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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자의 흔한 하루

HYPERSENSiTiVE

by 이해린

6일 차


격리를 시작한 지 6일 차에 접어들었다.

총 14일의 격리 주간 동안 사실상 완전한 폐쇄 격리를 하는 것은 이틀에 제외한 12일이라고 보는 게 첫날과 해제 전날에는 지역구 보건소를 직접 방문해 검사를 실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구 보건소는 우리 집에서 조금은 먼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도착하는 데에만 거의 40여분이 걸린다.

보건소에서 검사받기 전 대기를 얼마간 하기도 했는 데다가 오고 가는 길에도 날씨가 습해 절로 걸음이 느려지다 보니 집에 돌아왔을 때 즘에는 출발한 지 두 시간 조금 넘게 지나있었다.

그렇게 바깥바람을 한 번 쐬고 왔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그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자가격리를 시작한 셈이다.

셋째 날까지만 하더라도 지독한 시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새벽 두 시에 잠을 깨서 퀭한 눈으로 오전까지 보내기 일쑤였다.

낮잠만 자지 말자, 다짐을 그렇게 해도 오후 예닐곱 씨가 되면 머리 위에 비브라늄 닻이라도 올려놓은 듯 온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에 잠깐 눈을 붙이면 또 두 시간이 그렇게 훌쩍 흘렀고 그다음 날에는 또 새벽 두 시에 눈이 번쩍 떠져버린다.

흡사 기적의 아침 기상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처럼 새벽을 한 낮처럼 보내다 보면 그 고요한 시간 동안 둥둥 흘러가는 생각들과 잡념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뜰채로 건져 모아 보면 못해도 한 트럭은 나올 것이다.

한낮에는 주변에서 쟁쟁하게 울리는 생활 소음들로 가려지는 소리들이 새벽 시간에는 선명한 데시벨로 귀에 박힌다.

시계의 초침 소리, 음료수 뚜껑을 돌려서 여는 소리, 잔뜩 건조해진 눈을 깜빡이는 소리나 옅게 내쉬는 한숨 소리조차도 증폭된 음향으로 넓지 않은 오피스텔의 거실 공간을 가득 메운다.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모습은 이질적이다.

지금은 새벽 세시 반, 도시의 모든 생물이 잠들어있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반대편 아파트 단지의 몇몇 창문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띄엄띄엄 서로에게서 거리를 둔 채 노란빛을 뿜는 저 공간들은 검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 같다.

네 시에는 주로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한다.

거기는 지금 저녁 8시, 친구는 주방에서 내가 남겨준 프라이팬으로 요리했을 저녁 찬들을 식탁에 늘어놓고 식사를 시작한다.

친구의 식사 모습을 말끔히 보고 있자니 나도 괜히 배가 출출해져 옆에 놓여있는 젤리를 하나씩 집어 들면 친구는 새벽에 무슨 군것질을 그렇게 하냐며 또 핀잔이다.

다섯 시를 기점으로 해서 점차 주변에 어르스름한 푸른 기운이 돌며 어둠이 한 꺼풀씩 벗겨진다.

친구는 환해지는 방 안을 보며 매번 너랑 가보지도 못한 한국의 일출을 보네,라고 말하고는 한다.

친구와의 통화를 끊은 뒤에는 청소를 시작한다.

거실과 방, 화장실 전체적으로 구역을 나누고 또 그 안에서 어디부터 청소할지 대강 계획을 세운 뒤에 하루씩 잡아서 청소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아도는 시간 덕분에 방 안의 여유 공간은 훨씬 넓어졌고 대신 현관문 앞에 쌓인 쓰레기 더미는 점점 층이 올라가는 중이다.

격리 이전까지 쓰레기를 버릴 수 없고, 제공된 유해물 전용 쓰레기봉투에 넣어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 버려야 하기 때문에 일단 지금은 음식물이며, 청소에서 나온 쓰레기들 모두 아직은 집 안에서 요령 있게 보관하는 중이다.

오전이 되면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하루에 한 권씩 돌파하며 이 달의 독서왕을 목표로 저돌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올 2월, 리스본의 락다운이 한창이었을 무렵에는 밀리의 서재라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17권의 책을 읽은 바가 있는데 이 기록을 깰 수 있을지는 의문이긴 하다.

