예약 일자가 다가오는 날까지 별도로 챙겨야 할 것도, 준비해야 할 것도 없어 몸도 마음도 더없이 편했다.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 볼 생각에 그저 신이 났다.
대학교 친구들로 말하자면 스무 살을 함께 시작한 친구들이자 어른으로 사는 법을 같이 익힌 친구들이 되겠다. 스무 살은 참 이상한 나이다. 성인이 되었으나 어른처럼 느껴지지 않는 나이. 주변 어른들이 이제 다 컸네, 그렇게 말씀은 하시면서도 딱히 어른으로는 받아주지 않는 나이. 편의점에서 술도 사서 마실 수 있고, 지하철에 교통 카드를 대면 삐빅 대신 삑 소리가 나는데도 대학교 강의 들을 때는 여전히 손 들고 교수님께 화장실 가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게 되는 나이. 그렇게 맞이한 스무 살에 친구들과 나는 우리 학교 축제는 재미없다고 옆 학교 축제 우르르 몰려 가고, 어설프게 화장한 얼굴로 대학가 술집에서 미팅도 했다. 남자 친구를 사귀고, 차이고, 전남친 딱지를 붙여주고 험담을 한다. 조 과제를 하고, 시험을 망치기도 한다. 술을 마시고, 벌게진 얼굴로 주정을 부린다, 서로 부려대서 누가 더 진상인지 구분도 못 한다. 점점 스무 살에 익숙해질 쯤에 스물한 살이 되고, 그제야 어른이 되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닫게 된다. 어느덧 우린 서로의 스무 살을 기억한 채로 서른이 되었다.
대학교 친구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고마운 마음이 있다. 어휴, 이혜린, 또 까먹었어, 어디서 뭐 흘리고 왔어, 너 어디가 공부해야지, 뭐 잃어버렸는데, 내일 시험이라고, 오늘 수강신청인 거 알지. 우리 우정에 입이 달려 말을 할 수 있다면 끊임없이 귀를 파고드는 잔소리일 것이다. 우린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우고,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였다. 특히나 나고 자란 동네를 떠나 낯선 땅에서 성인으로서 첫 발을 디딘 나로서는 친구들의 존재가 더없이 크게 다가왔다. 서울 지하철은 왜 이렇게 노선도 많고 복잡한지, 서울 시내 바닥은 왜 그렇게 사람이 많은지, 서울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다들 똑 부러지는지 영문도 모르고 주눅만 들기도 했다. 이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난 아마 방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갔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방 밖은 위험해, 진짜 위험해, 오들오들 떨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모든 게 미숙하고 엉성했다. 열심히 매달린 과제도 결과가 처참할 때가 더러 있었고, 우리끼리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오히려 오해를 살 때도 있었다. 그래서 웃겼다. 실과 수업 때 코바늘을 뜨는데 얼기설기 구멍이 뚫렸다. 하찮기 그지없는 코바늘 주제에 수행 평가라고 하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연주랑 다현언니가 손도 안 보이게 떠줬을 때는 진정 내 눈에는 영웅으로 보였다. 체육 수업 때도 벽대고 물구나무서기랑 뜀틀로 애 먹고 있는데 재연이가 잡아줘서 부들부들 대면서도 속성으로 익힐 수 있었다. 아니었으면 난 뜀틀 귀신이 되어 체육관을 밤새 맴돌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 과제를 할 때는 지연이가 항상 중재자 역할을 잘해주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는 싫어도 감정이 상해 꿍해 있어도 지연이가 잘 풀어주고는 했다. 지연이는 그 때나 지금이나 항상 해맑다. 4년 내내 같은 반으로 거의 하루 종일 같은 수업을 듣는 우리는 친할 수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친할 수밖에 없어서 친한 게 아니라, 우린 친해지기로 서로를 선택했던 것이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함께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이유를 모르고 묻지도 않은 채 즐거웠으니 말이다.
누구야, 생일 축하해(하트) 우리가 스무 살이었을 적에 카카오톡 서비스가 처음 시작 되었다. 처음 체험하는 온라인 소통의 장에 신나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하나다’라는 연대 의식과 소속감에서 비롯된 의식일 수도 있었다. 스무 살의 우리는 항상 우리 중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상태 메시지를 통일했다. 강의실 자리를 맡아주거나 도서관 좌석을 같이 예약해 주었다. 수강 신청할 때 선택을 해야 한다면 강의 커리큘럼보다는 누구랑 같이 수업을 들을지가 더 중요했다. 그런 단합의 순간이 올 때마다 난 이렇게나 튼튼한 울타리 속에서 더없이 큰 안전함과 포근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우리의 우정은 많은 걸 포함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서로 조금씩 옭아맨 구속마저도 그저 멋지다고 생각했다. 너네는 이런 친구들 있니? 난 있는데, 하하. 친구들은 내 자랑거리이자 든든함 그 자체였다.
전공 수업으로 들은 수업 중에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구성하고, 지도안을 작성하는 과제가 있었다. 수업 지도안은 대체적으로 틀을 갖고 있는데 이는 정형화된 틀 속에 가두려기보다는 주어진 수업 시간 40분 안에 배움 목표에 도달하고, 성취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수업 활동 간 유기성을 갖기 위함이다. 그래서 동기부여, 활동 두세 가지, 마지막으로 배운 내용을 마무리하고 다음 차시를 확인하며 수업을 마치게 된다. 우린 도덕과 수업을 선택했다. 단원명은 ‘너희가 있어 행복해’. 우린 감정을 익히고, 상황에 맞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수업을 설계했다. 주요 활동으로 학생의 경험을 감정 단어와 연결 지어 보는 활동에서 우리는 교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교구는 만들기 나름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마이크가 필요한 연극 활동에 마이크가 없으면 빗자루를 갖고 색지로 감싸 마이크라고 하면 마이크로 변신한다. 원래 교실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마법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공간이다. 우린 학생의 마음을 읽는 기계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바로 이 순간에 우리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될 MRI가 탄생하였다. MRI는 Mind Reading Instrument의 약자다. 일단 그 네이밍부터가 얼토당토않았다. 부연 설명을 이어가자면 이 기계를 머리에 쓰면 학생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되고, 감정을 표현할 매체를 얻게 된다. 은박지 두른 헬멧도, 머리띠도 아닌 이상한 것을 쓰면 말이다. 이걸 만들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왜 이렇게 웃겼는지 그때도 영문을 모른 채 도서관이라고 입 막으면서 꺽꺽거리면서 웃었는데 아직까지도 같이 있을 때 얘기가 나오면 MRI의 억지스러움은 웃음 버튼이다. 열심히 과제를 하던 끝에 미쳐버리고 만 건지 어휴,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교구를 만들어 버린 건 대체 무슨 배짱이냐 이거다. 꾸역꾸역 만들어 놓은 허접한 교구가 얼마나 우리의 얼렁뚱땅 20대 같은지 모른다.
너희들이 있어 행복해. 초등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대학교 3학년이던 그때의 내 인생에도 같은 단원명을 붙여 줄 수 있겠다. 너희들이 있어서 세상 막막했던 독립생활도 얼레벌레해냈고, 영 자신 없던 교생 기간조차 대표 수업을 하며 무탈하게 지냈다. 너희들이 있어서 밤낮으로 도서관 의자에 앉아 임용 공부를 하던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고, 중간기말고사 기간의 고통도 승화시켰다. 나는 너희들이 있어서 이따금씩 비바람 들이차던 20대가 행복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너희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