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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견문록 14 이토록 놀랍고 신비로운 신트라

by 이해린

아픈 다리를 주무르면서 잠을 청한 그 다음날 아침, 여전히 걸을 때마다 찌릿찌릿한 감각이 발바닥을 디딜 적마다 양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하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어제 애초에 조심성 없이 세웠던 아주 단조로웠던 계획이 폐장 시간 때문에 아예 와르르 무너지면서 미처 들리지 못했던 헤갈레이라 별장이었다.

전 날 바로 코앞까지 갔지만 점심 먹고 다시 오면 되지, 라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발언을 하며 멀어졌던 바로 그곳으로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빌라 형태의 에어비앤비여서 짐을 맡기고 나올 수 있는 공간도 구비되어 있었기에 우린 체크아웃 시간에 맞추어 나왔고, 배낭 가방은 로비 데스크에 맡기고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서 나왔다.

오전인지라 아직까지는 바람이 불면 선선한 기운이 훅 얼굴에 끼쳐왔지만 아무래도 해가 머리 꼭대기 위로 올라갈 쯤이 되면 아마 그늘이 있는 공간을 살펴 걸어 다녀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날이었다.

헤갈레이라 별장은 묵고 있던 에어비앤비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어서 20분 정도면 정문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문제는 역시나 도보 20분이 마냥 평탄한 지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지만 어제 와봤던 길이라서 차라리 마음을 내려놓고 다리만 자동적으로 움직이니 대충 그 어귀에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둥그렇게 쌓여 있는 벽 건너 건너로 들어갈 수 있는 철문이 있기는 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보행자 도로의 공사 때문인지 아니면 코로나로 출입하는 사람들의 입구를 제한하려는 것인지 정문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 닫혀 있었다.

그 정문은 가장 윗머리에 위치해있어서 친구와 나는 우리를 포기하려는 두 무릎을 짚어가며 열심히 걸어 올라가야 했다.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한채 걸어 올라가며 종종 쪼리를 신거나 밴드가 없는 슬리퍼를 신고 올라가는 사람들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과연 눈앞에 펼쳐질 등산로를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마인드로 이겨내려는 심산인지, 아니면 어떤 여정을 목전에 두었는지 깜깜 모르는 상황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올라간 헤갈레이라 별장의 입구에서 우린 매표소로 바로 직행했는데 예상보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침 보통의 점심 시간대와 맞물려 우리가 도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을 때 교사는 50% 할인이 된다는 어구가 써져있어 재빨리 국제교사증 캡처본을 보여주었다.

큼지막하게 쓸 일은 없어도 이렇게 여기저기서 소소한 할인을 받으면 그 금액을 모아 근사한 저녁 한 끼까지 먹을 수 있으니 교육 종사자들이라면 본인의 직업이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미리 만들어둔다면 요긴하게 쓰일 때가 반드시 온다.

특히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로 교사들은 할인을 받을 수 있는데 학생들을 인솔해 체험 학습용으로 방문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표를 끊을 때 건네주던 지도가 있었는데 무슨 페스츄리도 아니고 네 겹으로 꽁꽁 겹쳐져 있길래 의아해서 매표소를 나오자마자 지도를 펼쳐 들어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광활한 대지야.

부지가 생각보다 넓다 못해 거의 광야 수준의 널찍한 공간이었는데 그 안에 다양한 조형물과 건축물들이나 녹지가 조화로운 위치에 조성되어 있는 구조였다.

하나의 건축물을 멀찍이서 보기만 해도 규모가 커 보였는데 애당초 부지가 넓다 보니 오히려 구조물 사이로 흡사 대로변 같은 산책로가 구불구불 나 있는 만큼 공간 활용도가 여유롭게 느껴졌다.

지도는 결국 뒷주머니 행이 되었는데 친구가 이미 이곳을 방문한 전적을 바탕으로 본인을 믿고 따르라는 엄청난 자신감을 무언의 압박과 함께 내비쳤기 때문이다.

우린 제일 위로 올라가서 하나씩 차례대로 둘러보며 내려오기로 합의하고, 서 있었던 길 그대로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은 가던 길 그대로 잘 포장된 길이었고, 오른쪽에는 비탈길에 돌계단을 설치해 나무와 풀숲 사이로 나있는 길이었다.

뭔가 더 오묘하게 끌렸던 반대편 길을 택했는데 희한하게도 대놓고 통행로요,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만 올라갈 수 있을 만큼의 비좁은 통로가 샛길처럼 나있어서 길이 아니라고 착각해 무시하고 지나치기가 더 쉬울 법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였다.