아무래도 리스본에서는 락다운이 3월 중순까지 이어졌으니 지금의 자가격리와는 현저하게 비교되는 기간의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날을 꼬박 샌지라 입맛은 전혀 돌지 않는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평소 음식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철저한 음식지론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가히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두세 시에 느지막이 점심을 먹는데 냉장고는 이미 엄마가 꽉꽉 채워준 반찬들로 가득 차 있어서 골라 먹으면 그만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또 몸을 움직여 주어야 하기 때문에 청소를 재개한다.

중간중간에는 다시 책도 읽어주고, 브런치도 몇 글자 더 깨작거리기도 해 보고, 넷플릭스를 켜 드라마와 영화를 보기도 한다.

사실 자가격리가 끝나면 이틀을 쉬고 바로 학교에 복직하게 되며, 그 이틀마저도 학교를 나가 살펴볼 일이 생길 것이니 격리 이후에 바로 직장으로 복귀한다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이 격리 기간이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집 캉스라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게 되었으니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금처럼 흘려보내는 한두 시간이 지루하다거나 따분하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도 드러누워서 쉬고 있는 마당이긴 하지만 이보다도 더 격렬하고 격정적으로 쉬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며 하루가 저물어 가는 걸 창 밖으로 내다보면서 아쉬운 마음만 가득하다.

오늘은 어떤 생각을 했냐면 하루씩 갈수록 내 몸의 시차가 점점 돌아오고 있는 것이 순간 서운해졌다는 점이다.

한 시간씩 따라잡아 어제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고 오늘은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났다.

첫 며칠 동안은 두시나 세시 근처에 일어나 뜬눈으로 일출을 연속으로 내리 보았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일상이다.

리스본에서 돌아왔는데 아직도 일부를 그곳에 남겨진 것 같다.

어쩌다 모르게 남겨진 건지, 아니면 내가 부러 놓고 온 건지 모르겠다.

어느 날은 다시는 볼 수 없을 이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고, 다른 날에는 당장 내일모레라도 채비를 해 다시 떠날 수도 있을 것도 같으니 말이다.


몸 어느 한 군데 아프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또 오랜 시간 혼자 방구석에만 박혀서 지내다 보니 괜히 여기가 결리는 것 같고, 저기가 어쩐지 삐걱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진짜인지도 모를 이 가짜 통증은 상황이 날 몰아세워서 극도의 예민함이 낳은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무료함을 분산시키려 여기저기 멀쩡한 곳도 괜히 한 번 들쑤셔 보는 느낌이다.

잠에서 깨면 당연히 두통이 있는 것이 당연하거니와 직장이 있다면 두통이고 자시고 일단 출근하고 봐야지, 바지부터 껴입고 볼 텐데 성가신 통증을 가만히 안고 침대에 주야장천 누워있자니 이 두통의 뿌리와 근원지에 대해 깊숙이 탐구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싶은 그런 감각의 잔상마저 꼬투리를 잡아보는 요 근래의 일상이다.

유럽에 나가 있을 적만 해도 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 아프더라도 먼저 민간요법을 실천해보고는 했다.

코로나가 유행한 이후로는 더더욱이나 병원에 발을 들이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으니 모든 건 사실상 의지에 따라 달린 일이었다.

스페인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40도의 불볕더위와 맞지 않는 음식, 심지어 석회수의 삼 연타에 이기지 못하고 피부가 제대로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약국에서 거진 십만 원어치 장을 봐와서라도 병원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구글에 피부과를 검색해 제 발로 찾아갈 지경까지 이르렀다.

원인은 박테리아성 피부염이었든가, 뭐 그저 그런 피부염의 일종이었고 항생제까지 두둑하게 처방을 받았다.

약값까지 해서 거의 한화 12만 원이 나왔는데 유학생 보험으로 처리해 대부분의 진료비는 돌려받을 수 있었으나 그 과정이 번거로워 웬만하면 혼자 해결하자는 마인드가 다시금 새겨지게 된 계기만 되어주었다.

원래는 골골대는 몸이어서 뭐만 생기거나 느껴지면 바로 병원이나 약국에 달려가는 편인데도 그렇게 근 2년을 병원에 발도 들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버텼다고 말하는 건 중간중간 당연지사로 병원에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는 일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리스본에서 1월부터 제대로 된 혹한기를 보내고 난 뒤, 축농증이나 비염처럼 목에는 가래가 끼고 연신 코가 막히는 불편한 날들이 내리 이어진 적이 있었다.

그 후유증은 오래도록 가서 정도만 다를 뿐 거의 한 달이 넘도록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았던 것 같다.

