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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합니다 Miss ya!nis

La Gente 03

by 이해린

1. 무지개

야니스는 스페인에 도착해 처음 사귄 친구이자, 룸메이트이자, 타지 생활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였다.

나와 야니스가 그리는 원들은 겹쳐 음영 지는 부분이 커 더더욱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고, 덕분에 스페인에서의 생활이 생각만큼 고달프지도 않았으며 상상 이상으로 즐거울 수 있었다.

여름의 막바지로 달려가는 무더운 날이었다.

반팔과 얇은 청바지를 입었음에도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내가 배낭을 메고 이민 가방과 또 다른 육중한 캐리어를 끌고 마드리드에서부터 왔기 때문일 것이다.

열쇠를 아무리 돌려도 게이트는 열릴 생각을 안 했고, 머리 꼭대기까지 열이 뻗쳐 오르기 시작한다.

결국 제 성질을 못 이겨 홧김에 발을 들어 쾅쾅 두어 번 차 버린다.

이 마지막 시도마저 수포로 돌아가면 이 망할 놈의 고철덩어리를 물어뜯어서라도 열고 말겠다, 라는 다소 극단적인 푸념을 하며 힘을 실어 열쇠를 꽂아 넣자 기적처럼 문이 달그락거리며 열린다.

그럼 그렇지, 왜 세상만사 좋은 말로 할 때 한 방에 들어먹질 않는 걸까. 하물며 쇳덩이마저 날 시험하다니, 참 애석할 노릇이다.

낑낑거리며 두 개의 캐리어를 들고 거의 기다시피 한 층의 계단을 오르고 헥헥거리며 현관문에 키를 넣고 돌리는데 또 들려오는 소리가 불길하다.

몇 번을 시계 방향으로, 또 반시계 방향으로 넣어 돌리는데 별다른 소득이 없다.

다시금 차오르는 화를 애써 머금는데 들어보니 안에서 작게 쇳소리가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반대쪽에서 문이 열리고 그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이 두 눈에 쏟아지니 시야가 갑자기 환해진다.

엇비슷한 키에 최소 7개의 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여자애가 어색하게 웃으며 서있다.

“안녕, 페탈 석사 프로그램하려고 왔지? 반가워, 나도야.”

넌 누구지,라고 스쳐 지나가는 생각 속에 정말 머리 색깔 한 번 끝내주게 뽑았네, 하는 덧없는 잡념도 틈바구니에 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2. 룸메이트와 하우스메이트 그 사이의 애매한 관계

오기 전에 대학교 국제학생부서에서는 분명 개인 방 2개인 아파트라고 했는데 짐을 풀고 집 안을 둘러보니 큰 하나의 방에 침대 두 개가 놓여있다.

부엌, 거실도 2명이 살기에는 지나치게 널찍한 공간이었는 데다 별 필요도 없는 응접실까지 다 만들어놓고 왜 침실은 하나로 합쳐져 있는 걸까.

물어보니 야니스도 그 점이 이상했지만 자기도 열쇠 주는 대로 받아서 별다른 설명은 못 들었다고 했다.

잠깐일지언정 기숙사감실에 들러 이 사태를 설명해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사실 이러한 행정 실수를 해결하기 위한 원만한 방편을 꾀하기에는 스페인이 가장 최적의 국가는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게다가 엊그제 한국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오는 여독이 다 풀리지 않아 피곤한 나머지 나도 그런가 보다, 하고 빠르게 수긍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우린 하우스메이트에서 룸메이트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첫날밤, 밀려오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우린 자정이 넘어서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페인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또 이번 과정이 어떻게 펼쳐질지 혹은 어떤 걱정들이 있는지도 묻고 답했다.

야니스는 학부 시절 핀란드에서 한 학기를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은 기억에 남는 수업들이나 일화도 얘기해주었다.

언론학을 전공한 뒤, 언론보다는 교육 쪽에 더 관심을 기울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에 들어가 2년을 근무했다는 야니스는 틀에 박힌 일정표에 따라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는 일상이 언젠가부터 버거워졌다고 했다.

