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다섯째날
태국까지 왔는데 물놀이를 안 할 수는 없지. 우린 방콕에서의 4박5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남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후아힌, 태국 왕실의 휴양지로도 알려진 바다를 낀 소도시였다.
처음에는 수상 레저를 목적으로 파타야나 코사무이 같은 섬도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파타야는 안 그래도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겨울 성수기에는 사람이 미어터질 것 같았고, 코사무이는 비행기 탑승을 한 차례 더 해야 한다는 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차로도 갈 수 있는 여유로운 해안가 도시, 선상을 좁히다 보니 낙찰된 곳이 후아힌이었다.
머무는 동안 정들었던 아난타라 리조트에서 마지막 수영과 아침 식사를 야무지게 하고 난 뒤 짐을 챙겨 택시에 탑승했다.
세 시간 정도 차를 타야 하니 편하게 가려고 우린 리조트 프론트에 미리 택시 콜을 해 두었다.
택시는 3시간 반 정도를 달려 후아힌으로 진입했다. 가는 길에 본 풍경은 우리나라 지방 고속도로를 타며 볼 수 있는 장면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다만, 이따금씩 스쳐 지나가는 간판에 꼬부랑 글씨가 쓰여있다는 것과 식물의 잎이 조금 더 진한 초록 빛이 여기가 태국임을 간간이 상기시켜 주었다.
특별히 시간을 죽이려 한 것도 없건만 벌써 택시는 리조트 진입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방콕에서 몇 번 교통난에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차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시계는 겨우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택시 기사와 인사를 나누는데 젊은 기사는 명함을 내밀며 공항으로 갈 때 다시 불러달라며 자기 피알의 시대에 걸맞게 홍보에 열심이었다.
우린 짐을 내려주는 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미리 서 있던 호텔 직원의 환영 인사와 함께 널찍한 로비로 들어섰다.
후아힌에서 묵을 곳은 인터콘티넨탈 리조트였다. 후아힌에서 여행객이 많이 묵는 숙소는 후아힌 해변가를 따라 위치해 있는데 인터콘을 선택한 이유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입한 멤버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회비를 내고 IHG 앰버서더에 등록하면 전 세계 인터콘에서의 무료 업그레이드와 레이트 체크 아웃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각종 부대 시설 이용에서 할인을 받는 등 혜택을 톡톡히 누릴 수 있다는 소식에 바로 가입을 해놓았다. 오로지 태국 여행만을 위하여.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며 리셉션 직원이 마침 방이 있어 룸 업그레이드를 두 번 해주었다는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호텔 룸에 들어선 순간 뻥 뚫리는 규모와 저 너머 발코니 한 켠을 차지하는 자쿠지에 눈알이 절로 돌아갔다.
내가 태국 한 번 진짜 사랑한다,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오는 뷰였다.
짐을 푸르고 침대에서 한 번 뒹굴고, 발코니에 놓인 베드에 다시 한 번 더 뒹굴었다. 그리고 돌아와 거실 소파에 또 뒹굴거리니 시간이 잘도 흘러 갔다.
각자 뒹굴거리던 걸 멈춘 건 배가 슬슬 고파질 무렵이었다.
우리가 인터콘티넨탈에 예약한 또 다른 이유는 블루포트 몰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해변가라서 혹여나 음식점이나 편의 시설과 거리가 있을까봐 부러 가까운 거리에 몰이 있는 인터콘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 것도 있었다.
우리 숙소가 있는 구관은 내부에서 이어진 다리로 신관과 블루포트 몰로 바로 갈 수 있었다.
우린 여태 태국 음식을 실컷 먹었으니 조금 동북아시아의 정서로 환기를 시키고자 했고, 몰에 들어가자 보인 일식집으로 들어가 돈까스와 모듬 스시 세트를 시켜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접시를 비웠다.
인상적일만큼 깨끗하고 한산하던 블루포트 몰은 구정 시즌을 겪으며 광기의 토끼 굴이 되어버리는데 이는 후아힌에 도착한 첫 날에는 전혀 감지할 수 없던 바였다.
블루포트 몰, 해변, 스위트룸은 누가 뭐라해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삼각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몰에서 돌아오는 길에 앞뜰 정원을 거쳐 수영장으로 쭉 뻗어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좁은 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모닥불과 모래 밭이 나오고 썬베드가 일렬로 정렬되어 있었다.
우린 각자 썬베드에 자리를 잡고, 별이 쏟아질듯 반짝이는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겨울철 별자리인 오리온 자리를 보는데 맨 살에 닿는 바람은 뜨듯미지근했다.
내일 뭐 할까, 가볍게 던진 질문에 머리를 맞대고 완성한 답안이 가관이었다.
내일은 수영장 조지고, 조식 뿌신다. 그 다음에는 해변.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는 계획이지만 후아힌은 그게 전부였다. 오로지 치유의 시간, 그저 휴식의 장소.
다가오는 4박5일의 시간도 기대가 되면서도 지금 이 시간만으로도 모든 게 완벽하게 느껴진 탓에 시간이 흐르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