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보다도 섬 같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방문을 열고 나갔는데 별안간 쏟아지는 빛을 온몸으로 받을 때의 그 허망함이란.
어쩐지 아무런 외부 개입 없이 눈이 잘 떠진다 싶었고, 뒤척이며 잠에 든 거 치고는 몸이 개운하다 싶었는데 방 안이 캄캄했던 이유는 오직 철제 블라인드 하나뿐이었던 것을 방을 나섬과 동시에 깨달았다.
시간은 이미 열 시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는데 그렇게 사놓고도 부족한 건지 다섯 걸음을 채 가지 못해 거실 소파에 다시 드러누워버렸다.
열린 창 사이로 들어온 파리가 유유자적하게 원을 그리며 배회하는 걸 포착하고 머릿속으로 아, 자연친화적 생활은 역시 만만찮다, 곱씹으며 중력이 밀려드는 눈꺼풀을 한두 차례 하찮은 의지로 이겨내 보려 하는 와중에 귀에 내리 꽂히는 경쾌한 인사.
“좋은 아침! 잘 잤어?”
딱 고개를 젖힌 그 각도 그대로 불투명한 창문 너머로 그려진 뿌연 사람의 윤곽이 있었는데 아마 그건 어젯밤 바깥에 주차된 밴에서 잠을 청한 젠이겠지.
이내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젠의 발걸음은 아래에 푸르스름한 구름이라도 한 겹 깔려있는 듯 가볍기 그지없었다.
젠은 방금 기상한 사람이라고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 넘치는 기세로 어제 밴에서 잠에 들 무렵에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해 밴 차창을 두드리는 게 얼마나 멋졌는지 조잘대며 얘기해주었다.
“그나저나 해변으로 아침 산책이나 갈까?”
난 죽었다 깨나도 밴에서 잠을 청하며 간밤에 내린 비를 듣는 낭만을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하겠지만 해변 산책은 반박 없이 콜당오를 외쳤다.
현관문 옆에 줄 세워 놓인 신발 꾸러미들에서 내 붉은 스니커즈를 찾아 발을 대강 꿰고 나섰고, 젠은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맨발 차림으로 대문을 나섰다.
문을 닫으면 닫았지, 절대 잠그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이 집에 과연 열쇠란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몽글거리며 피어나려는데 옆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나보다 조금 더 앞서 기다리고 있던 젠과 방금 방에서 일어나 블라인드를 친 데일라가 창문을 두고 얘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산책 나가려고. 같이 갈래?”
“뭐라고?”
“산책! 해변으로! 너도! 우리랑!”
아니, 저기, 얘들아. 창문을 여는 게 어떨까.
아무튼 데일라도 합류하기로 해 준비할 때까지 더 기다리게 되었다.
그 기다림 와중에도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이 보금자리는 주변만 둘러보아도 눈이 정화되고 절로 기분이 상쾌해져 그 기다림마저 마음을 가다듬는 여유로 승화시킬 수가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바다 한편에서 파도가 쏴아-하고 내리쳐 금방이라도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지금 서 있는 발밑까지 흘러내려올 것만 같았다.
이런 평화로움은 오랜만에 파묻혀보는 것만 같은 자연의 품 안은 너무나 포근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침 출근길 버스 정류장 앞에서의 기다림은 똑같은 시간, 아니 조금 덜할지라도 이토록 아름답지는 않은데 말이다.
우리 셋은 그렇게 잠옷바람으로 고양이 세수만 마친 뒤 바로 해변가로 향했다.
정말이지 집 앞의 간이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바다로 이어진다는 것이 너무나 생소하면서도 걸어서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멋지게 느껴졌다.
해변 자락을 따라서 쭉 걷는 동안 우린 그동안 준비해왔던 논문 작업과 결과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각기 다른 주제로 심도 깊은 리서치를 해나가는 친구들의 모습과 그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7월 말에 디펜스를 앞두고 있는 나로서는 홀가분하게 여태 해왔던 연구물을 떨쳐낼 수 있는 기회가 코 앞에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그 이후의 진로와 행보에 대해서 아주 깊게 고민하고 있는 참이었나 보다.
어쩌면 다가오는 2학기에 소속이 이미 정해져 있는 나와 졸업 후에는 오로지 개인의 의지와 재량에 앞날이 맡겨지는 친구들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태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대화의 끝은 결국 배가 고프니 카페에 들어가 브런치를 먹자는 것이었고 그에 대해선 아무런 이견도 없이 만장일치의 결과가 나왔다.
도리어 발걸음이 빨라지기까지 했으니 끼니를 향한 열정은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절실하고 간절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침을 먹고 우리가 카페에 자리를 조금 더 지킬 동안 젠은 돌아가 프레드와 카타리나를 버스 정류장에 픽업해주었는데 그들은 포르투갈 내륙 도시로 계속되는 여행을 쭉 이어갈 예정이었다.
