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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쥐의 서울 여행, 눈 내리는 북촌

은덕 문화원, 경복궁 돌담길 투어, 맛도리 밥집

by 이해린

서울에 살면서 서울을 여행해 보기로 했다. 돌아보기로 한 곳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촌과 북촌, 광화문 일대다. 하고 싶은 활동을 추리다 보니 이동하기 쉽도록 숙소를 광화문 대로에 잡게 되었다. 토요일은 오전 일찍 만나 은덕 문화원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점심을 먹고 나선 서울 도보 여행을 신청했다. 서울도보해설관광 사이트에서 문화 해설사와 함께하는 여러 주제의 도보 여행 코스를 제공하는데 우리는 그중 경복궁 돌담길과 청와대를 선택했다. 광화문 숙소에서 한 밤 묵고, 다음 날은 청와대 정규 해설이 있는 3시에 맞추어 청와대 내부 가이드를 들어보기로 했다. 주말 내내 바지런히 움직여야 할 일정이 나오게 되었다.


전날 밤, 같은 서울이어도 나름의 여정이라고 배낭을 두둑하게 챙기고 잠들었다. 다음 날 9시까지 종각역까지 가야 했다. 비몽사몽 지하철에 오르고, 한산한 1호선에서 배낭을 무릎에 올리고 잠깐 얼굴을 묻었다. 종각역 앞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친구랑 만나 은덕 문화원으로 향할 참이었다. 카페인을 양껏 들이키니 정신이 좀 차려졌다. 늦을까 싶어 얼른 가방을 둘러매고 나오는데 얼굴이 금방 시려졌다. 3월답지 않은 찬 바람이었다. 눈앞으로 얼기설기 날아다니는 허여멀건한게 뭐지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진눈깨비가 휘날리고 있었다.


우리의 첫 집결지는 은덕 문화원이다. 이곳은 원불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화예술공간이라고 한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 걸음한 곳이었는데 창덕궁을 마주한 위치에 한옥 건물이다 보니 종교적 색채보다는 오히려 문화 공간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대문 앞에는 은덕 문화원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문화 행사나 정규 프로그램이 포스터로 걸려 있다. 서예 수업, 요가와 명상 프로그램, 클래식 해설 수업, 독립영화 상영 등등. 특히, 북촌 시네마 프로그램에선 오는 4월 15일, 괜찮아 앨리스라는 영화를 보고 각자의 행복을 정의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호기심을 부르는 내용이 많아서 진작 알았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https://linktr.ee/eundeok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은덕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 일정 및 내용을 확인하고 예약할 수 있다.


우린 은덕 문화원에서 매주 토요일 아침 10시에 열리는 대화가 있는 명상에 참여했다. 바깥에는 여전히 진눈깨비가 바람결 따라 흩날리고 있었다. 마루 끝은 물기로 축축하게 젖었다. 갈퀴로 정갈하게 길을 낸 자갈 마당에 눈이 쌓이는 걸 보고 싶었지만 바람이 차 오래 서있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명상은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는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 준비 자세와 몸 푼 방법 등등을 알려주셨다. 명상을 처음 하는 건 아니지만 늘 어려움을 겪는다. 비집고 밀려드는 잡생각은 그나마 지니고 있던 얄팍한 의지마저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잡생각의 숙주가 되어 있자면 시간은 물처럼 잘도 흐르는데 자꾸만 단전에 집중해야 되고, 허리는 곧추 세워야 하니 답답한 와중에 시간은 멈춘 듯하다. 단전의 위치와 호흡에 집중하고, 딴생각에 휩쓸리지 않으려 무딘 애를 썼다마는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매일 같이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수련한다면 차차 나아지겠지. 들은 말씀 중에 명상을 한다고 특별한 시간이나 장소를 찾을 필요가 없으니 일상 속에서 틈틈이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속한 상황을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평안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수행이니 말이다.


점심을 먹고, 여행객들 틈에 껴서 북촌 거리를 돌아다녔다. 이질적인 언어를 주고받고, 그들의 일상을 벗어나 묘하게 들뜬 관광객의 모습을 보니 익숙한 풍경임에도 우리도 마찬가지로 낯선 곳을 탐색하는 여행자가 된 듯했다. 다음은 돌담길 해설 투어를 들으러 경복궁역 5번 출구로 향했다.


해설 주제는 경복궁 돌담길과 청와대였다. 경복궁 한 바퀴를 크게 돌며 길가에서 볼 수 있는 건물이나 옛 터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주셨다. 원래는 입구에서만 듣는 걸로 마치려다가 결국 입장까지 한 곳은 청와대 안에 위치한 칠궁이라는 곳이었다. 조선의 왕위에 오른 자식을 낳았으나 왕비가 되지 못하고 후궁으로만 남은 일곱 후궁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영빈 이 씨와 숙빈 최 씨, 해설가님이 알려주시는 어머니의 이름은 영 낯설었지만 장차 자란 자식들이 사도세자와 영조가 되었다고 하니 이렇게 궁을 따로 증축해 위패를 모실만 하구나 싶었다. 희빈 장 씨인 장희빈의 위패도 이곳에 있다. 종묘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일 년에 한 번씩 제사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해설은 두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특정 고궁을 들어가 그 안에서 위치로 옮겨가며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고궁 주변을 걷고 둘러보는 여정인 것이 독특했다. 그래선지 잘 정리된 지식을 전달받기보다는 조선 시대 이곳은 이랬다더라, 어떤 사람이 저랬다더라 하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거에 가까웠다. 서울 도보 해설 관광 사이트(https://korean.visitseoul.net/walking-tour?curPage=1) ​에 접속하면 폭넓은 주제로 매일 진행되는 투어를 둘러볼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을 여행자가 된 양 둘러보고 싶다거나 서울 놀러 와서 구석구석까지 탐방하고 싶으면 꼭 한 번씩 신청해 보면 좋겠다.


저녁은 칼국수랑 두루치기 먹었다. 원래 먹으려던 건 영 다른 메뉴였으나 재료 소진과 사장님의 권유로 비자발적 주문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칼국수와 제육 두루치기를 한 입 먹으며 사장님의 회유에 잘도 넘어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쌀쌀한 바람을 하루 온종일 맞으며 욱신거리던 몸이었는데 뜨끈한 칼국수 국물과 매콤한 두루치기 양념으로 기력을 회복하였다.


딴 나라 여행 가면 삼만보는 기본이다, 하루 반나절은 걸어야 제대로 여행한 거다 등등의 말들을 한다. 큰돈 주고 먼 곳까지 여행 갔으니 뽕 뽑아야 된다는 거다. 허나 난 단지 서울 한 끝에서 살다가 다른 끝으로 주말 나들이 온 거뿐인데 왜 이만오천여보를 걸은 것인가. 어쩐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후들거렸다. 친구 팔을 꼭 부여잡고 숙소로 향했다. 휴식이 급선무였다. 내일은 또 내일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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