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티켓을 거머쥐었다. 가게 된 계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가을 하늘 공활하며, 높고 구름도 없는데 딱 페스티벌 가기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실행된 것뿐이었다. 10월은 콘서트나 야외 페스티벌이 거의 매 주말마다 있었고, 친구랑 나 모두 되는 시간을 찾다 보니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낙점되었다.
본래 활발하게 나돌아 다니는 성향이 어닌데도 혼자서 또는 친구들, 가족과 함께 페스티벌 여러 군데를 야무지게 돌아다녔다. 주로 서재페나 그린플러그드 같은 야외 페스티벌이나 움프나 월디페 같은 edm 페스티벌이었다. 이십 대 초반에 첫 야외 페스티벌을 간 이후로 그 매력에 빠져 그다음 해, 다다음해에도가다보니 매해 여기저기를 다니게 되었다. 우천으로 페스티벌 천막 다 무너진 와중에 우리 식당 영업합니다 바이브의 축제도 있고, 살림살이 내다 파는 수준으로 이거 저거 잃어버렸던 적도, 다녀온 뒤 심하게 몸살앓이를 했던 축제도 있었다. 두루두루 매번 즐겁고 신나기만 한 것도 아닌데 매번 뮤직 페스티벌을 다녀오고 남는 건 살랑살랑 바람과 바람결 타고 귓속 간질거리는 선율이어서 그 맛을 도저히 잊지 못하는 거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듣기만 하고 엄두를 못 낸 게 일단 가는 이동 편이 불편하고, 재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였다. 여전히 자라섬은 멀기만 하고, 라인업을 봐도 아는 아티스트 하나 없지만 그래도 가기로 결심하고 티켓을 구매했다. 모든 건 티켓 구매에서 시작한다고, 사고 나니 신이 났다. 자라섬아, 이 몸이 가신다.
나름 피크닉 테이블과 돗자리, 간단한 먹거리와 놀거리를 챙겨서 갔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는 굉장히 약소했다. 다들 그 순간 전쟁 터져도 한 달은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생필품을 챙겨 온 것만 같았다. 인상 깊었던 건 두꺼운 패딩과 군밤장수 모자를 입으신 분과 와인병과 안주를 화려하게 싸들고 오신 분이었다. 산에 둘러 싸여서인지 주변 공기가 꽤 서늘했다. 나름 껴입고 갔는데도 그늘이 드리워지면 닭살이 돋아서 패딩으로 중무장하신 분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간식을 성실하게 준비해 갔는데도 흡사 오픈형 비스트로를 표방해 피크닉 테이블을 펼쳐 놓으신 분들도 더러 계셔서 얼마나 탐이 났는지 모른다. 펼쳐놓은 색색의 돗자리마다, 모여 앉은 사람들마다 외딴섬 같았다. 군데군데 산호초도 있고, 화산섬도 보였다. 외따로 있던 작은 것들이 파도에 밀리고 조류에 휩쓸려 하나의 군락을 이루었다.
재즈를 즐겨 듣는 편이 아니어서 음악을 이해하며 듣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특별히 아는 노래가 있거나 아티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즈 역사를 빠삭하게 아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분위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감성이 있지 않은가. 그동안 갈고닦아온 예술 갬성을 십분 활용하여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성심성의껏 즐길 수 있었다.
다이소에서 사 온 물품은 요긴하게 쓰였다. 피크닉 테이블 정도는 있어야겠다 싶어서 샀는데 들고 다닐 때는 귀찮아도 오천 원의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나머지는 글라스 데코, 블록 쌓기 놀이랑 찍찍이 캐치볼 같은 애들 장난감이었는데 아무래도 광활한 벌판에 나동그라져있으니 그런 유치한 장난감도 제법 알찬 재미를 선사했다. 밴드 공연이 한 차례 끝나면 삼십 분가량의 인터미션이 주어지는데 그때 중간중간 놀 거리나 쉴 거리를 마련해 가면 좋다. 보드 게임이나 책을 챙겨 가도 쾌청한 날씨 누리고 좋은 음악 들으며 풍성한 시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책을 들고 가기는 했으나 대략 열 쪽 정도 읽고 잠들어 버렸다.
해가 저물고 저녁쯤 되니 쌀쌀해졌다. 푸드 트럭에선 다양한 음식과 간식을 팔았는데 고심 끝에 피자를 주문했다. 뜨끈한 김이 오르는 피자를 덥석 베어무니 고소한 풍미가 입 안에서 퍼졌다. 한낮부터 시작해 계속 이어지는 야외 놀음에 점점 몸이 피로해지던 차였다. 따끈한 음식이 들어가니 꿀떡꿀떡 잘만 넘어갔다.
집에 가기 전에 꼭 불꽃놀이를 보고 가고 싶었다. 탁 트인 전경에서 올려다보는 불꽃놀이는 정말 근사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늦은 시각까지 공연이 이어졌고, 아무래도 빠져나가는 길이 많이 정체될 것 같아 먼저 짐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 한 터럭 남기고 들어오는 길목을 다시 되짚어 나가려는데 번쩍, 하고 하늘이 순간 반짝였다. 디즈니 영화의 오프닝 장면처럼 불꽃 자락이 어두운 밤하늘을 한 땀 한 땀 수놓다 긴 꼬리를 남기며 사라지고, 새로운 불꽃 줄기가 피어올랐다.
불꽃놀이를 뒤로 하고, 자라섬을 빠져나오는 길에 오길 천 번 만 번도 더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교통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재즈에 대해 박학다식한 것도 아니어서 여러 번 거듭 고민을 하긴 했다. 하지만 축제의 시작부터 불꽃이 아른거리는 밤이 오기까지의 시간이 그만큼 값졌다. 이전 일의 모든 망설임은 훌훌 떨쳐내도 좋을 만큼 큰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