올라가다가 막다른 길이면 다시 내려오면 되지, 얘기하고 우린 조금 더 위를 향해 간격이 마구잡이인 돌계단을 하나씩 밟아나갔다.

잘게 난 나무들과 풀들은 그 높이가 대충 허리까지는 왔고 적어도 햇빛을 가려줄 그늘막은 충분히 되어주어서 은은히 풍기는 흙냄새와 함께 우린 그나마 더위를 피해 수월하게 걸어 나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첫 건축물은 가히 헤갈레이라 별장의 아이콘이라고 할만한 미완성된 우물이었다.

우물은 6층 높이로 약 27m 정도의 깊이인데 아래 바닥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한 명씩 차례대로 줄지어 가장 위층에서부터 아래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내려가는 구조로 되어있다.

친구가 말해주길 당시 건축가가 별장을 설계했을 때,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주었는데 그래서인지 여름날의 햇빛 쨍쨍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고 느꼈다.

특히 지옥문을 열러 가는 모티브를 따온 이 나선형 구조의 우물은 점점 내려갈수록 위에서 내리쬐는 햇빛의 양도 줄어들어서 마지막 층에 도달했을 때에는 뚫려있는 천장이 작은 구멍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물의 출구는 곧 동굴의 입구로 이어짐을 의미했는데 울퉁불퉁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동굴의 입구가 마치 아귀를 벌리고 있는 흉측한 모습의 괴물처럼 느껴졌으니 건축가의 의도가 이미 자연적으로 발생한 지형과 맞아떨어져 잘 구현되었음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소유주였던 귀족의 요청 하에 프리메이슨 단체의 활동지로도 쓰였다는 헤갈레이라 별장에서 이 우물을 포함한 몇몇 시설들은 프리메이슨 회원들의 강한 정신과 용기를 시험할만한 장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이 우물의 경우에는 한밤중에 아무런 불빛 없이 혼자서 내려가 지상 밖으로 길을 찾아 나오는 일종의 담력 테스트를 실시했다고 하는데 조명이 설치된 마당에도 동굴 속 특유의 답답하고 스산한 중압감을 한낮에도 느끼는 와중에 오밤중에 그런 미션이 주어지면 난 아마 뒤도 안 보고 단체의 탈퇴를 결심했을 것이다.

우물에서부터 이어진 동굴을 빠져나오면 별안간 따사로운 햇빛과 지저귀는 새들 소리에 평화로운 장면이 연출되다가도 그 뒤에는 바로 천장에서 습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동굴이 버티고 있으니 차라리 동심을 지켜주는 디즈니 세계보다는 방심의 끈을 놓치면 안 되는 잔혹 동화가 더 어울리는 듯했다.

우물에 나와서 걷다가 어쩌다 보니 작은 탑에 올라갔다가 지하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을 돌아 내려오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길이 다른 동굴의 입구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동굴은 아무런 불빛도 없었기에 친구와 나는 핸드폰 불빛에만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야 했고, 난 울며 겨자 먹기로 걸어가는 와중에도 이 길이 원래는 통행금지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강제로 프리메이슨 체험을 하게 된 마당에 정말 반갑게도 어느 정도 가니 몇몇 다른 사람들이 다른 통로로 들어와 함께 동굴 길을 쭉 걷게 되었다.

오면 안 되는 길인 줄 알고 그대로 뒤돌아서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속으로 끝없이 고민을 하며 친구에게 잔뜩 우는 소리를 하는 중이었는데 알고 보니 별장의 일부였으며, 이 또한 설계자가 별장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합류한 사람들도 우리가 출발한 입구가 아닌 별장 내 곳곳에 함정처럼 뚫려 있는 구멍들을 통해 동굴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들어오거나 어쩌다 착각해 초대되어 함께 비좁은 동굴 속 통로를 걷게 된 것이었다.

즉, 헤갈레이라 별장이 뿜어대는 독특한 매력 중 하나는 여기에 있었는데 지상과 지하 세계의 끊임없는 마찰이었다.

손바닥을 뒤집듯이 온전히 두 발을 지상 위에 붙이고 있다가도 눈앞에 나타난 좁은 통로의 계단을 타거나 뚫린 동굴의 입구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조금 후만 되어도 바깥의 빛과 온기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지하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동굴의 두터우면서도 꾸며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통로를 꾸물대며 걷는 건 마치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 창자로 내려오면서 길을 만들어가는 인상을 주었다.

