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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Feb 01. 2022

겨울방학을 걸음

스키장 정말로 다이스키다요

스키는 어렸을  혹독한 트레이닝과 아버지의 지독한 멘탈 관리로 배웠다.

처음 배운건 또래 친구들하고 함께 등록한 스키 캠프 비슷한 클래스에서였는데 정말이지 비참했다.

추움과 배고픔의 원이 겹쳐 교집합의 공간을 만드는 순간 그 집합의 이름은 어린아이의 비극이 되어버린다.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흐르는 콧물과 칼바람에 붉게 달아오르는 맨살의 심상을 떠올리기만 해도 참혹한 현장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여섯 살의 나는 그렇게 스키라는 스포츠를 처음 접하며 첫 단추를 꿰어도 단단히 잘 못 꿴 채로 연을 맺게 되었다.

학창 시절 동안에도 꾸준히 매년 겨울에는 스키 여행을 한두 번은 갔는데 자의가 담겼다기보다는 분위기에 말리거나 희한한 의무감에 성실한 학생이 출석 체크하듯이 참여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입으로는 싫다 하면서도 매년 혹은 2년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혹독한 심신 수련을 실천했는지 의문이다.

학원 특강을 가느니 차라리 산에 가서 도를 닦는다는 마음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겨울 산에 연례행사처럼 갔기 때문에 스키에 대한 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행보는 뜻밖의 부작용을 수반했다.

아버지의 스파르타식 가르침이 변수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빠는 참 독특한 교육법을 지니셨고, 그 산물로 가끔씩은 의도치 않게 자식들에게 트라우마를 낳기도 했으니 그 예시로 수영과 스키를 들 수 있다.

상세한 내역을 고하자면 수영은 빨리 배우는 것이 좋다며 어린 나이에 물에 집어던지신 것이나 이제 올라갈 때가 되었다며 상급 코스행 리프트에 실어버리신 것이다.

물론 수영장에선 아빠가 언제든 날 건져낼 준비를 옆에서 하고 계셨고, 스키장에서도 날 뒤에서 조종하듯이 안아 내려오기는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어린 나의 시점에서는 물속에서 버둥거리던 그 3초가 영겁만 같았으며 내려오던 하산길이 스키는 살상 운동이라고 인식하게끔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니 확실한 부작용이 맞기는 했다.

리프트에서 내려 바들거리는 두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내려오는 길 내내 조심스럽게 곡선을 그리며 뒤에서 누가 날 박지는 않을까,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날쌔게 눈발을 날려가며 질주하는 스키어들과 스노보더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내 비쩍 마른 팔의 한편에선 털이 오소소 오르며 닭살이 돋았던 수많은 겨울산의 시린 기억들.

보상처럼 주어지는 벤치 옆에 서서 먹는 컵라면과 떡볶이 세트만이 유일한 위로였으며 더없는 즐거움이었다.

아빠가 자주 못 보는 광경이라면 사진을 오십만장 찍은 산고대

20년이 흐른 뒤, 나는 학교에 조퇴를 던지고 평창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물론 이 때는 학생이 아닌 교사로서 조퇴를 내야 했어서 조금 더 까다롭고 정교한 절차를 밟았는데 역시 체험학습 신청서 던지고 훌훌 떠나는 학생이 최고라는 생각을 흘리듯이 하며 열차칸에 오르기는 했다.

도착한 평창역에는 내리자마자 오륜기가 여기저기 보였고, 그제야 동계 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것을 조금 실감했다.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었던 것은 숙소로 가는 길 어차피 빙상 종목은 티켓도 못 구할 거니까 표라도 남은 설상 종목이라도 보자는 마음에 들어간 스키 점프 경기장에서 보는 하늘을 나는 스키어들이었다.

사람이 난다, 어라, 사람이 추락한다, 와, 근데 착지한다? 이게 된다고?

사고 회로를 몇 번씩 정지시켜준 스키 점프 구경은 정말이지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이건 선수들 발에 스키만 끼웠다 뿐이지 거의 공중 낙하라고 해야 할지, 에어 점프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스키 점프라는 이름이 무상하게 선수들은 한 명씩 자의로 지상 수십 미터 위에서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눈 밭 위에 펼쳐지는 풍경이 어릴 적 스키를 배우던 내 마음과 어쩐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였는데 그 당시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는 내 심정이 머릿속에서는 스키 점프 급으로 너프 해서 인식되어서였다.

그런데 다른 점은 이 선수들은 얼굴의 근육 하나 미동 없이 담담하게 출발과 끝을 맺는다는 것이었고, 모든 움직임에서 맴도는 초연함에 설명할 수 없는 멋이 배어 나왔다.

저 멀리서 점으로 보이던 형체가 점점 지상에 가까워져 오며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는 것, 점프를 마친 뒤 스크린으로 자신의 기록을 확인하는 모습, 활강하다가 방향을 틀어 멈출 때 세차게 흩날리는 눈발이라든지 스크린에 크게 잡히는 선수의 얼굴에 담긴 턱을 굳게 다문 다부진 모습과도 같은 연속적인 움직임은 크고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무서움이라는 걸 알까.

중력과 관성의 힘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거기에다가 아마 내가 이름도 모르는 물리학적 원리를 모두 거스르는 저 사람들도 이동식이나 마크, 사라 혹은 최지연 같은 이름을 가진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일까, 하는 정말로 원초적이고 더 이상 일차원적일 수 없는 단순한 질문들이 떠올랐다.

종일권 가보자고

그 이후 스키장을 다시 찾았을 때 내려오는 느낌이 달랐다.

부츠를 스키에 채우고 리프트를 올라가는 길부터 스키를 타고 평평하게 덮인 눈을 가로지르는 길까지 모든 길은 네이버 지도에서 출발지와 도착지를 찍어 경로를 따라가는 노선처럼 쉽고 단순하게 느껴졌다.

어디에서 코너를 돌아야 하고, 어느 지점에서 턴을 하는 것이 좋은지 슬로프가 같아도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는 변수들이 존재했기에 같은 길도 새로웠다.

쌓인 눈마저 형태와 모습을 매 순간 다르게 취하고 있어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건 언제나 다른 결과값을 내놓았다.

무섭지 않은 것보다도 스키의 공포에 비례한 즐거움의 비율이 커져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공포감을 조금씩 의지로 내리누를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스키를 타는 내 모습이 전혀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았고, 어릴 때 굳어진 잘못된 습관들이나 엉성한 자세들마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기서 이렇게 타면 안 된다거나 지금 이 시점에서 꺾으면 안 된다는 자기 검열적 신호들보다는 스키를 타며 무엇을 해도 어쨌든 내려가면 괜찮다는 신호가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 오갔다.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스키장을 찾게 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나는 아직도 스키를 잘 탄다고 하지 않고 탄다고만 한다.

상급자 코스는 내려다만 봐도 아찔하고 현기증이 나지만 리프트에서 내려 상급자 코스로 몸을 트는 사람들을 보며 경외심에 가득 찬 시선을 던지고는 한다.

이제는 내게 중장기 목표가 생겼는데 5년 안에 상급자 코스를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타게 되는 것이다.

객관적 조건을 따져보자면 그 실력까지 올라가자면 스키 학교에 등록하거나 일대일 강습을 받아야 할 것 같기는 하지만 내 몸이 체득해 평생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비용이 얼마나 들든 시간이 오래 걸리든 사실 들어가는 투자 비용은 아깝지는 않다.

나는 기필코 무서움을 모르는 날다람쥐가 되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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