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힌일지 11 태국, 천국

여행 마지막날

by 이해린

후아힌에서 보낸 네 밤은 다시 되돌아봄직했다.

첫 날밤은 방콕에서부터 이어진 피로를 풀기 위해 이른 시각에 보약 같은 잠을 청했고, 다음 날 밤에는 설날 연휴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 놀이가 밤 하늘을 수 놓은 걸 발코니에 놓인 소파 베드에서 넋놓고 감상했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후아힌의 밤을 탐방한 건 이어지는 밤부터였다.

우린 셋째날 밤, 사케이다 야시장에서 배를 두둑하게 채웠다. 후아힌은 휴양지라고 생각하고 미리 정한 일정이 전무하다 싶었는데 그 중에 딱 한 곳 반드시 가야할 목적지로 정해둔 곳은 사케이다 야시장이었다.

거리도 살펴보니 우리가 머문 리조트와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아 걸어가거나 차를 타도 1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심지어 우린 사케이다 야시장을 위해 방콕에서는 곳곳에 즐비한 야시장을 한 군데도 들리지 않았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거나 위장염이 생기는 바람에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그럼에도 사케이다 야시장은 꼭 가야한다 약속했던 건 그 곳의 깔끔하고도 정돈된 분위기 때문이었다.

야시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번쩍이는 네온 사인으로 2023 숫자가 반짝이고 있었고, 안은 사람들이 먹거리 부스와 수공예품을 파는 매대를 부산스럽게 오가고 있는 게 보였는데 역시나 제일 먼저 발길이 향한 곳은 먹거리를 파는 부스가 줄줄이 서 있는 길목이었다. 부스마다 내놓은 음식과 음료 메뉴는 침샘을 무자비하게 자극하는 향과 비주얼을 자랑했다.

코코넛 스무디, 수박 주스, 얇아서 바삭한 팬케이크 반죽에 코코넛 크림을 바른 카놈브앙을 시켜 먹었다.

너무나 애석하게도 이미 저녁을 먹고 출발한 터여서 더 많은 메뉴를 섭렵할 수는 없었다.

아예 대게나 새우 같은 해산물까지 아이스 버킷에 담아 놓은 것까지 보니 이 사람들, 본격적이다, 라고 깨닫고 저녁을 괜히 먹고 부른 배로 왔다는 엄숙한 반성의 시간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깔끔하게 관리 된 매장의 청결도와 정갈하게 정리된 부스를 보니 여기라면 삼시세끼를 다 먹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마지막 밤은 거한 태국 한 상 차림이었다.

절대 풀네임을 외울 수 없는 잘게 찢긴 게살 새로 촉촉하게 커리가 스며든 뿡빵뿡빵커리와 역시나 순도 게살로만 뭉쳐서 튀겨진 게살 튀김, 어쩐지 자꾸 생각나는 향미를 자스민 밥을 추가해준다.

거기에다가 동남아 여행 기분 내기 제격인 싱가폴 슬링이랑 물방울이 잔을 타고 흐르는 창 맥주 시켜서 쪼로록 마셔 주면 키야, 풍경에 취하고 맛에 취한다.

마지막 날 아침은 여느 때와 같이 여유적적하게 눈이 떠지는 대로 눈을 떴다.

핸드폰 알람이 아닌 배꼽 시계로 일어나는 한적한 아침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 날의 모든 건 태국에서의 마지막이었음을 알았기에 뭐 하나 허투루 보내지 않고 소중하고 천천히 쓰고 싶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마지막 날이 가까워질 수록 말로 하기 어렵고, 글로 풀어쓰기 애매한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흡족스러워 시간의 흐름이 멈추고, 그 자리 그대로만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분명 난 아직도 투명하고 푸른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동남아의 온기를 온 몸으로 머금고 있는데도 눈을 감았다 뜨면 난 내 방 침대에 적적하게 누워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섭섭함이 밀려 들어온단 말이다.

여느 때의 여행이었다면 여행 끝 무렵에 찾아드는 아쉬움의 향연에 허덕이며 점점 기운을 잃어갔을텐데 의외로 여겨질 정도로 태국 여행을 마무리하며 찾아든 감회는 달랐다.

하루하루를 조금씩 열심히 살면 오래도록 짙게 남을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시원하게 물줄기를 가르며 아침을 열었고, 바라만 봐도 즐거운 풍성한 음식으로 배를 뜨끈하게 채우며, 별다른 일정이나 목적 없이 여기저기를 거닐며 도시를 탐방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낯선 풍경에 스며드는 건 매일 같이 새로운 기쁨을 안겨 주었고, 길목을 돌 때마다 깜짝 선물이 기다리는 느낌이어서 걸음마다 호기심이 일었다.

리조트 멤버십으로 얻은 다른 혜택은 늦은 체크 아웃이었고, 우린 4시에 체크 아웃을 할 수 있었음에도 방콕 내 진입할 때 다시 교통 체증 지옥에 갇힐까봐 두려운 나머지 이르게 채비해 3시쯤 출발하기로 했다.

돌아갈 때도 리조트 프론트에 미리 콜 서비스를 요청했고, 3시에 로비로 나오면 된다고 해서 캐리어를 다 챙겨 나섰더니 웬 어마어마한 크기의 밴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건 대체 뭐죠, 도대체 우리한테 어떤 탈 것을 제공하시는 거죠,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크기의 8인승 밴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 마치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서 퇴장하는 셀럽의 기분은 이런 것일까 싶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매끄럽게 수속을 마쳤다. 돌아오는 일정은 야간 비행이어서 몇 번 눈을 감았다 뜨니 한국 상공에 진입해 있었다.

한국 하늘은 너무나 쾌청해 보인다 생각했는데 이는 영하 25도의 어마어마한 한파로 오염 물질마저 얼어 버렸다는 것이 정설임을 바깥 바람의 쐬고 나서야 깨달았다.

공항 버스를 타고 집으로 다시 향하는 길에 마치 고드름이 된다면 이런 감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물이 찔끔 났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이 곳은 한겨울의 한국이었다. 난 그저 태국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그리워 함에 목놓아 외칠 뿐이었다.

그럼에도 위안 삼을 거리는 바로 천국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깨달음이다.

시속 900킬로미터로 6시간만 날아 도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돌아올 겨울에도 남쪽의 뙤약볕을 향해 달려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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