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스토리텔러 이미선 (방송인, 전 KBS 아나운서)
우리를 힘들게 했던 여름의 강렬한 태양도 어느새 힘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마에 내리 쬐는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지고, 아침 저녁 부는 바람결에서 선선함이 느껴질 무렵이면 클래식음악 애호가들이 찾는 음악에도 여지없이 가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납니다. 오랜 시간동안 계절의 흐름을 청취자들의 희망음악에서 먼저 느끼기도 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브람스의 음악을 찾고 첼로와 클라리넷의 음색에 끌리고 가을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이브 몽땅이 노래한 ‘고엽’이 수록된 음반에 손길이 갑니다.
오래 전 원주 KBS방송국에서 일하면서 주말이면 서울을 오가던 가을날이 떠오릅니다. 남한강 물줄기를 바라보며 산을 그득 물들이고 있는 낙엽송, 그 주홍 갈색 빛을 바라보며 떠올렸던 브람스를 기억합니다. 교향곡 4번이지요. 첫 선율은 나의 심장을 타고 들어오며 감정을 출렁이게 했습니다.
그 오묘한 빛과 음악은 얼마나 저를 깊이 위로해 주었는지요. 그 후 제게 가을은 브람스를 새롭게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브람스
클라라 슈만
브람스를 무척 좋아했던 시인 천상병의 이야기입니다.
‘송(頌)브람스’라고 제목을 붙이고 있지요.
오늘 나는, 오후 3시 명동 천주교성당 대문 앞 골목길, 고전음악 다방 ‘크로이체’서 브라암스 교향곡 제4번을 들으며 눈물겹게 앉아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도 근사하고 훌륭한 음악이 있을 성싶지 않습니다.
내 가슴의 눈물겨움은, 다만 소리 내어 울지 않게끔 해야겠다는 결의의 상징일 겁니다.
고전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한 것은, 미국군정하의 중학교 4학년 때 무렵이었습니다.
요새말로 하면 고교 2학년 때입니다.
그 당시 나는 구 마산시장의 일본어 책방에서 공짜로 책을 수 없이, 구체적으로는, 퇴교 때 매일같이 들러서 약 한 시간 가까이 읽었으며, 그러다가 책방 주인이 날 부르더니 ‘읽고 싶은 책은 집에 가져가서 읽게. 그리고 다 읽었으면 다시 그 자리로 꽂아 놓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 2개월 동안 책방이 나의 무료 독서실이었던 사이에, 무심코 나는 고전음악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책방 옆은 다방으로서 쉴 새 없이 고전음악을 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송(頌)브람스’
결국 시인은 옆 다방에서 들려오는 브라암스의 음악에 끌려 고전음악다방을 찾게 된 것이겠죠. 그의 아내의 말에 따르면 아침에 항상 커피를 마시며 브람스를 듣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는데, 그의 아침은 또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한편의 시에 담겨있습니다.
음 악
이것은 무슨 음악이지요?
새벽녘 머리맡에 와서
속삭이는 그윽한 소리.
눈물 뿌리며
옛날에 듣던 이 곡의 작곡가는
평생
한 여자를 사랑하다 갔지요?
아마 그 여자의 이름은 클라라일 겝니다.
그의 스승의 아내였지요?
백년 이백년 세월은 흘러도
그의 사랑은 아직 다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새벽녘
멀고 먼 나라
엉망진창인 이 파락호의
가슴에까지 와서 울고 있지요?
이렇게 그의 음악은 터트리는 울음이 아니라 속울음, 절제된 울음이면서 때로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어느 순간 함께 가볍게 날아오르게 합니다.
교향곡 제 4번 e단조 작품번호 98번은 교향곡으로는 브람스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브람스는 이 곡을 1884년에 시작해, 이듬 해 완성했지요. 초연은 그 해 10월 25일 마이닝엔(Meiningen)에서 브람스 자신이 지휘해 연주했고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초연을 앞둔 리허설에서 지휘를 맡았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방금 연습을 마치고 왔습니다. 4번 교향곡은 굉장합니다. 무척 새롭고 개성이 뚜렷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드문 열정이 넘쳐흐릅니다.”
그 당시 많은 추종자를 거느렸던 신 독일악파의 바그너도 “과거의 전통을 바탕으로 이런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인정했습니다.
