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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Sep 30. 2019

<지난  전시>
라이자 루 '강과 뗏목'  

리만머핀서울 갤러리&송원아트센터 - 2019.11. 2일 

글 사진 함혜리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 라이자 루(b.1969)는 아주 작은 유리구슬(glass beads)을 주재료로 작업한다. 수만 개의 구슬을 꿰어 2차원의 직물 형태로 만든 다음 캔버스에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한다. 멀리서 보면 직물을 이용한 작업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만 개의 구슬들이 이어져 있다.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는 만큼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리만머핀 갤러리의 서울 스페이스(서울 종로구 율곡로 3길 74-18)와 송원아트센터(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5) 두 전시공간에서 11월 9일까지 라이자 루의 신작전이 ‘강과 뗏목’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진다.


리만머핀 서울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앞에 선 작가 라이자 루.

리만머핀 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루는 “30년 이상 구슬을 주 재료로 다뤄온 것은 복잡하고 끔찍한 일들이 이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계속 힘든 노동을 수반하는 예술을 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예술 작품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루는 순수예술의 재료로는 비전통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구슬로 작업하면서 재료의 범위를 넓혀 개념적 대상으로 이를 탐구해 왔다. 작가 커리어의 분수령이 된 작업이자 휘트니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은 부엌 기기들을 모두 구슬로 덮어 씌운 작품 ‘키친’은 5 년에 걸쳐 작가가 혼자서 완성한 것이다. 이 작업 후 루는 또 다른 가능성에 도전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동부의 콰줄루나탈(KwaZulu-Natal)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2005 년부터 줄루족 장인들과의 협업을 시작했다. 루의 작업은 과정, 노동, 아름다움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 여정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함으로써 생겨나는 우연의 결과물을 우선시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Desire-Lines, 2019


Circles, 2019


서울의 두 전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전시에는 회화와 조각 두 장르로 분류될 수 있는 연작을 통해 새롭게 도달한 예술세계를 선보인다. 전시의 주제에 대해 루는 “재료에 대한 개념적 탐구 과정에서 재료를 이제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불교 경전에서 ‘뗏목’에 관한 우화에서 얻었다”라고 말했다.

‘뗏목’ 우화는 자신이 건너야 하는 강 앞에 선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배 한 척도, 건널 수 있는 다리도 찾지 못한 남자는 뗏목을 만든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알맞은 모양을 잡고 밧줄로 나뭇가지들을 하나로 묶은 그는 자신이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을 때까지 거듭해서 모형을 시험해 본다. 맞은편 강둑에 다다르자, 남자는 안전하게 그 여정을 성공할 수 있게 한 도구인 자신의 창작물로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그를 번거롭게 하고 전진을 느리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뗏목을 계속 가지고 가야 할까? 부처님은 깨달은 다음엔 뗏목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추구했던 일을 위해 들인 공과 시간의 가치를 내려놓는 일에 관한 교훈이다. 그 상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홀가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서울 전시에서 소개되는 미니멀한 신작들은 밀도 높고 다층적인 배열로 구슬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겹쳐 놓고 깨트리고 꿰매는 등 특유의 비정통적인 작품 제작 방식으로 제작됐다. 구슬은 섬세한 레이스 모양의 패턴으로 활용되는데 각각의 천에는 문을 연상시키는 구멍이 남겨져 있고, 그 사이로 형형색색의 유화가 노출된다. 다른 작업들에서는 자유롭게 걸려있는 듯하면서 덮개처럼 겹쳐진 천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고, 그 아래로 흡사 멍든 모양으로 보이는 물감이 발라져 있다. 물감의 얼룩과 부스러기를 재창조해 드러냄으로써 작가는 구슬로 엮은 직물을 해체하고 이를 겹쳐 보여주는 등 새로운 영역으로 옮긴다. 이런 추상적인 접근은 두꺼운 임파스토(impasto/ 물감을 두껍게 칠해 질감을 강조) 기법의 유화가 특징인 신작 시리즈 전반에서 두드러진다. 평면 작품에 조각적인 성질을 부여하고, 그려졌다기보다는 주조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벽 위에 펼쳐 엮어진 작품들은 편안하고 고요하게, 갓 세탁한 빨래가 줄에 널려있는 것처럼 미적으로 충만한 느낌을 준다. 리만머핀은 올해 키아프에 라이자 루의 2018년 작품을 소개했다

루는 ”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왜 예술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자 했다”면서 “서울 전시에서 소개되는 신작들은 아름다움은 고통스러울 정도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 얻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천적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Sunday Morning,2019. 캔버스 위에 엮은 구슬,실,오일 페인트

라이자 루는 1969년 뉴욕에서 태어나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 중이다. 작가의 대표적 개인전은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자이츠 현대미술관(2017년), 뉴욕 노이버거 미술관(2015), 샌디에이고 현대미술관(2013년), 뒤셀도르프 쿤스트 팔라스트(2002년), 스미소니언 랜윅갤러리(2000년) 등이 있으며 다양한 단체전에 작품이 소개됐다. 오는 11월 22일 뉴욕 휘트니미술관은 루의 기념비적인 설치작품 ‘키친’을 2021년까지 열리는 소장품전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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