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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Mar 24. 2022

초등교사의 방구석 확진 라이프!

  우린 학교에 매일 아침 10시까지 코로나 관련한 출결 조사 엑셀 파일을 입력한다. 등교해야 하는 인원수, 신규 확진자 수, 기타 결석생, 기타 등등. 모든 반이 빈칸을 채우고 나면 가장 밑 줄에 놓인 합계란에는 해당 학년의 몇 퍼센트가 코로나로 등교 중지 상태인지 뜬다. 그 숫자가 일정 비율을 넘어서면 원격 수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여덟 시 오십 분이 되면 커서가 깜빡거리는 빈칸에 키보드를 두드려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조합해 넣는다.

들쑥날쑥한 숫자 속에는 달갑지 않은 사실이 숨겨져 있다. 어떤 학생의 분명한 확진, 아이의 검사로 낸 엄마의 반차, 양성임을 알려야 하는 보건소 직원의 초과 근무 시간, 자가진단 키트의 개수. 누적된 피로, 쌓여가는 짜증과 성가심. 하나씩 손을 꼽아 셀 수 있는 것들과 셀 수 없는 것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우린 죽창을 휘두르며 출근을 할 거라는 인터넷 몸이 떠오르는 건 왤까. 그런데 진짜 출근할 것 같은 이 기묘한 촉. 아닌 게 아니라 학교에서 교사 인력이 점점 바닥나고 있다. 어떤 선생님이 양성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가면 그 반을 임시로 담당해줄 교사는 주로 교과 전담 교사가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만약 수업 가능한 전담 교사가 0에 수렴하는 상황에 확진 판정받는 교사가 자꾸 생긴다면 어떻게 구멍을 메워야 하는가. 학교 상황은 아슬아슬하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이유로 아침에 불현듯 울리는 교실 인터폰은 불길하다. 받고 싶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든다. 이미 빤한 내용이지만 그래도 아니길 바란다. 선생님, 오늘 2-3교시 과학이시죠. 수화기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평이한 물음에 나는 전담 시간이 주는 안락함을 송두리째 빼앗길 것을 예감한다. 대체 무슨 수업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가라는 대로 가서 처음 보는 애들을 앞에 두고 어물쩡 말문을 연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하고.

  학부모 총회를 마치고 연구실에 모여약 속했다. 정신을 무장해 절대 코로나에 걸리지 말자고. 우리가 엄숙하게 서로의 건강을 비는 동안에도 몇 명의 동지가 교실을 떠났다. 격리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이들은 메신저 창을 켜자마자 쏟아지는 업무량에 한동안 웃음을 잃었다. 3월 출석부가 온갖 체크 표시를 달고 있는 마당에 출결 기안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 혼란스러움도 가중되고 있었다. 지난번 회의 때 보고 양식이 바뀌었다고는 했는데 어디서 양식을 찾아야 하나 고민에 휩싸였다. 먼저 등록한 다른 선생님 기안문을 복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업무 시스템에 들어갔으나 놀랍게도 그 누구도 아직 결재문서를 올리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신년 계획표보다 화려한 우리 반 출석부는 애써 덮어놓기로 했다. 3월 전에 누가 용기내고 올려주시겠지, 동료를 향한 신뢰는 이때야말로 빛을 발할. 때였다.


  초등학생은 일주일 2번, 수요일과 일요일에 자가진단키트를 한다. 백신을 맞은 교사는 일주일 1번이다. 별개로 이미 양성 판정이 뜨고 격리를 거쳐 완치까지 이른 교사나 학생은 그 후 45일간 자가진단키트를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 일요일 오후, 목이 퍼석퍼석한 느낌을 받고 의구심을 품은 채 키트를 꺼냈다. 의심의 여지없이 선명하게 뜬 한 줄을 보고 눈을 흘겼다. 매직아이로 봐도 한 줄이었다. 자기 전에도 낫질 않아 한 번 더 키트를 했다. 그래도 한 줄이었다. 다음 날,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마스크 아래 레몬라임맛 스트렙실을 털어놓고 입 안에서 굴렸다. 목구멍이 알싸 해지는 걸 느끼며 창 밖을 보니 벌써 다다음 정류장이 학교였다. 하여튼,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 보다도 학교로 가는 길에 버스가 더 빨리 달리는 기분이다. 아니, 이건 기분이 아니라 확신이다.