이 동굴의 끝은 지상 세계의 연못과 맞닿아 있었는데 징검다리로 연못을 건너야지만 다시금 단단한 땅 위에 발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코로나로 인원 제한을 하느라 이 징검다리는 막혀있었는데 역시나 하나의 입구와 출구보다는 수많은 입구와 그 보다 많은 출구를 추구하는 헤갈레이라 별장만의 매력답게 그 위로 설치된 구름다리를 건너 다시 지상 세계로 안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도 길었던 동굴은 어느 지점부터는 왜 이렇게 길지, 언제 끝나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괜한 불안감을 자극시켰는데 이 또한 설계자가 연옥을 연상케 하는 의중으로 만들었으며 연못을 건너 지상으로 올라오는 건 천국으로 올라오는 의식이라는 것을 듣게 되자 도대체 이곳을 보금자리로 삼던 별장의 주인은 어떤 사람인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지상 위에는 헤갈레이라 성이며 타워, 분수대까지 화려한 장식과 꾸밈으로 황홀경에 이르도록 치장해놓았으니 아무런 빛과 온기도 없이 사람 손길 하나 타지 않은 지하 세계와는 확연한 대비가 이루어지게 되니 당연히 그 아래 축축한 곳에 비해선 윗 세상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선 지배적으로 떠올랐다.

헤갈레이라 성은 성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별장 내 부지의 가장 위가 아닌 아래에 위치해 있어서 별장을 빠져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를 수 있는 곳이다.

귀족의 성이라면서 잿빛으로 칙칙하게 재단된 이 모습은 화려한 외관에서도 어딘가 모를 음산함을 외벽에 얇게 도포한 듯도 했다.

성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을 수 있는 인공 우물이나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전망대, 또는 별장의 손님들이 다 같이 이용할 수 있는 뾰족한 첨탑의 교회까지 만날 수 있다.

이어지는 길도 넓게 난 중앙길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요리조리 샛길을 타고 내려갈 수도 있으니 헤갈레이라 별장이 제공하는 이 독특한 재미는 내가 정말로 지체 높은 귀족의 별장에 초대된 귀한 손님인지, 지독한 미로 속에 갇혀버린 사냥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의 헷갈림에 있는 것 같다.

구석구석 작은 곳까지 다 돌아다니다 보면 두 시간은 훌쩍 넘어간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1900년대 손전등도 불빛도 지도나 가이드 하나 없이 혼자서 이 넓은 별장을 돌아다닌다면, 글쎄, 빠져나올 수 있기나 했을까?

사실 헤갈레이라 별장에 발을 들이고 그 규모에 압도되었다시피 한 것은 내가 이곳과 연관 지어서 생각했던 장소가 나선형 계단 우물 밖에 없었다는 빈약한 배경지식 때문이었다.

당연히 우물을 제외하고서는 별다를 게 없는 성인 줄로만 알았는데 직접 그 안을 걸어 다니다 보니 온 몸에 와닿는 신비로운 기운이 있었다.

아담스 패밀리가 세간의 눈을 피해 모여사는 성이나 드라큘라가 은신해 사는 성처럼 기묘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위기는 어디서 풍기는 걸까, 길을 걷다 생각해보니 자연물과 인공 구조물의 조합에서 풍기는 것 같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마치 마른 잿빛 성벽을 타고 올라가는 싱그러운 초록빛 넝쿨의 조화를 일례로 든다면 연상되는 이미지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별장을 구성하는 그 어떤 작은 구조물을 집더라도 완전한 자연물이나 인공물이라는 구분 없이 다 같이 한데 어우러져있는 것이다.

어느 길목에 들어서더라도 별장 내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자연이 빚은 창조물과 인간이 지은 설치물의 조화로운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 제멋대로 모양이 잡혀있는 동굴을 빠져나오면 인간이 각도를 재고 고심해서 설치한 징검다리를 타고 연못을 건너 다시 육지로 돌아올 수 있다.

그 연못 또한 주변에 흐르는 천의 방향을 재조정하여 하나의 인공 폭포로 형성해 만든 셈이고, 연못 위로는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있어 자유롭게 지상과 지하를 드나들 수 있는 일종의 통로를 만들었다.

인간이 조각한 산물들도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든 것 없이 자연이 제공한 날 것의 원재료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더하거나 덜어내어 형성된 흥미로운 에너지가 보는 이에게도 전해지는 것이었다.

섬세하게 빚어낸 경이로움은 헤갈레이라 별장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그러니 별장을 찾아간 손님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기막힌 신비를 온 감각 기관을 동원해 샅샅이 찾아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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