“쭈그러진 풍선처럼 하고 다녔다고. 친구들도 왜 이렇게 말라비틀어졌냐 그러고. 그래서 어차피 교육계에 앞으로 몇 년이고 일할 거면 나가서 더 경험이나 쌓자고 생각한 거지.”

학부 시절 언론을 공부해 교육을 학문으로써 더 배우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게 있었던 야니스는 일상의 반원을 더 크게 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우리 반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됐다.

학교와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물꼬를 터 우리의 대화는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그리며 그 범위를 확대시켜나갔고, 그 결과 우린 공통의 관심사가 대부분 겹치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남 2녀의 중간을 맡고 있는 것과 사색이나 잡념을 즐긴다는 점,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을 말할 때 서로의 취향을 0점 조준했다는 것까지.

내가 좋아하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걸 알고 나니 머나먼 타국에서 돌아서면 느꼈던 낯선 기시감이 가볍게 흐려졌다.

3. Join the Anti-social Social Club

개강 첫 주부터 본격적인 소셜 모임 일정이 시작되었다.

에라스무스 모임에 가입하면 주최 측에서 여는 파티나 모임들 혹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여는 도시 내 교환학생들이나 국제학생들과의 만남 등 새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본격 사교의 장이 열린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재치를 곁들여 스몰토크를 이어나가는 거에는 영 재주가 없었다.

차라리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 깊게 친해지는 거면 몰라도 여러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재잘거리는 건 일주일에 한 번이면 몰라도 그 이상이면 내 몸에 적신호가 들어온다.

이른바, 투머치 사교활동 증후군.

하루를 온종일 다른 사람들과 밖에서 어울려 지내는 날이면, 더더군다나 그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다음 날은 무조건 집에서 피로에 눅눅하게 젖은 몸을 돌봐주어야 한다.

애초에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스페인에서라면 왠지 더 사교적이어야 할 것 같고, 외향적이어야만 할 것 같은 남모를 부담감도 없잖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랬더니만 선입견 부수어주기는 커녕 이를 더 공고히 만든 게 개강 이후 이어진 모임들과 파티 때문이었다.

외향적인 친구들 틈바구니에 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집순이의 서글픈 나날들 속에 오로지 나와 한 배를 탄 건 야니스였다.

야니스는 아침에는 일기를 쓰고, 점심은 소박한 밥상을 차렸으며, 저녁에는 러닝을 나갔다.

술집에 같이 가게 되면 춤을 추다가 중간에 찬 공기를 마시러 나갔다 돌아왔고, 쉬는 시간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다에 끼기보다는 음료 자판대에서 음료수를 신중히 골랐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야니스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오색찬란한 머리를 했고, 그 때문에 가끔씩 햇빛이 결에 닿으면 오만가지 색으로 빛났다.

요가와 배구를 어렸을 때부터 한 야니스는 뒤돌아 뛰는 것도 잘하고, 옆돌기로 완벽한 호를 그릴 수 있다.

또, 홍콩에서부터 희한한 큐브를 가져와 난데없는데서 꺼내 맞추질 않나, 캐리어 주머니에서 작은 공 3개를 꺼내더니 갑자기 저글링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야니스는 모임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회장직을 맡을 인재가 아닐 수가 없음을 거듭해서 스스로를 증명해 보였다.

4. 부엉이

우리가 한 지붕 아래, 한 방 안에서 지낸 지 보름이 지났을 무렵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건 야니스는 늦게 잔다는 점이었다.

그냥 늦게 잔다, 정도가 아니라 정말 늦게 잔다.

두세 시는 기본이고 어쩔 때면 아침에 부스스한 머리와 멍한 눈빛으로 다섯 시에 잤음을 나직하게 토로할 때도 종종 있었다.

난 거의 매일 열두 시 이전에 자고, 가끔씩은 한시에, 아주 이례적으로 두세 시에 자는 사람인지라 나보다 세네 시간의 시차를 둔 야니스의 생체리듬이 낯설었던 건 당연지사였다.

