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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Jul 16. 2021

포르투갈 견문록 05 Caparica의 아침

친구와 리스본 근교에 있는 카파리카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카파리카는 휴양지인 거 치고는 우리 집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는데 따지고 보면 리스본 자체가 바닷가에 근접해서 얻어걸리는 이점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베리안 반도를 가로지르는 가장 긴 강인 타구스 강은 리스본을 거쳐서 대서양으로 빠지는데 그 끄트머리쯤에 위치한 길목이 카파리카다.

그러니 지도 상으로는 타구스 강을 사이에 두고 리스본과 카파리카는 마주 보고 있는 셈이다.

양 쪽 동네를 이어주는 그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명물인 금문교와 엇비슷한 다리를 건너면 맞은편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 길목에는 그 유명한 리오 데 자네이루 명물인 거대 예수상과 엇비슷한 예수상을 스쳐 지나가게 된다.

왜 엇비슷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냐 하면 정말 디자인이나 설계가 똑같은 데다 시초가 포르투갈이 아니니 그저 엇비슷하고 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별다른 자료 조사는 해보지 않았지만 주변에 미국인이며 브라질 사람도 그저 웃기다고 생각할 뿐이니 나도 희한하네, 하고 말았다.

혹은 포르투갈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일부와 리오 데 자네이루의 일부를 보고 있다는 간접 체험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리스본산 금문교를 타고 리스본산 예수상을 지나면 얼마 있지 않아 카파리카 해변으로 도착하게 된다.

얼마나 가까운지 우리 집 바로 앞에서 우버를 잡아 에어비앤비까지 왔는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거니와 요금도 겨우 만원쯤이나 나왔을 정도다.

오후 한 시가 다되어 도착했을 무렵에는 더위를 머금은 공기 탓에 바람마저 조금은 뜨거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얼른 짐 풀고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에어비앤비 정문 게이트를 지나기도 전에 솟구쳐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계단층 하나를 두고 위치한 숙소 덕분에 해변이 눈앞에 바로 보였던 것이다.

점심 먹을 때까지만 조금만 참고 바로 나가자, 해변으로 돌아서려는 발걸음을 애써 돌리고 숙소 문을 열었다.

4층에 위치한 숙소는 테라스에서 곧장 해변이 내려다보였다.

형형색색의 파라솔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모래사장과 저 너머의 넘실대는 파도를 가로지르는 서퍼들, 부서지는 파도를 맞으며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의 두런대는 소리들까지 여름을 빼다 박은 광경이었다.

만일 여름이 하나의 장면으로 남겨져 액자 속에 들어가야 한다면 이 모습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테라스에서 보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여름의 단편 조각이었다.

짐을 대강 풀고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을 먼저 먹자 싶어서 요리를 시작했다.

어차피 우버를 타는 김에 집에서 몇몇 식재료들을 챙겨서 왔는데 덕분에 별 힘들일 거 없이 샐러드와 볼로네즈 스파게티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상에 차리자마자 친구와 나 둘 다 순삭 하다시피 해치우긴 했다.

접시들을 모아 식기 세척기 안에 던져놓고 이제 본격적으로 해변에 나갈 채비를 했다.

얼굴용 선크림, 바디용 선크림과 선 스프레이는 가장 먼저 비치 가방에 넣었는데 그건 지난번 해변 여행들로부터 얻은 수많은 선번으로 얻은 귀중한 교훈이었다.

오늘마저 햇빛에 익어버리면 정말이지 힘든 밤을 보내야 하는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일단 최대한 조심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모래사장에 깔아놓을 비치 타월과 읽을 책 한 권, 버킷햇과 선글라스, 마실 물을 1리터짜리 빈 페트병에 담아 가져 갔다.

이외에는 별 다르게 챙길 물건은 없는 것 같아 바로 숙소를 나섰다.

길 건너 바다, 엎어지면 해변가였다. 물에 좋아 죽는 나로서는 이곳은 더할 나위 없는 지상낙원임에 분명했다.

해변가는 길게 쭉 이어져있었기 때문에 인적이 그리 많지 않은 곳에 자리 잡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인파를 피하기 위해 부러 주말이 아닌 주중으로 여행 일정을 잡았기에 한산한 해변가 한 자락을 찾아 자리를 깔 수 있었다.

비치타월을 깐 다음에 망설임 없이 바로 물로 뛰어들었다.

이쯤 되면 대서양에서 흘러들어오는 얼음을 둥둥 띄워놓은 바닷물에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여즉 차가움은 진저리 쳐질 정도인 건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햇빛이 비스듬히 내리쬐는 오후 시간대에 나와서 그런지 그나마 물이 조금은 데워져 있는 것도 같았다.

