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페사로 현대미술관
베니스 칼 페사로 현대미술관에서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미국 화가 아쉴 고르키(1904~1948)의 회고전이 열렸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고군분투하던 예술가의 전형으로 불행하게 생을 마친 그는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과 더불어 가장 주목해야 할 20세기 미국 화가로 꼽힌다.
고르키는 1904년 현 터키 서북부에 속하는 아르메니아의 코오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보스다닉 아도이안. 1915년 터키가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자 가족과 함께 피난을 갔다. 어머니가 1919년 영양실조로 사망하자 그는 누이와 함께 1920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고를 해결해야 했던 그의 나이는 겨우 16세였다. 그가 겪은 고난과 비극은 훗날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로 나타난다.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고르키는 보스턴에 있는 디자인 뉴스쿨에 들어가 미술을 공부했다. 1925년 뉴욕으로 옮겨 그랜드 센트럴 아트스쿨에서 계속 공부를 했다. 이름을 아쉴 고르키로 바꾸고, 시간이 날 때마다 뉴욕의 유명한 미술관을 다니면서 거장들의 걸작과 같은 시대 유럽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접했다.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후안 미로 등의 작품을 흉내 내던 시기를 지나 바실리 칸딘스키를 연상하게 하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작품 방향을 수정하면서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밝은 색채의 유기체 형태가 떠다니듯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 고르키의 서정적인 추상화는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운동 초기에 등장해 윌렘 드 쿠닝,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으로 이어지는 뉴욕 화파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34년 필라델피아 멜런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35~39년 공공사업진흥국 연방미술사업계획에 참여해 공공 벽화를 그리기도 했던 그는 1940년대 휘트니 미술관 등 뉴욕의 주요 미술관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초현실주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국제적 초현실주의 운동의 일원’이라며 추앙할 정도로 1945년엔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는 화가가 됐지만 연이은 불행이 그를 덥쳤다.
1946년 1월 코네티컷 작업실에 화재가 나서 작품 30여점이 불에 타 버렸고, 한달 뒤에는 장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다. 악재들이 겹치면서 우울증이 생긴데다 1948년 6월 자동차 사고를 당해 목이 부러져 한동안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됐다. 아내마저 두 아이와 떠나자 삶의 벼랑 끝에서 괴로워하던 그는 그해 7월 목을 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베니스에서 열리고 있는 고르키 회고전에는 초기작 ‘정물’, 어머니와의 추억을 담은 ‘어머니와 소년’부터 밝은 색체의 유기체들이 떠다니는 듯한 ‘폭포’ 등 서정성 넘치는 추상표현주의 대표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연한 색조의 구조주의 화풍으로 그린 고르키의 자화상에서 시작하는 전시는 모든 열정을 접고 생을 마감해야 했던 시기에 그린 최후의 작품으로 마무리된다. 인정받은 화가로서 전원생활을 즐기며 여유롭게 작업하던 시기의 화사한 작품과 대조를 이루는 암흑색의 마지막 작품은 삶을 접어야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예술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 진다. 9월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