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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Jul 26. 2023

기초학력 담당자? 그거 제가 한 번 해볼게요.

라고 호기롭게 말한 적은 없다.

학교 이동 과정에서 점수 미달로 희망교에 가지 못해서 기존 다니던 학교에 남아 있어야 했을 뿐이고, 인사 이동이 발표나는 시즌이면 대다수 학교는 이미 학년 배정이나 업무 분장을 마쳐 그 후로 전입오는 교사나 나처럼 가지 못하고 묶인 자들은 남은 자리를 골라 가야 할 뿐이다.

고로, 기초학력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을만하고, 그렇기에 남아 있던 업무 중 하나였던 것 뿐이다.

난 망설임 없이 기초학력을 하겠다고 결연하게 선언했다.

그게 아니면 학폭이었다. 아니될 일이었다. 그리하여 기초학력 업무와 난 운명적 첫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먹어봐야 안다지만 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이 업무는 성대하고 창대하리라.


***

처음 기초 학력 업무를 맡았을 때, 연구부장님이 오셔서 올해 일복이 많을 거라는 고견을 주셨다. 이제와 보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때는 간절하게 그 말이 농담이길 바라기는 했다. 그리고 어차피 처음 맡은 업무기도 하니 인수인계를 받은 자료를 뒤져도 뭐가 뭔지, 이게 무슨 뜻인지, 의문만 있을 뿐이었다. 인수인계를 해주신 선생님은 두 분이었는데 한 분은 교육청으로 떠나시고, 다른 한 분은 내년 학급을 준비해야 하니 모르는 게 많다고 붙들고 늘어질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닥쳐야 해야하는 게 행정 업무니 공문이 오면 차례차례 접수해서 시행하거나 운영하는 수 밖에 없다. 유비무환, 그딴 건 없다는 소리다.


다만, 매우 고무적인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건 우리 학교는 올해 기초 학력 미달자, 즉, 3월 초에 시행하는 전국 단위의 기초 학력 진단 시험에서 기준 점수에 미달하는 학생들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학교는 학군이 좋기에(여기서 좋다는 건 보편적 의미로 통용되는 ‘좋은 학군’이라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그건 여지로만 남겨 두겠다,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적 수준이, 다른 사람에게는 학력 수준이 좋은 학군을 가르는 기준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다만, 좋은 학군이라고 지칭할 때는 한 두가지의 단편적 요소가 아닌 여러 복합적이고 연쇄적 요인이 포함된다는 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미도달 학생이 아주 적은 숫자, 또는 없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는 했었다.


물론 처음에는 몇 명 미도달자가 나왔으나 담임 교사들의 며칠 간 각고의 노력 끝에는 적어도 미달 점수 기준은 턱걸이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가 되어서 2차 시험 이후에는 보고할 미도달 학생이 없었다. 진단 검사는 말 그대로 그 학생의 학력 수준을 진단하는 것으로 그 전년도에 학습한 내용을 실은 20 문제 가량의 시험지다. 1학년은 진단 검사를 시행하지 않는 대신 1학기 말이나 2학기 초에 한글 해득 검사를 하고, 2학년 또한 필수 요소는 아니다. 3-6학년은 필수로 진행해야 하며, 결과를 집계해 교육청 보고를 실시한다. 이후, 교내 및 교외에서 이루어지는 기초 학력 프로그램은 중점적으로 진단 검사에 미도달한 학생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이제 우리 학교는 기초 학력 프로그램은 미도달 학생보다는 담임 관찰 결과 위주, 또는 학부모의 신청 위주로 참가 희망 신청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아주 잠깐은 한 시름 덜었다, 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아주 안일한 생각이 아닐 수가 없다.


***

교육 사업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참여한다면 진행되어야 하는 것. 시작 단계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어떤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럴 수 없도록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실무자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운영되게끔 또, 빠진 틈이 없도록 사후 점검까지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 학생의 부진은 그 학생 스스로의 학교 생활 뿐만 아니라 교실 안 여러 명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게끔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결과로 보기에 단순 학습 부진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단순히 공부만의 문제가 아닌 것을 알게 된다. 난독증이라든지, 집중력 결핍 장애 같은 학습 장애 증상을 경미하게 또는 심하게 갖고 있는 학생들이 있고, 이건 성적을 떠나 학생의 자존감과 직결된다. 낮은 성적이나 저조한 학습 활동 과정을 반복해서 겪게 되면 학생들은 다양한 부정적인 양상을 보인다. 학습 무기력에 빠져 수업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멍하니 있을 수도 있고, 학습 의욕을 잃고 딴 짓에 몰두하거나 다른 학생의 수업 활동을 방해하는 걸 일삼을 수도 있다. 어찌됐건 종래에는 학습 부진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교육 사업, 특히 학습 부진과 관련된 사업은 한 명이 희망을 한다거나 도움을 필요로 해 구제하고자 한다면 기꺼이 이루어져야 하는 게 맞다. 다만, 나도 다수의 학생으로 이루어진 학급을 이끄는 담임이고, 한 학급은 너무나 많은 계획의 수립과 이행을 요구하는 1년 농사로써 끝없이 일구어야 하는 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버거운 한 학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1학기 사업을 종료하고, 방학 중에 진행되거나 2학기에 시작할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기초 학력 업무의 진면모를 알게 되었기에 이 글로 기록을 남길 수 밖에 없다. 다음에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기초 학력만은 안 해야지, 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거다.


하지만,

벗,

그러나,

하우에버,

업무의 선택권은 어차피 없을 걸 알기에 올해는 업무 스트레스와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학교 밖 심신 수련과 심적 치유에 집중을 하는 수 밖에. 그래도 방학은 온다. 힘내자, 아자아자 화이팅. 기초학력 부진 0을 꿈꾸며, 업무부담 경감을 꿈꾸며, 비현실이 현실이 되길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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