이건 아마 포르투갈 해변의 수온에 대한 기대심이 마구 깎였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파도는 역시나 거셌지만 가파르게 부딪히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높다란 물결들은 그 어떤 인공 파도풀장에서 만들어내는 파도들보다도 스릴감 있었다.

거의 파도에 탑승하는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 파도 위에 몸을 실으면 정말 그 아래 바닥처럼 보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물에 대한 애정이 깊은 나로서는 파도에 몸을 싣는 순간이 올 때마다 주저 없이 그 물결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물 밖에 나와서 햇볕에 몸이 조금 마를 정도가 되면 다시 첨벙거리면서 바다로 들어가기를 몇 번 연이어했다.

물이 견딜 수 없이 차가워져 밖으로 나올 때는 꼭 모래 위에 드러누워 모래찜질을 했다.

뜨끈하게 오전부터 달구어진 모래는 등을 대자마자 맨살에 쌓이는 온기가 차가워진 전신을 토스트 안에 쏙 끼어진 버터 마냥 주르륵 녹여주었다.

누가 옆에서 보면 두 발 달린 인절미처럼 온몸을 모래로 덕지덕지 붙인 후에는 또 몸을 씻어야 된다고 바다로 정신없이 뛰어 들어갔다.

그 와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썰물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우리가 깔아놓은 비치타월 근처로 경계선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친구는 돌연 방어선 구축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근처에는 닿지도 않는 잔물결이어서 굳이 뭐하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가 단단히 두들겨놓은 최후의 방어선 덕분에 비치 타월 자리로 물이 닿지 않아 친구의 혁혁한 공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자리를 펴놓은 사람들도 저마다 모래 언덕을 쌓으며 소지품들을 지키려 했으나 배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 만든 친구의 모래 방어막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종래에는 물이 너무 높은 곳까지 들어차 옆 사람들 몇몇은 자리를 피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친구의 노력을 치하하지 않을 수밖에.

그렇게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드나들며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거의 기진맥진하다시피 기운이 쭉 빠져있었다.

막판에 몸을 바다에 질질 끌고 나와서야 친구가 넌 강제 퇴장 조치가 없으면 바다에서 밤이라도 꼴딱 새울 판이라고, 숙소에 들어가자며 마른 수건으로 젖은 등을 박박 닦아 주었다.

하도 바다에 여러 번 들어가 웬만한 바깥공기는 서늘하다고 느끼지도 못할 차였는데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어둠이 아홉 시 훌쩍 넘어 내려앉는 서머타임의 포르투갈 덕분에 저녁이 다 될 때까지 수영을 즐길 수 있어 그저 배로 신이 났을 뿐이었는데 그 끝에 이런 기막힌 피로가 몰려올 줄이야.

집에 가서 배를 채워야 한다, 다시금 본능 같은 식욕이 치고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우린 비치타월을 단정하게 접었다.

저녁은 햄버거, 사이드로 감튀. 해변가 근처 수제버거집에서 나는 양념에 절여진 양파가 들어간 햄버거, 친구는 오리지널 햄버거를 시켰다.

역시나 평소에도 곧잘 애용하는 우버 이츠를 사용했는데 나름대로 로컬 맛집이라고 레스토랑 이름 옆에 붙여진 별표 덕분인지 기다리는 내내 햄버거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아마 줄기차게 물놀이를 하고 난 뒤 먹는 첫 음식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기가 우버 이츠가 별표 해놓은 지역 맛집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지 간에 햄버거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머리 위에 동그랗게 달릴 정도로 맛있었다.

심심하지 않은 간에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패티, 제일 감탄했던 건 번의 쫀쫀함이었다.

질기게 뜯어지는 여타 햄버거 음식점들과는 달리 이곳의 번은 부드럽고 찰지게 찢어졌다.

세상에나, 이렇게 맛있게 먹으려면 식사 전에 매번 한바탕 바다 수영을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반 박자 늦게 찾아드는 기분 좋은 포만감을 즐기며 테라스에서 바다를 내다보았다.

반짝이는 바다는 한 번의 출렁거림과 함께 더 많은 빛을 발산해냈다.

갈라지는 잔물결들은 모래사장 위 하얀 거품들을 토해냈고, 흩뿌려진 조개들 중 몇몇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 주었다.

젖어들어가는 모래들은 더 짙은 고동색으로 변하면서 물결대로 곡선을 그려냈는데 그 선의 유려한 모양이 마치 세필로 정교한 산의 능선을 따라 그려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보아야 다시 한번 밀려드는 파도로 씻겨져 나가면 새로운 화폭 위에 이전에 보지 못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카파리카의 첫날밤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바다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다시 더 먼바다로 나아가는 소리가 해변가로부터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철썩거리다가 철벅거리기도 하고, 쏴아아- 멀리서 맴돌다가 귓가에 다시 가까워지는 바다의 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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