  그날은  어떤 무드에 들어서였는지 교실 체육을 하고 싶었다. 의자랑 책상까지 밀면서 요란하게 체육 수업을 했다. 애들은   아니어도 쉽게 즐거워한다. 얘네가 즐거워하면 난 괜히 더 부채질을 하고 싶어 진다. 칼칼한 목이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월요병의 잔해인 줄 알았다. 허구한 날 부어오르는 편도겠거니 생각하고 아침에 미리 조퇴를 신청해놓았으니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받고 약을 처방받으면 될 거라는 생각까지 모두 대단한 착각이었다. 이른 오후에 도착한 이비인후과는 사람이 꽤 있었다. 진료만 볼까 하다가 창구에 쓰인 신속항원검사 푯말을 보고 검사를 다시 받아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명단에 이름 석 자를 적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에는 물어보살이 방영되고 있었다. 속이 갑갑해지는 신청자의 사연과 목 막힘을 속 시원하게까지는 해결해주지 않는 보살의 조언을 몇 분 보고 있자니 가뜩이나 텁텁한 목구멍에 고구마까지 한 덩이 끼어버린 것 같아 차라리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머리가 띵해져 오길래 차라리 눈을 감고 있자 싶어서 노래 한 곡을 재생시켜 놓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내 이름이 불려지고 진료실 의자에 앉아 신속항원검사부터 하자는데 마음의 준비 없이 다짜고짜 훅 들어온 면봉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눈물 한 방울 떨구었다.

몸살 기운은 좀 있고요?”

아니요. 그냥, 머리가 지끈거려요.”

기침은 좀 하나요?”

기침 좀 해요.”

언제부터?”

오늘 아침부터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사의 질문 세례에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음, 설마,

양성이네요.”

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이리하여 난 양성 판정을 받고 황망히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이 고작 월요일인데 내일부터 학교는 누가 가나. 교실 문은 누가 여나. 수학 단원 평가는 누가 복사해주나. 미술 수채화 수업하다가 분명 누가 물을 한바탕 쏟을 텐데 다 쏟은 물은 누가 치우나. 그러면 옆에 앉은 애는 자기는 가만히 있었는데 얘 때문에 가방 다 젖었다고 짜증 낼 텐데 그건 누가 받아주나. 주간 학습 안내는 누가 수정하나. 교과서 안 챙겨 온 애들 있으면 연구실에 데려가서 교과서 빌려 줘야 되는데 어떡하나. 내일 과학 들었나, 실관 안 가져온 애들 수두룩할 각이 서는데.


  일단 집에 들어가기 전에 언니한테 문자를 날렸다. 나 양성이야!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도 했다. 아니, 지금은 괜찮아. 아니, 진짜로. 아니, 내가 왜 아픈데 안 아프다고 하겠어, 진짜 안 아프니까 안 아프다고 하지. 나중에 아파지면 아프다고 할게. 그리고 선생님들께도 양성임을 알린다. 선생님들, 제가 이 꽉 깨물고 코로나를 정신력으로 이겨보려고 했는데요. 그러니까 그게, 실패했습니다. 교감 선생님에게도 메시지를 드린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교감 선생님, 네에. 다시 백스페이스 백스페이스. 어제 이러이러했어서 오늘 이러이러하다 보니 코로나 확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동학년 선생님들께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알려드렸으며, 학부모님들께도 소통 창구로 이러이러하게 됐다고 알리려고 합니다. 학부모와의 소통 플랫폼에 들어가 글을 써 내려간다. 담임교사의 개인 건강의 이유로, 근데 이렇게 쓰면 누가 봐도 코로나 걸렸다고 외치는 건데? 지웠다가 썼다가, 조금 더 쓰다 아예 다 지워버리다가.