카페에 젠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안 하늘에 잠시 걸려있던 흐린 구름 조각들은 흔적도 없이 다시 흩어져 버리며 해가 쨍하게 나오긴 했으나 이마저도 다시 찾아올까 불안해져 우린 빨리 해수욕을 해야 되지 않겠냐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늘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 말고 우린 그만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는데 뒤이어 차를 주차시키고 집으로 돌아온 젠이 영문을 모르고 우리를 쳐다봤다.
“다시 날씨가 흐려질까 봐서 일단 집으로 돌아왔어. 이왕 갠 김에 챙겨서 지금 해변으로 갈까?”
“아, 그게 걱정이었어? 그렇다면 내가 생각해둔 게 있어. 일단, 사람이 없는 데로 가자.”
“집 앞 해변 말고?”
“차 타고 10분이면 가. 그리고 가는 길에 동네 친구한테 밴조 배달도 해줘야 되거든.”
지난주 버스킹 공연을 끝내고 악기를 거실에 쌓아뒀는데 아마 그중 밴조 하나는 친구에게 돌려줘야 했나 보다.
그 외에도 기타 서너 개가 더 모로 쌓여 있기는 했지만 젠은 손으로 턱턱 치우더니 그 안에 힘겹게 버티고 있는 밴조를 꺼냈다.
그 길로 우린 비치 타월이며 선크림이며 온갖 걸 다 캠핑밴 뒷좌석에 싣고 아스팔트 도로로 떠났다.
굽이진 골목들 사이에 놓인 돌길을 솜씨 좋게 운전하며 젠은 이 집은 누구 친구네 집, 저 집은 또 누구네 집을 알려줬는데 그중 일부는 지난번에 젠과 친구들의 밴드 공연을 리스본에서 내가 만난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몇몇 이름들은 익숙한 감이 있었다.
“근데 여기 마을이 작은 거야, 아니면 네가 마을 사람 전체를 아는 거야?”
젠은 쾌활한 아메리칸 웃음을 폭발적으로 터트렸으나 말미에는 답을 주지 않았다.
아마 양쪽 모두일 거라 조용히 단정을 지으며 우린 밴조 배달에 동행하고자 잠시 친구네 집에 인사차 들렀다.
다시 캠핑밴 운전대를 잡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곧이어 해변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에 접어들었는데 젠은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이곳을 자주 찾았다며 소중한 아지트를 소개해주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나올법한 그림에 입이 절로 떡하니 열릴 수밖에 없었다.
벌려진 잇새로 바람이 들이차는 바람에 잇몸이 마르는 자그마한 불편이 뒤따랐지만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풍경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미쳤네. 대자연이 이런 건가.”
“그냥 와우.”
젠은 파도가 좋은 날이라고 밴 뒷좌석에 눕혀져 있던 하얀 서핑보드를 꺼내 들었고, 우리도 뒤따라 흙길을 걸어내려갔다.
가까워져 가는 바다를 보고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발걸음이 빨라졌고 마음이 조마스러워질 지경이었다.
비치타월을 널찍하게 깔고 난 뒤에 조금 누워서 햇빛을 맞았다.
고막에 치고 들어오는 파도 소리가 유튜브로 맨날 천날 듣는 asmr 사운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입체적으로 들렸다.
바다 저 멀리서 울렁이는 꿈틀거림마저 용의 비늘 한 조각쯤이라도 되는 듯이 반짝거리고 웅장했는데 모랫가로 근접해올수록 너울져 들어오는 파도는 높고 거대했다.
안 되겠다, 여기서 보고 있을 것만이 아니라 이건 무조건 집 가기 전에 쓰리 입수는 해줘야 된다, 결심이 서는 순간 다리가 반자동적으로 해변가로 향했다.
대서양의 서늘한 기온을 머금고 있을 수온은 보나 마나 체감 얼음장일 것임에 뻔했지만 풍경에 혹해 그만 예로부터 냉수마찰은 몸에도 좋다는데 안될 건 또 뭐냐는 비상한 생각마저 들었다.
파도가 들어오는 방향은 제각기 달라서 옆을 치고 들어오는 파도마저 있었다.
앞과 옆을 향해 달려드는 두 줄기가 한 지점에서 부딪히면 바다에 빨려 들어가는 듯 움푹 꺼졌다가 다시금 파도가 솟아오르는 순간이 있었는데 잘게 부서지는 물방울들이 영롱하게도 반짝였다.
거의 하루에 한 번꼴로 바다 수영이나 서핑을 나가는 젠도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차가운 바닷물이 허벅지까지 올 정도의 깊이였는데 파도의 방향이 바뀌면 금방 허리와 가슴팍에서 물이 찰랑였다.
몸이 온도에 적응을 한 건지 아니면 감각을 잃어가는 것인지는 몰라도 점차적으로 차가운 수온에 몸을 맡겨도 괜찮을 정도에 이르렀다.
어쩌면 파도와 한바탕 싸움을 하느라 오히려 열이 오른 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찰나에 들었다.
