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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독토독, 쏴아아, 비가 와요.

by 이해린

비가 하염없이 오는 날이면 학교는 더 가기 싫어져요. 학교 가는 길, 요리조리 바닥만 쳐다보며 웅덩이를 피해도 교실로 올라가면 바지 뒷단은 다 젖어있기 마련이에요. 그때부터 짜증이 솟구치게 되거든요. 복도는 운동화 맨바닥과 장화 고무 밑창이 마찰하면서 나는 끼익 끽, 듣기 싫은 소리로 가득해요. 축축하고 찐득거려요. 의자에 앉아도 허벅지에 닿는 책상 밑 부분은 더 서늘해서 닭살이 오소소 돋아버려요. 우유 급식을 먹으면 다른 때보다 더 배가 실금실금 아파요. 수업이 시작한들 마찬가지예요. 바깥에 비가 창문이나 창틀을 때리며 내는 파열음에 정신이 팔려 선생님이 앞에서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집에 가서 홑이불 덮고 누워 있고 싶어 져요.


하늘은 온종일 흐려요. 잿빛이었다가 먹빛으로 까매지고, 홀연 듯 빛줄기가 새어 나오다 그만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버려요. 점심시간에 나가 놀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교실에만 있자니 영 심심해요. 친구들하고 등나무 의자 아래에서 바깥 구경이나 하려고요. 오늘은 그래도 5교시 끝나면 집 가요.


알림장을 쓰고 종례를 해요. 선생님은 아직 밖에 비가 조금씩 온다고 우산을 까먹지 말고 가져가래요. 투명 우산인 친구들은 헷갈리지 않게 자기 우산인지 꼭 확인하라고. 내 우산은 얇고 파란 막대 우산이라서 헷갈릴 일이 없어요. 엄마는 내가 파란색 좋아한다고 공책이든, 가방이든 다 파란색으로 골라서 사줘요. 그래서 우산도 마트에서 고르고 골라서 새파란색으로 샀대요.


저녁이 오면 안방으로 가는 좁은 복도를 다 차지한 채 바닥 위에 모로 드러누워요. 딱 그 자리에서만 눅눅해진 창고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맡을 수 있거든요. 엄마는 그런 냄새를 좋아하는 걸 보면 내 배는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는 벌레로 가득 찼을 거래요. 말랑하게 잡히는 건 뱃살이 아니라 벌레살이라 그래요. 그래도 난 비가 그치고 바싹 마르면 없어지는 이 퀴퀴한 냄새를 조금이라도 더 맡으려고 가만히 누워 숨을 들이마셔요.


오늘 밤은 다른 날보다 더 싸늘해요. 아빠가 그러는데 내일은 맑대요. 그래도 엄마는 기온이 떨어졌으니 내일도 학교 갈 때는 긴 팔을 입어야 된대요. 언니는 오늘 비 때문에 체육 수업 운동장에서 못 했다 투덜대고, 나도 비 와서 점심시간에 못 나가서 짜증 났다고 거들었어요. 동생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밥만 먹었어요. 동생은 비 오는 게 나쁘지 않은가 봐요. 아니면 우리가 떠드는 틈을 타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집어 먹으려고 그런 걸 수도 있어요.


내일은 맑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생각해 보니까 지난주에 다음 체육 시간에 멀리 뛰기 수행평가 본다 그랬거든요. 어, 그럼, 아무래도 내일까지만 비가 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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