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만약의 수

by 이해린

나는 머릿속으로 만약에…, 로 시작하는 문장을 많이 만든다. 만약에 내가 날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에 대학교 전공을 교육이 아닌 어학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만약에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혹은 저 사람을 만났더라면, 만약에 그때 노 대신 예스, 예스 대신 노를 외쳤더라면 등등. 만약에…, 로 시작하는 순간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열리고, 열지 못했던 상황이 맺어진다. 가끔씩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현실보다도 만약의 세계가 더 멋져 보이기도 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어쩌면 현실에서 도망칠 작은 틈을 원하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정신을 붙들고 현실에 내려놔야 한다. 만약의 세계는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먹고 자라서 현실보다 더 근사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 만약은 없다고 치자. 어차피 일어나야 했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며 운명이라는 말에만 얽매여 사는 걸 거부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차피 내게 벌어진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었던 거라고 본인에게 닥친 일을 겸허히 수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 전자일 때도, 후자일 때도 있는 것 같다.


현실이 달아봤자 얼마나 달달하고, 써봤자 얼마나 씁쓸하겠어, 그냥 그러고 사는 거지. 잠깐 좋았다 한참 힘들고, 좀 괜찮다가 아주 별로인 게 하루하루지, 싶을 때가 있다. 그럼 불현듯, 어라 너무 성의 없게 사는 건가 싶기도 하다. 석사 시절, 룸메이트랑 장난 삼아 grateful:) 밈을 만든 적이 있다. 어떤 시련이 닥치든 감사하자는 마음가짐을 갖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는데 종래에는 뜻이 변질되어 “어, 오늘 과제 200쪽짜리 논문 읽기. 쏘 그레이트풀:)” “다음 주 동기 여행으로 9시간 버스 탄대. 하지만 나름 앞자리 배정. 쏘 그레이트풀“ 과도 같은 대사와 함께 합장 이모티콘 또는 :) 표정과 함께 날리며 비꼼과 해학의 뜻으로 자리매김하고야 말았다. 정녕 이 나이 먹고도 감사함을 모르고, 속이 배배 꼬인 쌔비지 한 애티튜드 밖에 장착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생물인가.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본인의 미숙한 사고방식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평행 우주 이론을 철석같이 믿을 때가 있었다.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온갖 후회를 다 하고야 마는 아쉬운 성격인지라 차라리 이거 대신 저거를 선택한 나에게도 환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길 바랐다. 현실에서는 이걸 택한 결과값을 살고 있지만, 저걸 버린 게 자뭇 아쉬우니 만약 저걸 택했을 때 취하게 될 결과값이 어떤 세계에서는 반드시 존재하길 원했다. 선택지에 따라 여러 갈래로 찢어져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현실에서 치르는 기회비용을 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지금은 평행 우주고 뭐고, 어차피 영영 알 길이 없기에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수많은 세계 속 수많은 나,라는 평행 우주 낭만을 아예 내던지지는 못 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다른 거 다 차치한 현재의 나뿐이 없다는 데에 방점을 찍게 됐다. 만약은 만약으로 남기려고 한다. 결국 나는 가정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문장을 써 내려가야 하는 주체니까 말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0화추락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