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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ㅜㄹㅇㅏㄴ

by 이해린 Mar 23. 2025

불안을 요목조목 뜯어내고 싶다. 분절시키고, 분리시켜 내 마음 구석탱이에 쳐박혀 있는 작디 작은 잔재조차 흩날려 없애버리고 싶다. 처음에는 불 안, 글자를 나누고 그 다음에는 자음과 모음으로 토막내고 싶다. ㅂㅜㄹㅇㅏㄴ 그도 모잘라 자음과 모음을 곧은 선과 굽은 선으로 뜯어낼 거다. 이들은 부피를 잃고 --------- 여러 선과 ~~~ 몇몇의 굴곡이 남을 것이다. 이제 이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방심하기는 이르다. 거기서 멈추어선 안된다. 이들의 결집력은 굉장해 아예 끝까지 파내지 않는다면 다시 그 끈적이는 빨판으로 기어다니다 서로 엉겨붙어 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아주 날카로운 바늘을 사용해 곧고 굽은 선을 마구잡이로 찌를 생각이다. 그러면 선은 점점 짧아지고 양 끝단이 도려져 나가 길이감마저 잃게 된다. 이들은 이윽고 하나의 점이 되어 목적지도 없이 부유한다. 그럼 이상 불안은 불안이 아니게 된다. 그만치도 억누르던 형체 없는 덩어리가 분리와 해체를 거듭한 끝에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에도 만져지지 않을 공기 중의 입자가 되어버린다. 하찮은 이들이다.


물론 작은 점이라고 한들 마냥 풀어두어서는 안된다. 이들은 내 마음의 음영을 먹고 자란다. 그건 이들의 생존 방식일 뿐이다. 한 편으로는 햇볕이 아무리 쨍하게 든다고 해도 굴곡 너머 이면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그래서 불안의 점이 언제나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고, 언제든지 침투할 기회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나지 않을 양상을 언제까지고 지켜만 봐야 할 것인가. 도려내면 자라나고, 묶어놔도 다시 풀리기를 수 천번 수 만번인데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끝없는 재생, 끊임없는 순환. 나는 매일 다시 새롭게 태어나고 있고, 같은 나는 없다. 그렇게 보면 나라는 것이 아예 없을 수도 있는 것이고, 모든 것이 나일수도 있다. 그럼 더 단순하게 그려내 보자. 불안의 끝은 새로운 불안의 시작이지다. 하지만 불안마저 품고 있는 나는 그보다 더 큰 존재다. 그러니 불안의 종식은 내 일부의 종말이고, 새로운 불안의 탄생은 더 큰 나로 나아가는 시작이라고.  음, 그럼 생각이 너무 복잡해지려나. 불안을 품는다는 건 말 그대로 불 안에서 활활 타오르며 더 큰 내가 탄생한다는 것.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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