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셋째날
롱테일보트, 어머니를 부탁해요
다음 목적지로 가려면 보트를 타야 한다고 했다. 이건 이미 일정에 포함돼 있음을 알고 있었다.
노을이 지는 시간 쯤에 보트를 타고 강 하류를 따라 가다가 한 바퀴 돌아 강 건너편에 있는 다음 사원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유타야 선셋 투어, 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겠는가. 물론 아직 노을이 지려면 멀었기 때문에 우린 해가 쨍쨍할 때 강을 건너겠지만 이러나 저러나 보트를 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앎과 행함은 별개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엄마는 보트 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신다.
유동적인 바다나 강물 위에 떠있는 건 사실 두 발을 땅 위에 붙이고 서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선착장에서 얇고 기다란 보트를 보자마자 기겁을 하셨다. 어찌저찌 보트에 들어가 자리에 앉긴 했지만 자꾸 기우뚱거리며 한 쪽으로, 다음에는 반대쪽으로 기우는 보트의 불안정성을 느끼며 식은 땀을 흘리셨다.
결국에 엄마는 하차를 결정했다. 엄마는 기사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다음 목적지에서 30분 뒤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보트 위 남은 빈 자리와 웅웅대는 엔진의 소음을 뒤로 하고 보트는 물살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수상가옥, 강가에 무성하게 자라난 수풀. 지나가며 언뜻 보이는 사원의 뾰족한 첨탑과 붉은 벽돌 탑.
수면에 부딪힌 햇살은 여러 갈래로 부서지며 눈부신 광경을 자아냈다. 햇살이 한 꺼풀 덮혀 익숙한 형체도 새로운 풍경으로 다시 보였다.
왓 마하탓, 부처님이 왜 거기서 나오세요?
엄마는 기사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롱테일 보트를 안 타게 되니 마음이 놓였는지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으이구, 무서워서 못 타겠다고 벌벌 떨고 있던게 고작 삼 십여분 전이었건만.
다시 재회한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왓 마하탓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에는 뜻 밖의 장소에 불상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얼기설기 얽혀 있는 굵은 나무 뿌리 속이다.
억센 나무 뿌리 줄기에 얽매여져 있는데도 부처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 없다.
불자는 아니지만 불교친화적 가정에서 자란 나로써는 자라며 다양한 나라와 지역의 불상을 봤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이런 공간에 놓인 불상은 여태 처음이다.
이게 대체 뭐람, 싶다가도 그 경관만이 자아낼 수 있는 묘한 평화로움도 있기에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산뜻한 마음이 들었다.
버마와의 전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원과 불상이 파괴되었지만 무너진 자리에마저 생명이 다시 돋아났다.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나보다. 그 증거를 눈 앞에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왓 차이와타나람, 황금빛 노을은 강물 타고 일렁이네
마지막 사원으로 이동했을 쯤에는 이미 여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저녁이 찾아들 터였다.
기사님은 이 곳에서 꼭 노을을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오늘 반나절이 가는 동안 기사님의 손에서 탄생한 걸작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이켜 보면 이 분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했다.
우린 돌담에 걸터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았다.
해는 뾰족한 첨탑의 꼭대기에 걸려 있다가 점점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조금씩 하강했다.
둥그스름한 해는 높은 돌탑 틈바구니에 끼는 바람에 더 강렬한 햇살을 뿜어댔다. 도리어 머리 위에 떠있을 때보다도 맹렬한 기세였다.
어느덧 해는 사원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 앉았다.
강물과 거의 수평이 되어 더 내려갈 곳도 없자 둥그런 살이 조금씩 깎여나가며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햇살은 오렌지와 붉은 결로 강물과 사원 곳곳에 세워진 탑을 물들였다.
붉은 벽돌이 반사되어 마치 황금으로 칠해진 것처럼 반짝거리며 빛났다.
찬란한 아유타야
여행을 계획했을 때 근교 도시를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하루를 다 소모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낮 2시부터 저녁이 찾아올 때까지 아유타야에서 시간을 보내며 반복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만 했다.
이 곳 사람들의 정성 어린 불심을 목격할 수 있어서, 강물의 일렁임을 느낄 수 있어서, 황금빛으로 부서지는 햇살의 따뜻함이 바람에 타고 실려와서.
손에 다 꼽을 수도 없을만큼 아유타야의 찬란함은 제각기 다른 빛깔과 모양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