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s, huevos.
우스, 우에보. 제일 먼저 바구니에 담은 카탈루냐어와 스페인 단어 중 하나다. 달걀을 자주 먹었고, 그래서 자주 들여다봤다. 마트에 가면 달걀이 어디 있는지 먼저 외웠고, 그 위에 적힌 종이 상자 위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6 ous frescos. 글자가 휘고 접히는, 심지어 위에 점이 위로 찍, 아래로 찍 그어지기도 하는 이상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듯하게 읽히는 몇 안 되는 단어 중 하나, Un ou, un huevo. 마치 달걀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단어인 것처럼, 또는 가장 이치에 맞는 단어인 것처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 난감하다. 구글 번역기 쓰면 되잖아, 지피티로 보여주면 되잖아. 말은 쉽다. 아니, 사실 말은 어렵다. 대할 대, 말씀 화. 상대를 대하며 말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러니 서로 눈을 보고, 얼굴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나누는 담소에 기기의 침투는 반갑지 않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나누는 소통에서 어색함을 한 겹 더 껴입는 셈이다. 그래서 주머니 속에 든 핸드폰 위로 손가락만 꿈질거릴 뿐이다. 꺼내선 안된다. 그 반들반들한 기기가 담고 있는 몇 만개의 단어와 몇 천 개의 문장에 절대 현혹되어선 안 된다. 얇디얇은 뇌 주름을 펴서 그 안에 구깃구깃 껴있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헤집어 빼내서라도 내 입으로 토해내야 한다.
달걀 안에는 얇은 막이 있다. 외부 세계인 달걀의 껍질과 내부의 유동하는 물질을 가르는 한 겹의 우윳빛 막. 낯선 거리와 골목, 낯선 사람들, 낯선 말과 글 속을 유영할 때면 온몸으로 불투명한 막을 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아마도 그래서인가. 뿌연 막 아래의 내가 누군지 진정으로 보이지 않아 내게 가까워지는 걸 머뭇거리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당신들의 말소리가 달걀의 단단한 외벽을 쿵쿵 친다. 나 불렀어? 무슨 얘기해?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가보아도, 한 발짝 더 다가서도 웅성거림은 몽롱하게 커질 뿐이다. 선명해지지 않는다. 당신들의 소리가 소음이 되어 내게 전해질 때, 막을 걸친 나는 더더욱 연약해진다. 무리의 가생이를 따라 걷고 또 걸으며 한껏 신중해진다. 당신들 틈에서 조금씩 더 외로워지기도 한다. 흰 자와 노른 자가 기우뚱거리며 좌로 갔다, 우로 갔다 출렁인다. 그럼에도 어떤 소리도, 어떤 의미도 막을 넘어 전해지지 못함에 내막은 고요해진다. 바깥의 소리를 온통 덮어버릴 것처럼.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고 하던데, 그러니까 알은 곧 세계라는데. 알을 깨기에 입고 있는 불투명한 막은 포근하고 부드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어 내려고 한다. 불현듯 귀에 꽂히는 정직한 단어가 무척이나 반갑기에. 또박또박 되물어 오는 다정함이 가슴에 화살처럼 박히기에. 나는 진심으로 당신들의 꼬불거리는 곡선과 반듯한 직선을 타고 언젠가는 당신들에게 닿길 바라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