  그렇게 일주일간의 격리가 시작되었다, 38도의 뜨끈한 온기를 흩뿌리며. 확진 판정을 받은 그날 저녁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늦은 밤이 되었을 무렵 온도는 상승 곡선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무증상 코로나는 유니콘 같은 거였나, 내가 무증상을 바랐던 게 그렇게도 큰 바람이었던 걸까. 열기가 몸속 곳곳에 퍼져있어 내쉬는 숨마저도 더웠다. 그 와중에도 오한이 자꾸 들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작작 좀 하고 둘 중에 하나만 해라, 어째 슬슬 열이 뻗쳤다. 이미 얼큰하게 달아오른 체온 말고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랄까. 이러다 잠은 언제 자나, 피곤한데, 너무 아프다, 아이고, 얼른 자야지 내일 학교를, 참 내일 학교 안 가도 되지. 생각이 분명 많았는데 몸 한가운데 생성된 거대 용광로에서 뿜어내는 마그마가 모든 생각 회로를 족족 차단시켰다. 종래에 남은 생각뿐이라고는 아프다, 아프다, 아이고, 살려주세요, 정도를 제외하고 그 외의 잡념은 다 사라지고 말았다.

  순조롭게 나아졌다가 다시 힘차게 악화되는걸 하루에 몇 번을 반복하고 이제 격리는 후반부에 들어섰다. 코로나 확진은 처음이지만 자가 격리에는 일가견이 있는 터라 몸 상태가 조금 회복된 뒤에는 시간을 알차게 쓰고자 나름대로 루틴을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노트북에 미리 설치한 학교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메신저도 켜서 업무 쪽지를 확인했는데 이는 학교에 다시 나갔을 때 마주해야 할 깊은 심연의 절망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중간중간 연락 오는 학부모의 연락을 받고, 출결처리 관련된 것들이나 직접 회신해야 하는 통신문을 안내해주었다. 열 시쯤 되어서는 가볍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선 책을 읽었다. 격리 기간 동안 화씨 451도를 읽었는데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하루 온종일 체온 재고, 체온 입력하고, 이상 체온 보고하고 있던 나로서는 책 표지를 보고 조금 싸늘해진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책 내용은 굉장했다. 점심을 먹고선 다시 메신저에 접속해 새로 본 쪽지 내용을 확인한다. 6교시 시간에 맞춰서 다음날 주간 학습 안내장을 보고 학습 준비물이나 과제를 알림장에 적어 소통 창구에 올린다. 또, 임시로 학급을 맡아주시는 선생님에게 내일치 학습 자료를 정리해 쪽지나 메일로 발송한다. 여기까지 하면 얼추 오후 세시가 되는데 몸이 안 좋으면 다시 침대로 스멀스멀 기어가든지 아니면 주전부리를 좀 먹어서 에너지를 보충한다. 이마저도 항생제를 너무 많이 먹어 장염 증세가 나타난 이후로는 못 했다. 저녁 시간이 될 무렵에는 대체로 생기를 잃은 초록잎 식물처럼 조금씩 기운을 잃어가기 때문에 허겁지겁 침대로 올라가 이불을 덮어줘야 한다. 그리고 집 밖을 못 나가는 동안 가느다란 햇빛 한줄기라도 받으려고 열어 놓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을 간접 체험하면 하루가 대충 흘러간다.


  코로나가 없는 세상이 어땠더라. 그때는 공룡도 길거리에 많이 다니고 그랬던 거 같은데. 이제는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어렴풋한 잔상만 남을 정도로 먼 세상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격리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면 내가 만든 빈자리는 다시 내가 채우겠지만 곧 누군가의 자리가 어떻게 비워질지 예상할 수 없다. 아무리 빈자리가 있다 해도 잘만 굴러가는 게 학교다, 어떻게 해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묻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다들 어떻게 하고 계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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