우리의 타협점은 블라인드의 높이에 있었는데 애매한 삼분의 이 지점까지 블라인드를 내려서 삼분의 일의 틈바구니로 들어오는 햇빛에 내가 여덟 시쯤 일어난 뒤, 다시 그 조그만 빛까지 막고 거실이나 응접실에서 시간을 보내면 야니스는 칠흑 같은 직사각형 방 안에서 정오까지 잠을 자는 것이었다.

대쪽같이 오전 없는 부엉이 삶을 유지하던 그녀에게도 아침이 찾아왔으니 그건 9시부터 시작하는 첫 수업 때문이었다.

다섯 개의 알람을 설정하고 나서야 비척거리며 움직일 수 있던 야니스는 개강 후 한 달 만에 산 좀비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낮에 쪽잠을 자면서 인간이라면 하루에 채워야 하는 할당 수면시간을 꾸역꾸역 채워나갔다.

당시 우린 8시 기상, 9시부터 10시 50분까지 첫 교시를 듣고 바로 이어서 11시부터 1시까지 수업, 라스트 팡으로 3시부터 7시 30분까지 이어지는 스페인어 어학당 코스의 일정을 매일 소화해냈는데 잠시 집에 들르는 한 시간을 쪼개서 야니스는 야무지게 잠을 잤다.

그 덕에 야니스는 한 학기 내내 눈 밑에 새까만 반원을 달고 살아야 했다.

가끔 그 반원은 지름을 넓히기도 했고, 어떤 날은 그 경계선을 조금씩 지워나가기도 했다.

야니스의 반원이 그 명도와 채도를 한 단계씩 높여가고 더 이상 진해질 수 없다 생각이 될 때, 스페인에서의 첫 학기는 종강을 맞이했다.

5. 자가격리 메이트 3.0

우린 스페인에서의 동거 생활을 청산하고 리스본에서는 각자의 플랫을 구했다.

이어지는 봄 학기에도 같은 지붕 아래에서 생활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이루어질 뻔했으나 예상치도 못한 대학 측의 기숙사 배정 번복이 있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일주일 만에 급하게 살 곳을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동네에 플랫을 구하게 되었다.

그런 뒤, 봄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되어 국가 봉쇄령이 내려지고 비행 편이 하나둘씩 취소될 즘에 야니스는 귀국을 결정했다.

그리고 사흘 뒤에 나도 야니스와의 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귀국행 표를 구매했다.

야니스의 귀국은 쉽지 않았다.

본래 네 명이 살았던 그녀의 플랫은 한 명씩 짐을 싸고 나가는 바람에 종내에는 넓은 집에 그녀 혼자 남고 말았고, 그제야 부랴부랴 짐을 싸기 시작한 야니스는 예약했던 비행 편이 취소되며 한 번 더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홍콩 땅에 착륙한 뒤에도 바로 집을 갈 수 없었던 것이 안전 규정에 따라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뒤따라 한국으로 들어온 나는 방역 절차를 밟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우린 사흘의 간격을 두고 장거리 자가격리 메이트 생활을 이어나갔다.

매일 무엇을 먹고,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상시로 보고하며 하루를 쪼개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실로 답답하기 그지 같은, 어이구, 아니, 그지없는 자가격리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핸드폰 화면을 밝히는 문장들이 전해주는 온기와 단어들이 던지는 유머가 있어서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정규학교 과정에서 우리와는 다르게 영국식 영어를 배우는 홍콩 사람 야니스는 나를 언제나 메이트라고 불렀다.

miss ya, mate,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룸메이트, 하우스메이트, 필드트립 호텔 메이트에 이어 자가격리 메이트까지 우린 여러 수식어를 가진 메이트였다.

그중 우리 관계에 가장 걸맞는 건 아마 앞뒤로 아무런 수식어 구도 붙지 않는 그냥 메이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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