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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덧 그리기

by 이해린

그러니까 늘 하고 싶은 건 있었다. 이루고 싶은 바도 원대했다. 보고 싶은 것, 겪고 싶은 것, 듣고 느끼고 맛보고 싶은 것들, 모두 무궁무진했다. 분에 넘치는 소망을 품었지만 정작 부족했던 건 용기였을까, 의지였을까.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꼭 있어야 할 미지의 요소가 부재해 노상 소망을 실현하지는 못한 채 흘려보내기만 했다.


그러다가 깨달은 건 아주 작고 사소한 사실이었다. 나는 이미 소망 대로 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이루고 싶은 대로 살고 있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보고 듣고 싶은 게 있으면 보고 들으러 갔다. 만지고 싶은 건 손으로 피부로 온몸으로 느꼈다. 봄에는 꽃놀이를 가고, 여름에는 계곡과 바다로 물놀이를 갔다. 가을에는 물드는 단풍잎을 보러 다니고, 겨울에는 설산이 선사하는 자유를 만끽했다. 커피가 먹고 싶으면 집 앞 단골 까페에 가서 아이스 라떼와 피스타치오 오렌지 케이크 한 조각을 포장했다. 기대하고 있던 영화가 있으면 개봉하자마자 상영관의 티켓을 예매했다. 읽고 싶은 책이든 듣고 싶은 음악이든, 내게 즐거움과 행복을 줄 일말의 가능성만 있다면야 내가 먼저 달려가 품에 안았다. 모든 소소함을 함께 할 친구와 가족들,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다 내 곁에 있었다. 진작에 그랬다.


소망이 소망으로만 남고 현실이 되지 않았다는 건 순전히 자기 망상이자 거대한 착각이었다. 유일한 과오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있었다. 작은 깨달음 후에 보이는 세상은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여태 쉽게 놓쳤던 경험과 흘려보낸 기억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글로 적기로 했다. 뭉게구름처럼 잡으면 사라지는 것으로 남겨두지 않고, 자음과 모음이 그리는 단정한 선과 단단한 틀에 찍어내기로 했다. 내가 겪은 잔상이 흐릿한 연기로 사라지기 전에 글로 한 글자씩, 한 획씩 덧그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브런치 공간에서의 글쓰기였다.


처음 글을 적을 때의 막막함은 무엇을 써야 할 지의 불안보다는 터질 것처럼 많은 기억 중 무엇을 뽑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가족과 여기를 놀러 가서 이런 일을 겪었는데, 친구랑 어디서 이런 걸 먹으니까 너무 맛있더라, 꼭 이걸 떠올리면 기분이 저렇더라. 쓸거리는 너무 많고, 할 말은 그보다 더 많아서 탈이었다. 어떤 단어를 고르지, 무슨 장면을 그려내지, 고민이 거품처럼 방울방울 떠오를 때가 있다. 사람들이 몰려든 백화점 할인 매대에서 어떤 옷을 고를지 또는 놀이공원에서 어떤 기구를 탈 지 고민하는 것보다도 치열한 고민이다. 고민을 가둔 비눗방울은 둥실둥실 떠오르다 머잖아 터지고 만다, 남기고 싶은 걸 쓰자는 간단한 정답이 응당 뒤따랐기 때문에.


이 공간은 한도 끝도 없이 팽창하기에 하나의 우주 같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정성껏 담아냈기에 결국에 돌아오는 나만의 정다운 집 같기도 하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 친구와 있었던 일, 내가 즐거워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싶어 하나씩 펼쳐서 풀어낸다. 더러는 십수 년도 전에 있었던 일을 마음으로 더듬으며 어땠더라, 회상에 푹 잠기기도 한다. 경험은 형체 없이 의미를 남기고, 기억은 형상 없이 마음에만 남는다. 귀퉁이 조각보를 하나씩 기워 갖가지 색깔과 문양을 한 커다란 담요를 만드는 것처럼 글을 적어 내리다 보면 내 마음에 희미하게 남은 의미를 엮어낼 수 있다. 그렇게 덧대다가, 덧입히고, 덧 그리기도 하다 보면 완성되는 마음의 풍경은 꽤나 근사하다. 넘어가는 저녁노을에 하늘 자락을 물들이는 주홍빛과 보랏빛 줄기, 새파란 수면 위에 동그랗게 가라앉는 석양. 그걸 바라보는 나, 너희들,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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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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