설마 코로나이려나, 하는 마음도 간혹 불안감에 들기도 했으나 검사를 따로 하지는 않아서 정확한 결론은 내릴 수 없다.

대신, 최근에 간이 검사를 포함한 두 번의 코로나 검사에서 모두 음성 결과가 나왔으니 다른 거면 몰라도 코로나는 아니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정말 이비인후과라도 가서 검진을 받아야 되나 딜레마가 있긴 했지만 코로나에 노출되는 물리적 위험성과 보험 처리의 불편함만 따지더라도 차라리 집에서 버텨보자는 생각이 우세하게 들어서 약국에서 쓸 수 있는 가정용 약품만 봉지 채로 쓸어 담아와서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복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더없이 절절하게 느껴지긴 했다.

그게 집 떠나서 그런 것인지, 개인적 신념에 스스로를 고통 속에 밀어 넣은 것인지는 사실 애매한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당시에도 락다운이 거의 두 달 가까이 시행되고 있을 때여서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바깥 시간보다 월등히 많았다.

밖에 나간다고 해봤자 식당이며 상점들이 모조리 닫혀있는 데다 그렇다고 텅 빈 거리를 쏘다닐 그런 분위기도 아니어서 다들 얌전히 집 안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바깥 상황이 울적하게 돌아가는 마당에 호흡 계통에 평소에는 느끼지 않았던 낯선 통증과 불편한 증상들이 생기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벌레를 목격하게 되면 전에 없던 간지러움이나 근질거리는 가려움 불쑥 생기는 것처럼 특수한 상황에서 혼자 골똘히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 괜히 쓸데없는 잔걱정들을 하게 된다.

실체 없는 두려움보다 더 허황된 것은 없음을 수도 없이 겪었으면서도.


격리가 끝나기를 하루씩 세면서 지내고 있다.

자가격리가 시작된 첫날, 노트 한 장을 찢어서 격리 맞춤 제작형 스케줄러를 만들었다.

2주에 맞춰서 만들어진 이 특별한 달력은 별 건 없지만 하루씩 어떤 일들을 해나가야 할지 그 전날 미리 작성하고 당일날 하나씩 해치워나가며 줄을 긋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늘 목록에 포함되는 건 독서, 포르투갈어 A2 교재 복습하기, 브런치 쓰기, 청소가 있다.

홈트나 우쿨렐레 연주, 또는 학교 업무 체킹 정도는 간헐적으로 스케줄에 들어가기도 하고 복불복으로 어떤 날은 빠지기도 한다.

메뉴도 물론 그날의 일정에 반드시 포함되는데 냉장고에 들어있는 식품들 중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할 신선제품들을 우선적으로 넣어 만들어 먹을 점심 메뉴를 고심하는 그 전날 10분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요새는 활동량이 많지 않아 하루에 1.5끼 정도를 먹는데 아침은 0.5끼로 환산되는 정도를 대충 먹고, 점심은 나름 진수성찬을 차려 먹는 중이다.

물론 각 끼니에 디저트는 늘 포함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날마다 죽죽 줄을 긋거나 그날이 지나갔다는 표시로 초록색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이미 지나간 날들과 아직은 빈칸으로 남은 날의 일수가 동일 해지는 순간이 왔다.

희한하긴 하다, 시간은 어떻게든 흐르긴 하는구나.

같은 시간을 영원히 되풀이해서 살고 싶은 적이 있었다.

카파리카 해변에서 끊임없이 물러나고 들이치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자빠지는 중에도 좋다고 깔깔대는 그날은 매일매일 반복되어도 난 좋을 것 같았다.

대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시간만은 탈출하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으니 시간의 절대성에 감히 대들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어쨌거나 순리에 맞기는 하겠지.

아무튼간에 정나미라는 눈곱도 찾아볼 수 없는 시간이라는 개념 덕분에 지금까지 보낸 날수만큼 더 은신하고 지내면 곧 자유의 몸이 될 터였다.

토요일에 마지막으로 음성 결과를 받아보고 그다음 날인 일요일에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학교를 나가서 인증서도 다시 발급받아야 하고, 동학년 선생님들도 얼굴 뵙고 인사를 나눠야 한다.

수요일은 개학 날이니 그날은 여차저차 또 바쁜 날이 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의 연장이 불러오는 건 실체 없는 잔걱정, 그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버금가는 진리의 공식이다.

그러니 그만하고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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