수영을 하는 게 아니라 휩쓸려 다니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깊은 곳을 간 것도 아니고 다리만 담길 정도의 깊이였는데도 파도가 찰랑이는 게 아니라 철썩였다.
이거 진짜, 너무 재밌어 미치겠는데?
잠정적으로 물놀이의 서막이 오른 것을 느끼며 온 몸을 휘감아 오르는 희열로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아니, 그냥 환호성을 질렀다.
“미쳤어!!!!! 여긴 그냥 미쳤어!!!!!!”
잔뜩 신이나 목청껏 내지른 고함마저 성난 파도가 잡아먹는 이곳은 섬보다도 섬 같은 곳.
파도랑 한바탕 씨름을 하고 노곤해진 몸을 비치 타월에 뉘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물기가 말라가며 몸이 더욱더 바삭해지는 것을 느끼며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수마에 몸을 맡기고 스르륵 눈을 감았다.
강렬한 태양빛을 피하기 위해 입고 온 바지에 얼굴을 묻고 등이 타든 말든 나 몰라라 일단 낮잠 한 판 때리고 봐야겠다는 식이다.
일어났을 즘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몰라도 등이 따끔거리는 게 지난 주말에 이어서 또 며칠간은 가려움에 시달리겠다는 직감이 왔다.
아무렴 그건 나중에 걱정할 일이고 일단 바삭하게 마른 몸을 다시 적셔주러 가는 게 도리일 것 같았다.
슬쩍 일어서서 모래를 털고 해변으로 나가는데 뒤에서 친구들이 뒤따라온다.
젠은 서핑보드를 집으며 우리에게 타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는데 두어 번 서핑 강습까지 받아봤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나는 과연 이번에야 다를까 싶은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데일라도 마찬가지로 그나마 잔잔한 바다에서 서핑 강습을 받아봤다는데 부상투혼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힘들기만 했다는 괴로움 섞인 간증을 토로했다.
“그럼 서지는 못하더라도 보드 위에 얹혀있기만 해. 바디보드처럼 타도 돼. 파도가 꽤 세서 멀리까지 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젠은 자신의 숏 보드를 파도 위에 얹은 뒤 나보고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숏 보드보다 더 짧은 바디보드는 서서 타는 것이 아닌 상반신을 기대고 누워서 타도록 만들어진 보드의 일종인데 말하자면 파도의 결대로 헤엄치듯이 보드를 탈 수 있는 것이다.
거대한 킥판 위에 매달려 파도에 몸을 맡기는 건 특별한 스킬이나 강인한 신체능력을 요하진 않을 거 같아 젠의 말대로 보드 위에 올라타 배를 보드 위에 밀착시켜 누웠다.
단숨에 뒤에서 들이닥쳐오는 파도에 휩쓸려 보드의 후미가 붕 뜨더니 파도에 추진력을 얻어 앞으로 부드럽게 밀려나갔다.
파도가 보드를 엎고 타는 동안은 시야가 조금 높아지기까지 했는데 젠의 말대로 파도가 크게 일어 거의 모래사장까지 밀려나다시피 했다.
거대한 파도 미끄럼틀을 탄 듯 아니면 지나가던 돌고래에 히치하이킹이라도 한 듯 첫 파도 탑승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탈래!”
보드 위에 몸을 눕히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우리 뒤로는 몇몇 서퍼들이 사람 키보다도 큰 파도를 등지며 타다가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치는 광경이 보였다.
쫓아오는 파도에 휘말리지 않으려 반대편 파도 자락의 끝으로 도망치는 서퍼들의 현란한 움직임과 재빠른 몸짓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저게 진정으로 바다를 끼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일까?
셀 수 없이 뒤집히고 바다에 거꾸로 떨어지는 서퍼들이지만 그래도 바다에 다시 손을 내미는 사람들.
보드를 갖고 더 멀리로 나아가는 젠은 파도가 너무 일렁이거나 크다 싶으면 파도를 넘는 대신에 보드를 몸에 밀착시킨 채로 그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반대편으로 나오면 다시 조금 뒤 파도가 밀려들었는데 그 어느 잔잔한 일렁임 하나 같은 모양이나 색을 한 게 없었다.
“무조건 넘으려고 하지 말고 요령 있게 해. 바닷물로 배 채우고 싶지 않으면.”
젠의 당부는 대충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파도를 싸우려 하지 말고 순응하라고.
낮밤을 가리지 않고 서핑을 하는 생활을 이어왔던 젠은 그동안 직접 사고를 당하거나 다친 적도 있었고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적잖이 목격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안고도 매일 서핑보드를 들고 더 멋진 파도를 잡으려 패들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다에서 다친 것을 똑같은 곳에서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젠은 손님이 한 손에 꼽히는 이 해변, praia da Almagreira에서 종종 일상생활과 학업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울분을 토해냈다고 한다.
케케묵은 감정들의 바래버린 빛과 색, 여린 살을 파고드는 무게를 묵묵히 받아주던 바다를 젠은 감히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