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정리>안창홍 전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두상들이 경남 창원의 경남도립미술관 1층 전시실을 가득 채웠다. 화려한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섬뜩하다. 왜일까. 눈. 얼굴에는 분명히 눈이 있지만 눈동자가 없어 볼 수 없다. 어떤 얼굴 형상에는 특정 날짜가 새겨져 있고 어떤 형상에는 바코드가 그려져 있다. 화가 안창홍(b.1953)의 ‘눈먼 자들’(2016~2018) 연작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뜬 눈으로 이 참극을 지켜보면서 분노와 절망 속에 시작했다는 ‘눈먼 자들’ 시리즈. (창원 함혜리)

포르투갈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제목을 차용했다는 이 대형 입체 작품에 대해 화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들을 환기시키려 했다”라고 말한다.

날카로운 시선과 충격적 화법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해 온 ‘미술계 이단아’ 안창홍의 최신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관은 지역 출신 작가에 대한 집중적 고찰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매년 지역작가 초대전을 열고 있다.

경남도립미술관이 진행하는 지역작가조명전에 초대된 안창홍작가. 고향 밀양에서 가장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며 활짝 웃고 있다. (창원 함혜리)

지난 5일 개막한 전시의 제목은 ‘안창홍: 이름도 없는’이다. 2018년 시작된 회화 연작의 제목이자 지난 40여 년 간 작품의 주제가 되어 온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과 역사 속에 희생되고 사라진 이들을 의미한다. 2009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이후 10년 만에 국공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으로 대형 입체작품들과 부조, 회화작품 등 130여 점을 선보인다.

안창홍은 밀양 출신으로 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제도적인 미술교육을 거부해 대학을 다니지 않고 일찍부터 작품 활동을 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역사의 일부로서 자신의 비극적 가족사를 다룬 ‘가족사진’,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다룬 ‘위험한 놀이’, 민주화운동과 군부 독재의 실상을 그린 ‘새’ 연작 등을 발표하면 민중미술 1세대 작가들과 ‘현실과 발언’에 동참했다. 1990년대 들어선 여인, 남자, 청춘, 사랑 등을 소재로 한 독창적인 화법의 연작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담아냈다. 2000년대 빛바랜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한 ‘49인의 명상’과 ‘봄날은 간다’, 주변 인물을 섭외해 사실적으로 그린 소시민들의 누드 ‘베드 카우치’ 등 굵직한 회화 연작을 통해 개인의 역사를 시대와 사회의 역사로 확장시켰다. 최근에는 회화 작업 외에 사진, 드로잉, 조각 등 변화무쌍한 조형작업을 추구해 왔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뜬 눈으로 이 참극을 지켜보면서 분노와 절망 속에 시작했다는 ‘눈먼 자들’ 시리즈의 거대한 두상은 유리강화섬유로 제작된 얼굴 형태에 페인팅을 한 것이다. 작가는 “작품이 달라진 것 같지만 캔버스가 입체로 옮겨 갔을 뿐 회화의 연장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49개의 대형가면 부조 ‘마스크’시리즈. (창원 함혜리)

2층 제 3전시실에는 다양한 색상으로 칠해진 대형 가면들이 눈을 가린 채 벽에 걸려있다. 다른 방의 벽은 작은 얼굴 조형물들로 가득하다. 한결같이 처연하다. 개인의 정체성을 감추는 동시에 또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는 가면은 오래전부터 안창홍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했다. 화가는 “개인을 단순화시켜 표현한 가면들의 나열은 폭력과 억압으로 인한 개인의 정체성 상실이자 현대 사회의 집단 최면 현상과 군중심리를 나타낸다”라고 말했다.

미술관 1층에는 2019년 새롭게 선보이는 연작 ‘화가의 손’과 ‘화가의 심장’이 전시돼 있다. 각종 화구들이 뒤엉킨 화판 한가운데 백골의 손과 가시에 둘러싸인 심장이 자리한 작품은 작가 자신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작가들의 희비, 애환을 상징한다. 가시에 둘러싸인 심장만을 환조로 제작한 작품이 미술관 2층 공간에 전시돼 있다.

각종 화구들이 뒤엉킨 화판 한 가운데 가시에 둘러싸인 심장이 있는 ‘화가의 심장’.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작가들의 삶의 애환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는 입체 작품들 외에도 고등학교 때 작품인 ‘우주의 심장’(1973)부터 민중미술 1세대로 활동했던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인물들과 역사 속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화가 안창홍의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전시는 12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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