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취향, 아트램프의 취향
그림 보는 안목이 어느 정도 생기면 마음에 드는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조 때 최고의 그림 수집가였던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1727~1797)은 자신의 수집품을 <석농화원(石農畵苑)>이라는 이름의 화첩으로 만들었다. 이 화첩에 당대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유한준(兪漢雋·1732 ~ 1811)이 서문을 썼는데 그 내용 중에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그림의 참모습을 감상하게 되고, 감상하다 보면 수집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림을 수집하는 이유를 잘 설명한 글이다.
그런데, 그림을 사랑해서 안목이 생겨도 처음에는 내가 집에 걸어 놓고 사랑할 수 있는 그림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사고 싶은 그림을 만나도 안목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경험이 없어 결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성급하게 결정하면 얼마 안 가서 그 그림이 마음에 안 드는 ‘수업료’가 될 가능성도 많다. 그렇다면 첫 그림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을까?
첫 번째 결정해야 할 일은 예산이다. 그러나 이때도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만약 믿을만한 안목을 가진 조언자가 옆에 있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예산을 사용해도 괜찮다. 그렇다면 갤러리 주인이나 큐레이터의 안목과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이에 대한 결정은 애호가의 몫이다.
몇 년 전에 부산에서 열리는 어느 화랑미술제에서 초보 애호가를 위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이때 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어느 초보 애호가가 그런 경우라면 예산이 어느 정도가 좋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전에 다른 곳에서 내가 거꾸로 어느 정도면 부담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옷 한 벌 값이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자신이 큰 맘먹고 옷 사면 백만 원인데 전시장에 그 돈을 주고 추천할만한 그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80만 원짜리 조그만 그림을 봤다고 했다.
강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질문했던 애호가와 그분의 친구들이 그 그림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나는 애호가 한 명 만들면 화가에게도 좋은 일이기에 그 그림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구동성으로 아까는 왜 이 그림을 못 봤지? 하며 그림이 마음에 든다며 서로 사겠다고 했다. 그 그림은 질문했던 분이 구입했는데, 나머지 분들도 그 화가의 소품이 좋다며 너도 나도 한 점씩 구입했다. 어느 분은 카드로 분납이 된다는 갤러리 대표의 말에 150만 원, 200만 원짜리 그림을 구입한 분도 있었다.
(좌) 유의랑 curtainㅣ83x57cm 에디션 8/150
(우) 유의랑 moon in the field ㅣ76x57cm 에디션 108/150
순식간에 10여 점이 팔리자 갤러리 주인이 누구시냐고 물었다. 강연 왔던 사람이라고 대답하자 또 물었다. 자신이 추천하면 잘 안 사는데 내가 좋다고 하니까 사는 이유를 물었다. 갤러리 하는 사람으로서는 꼭 알고 싶은 ‘비결’이라고 했다. 나는 그림에 대한 안목은 대표님이 저보다 훨씬 훌륭하지만 애호가들은 갤러리 대표와 신뢰 관계가 쌓이기 전에는 추천이 매상을 올리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그림을 사려는데 옆에 조언자가 없으면 인터넷 경매에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판화를 구입하는 게 좋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도 좋은 판화가 많다. 운이 좋으면 백남준의 판화도 100만 원 이하로 살 수 있다. 인터넷 경매에서 3 점정도 사면서 경험을 쌓으면 그다음에는 화랑 문턱이 쉽게 넘어진다. 그러나 그림을 살 때는 절대 서두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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