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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by 이해린

초등학교 말듣쓰 시간(라떼는 국어 아니고 말.듣.쓰.였다)에 선생님께서 글을 쓸 때는 '나는'으로 문장을 시작하지 말 것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말고 빗대어 쓰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어차피 문장을 시작하면 화자가 글쓴이 본인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나는'으로 시작하는 것은 불필요한 중복이라고 했다. 그리고 비유법을 다양하게 써야 그만큼 감정의 폭이 넓어진다고 하셨다. 그 때부터 부단한 노력을 전개했다. 감정의 그릇 안에서 그 감정을 덜어내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 어떤 자모음, 글자와 단어를 선택해야 할까. 내가 느낀 기쁨을 단순히 기쁨의 틀에 넣지 않고, 그 속의 설렘과 묘한 긴장과 낯섦을 전해 주기 위해서 어떤 표현을 해야 마땅할까 고민을 거듭했다.


조각 케이크를 포장해줄 때는 케이크의 부드러운 빵과 무너지기 쉬운 생크림을 보존하기 위해서 케이크 집 사장님은 온갖 정성을 들이신다. 케이크를 플라스틱 띠지로 한 층 두르고, 테이프 마감을 한다. 플라스틱 롤을 만들어 상자에 여분이 남지 않게 메운다. 그도 모자라 댁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세요, 묻고는 드라이 아이스도 야무지게 채워 주신다. 그러면 난 룰루랄라 집에 가서 케이크 그대로의 맛을 환희에 가득 차 만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걸 고스란히 옮기고 싶을 때도 있다. 가끔씩은 꾸미지 않고, 더얹거나 덜지 않으며, 일말의 말 장난 없이 존재 그대로를 전달하고 싶을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매일, 매 순간은 아니지만 그러고 싶은 때는 이따금씩 일어난다. 어떤 말을 선택할까, 어떤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릴까 고심하지 않고 입력된 감정을 단순하게 출력해 그대로 뽑아다 주고 싶다. 띡띡, 눌러 입력하니 쭈르륵, 뽑혀나온 내 마음 영수증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왜곡하거나 비틀어지지 않는 바람에서 하나씩 밀어서 옮겨주고 싶다. 주어는 나요, 목적어는 당신이오. 서술어는 '사랑하다'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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