초연의 성공이후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연주회가 20여 차례나 이어져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존경을 받았습니다. 브람스는 항상 마음 깊이 존경하던 선배 작곡가 베토벤을 의식했습니다, 그래서 교향곡 1번은 완성하는데 20년이나 걸렸던 거죠. 브람스는 항상 베토벤의 흉상을 자신의 방에 놓아두고 “거인이 내 뒤로 뚜벅 뚜벅 항상 걸어온다고 생각해 보게나, 그가 항상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게나, 그 기분을 자네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걸세“ 하며 털어놓았다던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요.”
당대의 음악평론가 한슬릭은 브람스의 교향곡에 대해 ‘어둠의 근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어둠에서 빛으로 나간 베에토벤의 음악을 벗어나 비극으로 끝마치는 자신만의 교향곡으로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브람스는 50대를 넘어서야 베토벤의 그림자를 벗어났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람스는 그 인생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 편성이 큰 관현악보다는 실내악에 한층 마음을 쏟아 클라리넷을 중심으로 한 5중주, 3중주, 소나타 등에 집중했습니다.
바그너, 리스트를 중심으로 한 신독일악파의 큰 물결이 주도하던 시기에 타고난 보수주의자 브람스는 협주곡, 교향곡 분야의 작품 수가 많지 않고 낭만주의 시대 많은 작곡가들이 작곡했던 표제음악에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지요.
교향곡 전 곡을 한자리에서 감상하는 일은 음악회를 찾아가거나 천상병 시인처럼 대단한 브람스의 팬이 아니라면 쉽지 않은 일이지요.
브람스교향곡 4번은 1악장 첫 주제(서주 없이 곧바로 현으로 연주되는)의 강한 끌림과 이어지는 제 2주제의 첼로와 호른의 음색이 들려주는 서정적인 분위기, 3악장이 주는 활달함, 그 넘치는 에너지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마지막 4악장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 150번 ‘주여, 저는 당신을 바라나이다’의 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변주의 능력을 펼치며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전 곡을 감상하니 전체를 감싸고 흐르는 드라마, 브람스만의 깊은 열정과 우수, 공간을 소리로 가득 채우는 강렬한 음악에 빠져듭니다.
들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수수께기 같은 첫 주제의 이야기가 무엇일까? 거듭 생각했는데 브람스 자신은 초연 후 11년이 지난 1896년 이 곡의 악보를 펼쳐놓고 첫 4개의 음에 ‘오 죽음이여, 죽음이여’라고 썼습니다. 아마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음을 생각한 것일까요? 그 이듬해 그는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원주와 서울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반복해 들었던 가을날들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이 가을, 다시 한 번 낙엽송과 브람스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카세트 테이프로 감상할 때는 브루노 발터가 지휘한 콜럼비아 심포니의 연주곡을 듣곤 했습니다. 많은 지휘자들이 명연주를 남기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표현이 가능할까 싶은 연주를 만나곤 합니다. 감상자의 취향과 연주의 첫 인상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지요.
방송은 음반으로 이루어지는데 저는 특히 연주회 실황 녹음을 좋아합니다. 현장의 분위기, 지휘자, 연주자, 청중의 얼굴과 몸짓에 나타나는 다양한 표정과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어서지요. 마침 2011년 영국 런던의 프롬스 축제에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실황 연주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공유합니다.
proms축제는 ‘산책하다’는 뜻의 ‘프롬나드(Promenade)’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기존 공연에 비해 입석을 많이 마련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주한다는 의미입니다. 영국의 지휘자 헨리 우드가 자유롭고 평등한 축제를 꿈꾸며 1895년 시작했다가 1927년부터 방송국 BBC가 맡아서 운영하면서 ‘BBC 프롬스’라고도 불리지요. 로열 앨버트 홀, 카도간 홀, 그리고 하이드 파크에서 열리는데 오케스트라, 독주 및 실내악, 야외 공연을 엽니다. 8주 동안 런던 전체를 거대한 ‘음악 산책로’로 만드는 축제로 ‘점심시간 공연’ ‘심야의 클래식’ ‘초심자를 위한 클래식’ 등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하이팅크의 지휘로 브람스 스스로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 세상에 내어 놓은 교향곡 4번에 귀 기울여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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